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국제관습법의 형성에 있어 나타나는 특징들은 환경관련 분야와 인권관 련 분야에서 더욱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위험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위험이며 미래지향적인 위험으로 리스크의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 다. 특히 환경분야에서는 당장 현실화된 위험과 그 위험을 통한 막연한 예견을 바탕으로 한 위험은 전통적인 국제관습법의 형성을 넘어선 유연한 방식이 요구 되고 있는 것이다.
1992년 리우선언 이후 사전배려원칙은 폭넓게 국제사회에 수용되었다. 국제
176) 정경수, 앞의 논문, 213쪽.
177) O. Schachter, op. cit.,p. 89, 357.
사회는 현실화된 위험이 아닌 다가올 환경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하여 다양한 결 의와 조약을 양산해 냈고, 또한 그 결의와 조약을 통해서 다양한 국가의 관행 들을 형성했다. 전통적인 환경위험이 아닌 환경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한 결의와 조약에는 대부분 지도원리로 사전배려원칙을 천명하고 있으며, 그 실행을 위한 환경평가의 이행과 최신의 과학기술의 이용 등과 같은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같 이 규정하고 있다.
특히 오존층과 관련된 조약과 기후변화와 관련된 조약들은 규칙 자체에 규범 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채택시 당사국들은 국제관습법으로서의 발전을 오히 려 의도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 두 조약은 유엔의 전세계 대부분의 국가들 이 협약에 참여를 했으며, 국가들 이외에도 비정부기구와 정부간기구들의 많은 참여가 있었다. 이는 조약에 대한 양적 및 질적 참여의 측면에서 선진국과 개 도국, 그리고 환경보호를 위한 측면과 개발을 위한 측면까지 모두 고려되었다 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양적 및 질적 참여와 규범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해당 조약에 참여하고 있는 체약국들이 일반국제법으로서의 법적 신념을 확신한다고 보기는 곤란할 것이다. 그리고 국제협약 및 결의에서 보여준 국가들의 관행과 실제 이 행은 또 다른 문제이다. 그렇다면 국제협약 및 결의에서 보여준 국가들의 관행 만을 해당 국가의 관행으로 보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사전배려 원칙의 법적 성격과 관련하여 현대의 국제관습 법의 형성에서의 관점에서 본다면, 국제관습법적인 효력을 가지느냐 아니면 단 지 지도원칙으로 머물고 있느냐하는 문제이다. 현재까지 평가된 사전배려원칙 의 국제협약상에 나타난 지위는 일종의 선언적 성격의 권고에 불과하였다. 그 러나 오늘날 인권선언을 위반한 국가에 대한 국제기구의 제재에 일반적으로 이 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처럼, 비록 새로운 형태의 구속력 있는 국제법의 연원형 태가 아니라도 사전배려원칙은 국제환경법의 일반원칙으로서 그 영향력은 충분 하다고 보여진다.
즉 ‘심각하거나 또는 회복 불가능한 환경피해에 대한 합리적인 우려는 있지
만 그와 관련하여 과학적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경우 그러한 잠재적 환경 리스 크에 대하여 충분한 배려를 기울여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라는 사전배려원칙 의 핵심적 개념은 국제환경법 질서에 있어서 행동규범으로 역할을 한다. 국제 사법재판소와 같은 분쟁조정기관이 사전배려원칙의 법규범성에 관하여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사전배려원칙의 정신을 참작하면서 법령 을 해석하는 경향을 띠고 있는 것도 사전배려원칙이 국제환경법질서의 행동규 범으로서 역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전 배려원칙은 잠재적 환경 리스크에 대한 대처에 있어서 기존의 국제법규의 해석 과 적용에 있어서 지침을 제공하는 기능을 함과 동시에, 환경 리스크에 대한 국가의 대처방향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 다.178)
하지만 국제환경법상의 일반원칙으로서의 성격이 인정된다고 하여 국제법상 의 국제관습적 효력을 인정하기에는 아직 무리가 있다. 사전배려원칙에 관한 국가관행을 살펴볼 때, 사전배려원칙의 관습법성에 관한 각국의 입장은 일치되 어 있지 않다.179) 즉 잠재적 리스크에 대하여 널리 자동적으로 사전배려원칙이
178) 국내 환경법에 있어서 사전배려원칙 그 자체가 행정처분을 발동시킬 수 있는 법 원칙의 지위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행동규범 내지 지도원리로서의 기능은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전배려원칙이 개별규정에 구체화된 예로는 환 경계획, 사전환경성검토제도, 환경영향평가제도 등이 언급되고 있다(여인호, 앞 의 논문, 243쪽 이하 참조). 한편,「환경보건법」에서는 “환경오염 등 환경요인 과 사람의 건강 및 생태계의 피해 간에 과학적 상관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는 경우라도 그 환경요인 및 물질의 무해성이 최종적으로 입증될 때까지는 사람의 건강과 생태계에 미칠 영향을 예방하기 위하여 경제적·기술적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그 위해요인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와 시책이 강구되어야 한다(제3 조 제1호).”고 규정함으로써, 사전배려원칙을 환경보건의 기본원칙으로 천명하 고 있다.
179) EU는 위원회 보고서나 WTO 분쟁을 통해서도 사전배려원칙이 국제관습법의 지위를 갖고 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또한 아일랜드는 MOX Plant사건에서 사전배려원 칙이 국제관습법이라고 주장하였다. 인도의 경우에도 국내법원에서 사전배려원칙 이 국제관습법의 지위를 갖고 있다고 인정한 바 있으며, 미국의 경우 종래부터 국내적으로는 사전배려적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국제적으로는 자국이 가입한 조 약규정을 떠나서는 사전배려원칙을 국가 간 관계에서 일반적으로 적용되는 법원 칙으로 인정하는 것에 반대하고, 오히려 원칙이 아니라 접근방법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와는 다른 관점에서 실제상으로는 미국의 환경규제가 극
적용된다고까지 국제사회의 합의가 형성되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따 라서 현 시점에서 사전배려원칙이 국제관습법의 지위를 획득하였다고 볼 수 있 을 정도로 국가관행과 법적 확신이 충분히 축적되었다고 보기는 곤란할 것이 다. 그렇지만 사전배려원칙은 국제관습법의 성립요건 인 국가의 일반적 관행과 법적 확신을 충족하는 방향으로 국가의 관행이 착실히 축적되어 가고 있는 과 정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히 일부 분야를 제외하고는 일반적으로 사전배려적(precautionary)이라기보다는 사후대응적(reactive)임을 지적하는 견해도 있다(박종원, 앞의 논문, 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