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국제질서의 불확실성 및 불안정성은 크게 제고되었다. 세 계화 대 반세계화, 통합 대 분열, 기득권 대 반기득권, 자유주의 국 제질서 대 패권주의, 다자주의 대 양자주의, 고립주의 대 국제주의 등 서로 상반되는 조류가 충돌하는 등 구조와 규범을 둘러싼 혼란이 가중되는 초불안정 상황이 진행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북아 국 제질서도 협력적 세력균형에서 대결적 세력전이의 방향으로 전이해 나가고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분명한 것은 동북아에서 지정학적 중요성이 갑자기 증대되었지만 그 성격과 결과에 대해서는 쉽게 예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 네 가지의 흐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 미중 간 잠재적 갈등의 표 면화로 특징지어지는 ‘신냉전’이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의 영 토 분쟁 심화가 가중되고 북핵문제에서의 이견이 촉발 요인이 될 수 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가시화된 러중 간 전략적 협력
이 강화된다면 신냉전의 가능성은 더 커질 수 있다. 둘째, ‘일대일 로’에서처럼 중국이 유라시아에서 미국을 배제하고 중국 중심으로 아시아를 재편하는 ‘중화중심주의(sinocentrism)’도 장기적으로 가능 할 수도 있다. 셋째, 러시아의 ‘유라시아 경제연합’과 중국의 ‘일대일 로’가 결합되는 ‘유라시아주의(eurasianism)’의 발현 가능성도 주목 할 만하다. 특히 2016년 6월 17일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 에서 푸틴대통령이 선언한 ‘대유라시아 파트너십(Greater Eurasia Partnership)’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대유라시아 파트너십’은 유 라시아경제연합과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란 그리고 기타 CIS국 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는데 장기적으로 유라시아 대륙에는 다극성이라는 이름하에 통합된 반미적 경제 질서가 성립될 가능성 이 높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미국의 ‘아시아 회귀정책(pivot to Asia)’의 강화로 한국과 동아시아 를 포함한 대륙 경계 국가들이 해양세력 블록에 확연히 안착하는 것 이다. 이 시나리오의 핵심은 인도가 공세적 중국에 대항하여 이 블 록에 가담하는 것으로 ‘인도-태평양(India-Pacific)시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세력 경쟁으로 인해 동북아 지역 긴장이 제고되면 대륙세 력과 해양세력의 가교 위치와 능력을 키워 온 한국의 중견국(middle power)으로서 지정학적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중국의 부상과 미중 잠재적 갈등 또한 미러 관계 악화의 상황에서 한국의 전략적 선택 방안은 여러 가지가 가능할 것이나 크게 보면 선제적 견제 또는 균형 전략, 유연한 수용 전략 그리고 능동적 우회 전략으로 나누어 볼 수 있을 것이다.
<표 Ⅴ-2> 한국의 대외전략
전략 세부 전략 내용
선제적 견제 및 균형화 전략
1. 남북관계 중시 전략 남북관계를 주도적으로 관리하여 지정학적 영향을 최 소화함
2. 전략적 결속 전략
부상하는 중국의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국가와의 협력 확대함으로써 미중 간 갈등의 위험 관리(한‧미‧일 3각 협력 강화)
3. 중립화 전략 중립화 선언이나 핵무기 무장을 통해 자주성 강화 4. 전략적 관여 전략 한중 간 경제적 상호의존과 문화교류를 통한 이해관
계를 확대함으로써 중국의 일방주의 억제 5. 중견국 외교 전략 중견국으로서의 독자적 위상 강화를 통해 가교적 영
향력 확대 유연한
수용 전략
1. 대중 수용 전략 중국의 강대국 부상을 수용하여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적 관계의 수준을 높이고, 한미동맹 수준 변화도 고려 2. 헤징 전략 미국, 중국 모두와 좋은 관계 유지 노력
능동적 우회 전략
1. 다자지역주의
지역평화 이니셔티브를 촉진하고 기존 협력 활동을 강화함에 따라 동아시아에 제도화된 안보메커니즘 창 설을 추구
2. 네트워크 전략 강대국 간 중재자 역할 및 네트워크 강화
이러한 전략 중에서 과거에는 유연한 수용 전략과 능동적 우회 전 략을 주로 혼합해서 사용했다면 이제는 선제적 견제 및 균형화 전략 을 조금 강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남북관계가 기대만큼 개선돼 나 간다면 더더욱 중견국 외교 전략을 강화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이후 한국의 북방전략은 헤징 전략과 지역주의 및 네 트워크 전략의 조합의 성격을 가졌다고 볼 수 있으며 그 혼합 비율 만 정부 간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미중 간 갈등이 가시화되고 특히 사드 설치 이후에는 헤징 전략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다자지역 주의 전략도 역대 정부에서 추구해 왔지만 강대국 지지와 국내 합의
의 부재로 큰 효과가 없었다. 지난 정부의 동북아평화구상(NAPSI) 이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좋은 예이다. 네트워킹 전략도 한계를 보인다. 네트워크 파워가 실질적으 로 작동되기 위해서는 연결 국가 간 전략적 공감대에 기반해야 한다.
특히 남북관계 개선이 없는 네트워크 전략은 실효성이 별로 없다.
그러나 다자주의나 네트워킹 전략만으로 실효성이 없더라도, 지정 학적 경쟁 심화 시기에는 이 두 전략은 보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 로 추진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신북방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남북관계 개선을 적극적으 로 추진해 나가면서 질서 변화에서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우회 전략 과 수용 전략으로 해결해 나가는 담론과 세부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 다. 이러한 전략 수립을 위한 다섯 가지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중견국 외교 기반의 확대가 필요하다. 남북관계가 일정 수 준 안정화되면 한국의 중견국 외교가 가능해질 수 있다. 한미동맹 네트워크를 통한 중국 견제의 일원에 머물 수밖에 없다면 신북방정 책의 추진은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다. 현안 대응적(muddling through) 외교에서 벗어나 장기적 외교개념을 명확히 선언하고 국 제사회의 모범적 일원으로서의 연성파워 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특히 러시아와 중국의 동맹적 관계 진화를 구조적 변수로 인식하지 말고 적극적 대러 협력 외교가 한반도 문제에 대한 러시아의 중국 동조화 또는 편승을 낮출 수 있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유라시아 대륙통합과 지역기구의 참여도 검토될 필요가 있다. 푸틴 대통령의 ‘대유라시아 파트너십’은 유라시아경제연합과 중국, 인도, 파키스탄, 이란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과 긴밀한 관계를 강조한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이미 SOC 가입이 확정되었고 이란도 가입 예 정이다. ‘유라시아 랜드 브릿지(Eurasian Land Bridge)’에 비해 상
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던 ‘남북회랑’이 최근 가시화되어 이란의 입장 에서 러시아와의 협력의 실현 가능성이 커졌고 개도국형 수출기지 화가 정착되고 있는 인도와 파키스탄 입장에서 중국 시장은 불가결 해졌다.
SOC가 반미적 성격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 에서 보다 폭 넓은 선택지를 가진 인도와 파키스탄의 참여는 반미적 성격을 어느 정도 완화하는 의미가 있다. 또한 국경 문제를 안고 있 는 인도와 중국의 잠재적 갈등, 오랜 반목의 인도와 파키스탄 등 내 부적 관계가 국제정치적 측면의 확고한 반미연대를 형성하기 어렵 게 할 것이다. 인도‧파키스탄‧이란은 한국에게 모두 중요한 미래의 경제파트너이다. 실용주의적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대유라시아 파 트너십’ 참여를 선도적으로 선언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경제적 다 자기구 참여는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미 AIIB에 참여하고 있 듯이 CICA‧CAREC‧SOC산하의 경제기구 등 중국과 러시아가 참여 하는 다자주의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시점이 되었다.
둘째, 창의적인 소다자협력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 동북아는 정 치적으로도 ①한미/미일동맹체제, ②한‧미‧일/한‧중‧일/한‧미‧ 중 소다자주의(mini-lateralism) ③한국과 주변국들이 안보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는 동북아 다자안보협력체제가 병존할 필요가 있 다. 특히 한미동맹으로 인해 중러가 포함되는 안보다자주의가 어렵 기 때문에 한‧일‧러/한‧중‧러 소다자주의 경제협력의 적극적 활 용이 필요하다.
소다자협력의 포맷은 다양할수록 좋을 것이다. 다양한 포맷은 대 러, 대중 협력의 지정학적 부담을 줄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에 많이 논의되던 남‧북‧러, 남‧북‧중 외에도 한‧일‧러, 한‧러‧인
도‧동남아 등 새로운 창의적 포맷도 가능할 것이다. 특히 신북방정 책과 신남방정책을 새로운 번영 정책으로 추진하는 현 정부에서 경 제 의제를 중심으로 러시아와 인도 그리고 동남아를 잇는 협력의 플 랫폼 참여를 추진해 볼 필요가 있다. 서방의 대러 제재도 회피하면 서 반미적 유라시아 통합질서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미국과 일본의 신북방정책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 역대 정부 북방정책의 실패 원인 중 하나가 미국과 일본의 적극적 지지와 협력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었다. 미국과 일본의 참여를 유도하는 구체적 방안으 로 고려해 볼 수 있는 방안은 동북아개발은행 설립과 ‘한‧일‧러 에 너지 클럽’ 창설이다.
역대 북방정책 실패의 주요 요인의 하나가 재원 부족이었다. 또한 서방의 대러 금융제재를 감안한다면 다자개발은행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은 중국을 간접적으로 견제하면서 미국과 일본의 북방정책 참여를 유도할 수 있는 재원 마련 방안이 될 수 있다. 미국과 일본은 AIIB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적 관점에서 북한 및 러시아 극동 개발 참여를 위한 동북아개발은행 참 여의 개연성이 크다.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은 동북아 지역 연계 개발, 국내 기업 사업기회 창출 등에 긍정적 파급효과가 클 것이며 장기적 으로 통일에 대한 우호적 국제환경 조성과 함께 통일 비용 절감 효 과도 있을 것이다.
한‧일‧러 소다자협력은 위안부 합의 재논의 요구 등으로 한일 양 국 간 외교, 안보 분야의 협력 진전이 어려운 일본과 상대적으로 정 치적 부담이 적은 경제 분야 협력을 통해 양국 간 관계 개선의 새로 운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또한 러시아 극동에 한일이 공동으로 투자 함으로써 극동개발에서 러시아의 과도한 중국 의존을 줄이고 향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