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개념을 어떻게 측정하는가는 그 자체가 얼마나 제대로 본래의 개념을 담아내는가의 문제 외에도 더 중요한 영향력을 지닌다. 측정은 개념으로부터 도출되지만 반대로 개념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 다. 일단 대표적인 측정문항이 정해지고 나면 여러 연구에서 그 문항을 사용하여 해당 개념을 측정하게 되고 그렇게 측정된 결과를 통해 여러 다른 개념과의 관계를 설명한다. 그런데 만일 문항에서 미처 담지 못한 개념의 영역이 있고, 그것이 이론적으로나 실용적으로 중요하다면 연구 가 쌓여갈수록 해당 영역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가려지고 의도하지 않았어도 축소되어 일부는 사라지게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의료필 요가 충족되지 못하였는가를 파악하기 위해서 실재하는 필요를 담아낼 수 있도록 측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미충족의료의 측정도 기존의 정의와 그리 다르지 않은 방식
으로 이루어졌고 이를 기반으로 해석해 왔다. 1980년대-2000년대 이전의 연구에서 발견되는 미충족의료 변수의 정의를 보면 특정 기간 사이에 진 찰이나 치료가 필요한 증상이나 진단된 질환을 기준으로 삼고 이를 경험 했던 사람에서 어떤 형태로든 의료기관을 방문한 경우를 충족된 의료요 구로, 아닌 경우를 미충족의료로 정의하는 것이 많았다(이경용, 정호근, 1988; 김복연 외, 1991; 김석범, 강복수, 1994; 최재규, 1995). 개인별로 측 정하는 경우 미충족의료 경험률의 공식은 ‘1 - (이용자/의료요구자)’ 가 된다. 연구마다 직접 설문지를 만들어 조사하였기 때문에 증상을 경험한 시기, 치료원의 종류 등에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증세가 경미 하거나 치유가 곤란한 것으로 인식한 경우를 제외하는 방식(최재규, 1995), 개인별로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 측정하여 만성질환의 경우 1년 간 통산 의료이용의 집단 평균을 기준으로 그 차이를 집단의 미충족 경험률로 측정하는 방식(김복연 외, 1991; 김석범, 강복수, 1994) 과 같이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전문가적 관점에서 평가된 의 료필요에 대해 의료를 이용하지 않은 경우라는 좁은 정의의 미충족의료 에 그쳤다.
2000년대 이후의 연구부터 조금 달라진 점은 점차 개인에게 인지된 필요를 묻는 방식이 적용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박종영 외(2005)의 연구는 정해진 증상이나 질환군이 아니라 개인에게 자각된 질병 여부를 묻고 그 중에서 의료이용 여부를 조사하여 현재 의료이용을 하는지의 여 부를 필요 충족의 기준으로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인지된 질병이라는 점에서 질병임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느끼는 의료필요는 제외되었 다. 이 후 연구부터는 대상자가 스스로 의료서비스 이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는 경우에 의료서비스 접근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개념에서 ‘대상 자가 의료를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졌지만 여러 사정으로 의료서비스 를 이용하지 못할 때’를 미충족의료로 보는 정의를 사용하고 있다. 또한 국민건강영양조사, 복지패널, 의료패널 등 다양한 전국민 조사체계가 구 축되면서 대부분의 연구가 비슷한 자료원을 이용하게 되어 미충족의료를 정의하고 묻는 문항에 큰 차이가 없어졌다.
데이터셋 질문 선택지 대상 국 민 건 강
영 양 조 사 (2016년)
최근 1년 동안 본인 이 병의원(치과 제 외) 진료(검사 또는 치료)가 필요하였으 나 받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① 시간이 없어서(내가 원하는 시간에 문을 열지 않 아서, 직장 등을 비울 수 없어서, 아이를 봐줄 사 람이 없어서 등)
② 증세가 가벼워서
③ 경제적인 이유
④ 교통편이 불편해서, 거리가 멀어서
⑤ 병의원에서 오래 기다리기 싫어서
⑥ 병의원 등에 예약을 하기가 힘들어서
⑦ 진료(검사 또는 치료) 받기가 무서워서
개인
한 국 의 료 패널 (2016년)
최근 1년 동안 본인 이 병의원(치과제 외)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적이 있는가?
① 경제적 이유(치료비용이 너무 많아서)
② 의료기관이 너무 멀어서
③ 거동이 불편해서 혹은 건강상의 이유로 방문이 어려움
④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어서
⑤ 증세가 경미해서
⑥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서(정보부족)
⑦ 방문시간이 없어서
⑧ 빠른 시일 내에 예약이 되지 않아서
⑨ 나(또는 가족)의 건강상태를 잘 아는 주치의가 없 어서
개인
지 역 사 회 건강조사 (2017년)
최근 1년 동안 본인 이 병의원(치과 미 포함)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① 경제적인 이유로
② 병의원 등에 예약을 하기 힘들어서
③ 교통편이 불편해서
④ 내가 갈 수 있는 시간에 병의원 등이 문을 열지 않아서
⑤ 병의원 등에서 오래 기다리기 싫어서
⑥ 증상이 가벼워서
개인
한 국 복 지 지난 1년 동안 돈이 - 가구
표 2. 국내 미충족의료 측정 문항
국내 미충족의료 측정 도구는 전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러 조사문항에 포함되어 있다(표 2). 측정 문항은 한국복지패널을 제외하고 약간의 용 어 차이를 제외하면 거의 동일하다. 선택지의 경우도 시간, 경미한 증세, 경제적 이유, 의료기관과의 거리와 이동, 예약 문제 등으로 유사하게 구 성되었고 특정 인구집단을 대상으로 한 일부 조사에서는 그에 맞춘 선택 지가 추가되거나 달리 구성되었다. 이와 같은 문항 구성에서 첫 번째 질 문 항목은 미충족의료가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이 담겨있고, 두 번째 질 문 항목은 미충족의료가 왜 발생하는가에 대한 설명이 담겨있다.
패널조사 (2017년)
없어서 본인이나 가족이 병원에 갈 수 없었던 적이 있는가?
장애인 실태조사 (2014년)
최근1년 간 본인이 병의원(치과 제외) 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① 경제적인 이유로
② 병의원 등에 예약을 하기가 힘들어서
③ 교통편이 불편해서
④ 내가 갈 수 있는 시간에 병의원 등이 문을 열지 않아서
⑤ 병의원 등에서 오래 기다리기 싫어서
⑥ 증상이 가벼워서
⑦ 의료기관의 장애인 편의시설 설치 미비로 인해
⑧ 의사소통의 어려움이 있어서
개인
다문화 가족 실태조사 (2015년)
지난 1년 동안 아파 서 병원에 가고 싶을 때 가지 못한 경험이 있었습니까?
① 한국어를 잘하지 못해서
② 가까운데 병원이 없어서
③ 치료비가 부담스러워서
④ 어떤 종류의 병원을 가야될지 몰라서
⑤ 이용절차가 복잡해서
개인
국외에서도 미충족의료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도구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유럽에서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도구로는 EU-SILC(Eu ro-pean Union Statistics on Income and Living Conditions)가 있다. 이 문항은 “당신이 생각하기에 당신은 지난 12개월 간 의료적 검사나 건강 문제로 인한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받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 까?”라는 질문에 “예/아니오” 로 답하도록 했다. 이어서 “검사나 치료를 받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가장 최근에)”라는 질문을 하며 선택지는 다음과 같다. 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서(너무 비싸서),
② 대기가 길어서, ③ 일이나 가족에 대한 책임 때문에 시간을 낼 수 없어서, ④ 이동하기 너무 멀거나 교통수단이 없어서, ⑤ 의사/병원/검사 /치료가 무서워서, ⑥ 저절로 좋아지는지 기다려보고 싶어서, ⑦ 좋은 의사나 전문의를 알지 못해서, ⑧ 기타. 국가 별로 언어 때문에 표현이 조금씩 차이가 났지만 문항 자체가 다르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다. ESS (European Social Survey)에서는 “지난 12개월 동안, 이 카드에 적힌 어떤 이유에 대해 당신이 필요할 때 의료 상담이나 치료를 받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라는 문항을 사용했다. 이 자료를 사용한 Fjaer 등(201
7)의 연구는 미충족의 이유로 가용성(Availability: 대기가 길어서, 약속을 잡을 수 없어서, 필요한 치료를 근처에서 이용할 수 없어서), 접근가능성(Accessibility: 비용을 지불할 수 없어서), 수용가능성(Accept ability: 직장이나 다른 일 때문에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의 세 가지 분류를 두었다.
미국의 연구에서는 BRFSS(Behavioral Risk Factor Surveillance System) 비용을 중심으로 미충족의료를 측정하였다. “지난 12개월 동안 비용 문제로 인해 의료를 이용하지 못한 적이 있었는가?”, “지난 12개월 동안 비용 때문에 처방전대로 약을 먹지 못한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는 가?” 그리고 ‘의료비로 인한 부채’를 물었다. 부가질문으로 “비용이 아니 라 다른 이유로 필요한 의료를 받는 것이 지연된 적이 있었는가? 가장 중요한 이유를 고르시오.”라는 질문에 대해 ‘진료 예약이 너무 오래 걸려 서’, ‘갔지만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서’, ‘당신이 가능한 시간에 병원이 열 지 않아서’, ‘교통수단이 없어서’ 라는 선택지를 두었다(Okoro et al., 2017).
캐나다는 NEHW(Neighbourhood Effects on Health and Well-being) 에서 “지난 12개월 간 의료가 필요하다고 느꼈지만 받지 않았던 경우가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와 “당신이 필요했지만 받지 않았던 가장 최근 의 일을 생각했을 때, 보건의료를 이용하지 않게 된 주요한 두 가지 이 유는 무엇이었습니까?”의 두 문항이 있다. 이 자료를 이용한 Hwang 등 (2017)의 연구는 이유로 ‘개인적 선택(불충분하다고 느껴서, 너무 바빠서, 시간을 내지 못해서, 의사를 좋아하지 않아서, 병원에 가지 않기로 결정 해서)’, ‘장애물(이 지역에서는 이용할 수 없어서, 어디를 가야할지 몰라 서, 비용 때문에, 교통문제 때문에, 언어적 문제로, 개인/가족에 대한 책 임 때문에, 건강 문제로 집 밖에 나가기 어려워서, 의사가 그 문제를 두 고 의료가 필요 없다고 해서)’, ‘대기시간(필요할 때 이용할 수 없어서, 대기시간이 너무 길어서)’ 라고 구분하여 분석했다. CCHS(Canadian Community Health Survey)와 NPHS(National Population Health Survey) 조사에도 미충족의료 문항이 포함되었는데 거의 비슷하게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