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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의 대아세안 정책(번영의 측면)

한-아세안 관계는 1980년대 말 시작된 이후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를 계기로 본격화되었다. 그러나 그 이후의 경과는 집권하는 정 부에 따라 아세안 국가들과의 협력의 범위가 좁아지고, 정부 내 위 상이 상대적으로 낮아지면서 추진동력이 크게 약해진 것이 사실이 다. 그나마 성과가 있는 부분은 금융과 무역부문이라 할 수 있는데, 본 절에서는 기존 정부의 대아세안 관련 경제정책과 각 정부별 성과 (금융통화협력과 자유무역협정)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가. 김대중 정부

김대중 정부에서는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를 계기로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다자협력’에 대한 논의가 금융협력을 중심으로 본격화 되었다. 즉 동아시아 국가들은 경제발전에 있어 금융 및 외환시장 안 정의 중요성과 금융위기가 주변국으로 빠르게 전염될 수 있다는 것 을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금융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주변 아시아 국가들과의 금융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금융위기 이후 동아시아 지역협력과 아세안에 대한 관심이 고조 되면서, 동남아 국가와 양자 관계뿐만 아니라 EAVG, EASG 등을 제안하여 동 지역에 대한 다자협력의 제도적 기틀을 마련하였다. 이 러한 노력은 금융분야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우선, 외환시 장의 안정을 위한 방안으로 양자 간 통화스왑 협정인 치앙마이 이니 셔티브(Chiang Mai Initiative: CMI)를 체결하고, 이를 다자화 하 는 등 외화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동의 방안을 마련하고, 아시아 역내 공동통화 창출에 대한 논의도 추진하였다. 또한 역내 유동성을 확보하고, 역내 국가 간 투자를 촉진하기 위하여 역내 주식 및 채권 시장을 통합하는 방안도 추진하게 되었다. 이외에도 ‘아세안+3 재 무장관회의’를 매년 정례적으로 개최함으로써 상호 간 금융시장의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는 등 역내 금융정책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표 Ⅱ-2> 한‧아세안 외교 관계 발전 주요 경과

구분 주요 내용

89.11월 부분별 대화관계(Sectoral Dialogue Partnership) 수립

91.7월 완전대화상대국 관계(Full Dialogue Partnership)로 격상

97.12월 제1차 아세안+3 정상회의 및 제1차 한-ASEAN 정상회의 개최

04.11월 ∙ 「한-ASEAN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에 관한 공동선언」채택

05.12월 ∙ 「한-ASEAN FTA 기본협정」 체결, 「한-ASEAN 포괄적 협력 동반자 관계 에 관한 공동선언」이행을 위한 행동계획 채택

06.8월 ∙ 「한-ASEAN FTA 상품 협정」체결

07.11월 ∙ 「한-ASEAN FTA 서비스 협정」체결

09.3월 한-ASEAN 센터 출범

09.6월 ∙ 한-ASEAN 특별정상회의 개최(제주), 「한-ASEAN FTA 투자 협정」 체결

10.1월 ∙ 「한-ASEAN 전략적 동반자 관계에 관한 공동선언 및 이행 계획」 채택

11.1월 한-메콩 외교장관회의 출범

12.9월 주ASEAN 대표부 개설

14.12월 한-ASEAN 특별정상회의 개최(부산)

15.12월 ∙ 한-아세안 전략적 동반자 관계 공동선언 이행을 위한 행동계획(16~20) 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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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세안 관계 조망 국제회의(8월)

제7차 한메콩 외교장관회의(8월)

아세안문화원 개원(9월)

자료: 강명구, 신남방정책 구상의 경제외교적 의의,산은조사월보, 제748호 (2018), p. 73.

나. 노무현 정부

노무현 정부는 2004년 아세안과의 외교적 관계를 포괄적 협력동 반자관계로 격상시켰지만, 경제협력의 추진 기조를 기존 김대중 정 부가 추진한 동아시아라는 큰 틀에서 동북아 지역으로 그 범위를 축 소시켰다. 즉 동북아 지역 중심의 경제협력에 집중하였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에서 아세안과의 경제협력은 정부차원이 아닌 민간기업 의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수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 고 아세안과의 경제협력은 김대중 정부 정책의 연장선상에서 그리고 FTA라는 시대적 조류에 따라 어느 정도 진전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한‧아세안 FTA는 2003년 10월 한‧아세안 정상 회의에서 양자 간 FTA 추진을 위한 공동연구를 실시하는데 합의함 에 따라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었고, 2007년 상품무역협정을 시작 으로 발효됐다. 한‧아세안 FTA는 기존의 양자 간 FTA24)와는 다르 게 상대국이 10개국으로 구성된 복수국가라는 점을 감안하여 상품, 서비스 및 투자 분야 각각에 대한 협정을 별도로 체결하고 순차적으 로 발효됐다.

이외에 금융통화협력에서도 상당한 정도의 진전이 이루어졌다.

2006년 아세안+3 재무장관 회의는 유럽의 유로화와 유사하게 역내 공동통화를 창설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하였다. 동아시아 각 국은 금융협력의 최종 목표가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것인데, 이때 공 동통화 창출이 중요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를 위한 실질적인 구체 화 방안 마련에 돌입한 것이다. 실질적으로 동아시아 국가들이 이러 한 중장기적인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제 추진하기 위해 준비하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진전으로 볼 수 있

24) 국가 간 FTA를 추진할 때 상품‧서비스‧투자 부문이 동시에 추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구체적인 일정이나 방안이 제시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2010년 유럽 재정위기 이후로 공동통화 창출에 대한 회의론이 대두되면서 향후 추진방안에 대한 논의 역시 지연되는 상 황이다.

다. 이명박 정부

이명박 정부는 2009년 3월 ‘신(新)아시아 구상’을 발표하고, 양자 간 관계를 전략적동반자관계로 격상하면서 양자관계와 경제적 실리 에 초점을 두었다. 외견상으로는 경제영토를 기존 동북아 지역에서 동남아 지역까지 확대하고자 하는 매우 적극적 전략이라 할 수 있 다. 특히 다수의 아시아 국가들과 양자 간 FTA를 체결함으로써 역 내 FTA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허브 역할을 담당하고자 한 것이 주 요 목표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2009년 한-아세안 센터 설립(3월)과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6월)를 개최했고, 2010년 10 월에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이외에도 금융통화협력을 통해 역내 회원국 중 하나로서 보다 다 양한 발전적 합의를 도출하는데 기여하였다. 2009년 5월 발리 아세 안+3 재무장관회의에서 금융위기 발생 시 역내 국가들에 대한 단기 유동성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기존 양자 간 치앙마이 이니셔 티브를 다자간으로 확대하는 협정에 최종적으로 합의하였고, 2010 년 3월에는 기존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를 1,200억 달러 규모로 확대 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 기금(CMI Multilateralization:

CMIM)이 출범하였다.25) 이는 역내 금융시장의 안정성을 강화되고,

25) 초기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는 한일과 아세안 5개국(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태 국싱가포르‧필리핀)이 참가하였으나 치앙마이 이니셔티브 다자화 기금은 역내 회 원국 전체와 홍콩으로 확대하였다. 홍콩은 공식적으로 아세안+3 재무장관회의의 회

추가적인 외화유동성 확보 창구를 확대하였다는 점에서 동아시아 국가들의 금융위기 대응 능력을 한 단계 진전시킨 것으로 평가된 다.26) 또한 2012년 마닐라 아세안+3 재무장관회의는 CMIM의 기능 을 보다 강화하기 위해 기금의 규모 확대 및 IMF와의 비연계 자금비 율에 대한 개편, 위기 예방 프로그램의 도입 등에 대해 다양한 합의 를 도출하였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들은 전술한 바와 같이 역 내 회원국으로서 회원국 간 전체적인 방향을 설정하는 데 기여한 것 을 제외하면, 우리나라 정부의 정책적인 측면에서 기대했던 성과는 거두지는 못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전형적인 외교통상 방식의 접 근에만 집중한 나머지 실제 아세안과의 협력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정책이나 대응책 마련에 실패했다고 볼 수 있다. 즉 아세안에 대한 이해와 비전의 부족으로 인해 한계에 직면했다고 할 수 있다.

라. 박근혜 정부

박근혜 정부는 동북아 평화협력이라는 기조에 따라 동북아(유라 시아 이니셔티브)와 한반도에 국한하면서 아세안과의 경제 관련 명 시적인 정책이나 실질적인 협력은 전무한 수준에 머물렀다. 물론 아 세안과의 관계 강화를 역설하며 새마을운동 지원 사업, 한-아세안 협력 사업 기금 확대(연간 500만불 → 700만불) 등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이전 정부에서 추진해 온 사업의 연장선에만 머물렀 고, 통상의 당사국으로만 인식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경제협력에는 그다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26) 이충열이종하. “동아시아 금융협력의 현황과 과제.” 동아연구. 제32권 2호 (2013), pp. 5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