V. 간파와 믿음
1) 실패는 희망의 어머니: 고통을 은폐하는 언어
[사례4-3-1: 도박과 희망]
화투(花鬪). 꽃을 가지고 하는 싸움. 말이 참 예뻐요. 근데 화투판에서 사람 바 보 만드는 게 뭔 줄 아세요? 바로 희망. 그 안에 인생이 있죠. 일장춘몽. (영화 ‘타짜’
中)
개인투자가 불리함에도 전업투자자로써 도전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다수의 전업투자자들은 ‘그렇다면 도전하지 않는 것은 무엇이 냐?’며 반문했다. 이들의 주장대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며, 어느 것도 확실한 결과를 담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 시험도, 취업준비도, 개인자영업도, 하물며 학위를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 모두 보증되지 못한 결과를 얻기 위 해 불확실성에 투신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다. 개인 전업투자자들은 물 론 개인투자가 불리한 측면이 있지만 도전과 경쟁은 어떤 선택을 하던 존재하 는 상수(常數)로서 인식한다. ‘실패’의 위험이 있는 개인사업과 마찬가지로, 개인 전업투자를 일종의 ‘개인사업’으로 인식하기에 ‘실패할 확률’은 선택과 동시에 받아들여야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들은 이처럼 “도전하지 않는 삶은 없 다”라는 인식을 강조함으로써 위험을 스스로 은폐하고 합리화한다.
[사례4-3-2: 도전하지 않는 삶은 없다]
내가 이 사업을 했을 때 실패할 확률도 있지만,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합 리적일까? 비합리적일까? 예를 들어서, 요즘 편의점을 그렇게 많이 흔하게 하는데.
편의점 한다고 하면 주위에서, 그거 너무 많이 생겼고, 금방 망하는데, 너 그거 돈도 못 벌어. 인건비도 안 나와. 근데, 그 많은 사람들은 하잖아. 그럼 그 사람들은 비합
리적일까? 마찬가지로 아이돌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도 요즘 많은데, 몇 만대 일의 확률을 뚫고 하는데. 그럼 그거 도전하는 친구들은 다 비합리적인 걸까? (박성호, 로 알매매방 입실자, 40대)
이들이 자주 사용하는 또 다른 격언은 “수업료는 반드시 치러야한다”
는 것이다. 주식과 파생상품 투자를 통해 ‘성공’의 맛을 보았던 사람들 중에 손 실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 실패경험의 쓴맛을 맛보아야만 수익의 단맛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담론은 주로 ‘수업료’로 표현된다. 무언가 배우 기 위해서 돈을 지불해야 배울 수 있는 것처럼, 투자 역시 배우기 위해서는 ‘수 업료’를 지불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손실의 경험은 수익을 ‘갉아먹 는’ 반의어로서 성공적인 투자를 위해서는 반드시 지양해야할 대상이 아니라, 마치 ‘미래의 더 큰 수익’을 위한 투자처럼 인식된다.
[사례4-3-3: 수업료는 내야만 한다]
내가 1000만 원을 잃었으면, 이게 ‘수업료’에요. 어디 가서 뭐라도 배우려면 돈을 내야하잖아요. 사업을 하려면 어쨌든 실패를 하는 거고. 정주영도 한 번에 성공 하지 않았다고요. 두세 번 망하고. 그게 수업료야. 여기서도 똑같은 거예요. 주식을 해서 손실을 보지만, 아 이 정도는 수업료야. 내가 더 큰 돈을 벌기 위해서 이 정도는 지불해야 할 대가인거에요. 처음부터 다 돈을 벌면 이 세상에 부자 아닌 사람이 어디 있어. (박성호, 로알매매방 입실자, 40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투자를 지인에게 추천하는가?’하는 질문을 던 지면 개인 전업투자자들은 추천을 꺼리거나, 손실의 경험이 당연함을 미리 고지 한다고 한다고 대답한다. 수업료를 내는 것이 가치가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면서 도, 지인에게 수업료를 내개 할 만큼의 확신이 없다는 것을 고백하고 있는 셈이 다.
[사례4-3-4: 날려도 되는 돈이면 해 봐]
(초보투자자에겐) 돈 얼마 있어? 그 돈 다 날릴 수 있어? 한 번 날리고 두 번 까지 날릴 수 있는 돈 있으면 하라고 해요. 내가 천만 원을 날려도 내 인생에 상관이 없다? 상관없음 한 번 날려봐. 벌지 말고 날려. 당연히 날릴 거니까. ‘뻔’ 한 거죠, 답 은 정해져 있는 건데. 왜? 다 보면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엔 다 잃거든.
(박성호, 로알매매방 입실자, 40대)
주식투자는 수업료를 치러야 돼요. 많이 치르면 망하는 거고 적당한 수준에서 치루면 그 실패를 바탕으로 하게 되는데 주식투자 웬만큼 하는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들어보면 처음에는 다 실패했어요. 안 치룬 사람은 없어. 나는 운이 좋게 수업료가 감 당할 만한 수준이었던 거죠.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잘 추천을 못해주겠더라
고. (송흥민, 개인 전업투자자, 50대)
같은 이유로 로알매매방 안에서는 ‘입실 2-3년차까지는 돈 못 버는 것 을 당연하게 생각해야한다’는 담론이 마치 오래 매매방에서 버티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는 조언으로 통용되고 있다. 초보투자자니 경험도, 정보도, 기술도, 분 석력도 모두 부족한 상태이므로 마음을 겸손하게 먹고 공부에 매진하라는 뜻이 다. 예를 들어, 박성호 씨는 자신에게 ‘상담’을 요청한 한 코스닥 급등주를 거래 하는 입실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례4-3-5: 1-2년 간 수업료 치러라]
형, 그런 거 하지 마세요. 그런 거 하면 여기 오래 못 버텨요. 하지마세요 되 게 위험해요. 돈을 빨리 벌 수 있을지 몰라도, 여기 오래 못 버텨요. 그리고 여기 오 셨으면 1-2년간은 수업료 내신다고 생각하고, 손실 보신다고 생각해야 돼요. 절대 번 다고 생각하면 안돼요. (박성호, 로알매매방 입실자, 40대)
신영복 씨 또한 처음 로알매매방에 입실했을 때, 현재는 지병 때문에 퇴실한 한 원년멤버 ‘김래현(가명) 선배’ 사장이 ‘급하게 돈 벌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해라. 2-3년 정도는 돈 좀 잃더라도 꾸준히 계속 노력하라.’고 충고 해 준 조언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격언은 실패의 원인을 자신 의 실력이 부족하기 때문임을 직시하고 더 부단히 노력하면 수익률이 개선될 수 있다는 희망을 불어넣는다. 동시에 지금의 손실을 지속적으로 보고 있는 현 실을 정식으로 문제 삼지 않으며 ‘괜찮다’고 인식하게 만든다.
[사례4-3-6: ‘괜찮아, 손실이야’]
나도 김래현 사장 같은 선배 없었으면 돈 벌려고 달려들었을 텐데. 그만큼 급 하게 달려들다가 복구가 안 되게 망한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죠. 전에 직장 다닐 때는 회사 일 때문에 주식도 제대로 못 봐서 이젠 원 없이 봐야겠구나 했는데. 그 사장님 말 듣고 조급함을 좀 고쳐먹었죠. (신영복, 로알매매방 입실자, 50대)
이와 같은 성찰에 기초한 실패를 은폐하는 언어를 활용하다보면 돈을 잃는 과정에서 빠지게 되는 착각이 있다. 잔고는 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투자 자는 스스로 돈을 벌고 있는 중에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원인은 개인 전업투자자가 손실을 얻는 방식이 가진 특이성 에 있다. 개인투자를 전업으로까지 전향한 자라면, 어느 정도의 투자 승률을 갖 고 있으며, 개인투자를 통해 크게 수익을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한 번의 거래를 통해서 수익을 얻을 확률이 손실을 볼 확률보다 클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박성호 씨의 말을 빌리자면 ‘주식이라는 게 사람을 현혹하게 만든다.’ 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벌 수 있다고 생각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예 손실만 봤다면 애초에 전업투자에 뛰어들지도 않았을 텐데, 대부분의 거래에서 는 수익을 거둠으로써, 돈을 번 경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매매하면 되겠구나!’하 는 확신을 얻게 된다. 또한 손실을 경험할 때는 실패의 원인을 성찰하며 ‘이렇 게만 안하면 손실을 줄일 수 있겠다’라는 희망을 불어넣는다. 이와 같은 성찰, 은폐의 언어, 그리고 새로운 희망의 생성이라는 연속된 과정 속에서 개인투자자 는 투자를 지속할 동력을 확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