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햇볕정책’

제 3 부

2.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 ‘햇볕정책’

김대중 정부의 출범은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이 북한을 적극적으로 이 해하려는 방향으로 설정되는 전기가 되었다. 김대중 전대통령은 1998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남북 교류협력이 이루어질 경우 북한의 미․일 등

한국의 우방국가 및 국제기구와의 교류협력 추진을 지원할 용의가 있음 을 밝히고, 이산가족문제의 조속한 해결을 강조했다. 또한 문화와 학술 의 교류, 정경분리 원칙에 입각한 경제교류의 확대를 강조하였다. 그리 고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이 남북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임을 환기시 키고, 이를 위한 출발점으로서 남북기본합의서의 이행을 위한 특사 교환 을 제의하였다. 북한이 원할 경우 정상회담에도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 혔다.

이어 김대중 정부는 ‘평화․화해․협력’의 실현을 통한 남북관계의 개 선을 대북정책의 목표로 제시하였다.5 남북간 신뢰가 구축되어 있지 않 고 북한에서 체제변화의 도입이 준비되지 않은 남북대치의 상태에서 평 화공존의 실현과 평화통일로 가는 기반조성이 무엇보다 선행될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남북기본합의서는 이러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기본적 수단이며, 동 합의서의 이행을 통해 남북한이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 력을 실천하면 남북간의 문제를 해결하고 자연스럽게 통일에의 길로 들 어설 수 있다는 입장이다.6

대북정책 목표 달성을 추진하는 3대 원칙으로서 무력도발 불용, 흡수 통일배제, 가능한 분야부터 남북화해․협력의 적극 추진을 내세웠다.

대북정책의 목표달성을 위한 6가지의 정책 추진 기조로서, ①안보와 협 력의 병행 추진, ②평화공존과 평화교류의 우선 실현, ③화해․협력으 로 북한의 변화여건 조성, ④남북간 상호 이익의 도모, ⑤남북당사자 해결원칙 하에 국제적 지지 확보, ⑥국민적 합의에 기초한 대북정책 추 진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구체적인 대북정책은 통상 ‘햇볕정책’이라는 명칭으로 일컬 어졌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은 출범 두 해 동안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으나, 2000년 3월 대규모의 남북경협을 시사한 베를린 선언 이후 막 후 협상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성사시켰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 책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전개된 일련의 남북관계와 제시된 정책기조와 의 정합성 여부 등으로 그 성과를 평가해볼 수 있다.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의 긍정적 측면으로 다음과 같은 점을 제시할 수 있다.7

5통일부,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 추진기조 , 1998년 3월 26일.

6박영호, “신정부 통일정책의 평가와 전망,” p. 57.

7박영호, “정상회담 이후 남북 정치․군사관계 평가와 향후 발전 방향,” 남북 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착 (서울: 통일연구원, 2002), pp. 39-43을 바탕으 로 수정․보완하였다.

첫째, 정상회담 성사를 둘러싼 대규모의 현금 지원이 추후 밝혀짐으로 써 법률적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정치적인 차원에서 정상회담은 남북관 계의 새로운 전기가 되었다. 북한은 말할 필요조차 없이 민주화에도 불 구하고 여전히 권위주의적 정치문화 요소가 남아있는 남한의 정치현실 을 고려할 때, 남북한의 최고지도자간의 회담은 그 자체로써 남북관계의 미래에 대한 상당한 결정력을 가질 수 있다.

둘째, 남북 당국간 관계의 제도화로의 발전 및 쌍방간 협상 양태의 변 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남북장관급회담은 남북관계에서의 중심적 협 의체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북한 측의 일방적인 입장 변경에 따라 회 담의 갑작스러운 중단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셋째, 여전히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조치 들이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서해안 남북한 직항로 개설, 군사분계선 일 대에서의 남북한의 군 사이의 비방․중상 중단,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 및 도로 연결 사업과 관련한 군사보장합의서 발효 등의 실무적인 조치 가 이루어졌다.

넷째, 한반도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남북한의 역할이 확대되었다.

북한이 남한과의 직접 협상을 선택함으로써 남북대화 재개를 추진하던 한국 정부의 목표가 일단은 달성되었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의 대북정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측면도 산출하였다.

첫째, 김대중 정부는 출범 초기 남북기본합의서 체제의 복원과 실천을 강조하였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사실상 그에 대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둘째, 남북화해에 대한 집착으로 초기에 내세웠던 상호주의 원칙을 제 대로 적용해보지도 못함으로써 남북협상에서는 물론 전반적인 남북관계 의 운용 과정에서 북한에 의해 이끌려온 측면이 노출되었다.

셋째, 대북 3원칙, 안보 3원칙, 정경분리 원칙, 상호주의 원칙 등 여러

가지 원칙들이 제시되어, 개념과 전술․전략의 혼란이 야기되었다. 또한 정책 대안의 집행이 제시된 원칙에 입각하지 않은 경우가 발생하였다.

‘안보와 협력의 병행 추진’ 전략은 협력의 상대적인 중시로 나타났고, 이

에 따라 남북간의 안보문제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로 이어지지 못했다.

넷째, 김대중 정부도 국민적 콘센서스에 기반 한 대북정책을 추진하겠 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대북정책의 입안 및 추진과정의 정당성과 관련하여 야당과의 문제 인식 공유 및 협력의 부재, 이른바 ‘보수’ 진영 과 ‘진보’ 진영간의 이분법적인 극심한 견해 차이 등 남남갈등의 문제가 부각되었다. 그리고 대북정책의 입안과 추진이 일부 부서 또는 소수의 정책결정자에 집중되었다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다섯째, 주변국과의 정책공조가 대북정책 기조의 주요 요소로 강조되 었으나, 한․미․(일) 정책협력과정에서 한국의 선호가 반영될 것을 지 나치게 기대함으로써 갈등을 노출하였다. 특히 미국에서 부시 행정부 등 장 이후 한․미간에 북한자체 및 북한의 변화에 대한 인식 차이, 한․미 간 역할분담론에서의 갈등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