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개미의 매매방 사용설명서
2. 주위의 부정적 이목, 관계의 단절
량 더 저렴한 신도림에 위치한 매매방을 이용했다. 하지만, 약 2년 전 로알매매 방으로 옮겼는데, 그 이유를 로알매매방은 좀 더 주식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 라고 말했다. 또한, 신도림 매매방에 있을 때에는 자기가 매매를 가장 잘 하는 고수였는데, 로알매매방은 자신보다 더 수익률이 좋은 입실자가 많아 자극도 되 고, 배울 점도 많기에 앞으로도 로알매매방에 남을 것이라고 했다.
[사례4-1-6: 매매 자극을 주는 로알매매방]
(로알매매방 입실료) 22만 원이 좀 비싸긴 하지. 이전에 있었던 데는 신도림은 13만원 이었는데. 주식하는 사람이 나랑 어떤 사람 해서 둘이었어요. 근데 그 사람은 엄청 못해서 좀 답답하고. 어떤 사람은 딴 일 했어요. 인력소개. 그랬는데, 여기는 나 보다 주식 잘 하는 사람이 있고, 또 분위기가 주식하는 분위기니까. 비싸더라도 여기 있어야겠구나. (신영복, 로알매매방 입실자, 50대)
이처럼 로알매매방은 입실자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핵심 공간으로, 경제 적·시간적 비용과 관계없이 ‘가장’으로서 출퇴근 할 수 있는 대안공간으로, 매매 할 때의 집중력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개인 전업투자자인 자기 자신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그 인식이 어떻 게 경제적 비용과 상관없이 매매방 이용을 선호하게 만들며 결국 사회적 관계 의 단절로 이어지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로알매매방 입실자들은 스스로 매매방 외부 사회로부터 부정적 인식의 대상이 된다고 고백한다. 따라서 로알매매방은 개인 전업투자자로서 받는 사회 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이 된다. 매매방은 동질적인 사람들이 모 여서 각자 투자에 매진하는 공간이기에 상대가 나를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는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서다. 스스로를 소개하고 설명해야할 필요도 없다. 구 자철 씨는 한 때 자택 근처에 있는 공립도서관의 노트북 존(zone)을 이용하여 매매했는데 ‘공부하는 분위기’에서 홀로 주식을 한다는 점에 이질감을 느껴 매 매방으로 오게 되었다.
[사례4-2-1: 제 발 저리는 전업투자자]
도서관에서도 사실 사람들 공부하는데, 물론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한다고 해도 좀 그렇잖아요? 주식하는 게 좀 이상한 거 같고. (구자철, 로알매매방 입실자, 50대)
부정적 인식을 의식한 입실자 대다수는 자신이 생계형 개인 전업투자 자로 전향했다는 사실을 지인에게 잘 알리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알려봤자, ‘어차 피 잃는다,’ ‘그러다 망하고 자살한다.’ 식의 회의적인 우려 섞인 평가만을 듣기 때문이다. 박성호 씨에 따르면 입실자의 30-40%는 가족에게 회사를 나와서 매 매방에서 개인 전업투자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숨긴다. 그러면서 생활비는 매달 집에 갖다 주고, 퇴근시간 맞춰서 집에 들어가는 이중생활을 하는 것이다. ‘주식 이콜(=) 도박’이라는 사회적 편견 때문이다. 주식 혹은 파생상품 매매에 대한 접 근성이 낮았던 2000년대 이전이나, HTS와 MTS의 보급으로 주식을 하지 않거 나 해본 적 없는 사람이 드문 오늘날에도 금융상품 매매에 대한 부정적 시선은 여전하다.
[사례4-2-2: 전업투자자라는 사실 감추기]
주위 사람한테 전혀 이야기 안 해. (주위에) 하는 사람도 없고, 얘기 하지도 않 고, 내가 권장하지도 않고. 주식하는 건 부인만 알아. (왜요?) 인식이 안 좋잖아. 딸들 이나 친구, 가족은 명퇴하고 친구 사무실 다니는 줄 알아. 직업 귀천은 없지만...
한국사회에선 인식이 안 좋아. (박지성, 로알매매방 입실자, 50대)
(주위 사람들한테 개인 전업투자한다고 이야기) 잘 안하죠... 불로소득이랑 도 연관되고. 돈은 일(노동)해서 벌어야지 같은 생각도 있고. 그러니까 주식투자를 일 로 잘 안 보는 거죠. (송흥민, 개인 전업투자자, 50대)
개척교회 목사인 부친을 가진 신영복 씨는 음주와 담배까지 멀리하는 모태 기독교 신자이다. 그는 자신이 주식투자를 하는 것을 투기를 금하는 종교
적 교리에 위배된다고 생각하여 부모님과 교회 지인들에게 떳떳하게 밝히지 못 하고 있는 상태이다. 이들이 개인 전업투자에 대하여 종교적 가책을 느끼게 만 들기 때문이다.
[사례4-2-3: 종교적 가책을 주는 개인투자]
아버지(목사님)는 모르시죠. 투기 같은 건 하지 말고 경건한 삶, 하나님이 기뻐 하실 일을 해야 하는데. 처음에 교회 식구들이 지하철 관두고 뭐하냐고 묻기에 매매 방 가서 주식한다고 하니 아주 안 좋게 보더라고. 그래서 지금은 그냥 개인 사업하고 있다고만 얘기해요. (신영복, 로알매매방 입실자, 50대)
이와 같은 주식투자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 시선 때문에, 2009년도
‘SBS스페셜’ 촬영팀이 ‘쩐의 전쟁’이라는 개인 전업투자자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 위해 로알매매방을 방문하였을 때 촬영에 대한 매매방 입실자들의 반 응은 적대적이었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서 행여나 지인 이 자신을 알아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다.
[사례4-2-4: 신발도 나오면 안 된다!]
2009년도에 SBS에서 우리 사무실에 한 번 취재를 나왔어요. 직업투자자들을 알아보는 그런 취재였는데···다들 걸리면 큰일 난다고 뒤통수는커녕 신발도 나오면 안 된다고 그래요. 이게 사회적 인식이 어떤지를 다 아니까. 뒤통수도 나오면 안 된다.
아주 그냥 강력하게 얘기해서 깜짝 놀랐어. (이운재, 로알매매방 관리자, 50대) 얼굴 모자이크 처리 없이 당당하게 인터뷰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사람 은 소위 투자 대박이 난 입실자 두 명 뿐이었다. 실패로 인한 스스로에 대한 회 의감이 주위의 부정적 이목이라는 자격지심을 만들어 내 투자자들로 하여금 외 부 사회로부터 스스로 숨게 함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사례4-2-5: 나는 성공한 투자자]
그 중에 한 두어 명 정도는 당당하게 난 직업투자로 성공한 케이스니까 난 인 터뷰 하고 싶다. 얼굴 다 까고 하겠다! 둘이 인터뷰를 했는데 그중에 한 분이 SDS해 서 수십억 번. 그분이고 한 분은 옵션투자 해서 300만 원을 20억 정도로 번 양반이에 요. 그래서 대회 나가면 상도 받고 그래요. 자기는 얼굴 그대로 나와도 좋다. (이운 재, 로알매매방 관리자, 50대)
개인 전업투자자의 다수는 스스로가 이런 부정적 시선에 타당성이 있 다고 인정한다. 이운재 씨는 개인투자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워낙 그 실패 사
례가 많음이 경험적으로 증명된 결과라고 말한다. 자신이 매매방을 10년 넘게 운영하면서 개인투자자인 입실자를 봐도 워낙 실패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기에 이런 사회적 인식에 저항할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사례4-2-6: 주위 모두 거지꼴]
‘다 망할 일을 왜 하냐?’는 물음은 망한 사람, 자살한 사람 워낙 많으니까 생 기는 거잖아요. 너 언젠가는 꼭 망한다. 투자 한 번도 안 해본 사람, 조금 해 본 사 람, 전문가도 다 알고 있기 때문에. 얘기를 안 할 뿐이야. (이운재, 로알매매방 관리 인, 50대)
중년남성 개인 전업투자자의 주식투자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청년세대 의 주식투자에 대한 인식과는 사뭇 다르다. 젊은 세대는 금융시장에 대한 이해 와 도전을 적어도 부끄럽게 그리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는 않은 것 같다. 주식 투자를 어린 나이지만 열심히 투자해 ‘경제적 자유’를 성취하겠다는 도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70) 얼마 전 불어 닥친 비트코인 광풍 또한 ‘성공’과 ‘대박’을 향 한 젊은이들의 열망의 반영이다. 비록 결론적으로 비트코인 가격이 ‘떡락’하여 미처 손절하지 못한 매수자는 ‘존버’하게 되었더라도, 청년세대는 중장년 세대와 다르게 ‘투자를 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오히려 자부심을 표현하기도 한 다.71)
그렇다면 중장년 개인 전업투자자와 청년 투자자의 태도의 차이는 왜 생기는 것일까? 중장년 개인 전업투자자는 그 자신부터 투자를 ‘투기와 도박’으 로 보는 부정적인 인식을 체화한 것은 아닐까? 이들은 개발독재와 고도성장의 시기를 거치며 땀 흘려 부지런히 일해 ‘정직한’ 부를 일구는 것이 올바른 가치 란 믿음에 길들여져 있을 수 있다. 실상은 이들이 살아온 시기에 근면한 노동과 합당한 보상의 등식이 성립했던 것은 아니지만, “정직한” 노동을 통하여 가족과 공동체에 기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관념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지 못한 것 은 사실인 것 같다. 다시 말해, 중장년 투자자가 주식투자의 부정적 인식에 동 조하는 것은, 이것이 공동체의 성실한 ‘부 일구기’나 근면-자조-협동에 배치되는 것이라는 평가에 익숙해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70) 한국경제, 2018.02.07., “[인턴기자 리포트] 돈은 내 자유의 확장···흙수저도 1%
기회 있다”
<www.hankyung.com/economy/article/2018020774401> (2019.04.17 접속)
71) 한국경제, 2018.01.10., “[인턴기자 리포트] 가상화폐 밤새워 공부하고 진지하게 임하는데 ‘묻지마’ 투자라니요?”
<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18011057281> (2019.04.17 접속)
[사례4-2-7: 주식투자에 대한 세대별 인식의 차이]
주식 선물투자를 해 그러면 애들이 스스로 자부심을 갖는 친구들이 많다더라 고. (젊은) 세대는 타인의 이목을 잘 신경을 안 쓰니까 그럴 수 있지만···우리 세대만 해도 주식이나 이걸 도박의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어디 가서 떳떳하게, 아 전업투자자입니다. 이렇게 말을 못하는 거지. 새마을세대잖아. 성실. 근로. 이런 게 머릿속에 박혀있는. 자기 노동을 통해서 대가를 얻고 생계를 유지하는 게 건전한 성인 사회인의 모습이라고 골수에 박히게 교육을 받아왔으니까. (차명근, 개인 전업투 자자, 50대)
연구자는 예비조사 단계 때 ‘젊은 개인 전업투자자’로 스스로를 소개한 이후 입실자와 라포를 형성하며 현지조사를 계획하는 연구자로서의 이중적인 신분을 소개하였다. 이에 대해 입실자들은 연구를 위한 것이라 ‘다행이다’라고 말하며, ‘솔직히 젊은 사람이 어린 나이부터 투자하는 것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 장을 밝혔다. 전업투자에 관해 마냥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다는 뜻이다.
이들은 적어도 젊은 나이 때에는 직장생활을 해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배워야 하며,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에 공헌해야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사례4-2-8: 젊을 때는 직장을 다녀라]
여기(연구자)도 처음에 선물하는 사람인줄 알았더니 알고 보니 아직 학생이더 만. 나는 젊은 사람들이 공부안하고 주식하는 건 안 좋게 보는 사람이야.···여기 사무 실도 30대 젊은 친구들도 많이 봤는데 내 자식이면 용서가 안 되지. (박지성, 로알매 매방 입실자, 50대)
젊은 사람들이 투자 하는 건 반대에요.···(젊을 땐) 직장생활 하고 사회경험 쌓 고 세상 돌아가는걸 알고. 일과 주식을 함께 해야 하는 거예요. (구자철, 로알매매방 입실자, 50대)
이처럼 금융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이들이 살면서 체험한 경제의 현장에서 갖게 된 믿음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투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 을 누구보다 잘 내면화하고 있는 개인 전업투자자의 사회적 관계는 자연히 단 절로 이어진다.
한국의 남성들이 인간관계를 맺고 유지하기 위한 중심이 되는 터는 직 장이다. ‘내가 조직이고 조직이 나다’를 표방하는 한국 기업의 군대식 조직문화 에 짧게는 10년부터 길게 30년까지 몸담으며 산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나 면 한순간 그동안 쌓아왔던 인간관계망에서 소외되며, 매매방이라는 새로운 공 간에 던져진다. 집단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사회와 동떨어진 공간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이곳에서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을 수 있는 기회가 확연히 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