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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군사회담 대표의 특징

Revisiting Peace Regime in the Korean Peninsula Based on the Theory of Balance of Interests

Ⅳ. 남북군사회담 대표의 특징

남북군사회담에 참여하는 대표들에 주목하는 것은 그들이 군 엘리트로 활동하 고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북한측 대표의 경우, 대부분 군복에 표시된 계급 만 알 수 있을 뿐 근무 부서와 경력에 대한 구체적 정보가 알려져 있지 않다. 따라 서 그들의 소속과 업무에 대한 분석은 힘들지만 회담대표의 변화와 특징을 파악 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1. 2000

년대 회담대표의 특징

2000년대 이후 남북군사회담 대표들은 중복 참여를 제외한다면 한국 총 50명,

북한 총 30명(그외 인민무력부장 1명)이다. 국방장관회담 대표(국방부장관과 인 민무력부장 제외)는 남북 모두 각 8명이며 장성급회담 대표는 한국 16명, 북한 11 명, 그리고 실무회담 대표는 한국

26명,

북한 11명 등이다(<표 4> 참조).22 이들 대표의 전반적인 특징은 다음 두 가지로 제시할 수 있다.

22이에 대해서는 <http://www.dialogue.unikorea.go.kr>을 참조할 것. 제9~11, 16, 18, 19차 실 무회담 남북 대표의 자료는 통일부, 국방부 등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분석대 상에서 이들을 제외하였다. 또한 중복된 경우 참여 인물과 회담의 회차를 명시하였고 전체 참여 횟수에서 중복 횟수를 제하여 각 회담별 남북대표 수를 산정하였다. 동일 인물이 회담 대표와 수석대표를 같이 역임한 경우, 대표와 수석대표로 각기 분석하되 전체 인원수에서는 중복으로 처리하였다. 한국의 이상철과 북한의 박기용의 경우, 실무회담 수석대표(단장대리)와 대표를 역 임함에 따라 중복 계산되었다.

<표 4> 남북 각급별 군사회담 대표

회담 구분 수석대표(단장)/차석대표 대 표 총계

전체 중 복 소계* 전체 중복 소계**

장관급 회담

2명

∙ 1명 7명 (3/4명)

∙ 7명 8명

<1회>

∙김일철 1·2 1명 ∙ 7명 8명

장성급 회담

7명

<3회>

∙박정화 1·2

∙한민구 3·4

∙정승조 5·6 4명

28명 (각4명)

<16회>

∙임인수·배광복·정영도 1·2

∙문성묵 1-7

∙김형수·엄현성 3·4

∙심용창 3-6

∙길강섭 5·6

∙정진섭 6·7

12명 16명

<5회>

∙안익산 1·2

∙김영철 3-7 2명

<19회>

∙유영철·김상남 1·2 ∙배경삼 1-4

∙박기용 1-7 ∙리형선 3·4

∙오명철 3·4·6·7

∙박림수·리선권 5-7

9명 11명

실무 회담

31명

<28회>

∙김경덕 1-8

∙문성묵 12-15·

17·20-35

∙이상철 36·37 3명

남:83명 북:82명 1차:

남5/북4 2-8·

17·20차:

각4명 12-15·21

-37차:

각2명

<59회>

∙정승조 1-3

∙이명훈 1-8·12-15·17·20

∙이명훈 1-8 ∙정덕모 1-5

∙권혁승 4·5 ∙박성규 6·7

∙서훈택 6-8 ∙정영도 12-15

∙길강섭 17·20·26-28

∙권용술 21-23 ∙오남섭 21-23

∙김진영 24·25 ∙엄현성 25-27

∙심용창 28-31 ∙정진섭 29-31

∙이상철 32-36 ∙황봉연 32-36

24명 27명

(26명)

<29회>

∙유영철 1-8·

12-15·17·

20-26

∙박기용 27, 28 (단장대리)

∙박림수 29-37 3명

<73회>

∙배경삼 1-8·17·20-23

∙정창욱·김기복 1-8 ∙리병우1-5·8

∙박기용 6·7·12-15·17·20·24-26·34·37

∙엄창남 12-15·17·20-28·35·36

∙김상남 17·20 ∙전창재 27·29-31

∙리선권 28-30·32-37

9명 12명

(11명)

* 소계 = (수석+차석)-중복 인원수(장관 제외)

** 소계 = 대표-중복 인원수

첫째

,

한국의 대표교체가 주로 회담주제 및 담당자의 변화와 연관된 반면, 북한 의 대표교체는 회담주제 보다는 시기에 따른 대표 교체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국방장관회담 제2차 회담(2007.11.27∼29)에서 남북한은 모든 대표를 교체하였 는데 이는 제1차 회담(2000.9.25∼26) 이후 7년여 동안 그 직책의 담당자가 변화

한데 기인한다.23 또한 장성급회담 대표는 제1~2차(2004.5.26∼6.4, 두 주제 포 함), 제3~4차(2006.3.2∼5.18, 서해문제와 선전문제 등 군사적 문제), 제5~7차

(2007.5.8∼12.14,

두 주제 포함) 등 회담시기 및 회담주제와 연관되어 있다. 그리

고 실무회담의 경우

,

한국은 회담주제와 회담대표 간에 밀접한 관계가 있는 반면, 북한은 시기적으로 대표의 교체 또는 재투입되는 양상을 보인다. 북한의 박기용, 리선권, 배경삼, 엄창남 등은 회담주제와 상관없이 실무회담 대표로 참석한 대표 적 인물이다.

둘째, 한국은 각급별 회담에 따라 대표구성이 다른 반면, 북한은 장성급회담과 실무회담의 대표가 상당수 중복되며 적은 인원수로 운영되는 특징을 보인다.

한국의 경우, 국방장관회담은 안보정책 관련부서(국방부, 합참, 외교통상부, 통 일부), 장성급회담은 국방부와 합참(그 외에 청와대

NSC,

통일부), 실무회담은 국방부와 합참, 통일부(제28차 이후)를 중심으로 회담주제의 관련 부서(1사단, 육 군건설단, 해군본부, 국토관리청, 건설교통부)로 대표단이 구성되었다. 따라서 각 급별 군사회담에 모두 참석한 인물로는 문성묵이 유일하다.24 반면, 북한의 경우, 각급회담별 대표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국방장관회담 대표로 참석한 유영철, 김영철, 박림수는 장성급회담 단장과 실무회담 단장을 각각 맡았으며,25 북한측 군사회담의 단장은 유영철 → 김영철 → 박림수 등으로 교체되었다. 또한 상급회 담 대표와 실무회담 대표가 중복되는 경향이 상당히 강하다. 회담대표로 가장 자 주 등장한 사람은 박기용26이며 그 외에 배경삼,27 리선권28 등을 꼽을 수 있다.

23예를 들어, 한국의 김국헌이 정승조로 교체된 것은 국방부 조직개편에 따라 군비통제관이 정책 기획관으로 바뀌고 담당자가 교체된데 따른 것이며, 외교통일부 북미국장 또한 송민순으로부터 조병제로 바뀜에 따라 대표가 교체된 것이다. 북한의 경우, 제1차 회담에서는 박승원(총참모부 부 총참모장, 준장), 김현준(인민무력부 보좌관, 소장), 로승일(인민무력부 보좌관, 대좌), 유영철

(판문점대표부 부장, 대좌), 제2차 회담에서는 김영철(인민무력부, 중장), 허찬호(인민무력부,

장), 리인수(인민무력부, 소장), 박림수(인민무력부, 대좌) 등이 참석하였다. 이중 유영철(장성급 회담, 실무회담)과 박림수(실무회담) 만이 다른 군사회담에 참석하였다.

24문성묵은 제2차 국방장관회담 대표, 제1~7차 장성급회담 대표, 제12~15, 17, 20~35차 실무회 담 수석대표로 활약하였다. 실무회담 당시 직책은 국방부 군사회담운영단장(제12~15차), 회담 운영과장(제17, 20차), 군사회담 TF 팀장(제21~23차), 대북정책과장(제23~36차) 등 국방부에 서 대북정책을 총괄하는 부서에 지속적으로 근무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외에 대표를 중복 역임 한 인물로는 국방부 정승조(국방장관회담, 장성급회담), 합참 엄현성, 정영도, 정진섭, 국방부 길 강섭, 이상철, 통일부의 심용창, 황봉연(장성급회담과 실무회담) 등도 있다.

25제1차 국방장관회담 대표였던 유영철은 제1~26차 실무회담 단장과 제1~2차 장성급회담 대표, 제2차 국방장관회담 대표였던 김영철은 제3~7차 장성급회담 단장, 역시 제2차 국방장관회담 대표였던 박림수는 제5~7차 장성급회담 대표와 제29~37차 실무회담 단장을 담당하였다.

26박기용은 2002년 9월 군사회담 대표로 등장한 이래 7회의 장성급회담 전체, 그리고 20여 차례의 실무회담(제6~7차, 제12~20차, 제24~36차, 33차, 37차 실무회담 대표, 제27~28차 실무회담

이러한 중복 경향은 군사회담에 나설 수 있는 대남 인력풀이 적기 때문으로 추측 된다.

2.

시대별·주제별 남북대표 비교

이번에는 군사회담의 시기 및 주제가 군사회담 대표와 어떠한 연관성을 가지는 지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시기별로는 남북군사분과위원회와 국방장관회담, 주제별 로는 철도

·도로 군사회담과 서해문제 군사회담을 각각 예로 들어 비교하기로 한다.

.

남북군사분과위원회와 국방장관회담의 회담대표

남북군사분과위원회와 남북국방장관회담은 회담시기와 회담주제 면에서 차이

가 있다

. 1990년대 군사분과위원회가 보다 포괄적인 주제를 다루었다면, 2000년

대 국방장관회담은 보다 구체적이고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 이러한 차이가 각 회담대표의 구성에 반영되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한다.

첫째, 시기 및 주제와 상관없이 북한은 거의 군인들로 대표단을 구성한 반면, 한국은 군 인사를 중심으로 하되 주제를 고려하여 외교통일부(외무부)와 통일부

(통일원)

등 유관기관에서도 대표로 참석하였다.

북한대표 중에서 군인이 아닌 예외적 인물이 1990년대 회담에 나선 조국평화통 일위원회 서기국 부장(남북군사분과위원회)인데 이는 한국측에서 통일부(남북군 사분과위원회, 제2차 국방장관회담)의 참여 등 남북관계 부서의 대표단 합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편 한국의 대표단 구성 중 북한과 가장 큰 차이는 외교통상부

(외무부)의 참여 부분이다.

이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특수한 위상과 함께 기존 국

제협정 문제의 제기(남북군사분과위원회),29

‘한반도 비핵화’의 제안(제1차 국방

단장대리)에 참석한 인물이다. 특히 북한측 대표들이 시기가 지나면 자연스럽게 교체되는 것과 달리 박기용은 2006년 실무회담에서 제외되었을 뿐 2002∼2008년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장기간 에 걸쳐 대표로 활약한 점이 흥미롭다.

27배경삼은 제1∼4차 장성급회담, 제1∼8, 17, 20∼23차 실무회담 대표로 활동하였으며 2006년 이후 군사회담에서 모습을 감췄다.

28리선권은 2006년 10월 제28차 실무회담에 처음 모습을 보인 이후 줄곧 실무회담 대표로 활동하 고 있으며 제5~7차 장성급회담의 대표도 역임하는 등 최근 북한의 대표적인 군사회담 대표라 할 수 있다.

29남북군사분과위원회 회담의 주제 중 하나가 불가침 부속합의서 문제로 이때 기존 국제협정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한국은 기존 국제협정을 존중하는 가운데 남북 간 합의서 체결을 의도 하였고 이러한 의도가 반영되어 외무부 소속 인물이 참여한 것이다.

장관회담)을 각각 고려한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2000년대 두 차례 국방장관회담에서 남북대표단의 구성은 각각 대북 전 담부서와 군 전담으로 변화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각기 제안한 주제와도 연관성이 있다(<표

5>

참조).

<표 5> 제 1, 2차 국방장관회담의 남북제안과 남북대표

남측 제안 남측 대표 북측 제안 북측 대표

1차 회담

공통∙철도·도로

∙국방부 장관특보

∙국방부 군비통제관

∙합참 작전계획과장

∙외통부 북미국장

철도·도로

총참모부 부총참모장

인민무력부 보좌관

인민무력부 부국장

판문점대표부 부장 차이

∙정례화·제도화 (국방장관회담·

군사위·군사실무위)

∙군사신뢰구축조치

군사분계선·비무장지대 개방후 남북관할구역으로 설정

2차 회담

공통

∙협력사업의 군사적 보장

∙서해상 공동어로·

평화수역 ∙국방부 정책기획관

∙국방부 북한정책팀장

∙외통부 북미국장

∙통일부 상근회담대표

교류협력의 군사적 보장

서해상 군사분계선 재설정

서해상 공동어로·평화 수역

설정인민무력부 중장

인민무력부 소장

인민무력부 소장

인민무력부 대좌 차이

∙국군포로·유해공동 발굴

∙군사위 가동

∙직통전화

∙한반도 비핵화

종전선언 ∙교전규칙

주적관포기 심리전중지

해외로부터의 무력증강, 외국군과의 합동군사연습 중지

대표단 구성은 두 차례 회담을 거치며 한국은 안보기구 중 대북 담당부서 중심 으로

,

그리고 북한은 인민무력부 전담으로 변화되었다. 한국측은 국방부장관 특보 와 합참 작전계획과장이 빠지고 국방부 북한정책팀장과 통일부 상근회담대표가 들어갔으며, 북한측은 총참모부, 판문점대표부 부장이 빠지고 인민무력부로 보충 된 것이다. 제1차 회담에서 판문점대표부의 참여는 북한측 제안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북한은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를 개방하여 남북 관할구역으로 설 정하는 문제를 제의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다음 두 가지를 시사한다. 하나는 북한에서 외교라인과 군사라 인, 대남라인과 군사라인의 분리가 반영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한국은 대미관계를 고려하는 한편 남북관계의 큰 틀에서 군사적 문제에 접근한 다면, 북한은 군사적 차원에서만 회담에 응한다는 점이다. 이는 남북한의 제안에 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

한국측 제안이 인도적 문제(국군포로, 유해공동발굴)나 신뢰구축조치

(직통전화 등)

등이라면, 북한측 제안은 종전선언, 주적관 포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