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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군사회담의 특징과 한계

Revisiting Peace Regime in the Korean Peninsula Based on the Theory of Balance of Interests

Ⅲ. 남북군사회담의 특징과 한계

이제 남북군사회담을 보다 세부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각 합의문의 내용 및 의미에 대해서는 이미 많이 다루어졌기 때문에11 여기에서는 군사회담의 주제, 지 속 및 파행요인, 회담과정 등에 주목할 것이다.

1.

회담의 주제

남북군사회담은 국방장관회담에서 회담의 주제 및 방향이 제시되면 실제 논 의는 하위급 회담인 장성급회담과 실무회담에서 이루어져 왔다. 1990년대 이후 군사회담 주제는 보다 다양화, 구체화되어 왔으며 네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표 2>

참조).

11합의문의 내용 및 의미에 대해서는 <http://www.dialogue.unikorea.go.kr>을 참조할 것.

<표 2> 2000∼2008년 남북군사회담 주제12

연 도

철도·도로 기 타

경 협

서해상 무력충돌방지

군사분계선 내 선전 연결 시험

운행 문산 봉동

관리 구역

한강골재 채취

임진강 수해방지

충돌 방지

공동어로 수역

평화 수역

선전 활동

선전 수단

2000∼2003 ○ ○

2004 ○ ○ ○

2005 ○

2006 ○ ○ ○ ○ ○

2007 ○ ○ ○ ○ ○ ○

2008 ○

첫째

, 1990년대와 2000년대 군사회담의 주제는 연속성이 없으며 2000년대 회담

주제는 당시 남북 현안을 중심으로 채택되었다. 1992년 남북한은 남북군사공동위 원회의 구성 및 운영에 합의하면서 향후 동 위원회에서 다룰 주제로 대규모 부대 이동과 군사연습 통보

,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군 인사교류 및 정보교환, 대량 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 등에 합의하였다. 그런데

2000년대 이후 회담주제는 이전과 별개로 철도·도로 연결문제,

서해문제 등 당시

현안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둘째, 2000년대 주제별 군사회담은 보다 구체적, 집중적 논의가 가능했다는 장 점이 있지만 그 사안의 논의가 막히면 회담개최 자체가 어려운 단점을 드러냈다.

2000~2004년 회담이 경협사업(경의선·동해선의 철도·도로 연결문제)에 대한 군

사적 보장문제, 2004~2005년 회담이 군사적 문제(서해상 무력충돌문제, 군사분 계선 내 선전문제)를 다루었다면, 2006~2007년 회담은 두 주제를 동시에 논의한 회담이었다. 그렇지만 북한이 철도·도로 합의의 선결조건으로 서해문제를 제기한 다든지 북방한계선(NLL) 문제를 둘러싸고 남북한이 첨예한 의견대립을 보이며 회담은 파행을 거듭했다. 회담주제의 다양성이 반드시 질적 성과를 담보한 것은 아닌 것이다.

12회담에서 실제 회담주제에 오르지 못하거나 합의문에 합의사항으로 포함되지 못한 것은 제외하 였다. 또한 2000년~2003년과 2007년 ‘관리구역’문제는 성격이 다르지만 여기에서는 주제를 중 심으로 구분하여 철도·도로 부분 중 ‘관리구역’에 포함하였다. 또 임진강 수해방지사업은 홍수피 해를 대비하기 위한 것이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다루고 있고, 한강 골재채취사업과 연 관되어 있기 때문에 ‘기타 경협’ 주제에 포함하였다.

셋째, 2000년대 남북한은 국방장관회담에서 회담주제에 합의했지만 한국측 제안 으로 합의된 주제는 그후 실제 논의되지 못했다. 후속 군사회담의 주제는 북한측 입장에 따라 좌우되어 온 것이다. 제1차,13

2차

14 국방장관회담의 합의사항은 남 북의 제안이 조정되어 도출된 것이다. 주목할 점은 한국 주도로 이루어진 합의사항 은 후속 군사회담에서 회담주제로 오르지 못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한국이 제의 한 유해발굴 문제는 합의되었지만

(제4항)

안건으로 다루어지지 못했다. 또한 신뢰 구축 문제(제

2항 )도 북한의 남북군사공동위원회 거부로 추후 논의에 실패하였다.

넷째

, 2000년대 군사회담의 성과는 주제에 따라 큰 편차를 보인다.

경협의 군사

적 보장에 적극적인 반면

,

군사적 문제의 논의에 소극적인 북한의 입장이 회담 성 과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군사회담에서 도출된 합의서는 합의서 5건15과 부속 합의서 1건, 잠정합의서 2건16과 보충합의서 1건17 등 총 9건(국방장관회담 합의 서 1건 제외)에 달한다. 그중 경협 부문 7건(합의서 4건, 잠정합의서 2건, 보충합 의서 1건), 군사적 문제

2건(합의서 1건,

부속합의서

1건)

등 성과는 주로 경협, 특히 철도·도로 관련(합의서 3건

,

잠정합의서 2건) 주제에 치우쳐 있다. 또한 군사 적 문제에서 선전문제 합의서는 실제 이행된 반면, 서해문제 합의서는 구체적인 충돌방지 방안을 논의하며 파행을 거듭하였다.

13남측 제안: 6·15 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적 긴장완화와 평화보장 공동 노력 / 북측 제안: 6·15 선언 이행에 방해 주는 군사행동 금지, 민간인의 왕래와 교류협력을 보장하기 위한 군사적 문제

합의 1항: 6·15 공동선언 이행과 민간인들의 왕래·교류·협력의 군사적 보장. 2항: 긴장완화와 공고한 평화 이룩하여 전쟁위험 제거 위해 노력. ② 남측 제안: 철도·도로 연결 관련 군사협력 / 북측 제안: 철도·도로 관련 남북 인원·차량·기재의 비무장 지역 출입보장 문제 협의 → 합의 3항: 철도·도로 관련 세부사항은 실무급이 추진. ③ 북측 제안: 군사분계선·비무장지대 개방하여 남북관할구역으로 설정 → 합의 4항: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 남북관할지역 설정문제는 정전 협정에 기초해 처리.

14서해문제에서 남북 의견이 다른 부분은 ‘서해해상에서의 평화보장 대책’으로 조정·합의되었으며 신뢰구축조치 관련 남북의 다른 제안은 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해결하는 것으로 합의되 었다.

15「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설정과 남과 북을 연결하는 철도·도로작업의 군사적 보장 을 위한 합의서」 (2002.9.17), 「동해지구와 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경비초소 설치 및 운영에 관 한 합의서」 (2003.12.23), 「서해해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 및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 (2004.6.4), 「문산-봉동간 철도화물 수송의 군사적 보장 을 위한 합의서」 (2007.12.6), 「남북관리구역 통행·통신·통관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합의서」

(2007.12.13).

16「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임시도로 통행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잠정합의서」 (2003.1.27), 「동·

서해지구 남북열차시험운행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잠정합의서」 (2007.5.11).

17「동·서해지구 남북관리구역 임시도로 통행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잠정합의서의 보충합의서」

(2003.9,17), 「서해해상에서 우발적 충돌방지 및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및 선전

수단 제거에 관한 합의서의 보충합의서」 (2004.6.12).

2.

회담의 지속 및 파행 요인

군사회담은 ‘군사문제’가 갖는 정치적 성격 때문에 외부환경에 의해 영향을 받 을 수 밖에 없다. 남북군사회담의 지속 및 파행도 정치적·경제적 요인 등 외부 요 인 때문이었다(<표 3-1>, <표 3-2> 참조).

<표 3-1> 군사회담의 중단 및 재개과정(철도·도로)

단계 사안 중단 / 파행 재개 / 타개

사유 기간18 계기 사유

합의서 도출

∙기본합의서 발효

∙북측

∙행정적 사유 -‘행정상 이유’로 서명/교환 불가

2001.2

~ 2002.9

∙특사 파견 -청와대

외교안보특별보좌역

∙제2차 경추위

∙제13·14차 판문점장성급회담

∙정치적 결정

∙경제적 일정

∙행정상 결정 이행

논의

∙지뢰제거 검증절차

∙북측과 유엔사 의견 대립

2002.

11.24~28 ∙남북 합의 ∙정치적 결정

합의서 실천

∙시험운행 군사 보장합의서

∙북측

∙정치적 사유 -서해문제 요구 수용 주장

2006.10

~ 2007.5

∙제13차 경추위 ∙경제적 일정

∙통행·통신·통관/

문산-봉동 수송 군사보장합의서

2007.11

~ 2008.1

∙제2차 국방장관회담 ∙정치적 결정

<표 3-2> 군사회담의 중단 및 재개과정(서해문제)

단계 사안 중단 / 파행 재개 / 타개

사유 기간 계기 사유

이행 논의

∙충돌방지 방안 (서해해상경계선)

∙북측/정치적 사유 -조문파동 -NLL 경고사격 -선전문제 주력

2004.7

~ 2005.6

∙대통령 특사의 평양방문

∙제15차 장관급회담

∙제3차 장성급회담

∙정치적 결정

∙충돌방지 방법 (서해해상경계선/

공동어로수역/

평화수역)

∙남북 의견대립

∙북측/정치적 사유 -핵실험

-철도·도로문제와 연계 2006.10

~ 2007.5

∙핵문제(2.13 합의)

∙제20차 장관급회담

∙제13차 경추위

∙제5차 장성급회담

∙정치적 결정

∙경제적 일정

∙남북 의견대립

∙북측/정치적 사유 -민간단체의 전단살포

2007.12

~ - -

18중단 및 재개 시기는 군사회담에서 해당 주제의 포함 여부에 따라 구분하였다.

철도·도로 연결문제를 살펴보면, 모든 단계에서 파행책임은 북측에 있다. 물론 남북한의 의견대립도 한 이유였지만, 합의서 도출단계와 실천단계에서 회담은 북 한의 정치적·행정적 사유로 중단되었고 이를 재개시킨 원동력 또한 남북한의 정

치적

·행정적 결정 및 경제적 일정 등이었다.

서해문제 또한 충돌방지방안 및 충돌

방지방법을 논의하며 발목을 잡은 것은, 회담과 직접 관련 없는 정치문제 때문이었 다

.

북한이 故 김일성 조문 불허, 서해 NLL 침범에 따른 한국의 경고사격, 민간단 체의 전단살포 등을 문제시하여 회담을 거부하거나, 북한의 핵실험으로 회담이 중 단된 것이다

.

그리고 이를 타개한 것도 정치적 결정과 경제적 일정 등이었다.

철도

·도로 군사회담은 경협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회담으로 성공적인 사례라면,

서해문제 군사회담은 군사적 문제를 다룬 회담으로 후속 합의에 실패한 사례이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회담의 중단·파행 이유는 북한의 정치적 주장 때문이 었으며 재개·합의 배경도 정치적 결정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19 등 군사회담은 회담 외적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아온 것이다.

3.

회담과정의 특징

이제 군사회담 과정을 살펴보도록 한다. 회담시기와 회담주제의 차이에도 불구 하고 회담과정에서 공통된 문제점은 남북한의 근본적 입장차이, 기존 합의의 준수 여부, 북한의 협상전략에 있었다.

. 1990

년대 군사분야 회담

1990년대 군사분야 회담은 남북군사분과위원회와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 회담

이다

. 1992년 8회 개최된 남북군사분과위원회는 제1~3차 회의에서 남북군사공동

위원회 문제, 제4~8차 회의에서 불가침 부속합의서 문제를 각각 다루었고, 남북 핵통제공동위원회는 13차례 회담을 개최하였다.

첫째, 두 회담의 공통적 어려움은 남북한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에 있다. 남북군사 분과위원회에서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기능, 그리고 남북핵통제공동위원회에서 는 주한미군을 둘러싸고 남북한은 입장 차이를 드러냈고 그 결과 다른 회담(제7,

19경협사업이 남북한의 정치적 결정에 의해 좌우되어 온 점을 고려한다면, 경협 일정에 따른 회담 재개 및 합의도 정치적 성격을 가진다. 또한 서해해상경계선을 둘러싼 남북한 입장차이도 북한 이 「불가침 부속합의서」(제9조)의 합의내용을 부인한데서 비롯된 점을 고려한다면, 역시 정치적 이유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