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ina’s North Korean Policy Keynotes and Perceptions on the Nuclear Issues during the Hu Jintao Era
Ⅲ. 한국 반미주의의 정치적 성격
관련해서는 좌파 민족 패러다임과 통일지상주의, 주사파식 자주 이데올로기, 그리 고 반자본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사회적 반미주의와 관련한 한국 반미주의의 이 념적 성격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유럽식 복지모델 주장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까 한국 반미주의의 이념적 성격을 이념 스펙트럼 상에서 오른쪽에 있는 것부터 열거하면 ① 우파 민족주의 ② 유럽식 복지모델 ③ 좌파 민족 패러다임과 통일지 상주의 ④ 주사파식 자주 이데올로기
⑤
반자본주의의 다섯 가지이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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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상중은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제창하면서 궁극적으로 주한미군 철수와 동북아시아 비핵지대화, 그리고 남북한 연방제 통일을 전망한다.9 이삼성은 동북 아시아 비핵지대는 “미국 주도의 군사동맹 정치로부터의 점진적인 탈피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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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백낙청을 비롯한 한반도 평화는 가능한가?의 저자들은 동북 아시아 평화를 위해 ‘동북아 경제 공동체 건설’과 군축이 필요하다고 말한다.11동북아시아는 유럽과 달리 국가들 간의 공통성보다 이질성이 많아 공동안보 의 틀을 형성하기도 쉽지 않을뿐더러, 설령 그것이 된다고 하더라도 장기적인 과제일 수밖에 없다. 더욱이 단순한 안보회의체 수준이 아니라 한미동맹을 대체 할 수 있을 정도의 성숙한 체제를 갖추려면 오랜 세월을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12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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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평화론반미의 국제요인과 관련한 한국 반미주의의 두 번째 정치적 성격은 반전평화론 이다. 반전평화론 그 자체는 반미주의가 아니다. 반전평화론은 좌파만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우파도 주장한다. 반전평화론이 반미가 되는 것은 그 내용에 감정적, 정치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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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적 차원의 반미주의가 포함되었을 때이다. 한국 반미주의자들이 반전 평화론을 제기하는 계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이고, 둘째, 주한미군의 존재이며,
셋째, 미국의 요청 혹은 압력에 의한 한국군의 해외 파병이 다. 한국인들은 북한의 핵개발에 반대하는 것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미국의 대북 강경정책에 반대한다. 주한미군의 철수를 점점 더 선호하며, 한국군 전투병의 해 외파병을 점점 더 반대한다.한국의 반미시위에 참여하는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은 시민운동 계열과 민중운동 계열로 대별된다. 시민운동 계열은 반미운동과 통일운동에 소극적인 반면에 평화
8와다 하루키 저·이원덕 옮김,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 신지역주의 선언 (서울: 일조각, 2004); 강 상중,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위하여,” <www.khdi.or.kr/etcbiz/docu_file/20020722_3.doc>
(검색일: 2008.6.2); 박건영 외, 한반도 평화보고서 (서울: 한울, 2002); 백낙청 외, 21세기의 한 반도 구상 (서울: 창작과비평사, 2004).
9강상중, “동북아시아 공동의 집을 위하여.”
10이삼성, “동북아 비핵지대: 한반도 평화와 동아시아 공동안보,” 이삼성 외, 동북아시아 비핵지 대 (서울: 살림, 2005).
11한국인권재단, 한반도 평화는 가능한가?: 한반도 안보질서의 전환과 평화체제의 모색 (서울:
아르케, 2004).
12백종천 편, 한국의 국가전략: 전략환경과 선택 (성남: 세종연구소, 2004), pp. 322-324.
운동에 상대적으로 적극적이다. 시민운동 계열은 미군장갑차에 의해 숨진 신효순·
심미선을 추모하는 촛불시위에 이어 이라크 파병반대 운동에도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러나 북한 핵문제로 미국을 공격하거나 평택 미군기지 확장에 반대 하거나 북한‧해외 단체들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통일운동을 벌이거나 하는 데는 소극적이었다. 이런 운동들은 민중운동 계열의 단체들이 주로 전개하였다.
전쟁 방지, 즉 평화만큼 고결한 명분도 없다. 물론 미국이 한국과 논의하지 않고 북한을 군사적으로 공격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 1994년 6월, 미국이 단독으로 북한 핵시설에 대한 공습을 검토하였던 일이 또다시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 그러 나 최장집은 평화나 인권 같은 거대담론들이 보통사람들의 삶에 기여하지 못한다 고 비판했다. 전남대학교 5·18연구소를 비롯한 단체들이 2007년 5월 18~19일 전 남대학교에서 ‘5·18과 민주주의, 그리고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개최한 국제학술 대회에서, 그는 ‘5·18과 한국의 민주주의’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한반도 평화는 그 어떤 쟁점보다 중요하지만 전쟁이 발생할 가능성을 일상적으로 강조하 는 것은 현실이기보다 이데올로기일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13
2.
국내적 원인과 관련한 성격가. 정치연합 혹은 집권전략으로서의 반미
한국사회의 좌파세력은 공산권 붕괴 이후, 특히 북한이 남북한 체제경쟁에서 탈 락한 후 대안이념과 대안체제를 상실하였다. 거기다가 좌파세력은 분열하였다.
1987년 민주화 이후 20년,
여야간 정권교체 이후 10년을 지나면서 한국의 시민사회는 급속히 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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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은 “노동·농민·빈민,
특히 민주노동당, 민주노총으로 대변되는 민중담론과 DJ, 노무현 정부, 시민단체의 분화가 유럽 등의 사회에 비해 너무 빨리 왔다”고 말한다.14 이처럼 뚜렷한 이념이 부재한데다가 좌파진영이 내 부적으로 균열된 상황에서 반미주의만큼 용이하게 좌파를 하나로 묶어낼 수 있는 이데올로기는 없다. 일례로 2002년 신효순·심미선 사망사건을 계기로 형성된 반 미연합은 노무현 후보를 지원하여 당선시키는 정치적 위력을 발휘하였다. 노 후보 는 위로부터는 김대중 대통령과 청와대의 지원을 받았고, 아래로부터는 반미자주 연합체를 구성한 좌파연합의 지지로 당선되었다.15 반미연합에는 좌파만 참여하13한겨레, 2007년 5월 16일.
14박명림, “진보의 분화가 너무 빠르고 세다,” 한겨레 21, 제649호, 2007년 2월 27일.
는 것이 아니라 때로 우파의 일부도 동참한다. 예를 들면 우파 성향의 한국노총은 여중생 범대위와 평택 범대위에 다 참여했다.
반미연합이 집권에 성공하면 반미연합에 가담했던 좌파 학자나 언론인, 그리고 시민운동가를 비롯한 운동권 출신이 대거 정부와 여당에 참여한다. 그리하여 지배 엘리트의 구성이 크게 변화한다. 이념 스펙트럼 상에서 차지하는 지배 엘리트의 평균 이념성향이 종전보다 훨씬 더 좌로 이동하게 된다. 한국사회 엘리트 구성 변 화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있었지만 노무현 정부 들어 더욱 극명해졌다. 그것은 노 무현 정부가 반미연합을 통해 집권한 것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기 소르망은 “한 국 반미주의자들은 반미적 태도를 보여줌으로써 한국에서 권력과 특권을 얻는다”
고 말한다.16
반미운동가들은 반미좌파의 집권을 위해 투쟁의 대상을 미국에 국한하지 않고 국내 기득권 세력 전반으로 확대한다. 과거 미국은 한국사회의 구주류 혹은 기득 권세력과 밀접하게 연계되었기 때문에 반미투쟁은 반기득권투쟁이기도 하다.17 노무현 정부 들어 반미좌파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은 각종 주한미군 관련 문제들을 쟁점화하고 미국의 대북강경정책 반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요구, 이라크 파병 반대, 평택 미군기지 확장 반대, 맥아더 동상철거, 한미자유무역협정
(FTA)
반대 같은 일련의 반미투쟁을 벌임으로써 한미동맹체제에 타격을 입혔다.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집권기간 동안 반미친북단체들에게 거액의 국고를 지원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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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이는 반미친북단체들의 세력이 커지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8년 광우병 시 위도 쟁점은 반미적인 것이었으나 실상은 반정부투쟁에 초점이 맞춰졌다. 광우병 시위를 반미좌파의 기획으로만 설명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지 몰라도, 광우병사태 를 반미적·반정부적 대중운동으로 몰아가려는 반미좌파의 의도 자체는 명확하였 다. 우파가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함에 따라 좌파정부10년 지배가 끝나고,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총선거에서도 범보수세력이 압승을 거두면서,
정국주도력을 완전히 상실한 한국의 반미좌파세력이 국민의 먹을거리 문제인 광우병을 대
15최장집, “한미관계의 미래: 반미감정에 대한 단상,” 아세아연구, 46권 1호 (2003.4).
16기소르망 저·민유기 외 옮김, Made in USA (미국 문명에 대한 새로운 시선) (서울: 문학세계 사, 2004).
17Lee Jung-hoon, “The Emergence of ‘New Elites’ in South Korea and its Implications for Popular Sentiment Toward the United States,” in Derek J. Mitchell (ed.), Strategy and Sentiment: South Korean View of the United States and the U.S.-ROK Alliance (CSIS Working Group Report, June 2004), p. 62.
18조선일보, 2004년 9월 1일.
대적으로 쟁점화함으로써 우파정부인 이명박정부를 흔들고 사회전반에 걸친 우파 개혁에 제동을 걸려고 했던 것이다.
나. 반미에서 반대한민국으로의 지향성
미국 내부에도 외부의 반미주의자 못지않게 미국의 제도와 가치를 거부하는 사 람들이 있다. 미국 공산당(CPUSA)은 과거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그 전형적인 경 우이다. 과거 냉전시기에는 각계 인사들 가운데에서도 소련의 간첩이 되어 반국가 적 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미국의 흑인민족주의 운동과 그 대표적 지도자 말콤 엑스(Malcolm X)에 대해서는 체제 내적이란 평가와 반체 제적이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한국의 반미주의는 체제내적인 것인가, 아니면 반체제적인 것인가. 한국의 반미 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의 이념적 정체성(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과 역사적 정통성(한반도의 유일 합법 정부)을 부인한다. 이들이 한국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분단과 한국전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역사관에서 잘 드러난다. 반미 세력은 분단의 원인을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대외정책’과 미군정 에 돌린다. 한국전쟁도 ‘한반도의 내부적 갈등’ 차원에서 그 기원을 찾으려 시도한 다. 소위 수정주의적 역사관과 민중혁명사관이 1980년대부터 좌파 운동권과 지식 인들 사이에서 유행하더니 그것이 1990년대에 들어서는 사회 각계각층으로 파고 들었고, 고교 교과서의 한국근현대사 기술에까지 스며들었다.19
반미주의는 흔히 역사를 재해석함으로써 스스로를 확대 재생산한다. 민족적, 민 중적, 그리고 이른바 자주적 관점에서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역사는 반미주 의의 원인도 되지만 반미주의를 유지하고 확대하는 도구도 된다. 반미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될 정부이고,
없어져야 할 정부’라고 한다. 대한민국은마침내 산업화와 민주화를 둘 다 성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미주의자들은 대한민국의 성공한 역사를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산업화는 밖으로 미국과 일본에 예속된 신식민지 종속경제
,
안으로는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하 는 재벌공화국만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독점자본의 이익만 을 배타적으로 보장하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불과하며,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실 패한 이념이라고 한다. 한국의 민주화가 이행단계를 지나 공고화하고 있으며, 두19조성환, “흔들리는 대한민국,” 안세영 외, 2008 뉴라이트 한국 보고서 (서울: 도서출판 뉴라이 트, 2007), pp. 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