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환자만족도 조사, 환자 경험평가, 미충족의료
이 연구에서 이용자 중심의 관점을 채택한 것과 의료필요에 대한 충 족여부를 당사자에게 주관적 방식으로 측정한다는 점에서 기존에 이미 사용 중인 환자만족도 조사나 환자 경험평가와 어떻게 다른지에 대한 의 문이 제기될 수 있다. 여기서는 환자만족도 조사, 환자경험평가와 본 연 구에서 개발하고자 하는 미충족의료 측정도구가 어떤 점에서 비슷하고 다른지를 검토하고자 한다.
환자만족도 조사는 국외에서 이미 1970년대부터 시작된 것에 비하면 다소 늦지만 국내에서도 이미 10년 전부터 많은 병원에서 시행되어 왔 다. 그러나 최근에는 환자만족도 조사의 평가 유용성에 대한 문제제기와 함께 이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환자경험평가가 등장했다. 만족도 조사가 서비스 마케팅 차원에서 고객만족을 핵심 가치로 하는 것이라면 환자경 험평가는 의료체계의 환자중심성(patient-centered)을 강조하고 반응하려 는(responsiveness) 평가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신정우, 2017). 국내에 서는 2017년도에 들어서면서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의료 서비스 이용경험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환자만족도 조사의 단점으로 지적된 내용을 종합하면 첫째, 평가의 주 관성 문제로 환자의 질병 상태, 인식과 성향에 따라 결과에 영향을 받는 다. 둘째, 환자경험 외에도 치료 결과, 환경요인 등 다른 외부 요인이 영 향을 줄 수 있다. 셋째, 의사-환자의 권력관계에 따라 만족 수준 응답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넷째, 객관화가 어렵고 병원 간에 비교할 수 없다.
다섯째, 구체적인 문제 영역을 파악하기 어려워 그에 기반한 실행 계획 과 질 향상 전략을 제시하지 못한다. 여섯째, 어떤 요소가 만족도 조사에 포함되어야 하는지가 불분명하다. 일곱째, 다른 영역에 비해 점수가 전반 적으로 높게 나와 천장효과가 발생하는 경향이 있다(Cleary 1998; 2016;
Coulter et al., 2009; 도영경 외, 2017; 신정우 외, 2017).
환자경험평가는 만족 여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경험’을 물음 으로써 서비스 질을 평가한다. 예를 들어 환자만족도 조사에서는 간호사
의 돌봄에 얼마나 만족했는지를 묻는다면, 환자경험평가에서는 간호사가 투약이나 처치 전 그에 대한 이유를 설명해 주었는지, 병원 생활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해 주었는지,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어 대했는지와 같은 경험을 확인한다. 환자경험 접근법은 의료의 질과 직접 관련되는 대인적, 환경적 요소의 항목을 포함하며, 이를 최적의 최저선(optimal minimum) 에서 추출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2017년도에 시행한 환자경험평 가의 평가영역은 의사 서비스, 간호사 서비스, 투약 및 치료과정, 병원환 경, 환자권리보장, 전반적 평가이다(서소영, 2017). 환자 만족도조사에 비 하면 좁은 의미의 의료적 성격이 강한 문항들로 구성된다. 이러한 특성 은 국가 체계로서 최소수준의 질을 보장하려는 목표와 잘 부합하기도 한 다(도영경, 2017).
환자경험평가는 환자만족도 조사의 단점을 보완하는 차원에서 도입된 만큼 환자만족도 조사의 단점으로 지적된 부분들이 상대적으로 보완되었 다. 상대적으로 객관적인 경험을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응답 내용의 주관성이 완화되는 점, 문항 이해도가 환자 만족도에 비해 높다는 점, 무 엇보다 구체적인 서비스 요소별로 평가를 하기 때문에 문제 영역을 구체 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를 기반으로 질 향상 계획을 세우고 평가하는 데에 효과적이다(Coulter et al., 2009).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자경험평가 는 상당히 의료적인 과정들을 평가하도록 구성되어 있어 전반적인 포괄 적 평가나 의료 외적인 영역에 대한 평가가 어렵다. 같은 맥락에서 환자 가 직접 평가하는 경험평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문가 관점과 온정 주의를 벗어나기 어렵다.
이 연구에서 개발하려는 미충족의료 지표는 환자만족도조사와 환자경 험평가가 관련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다른 선상에서 출발한다. 두 조사 는 주로 병원에서 이루어지는 의료의 질 평가를 위해 사용되지만 미충족 의료 지표는 보건의료체계가 목표를 잘 달성하고 있는지의 성과를 보기 위한 지표로 사용된다. 두 조사는 환자가 이미 경험한 의료서비스에 대 해 평가하는 반면 미충족의료 지표는 의료서비스를 이용하기 전 의료필 요를 인식한 후 병의원을 찾아가는 단계에서부터 측정하기 때문에 측정
의 영역 자체가 다르다. 범위에 대해서도 환자경험평가가 의료적 과정을 강조한다면 미충족의료는 비의료적 필요라도 배제하지 않으며, 공급자와 의 상호작용뿐 아니라 의료이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규범적, 제도적 차원에서의 상호작용까지 반영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문항을 설계하는 방식에 따라 구체적이거나 포괄적인 측정이 가능하다. 환자만 족도 조사의 단점이자 환자경험평가의 장점인 구체적인 문제영역 파악과 이를 기반으로 한 평가는 미충족의료 지표에서도 가능하다. 오히려 구체 적인 미충족의료 경험 상황과 단계를 확인한 후 그 이유를 확인할 수 있 기 때문에 문제 여부뿐 아니라 기제에 대해서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 서 추가적인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미충족의료 측정은 ‘나의 의료필요 가 해결되었는가?’를 측정하도록 설계되기 때문에 주어진 서비스에 대한 만족 여부 또는 최저선의 요소를 어떻게 경험했는지의 방식과는 또 다른 판단 기준이 작동할 것이기에 해석과 적용이 다르게 된다.
미충족의료 지표는 환자경험평가가 극복하고자 했던 응답의 주관성 문제에서 환자만족도조사처럼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 영역을 객관 화 하고자 하면 환자경험평가와 같이 충족이 필요한 최소선을 지정하고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전문가나 정책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즉, 이용자 중심 관점을 강조하는 것과 주관성 문제는 뗄 수 없는 셈이 다. 대신 주관적 측정도구가 지닌 단점과 한계를 인식하고 보완할 수 있 는 방법을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양적 측정으로 반영할 수 없거나 편향이 예상되는 영역은 정성적 측정을 통해 보완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 이다.
2) 주관적 측정도구에 대한 이해
미충족의료 지표는 의료이용에 대한 주관적 측정도구이다. 주관적 응 답으로 얻을 수 있는 고유의 정보가 있는 대신 응답의 주관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건학 분야에서 자주 쓰이고 있는 다른 주관적 측정 도구로는 삶의 질(quality of life)이나 주관적 건강(self-rated health)이
대표적이다. 이들 지표에 대해서는 역사가 오래 된 만큼 타당도나 신뢰 도에 관한 연구가 많이 수행되었고 많은 연구에서 주요 변수로 활용하고 있다. 주관적 측정도구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으로는 알 수 없는 개인의 인식과 판단을 알 수 있다. 또한 주관적 건강수준이나 삶의 질과 같이 종합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아주 많은 종류의 자료가 필요할 때, 또 는 객관적 측정의 자료가 충분하지 않을 때, 당사자가 인식하는 정도를 평가함으로써 간단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문항에 응답하기 위해서 여러 상황에 대한 판단과 인지과정이 필요한 측정지표 의 경우, 각각의 경로에서 개인마다 다양성이 교차할 수 있으므로 해석 이나 비교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Diener(2009)는 자가보고 설문 에 응답하는 개인은 질문을 해석하고 기억을 훑어 정보를 검색하고 그 정보로부터 설문에 대답할 수 있는 형태를 계산해내기 때문에 일련의 과 정에 상황적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자가보고 설문 응답의 인지적 과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으로 기억, 정동(mood), 척도화, 의사소통 효과 등이 있는데, 질문을 어떻게 만들고 구성하느냐에 따라 각 요인이 미치는 효과를 조절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긍정적 기분의 감 정 강도는 과대추정하지만 빈도는 과소추정하는 경향이 있고, 불쾌한 감 정에 대한 기억으로 빈도는 비교적 정확히 추정하지만 강도의 추정은 매 우 부정확했다(Thomas and Diener, 1990). 응답 당시의 정동 상태에 따 라서 현재의 삶의 질 응답에 영향을 받게 되며, 사고나 가까운 사람을 잃은 경험도 관련된 문제의 응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억 효과를 조절하기 위해 먼저 관련된 경험에 대해 되돌아보도록 유도함으 로써 현재의 효과를 완화하거나, 일정 기간 매일의 일상을 기준으로 평 가하도록 하여 회상 편이를 줄일 수도 있다. 인터뷰의 상황과 그 이전의 질문 내용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도 있어서 질문의 순서나 구성에도 주 의를 기울여야 한다(Strack et al., 1991). 그 외에도 대면측정의 경우 의 사소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정동의 특성에 따라서도 응답에 차이가 날 수 있다. 측정하려는 개념에 대한 사회적 바람직함(social desirability)의 규 범이 있는 경우 해당 사회의 규범 특성에 따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쪽
으로 응답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익명일 때보다 대 면해서 응답하는 상황에서 더 바람직한 상태로 여겨지는 행복함을 더 많 게 응답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Fujita et al., 1993). 이와 같은 연구 결 과는 단순히 주관적 측정도구가 부정확하므로 지양되어야 한다는 것 보 다는 측정도구를 개발하고 측정하고 해석하는 차원에서 더 주의 깊게 살 피고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아직 미충족의료에 대한 주관적 응답의 타당성에 대해서는 주관적 안 녕(subjective well-being)이나 주관적 건강(self-rated health)과 같이 다 양한 연구방법을 통해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주관적 응답이 가질 수 있는 편향에 대해 상세히 이해하고 설문을 구성하며 해석할 뿐 아니라 향후 이를 여러 인구집단과 연구방법을 적용함으로써 다양한 맥 락에서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