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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Foucault, 1966)는 벨라스케스의 ‘시녀들Las Meninas’<그림 1>이라는 회화 작품을 분석하며 시선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 작품은 얼핏 보면 가운데에 있는 공주가 주인공인 것 같지만 자세히 그림을 들여다보면 화가가 그리기 위해 바라보고 있는 대상, 즉 관객의 위치에 있는 어떤 대상이 주인공이 된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위치에서 바라보면 공주가, 그림 속 인물의 위치에서 바라보면 왕과 왕비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그림 속 인물들의 방 건너편에 있는 거울은 관객의 위치에 있는 왕과 왕비가 작품 내 인물들의 시선을 받고 있는 주인공임을 암시한다. 이처럼 벨라스케스의 작품에서는 시선의 위치(바라보는 자의 위치)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푸코에 의하면 이 그림에서는 두

개의 주체(공주 및 왕과 왕비)와 두 개의 위치(관객의 위치, 그림 속의 사람들의 위치)가 존재한다. 이는 바라보는 자와 바라보아지는 자 사이의 관계가 시선에 의해 결정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시선의 위치에 따라 주체가 달라지고 회화의 주제가 바뀐다는 것은 시선이 지니는 영향력을 보여준다.

이처럼 주체를 결정짓는 시선의 힘과 관련해서 남성의 시선에 따라 여성이 스스로를

어떻게 전시하는지를 보여주는 논의가 있다. 존 버거(Berger, 2008)는 서양 회화의 역사를 되짚으며, 회화에서 재현되었던 시선의 방식이 현대 서구의 광고 이미지에서도 그대로 연결되어 재현되고 있음을 역설했다.

기존에 여성을 묘사한 회화에 있어 그림 속의 여성은 남성이 보는 시선에 따라 ‘보여지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여성의 자아는 두 가지의 모습으로 나뉘게 되었다. 하나는 스스로를 바라보아야 하는 관찰자로서의 여성으로서, 여성 자신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이미지에 의해 구성되는 모습이다. 즉, 여성은 방 안을 걸어 다닐 때에도 스스로가 어떻게 걷고 있는지 그 모습을 객관적인 관찰자의 입장에서 상상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관찰 당하는 자로서의 여성이다. 예전에는 여성으로 태어난다는 것이 남성의 보호 아래 태어나 남성의 유지 혹은 보조를 위해 살아가는 것을 의미했으므로, 여성은 남성에게 어떻게 보이는지에 따라 어떻게 취급될 것인지가 달라졌다.

이에 따라 관찰되는 과정에 대한 통제를 하기 위해서 여성은 스스로 관찰 당하는 과정을 내면화하고 있어야 했다. 관찰자로서 여성의 자아는 관찰 당하는 자로서의 모습을 구성하는 데에 일정한 역할을 하며 여성의

‘현재적 모습’을 구성해낸다. 이러한 과정은 여성 스스로에 의한 자아에 대한 통제라고 볼 수 있다. 즉, 시선에 대한 의식으로 인해 스스로의 모습을 규제하게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을 존 버거는 “남성은 행동하고 여성은 스스로를 드러낸다”고 표현했다. 즉, 남성은 여성을 바라보는 반면에 여성은 ‘바라다 보이는’ 자신을 쳐다본다. 이러한 시선의 과정을 통해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 그리고 여성과 여성 자신의 관계가 성립된다.

이러한 맥락 하에서, 유럽의 유화에서 많이 다뤘던 여성의 누드화에서는 나체(Nudity)와 벌거벗음(Nakedness)의 두 가지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나체란 꾸며진 것으로서, 예술적 전통에 따라 양식화되어 있으며 응시의 대상으로서 타인에게 전시되는 상태를 의미한다. 나체 회화에서는 주인공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작품의 주인공은 바라보는 남자이며, 이 응시자를 전제한 결과로서의 작품이 그려진다. 반면에 벌거벗음은 자연스러운 상태로서 누구나 다 지니고 있는 신체적 특징을 인식하는 익숙함에 대한 확인이다. 벌거벗음은 나체와 달리 어떠한 꾸밈도 없는 상태이며 누군가의 시선의 대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이와 같은 특징들을 정리하면

나체(Nudity) 벌거벗음(Nakedness) 예술의 형식, 회화에 의해 이룩된

하나의 바라보는 방식

단순히 아무런 옷도 걸치지 않은 상태

언제나 양식화됨(예술적 전통) 평범함의 확인(우리와 다르지 않고 익숙함, 남자 혹은 여자임에 대한 확인)

보이는 대상으로 전시되는 것. 다른 사람에 의해 벌거벗은 모습이 전시되나 자신은 깨닫지 못함.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

항상 무언가를 가림, 덮음을 전제로 함. 결코 벌거벗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는 것. (의상의 한 형식)

어떠한 위장도 없는 상태. 성적 고유성, 끊임없이 변화하는 동적 상태

<표 1> 존 버거의 나체와 벌거벗음

<표 1>과 같다.

한편 멀비(Mulvey, 1975)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영화가 여성을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지를 정신분석학적인 측면에서 검토했다. 영화관은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이 나는 스크린을 관객이 바라보는 상황을 제공한다는 점 에서 바라보는 즐거움을 제공한다. 이 때 영화는 성적 본능에 의한 절시 증(scopophilia)과 에고 리비도에 의한 나르시시즘적인 관음증(voyeurism) 의 이원적인 작용을 한다. 특히 이러한 작용은 여성의 재현 방식으로 드 러나게 되는데 전통적으로 영화에서 여성들은 극중 인물들을 위해서, 그 리고 영화관 내의 관객들을 위해서 에로틱한 대상이 된다. 여성 인물은 계속해서 거세 공포를 환기시키기 때문에 관음증적인 자신을 부정하고 싶은 남성 관객의 자아는 영화 속 인물에 스스로를 동일시함으로써 인지 부조화를 해결한다. 멀비는 이를 남성 무의식의 도피 수단이라고 본다.

이 때 도피 수단은 두 가지로 발현되는데, 관음증의 경우 거세 공포를 사디즘적으로 수용함에 따라 여성을 평가절하하고 벌하거나 구하는 방식 으로 상쇄된다. 절시증의 경우 거세 공포를 부정하고 대상의 육체적 미 를 강조함으로써 페티시적인 대상으로 대체한다. 따라서 사디즘을 요구 하는 관음증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내러티브를 요구하게 되고 절시증은

외모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이러한 원리에 의해 여성의 이미지 는 적극적인 남성의 시선을 위한 수동적인 소재가 된다. 멀비는 영화의 이러한 코드가 시선과 대상을 생성해낸다고 보았다. 이러한 논의는 시선 의 권력이 세련되게 포장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존 버거와 멀비의 논의를 카카오톡 분석에 적용시켜 보자면 결국 사람 들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지, 또 그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 타 인의 프로필 사진을 구경하는지 그 과정을 이해하는 데에 접목시킬 수 있다. 즉, 타인의 시선에 따른 프로필 사진의 연출행위 및 정체성 구성 과 관련지어 본고에서는 타인의 시선에 대해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와 관 련된 ‘시선에 대한 민감도’를 프로필 사진 연출 행위의 유형화에 있어 분석의 한 축으로 삼았다.

제 3절. 구조와 실천

1. 수행적 자아

버틀러(Butler, 2006)는 페미니즘의 정치적 이론화에 있어

‘범주’로서의 여성 주체에 전제될 수 있는 폭력을 경계했다. 즉, 정체성이란 미리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행위를 통해 다양하게 구성되는 것이다. 젠더가 재현적인 것이 아니라 수행적이라는 것은

‘행위 뒤의 행위자’의 필요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젠더가 행위라는 것의 의미는 다시 말하면 젠더의 행동이 마치 드라마의 경우처럼 반복된 연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으로 이미 설정된 일련의 의미들을 합법적인 것으로 만드는 일상적이고 의례적인 형식’을 반복하는 가운데 젠더가 수행된다. 이 때 이러한 행동은 ‘공적인 행동’으로서, 시간적이고 집단적인 차원이 존재한다. 이러한 공적인 수행은 젠더를 유지하려는 전략적인 목적으로 작동되며 ‘주체의 근간이 되고 주체를 통합하는 것’이다. 젠더의 공적인 수행은 어떤 주체에 귀속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버틀러는 젠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젠더는 다양한 행위가 일어나는 작인의 장소나 안정된 정체성으로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양식화된 행위의 반복(stylized repetition of acts)을 통해서 시간 속에 희미하게 구성되고, 외부공간에 제도화되는 어떤 정체성이다.

이와 같이 ‘젠더가 주어진 정체성이 아닌, 규범적 이상에 따른 실천이라는 버틀러의 분석은, 젠더가 끊임없는 체현을 통한 구성임’을 보여준다. (김애령, 2010) 이는 ‘행위’를 통해 가변적으로 구성되는 주체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본질적인 주체의 근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체성의 산출 방식의 측면에서 행위하는 그 자체로 구성되는 것, 가변적인 것, 일시적인 것을 상정하는 것이다.

이를 본 연구의 연구대상인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연출 행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이해하는 틀로써 가져와본다면, 앞서 언급했듯이 네트워크화된 상황 속에서 끊임없는 유동적 선택 앞에 직면하고 있는 자아가 단순히 연결성이 강조된 환경에서 구성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프로필 사진 연출 행위를 통해서 구성되고 있을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온라인 MIM 환경에서 진정한 자아정체성이나 핵심적이고 근원적인 자아정체성을 가정하는 대신 유동적으로 수행적으로 구성되는 실시간 자아의 존재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것이다.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연출 행위는 사회적으로 이미 설정된 ‘양식화된 행위의 반복’이며, 공적으로 수행되는 측면이 존재한다. 따라서 젠더가 일정하게 양식화되어 있는 행동들을 반복함으로써 체현되듯이 카카오톡의 정체성도 체현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버틀러는 ‘반복과 인용의 열려있는 과정이 전복적 수행의 가능성과 행위성을 지켜준다고 주장’(김애령, 2010)한다. 이는 주체가 곧 사회적, 담론적 양식과 관습에서 분리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복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