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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의 북방정책 평가(번영의 측면)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공식적으로는 2013년 10월 18일 개최된

‘유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컨퍼런스’의 대통령 기조연설에서 제안 된 구상이다. 주요 내용은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대륙, 창조의 대륙, 평화의 대륙’이라는 개념하에 물류, 경제 산업, 외교안보(평 화 건설) 분야로 나누어 실천 및 도전 목표를 형성하고 이를 통해 유라시아를 ‘소통‧개방‧창조‧융합’의 공간으로 조성한다는 것이 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신뢰정치에 기반한 대북정책인 ‘한반 도 신뢰 프로세스’, 대동북아 정책인 ‘동북아평화협력구상’과 함께 가장 넓은 지역인 유라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지리적 파동형 정 책이었다. 개념적으로는 대한반도-대동북아-대유라시아 정책이 상 호유기적 연계성을 가지고 추진되며 그 기반은 신뢰 외교였다고 볼 수 있다. 복잡한 지정학적 구조 속에서 한국 대외정책의 목표를 달 성하기 위해서는 비정치적이고 비전통적인 분야, 주로 경제 분야의 협력을 통한 신뢰구축을 기반으로 한 대외전략이었다.

‘북방정책’이란 용어의 기원은 노태우 정부에 있지만 대(對)공산 권 문호개방을 천명한 1973년 6‧23선언 이후 시작된 대사회주의권 정책이 북방외교, 대공산권정책, 북방정책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 며 논의되다가 노태우 정부에 이르러 대륙에 대한 전략적 사고를 포 괄하는 ‘북방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집약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 다.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은 한국 외교의 중요 공간으로서의 유라 시아 지역을 정부 차원의 정책으로 구체화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북방정책이 가져온 동구 및 러시아와의 수교 그리고 이어진 중국과의 수교는 북방정책이 한국 외교의 새로운 지평을 실제로 열 었다는 인식을 국민에게 주었다. 또한 이러한 가시적 성과는 이어지

는 김영삼 정부,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 이르기까지 시대 상황에 따라 이름과 내용을 달리 했지만 한국의 대륙 연결과 북한 문제를 연계하여 해결한다는 북방정책의 기본적 인식은 지속되었다.

이처럼 북방정책은 노태우 정부 이후 각 정부에서 유사한 문제의 식과 의도로 추진되었으나 유사한 이유로 해서 기대에 미치는 성과 를 얻지 못했다. 북방정책은 냉전의 유산이 남아 있는 한반도에 미 국‧중국‧러시아의 새로운 갈등의 구조화가 겹쳐지는 어려운 상황 에서 한국 외교의 전략적 공간을 마련하고 나아가 한국 경제의 새로 운 성장 동력을 찾고자 추진되어 왔다. 그러나 역대 정부는 남북관 계의 부침, 지정학적 위기 증대, 상대국의 호응 부족, 국제협력을 위한 다자적 협력 플랫폼 결여, 정부의 의지 부족, 경제적 타당성과 재원의 부족 등 유사한 원인으로 성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특 히 북핵 위기의 심화는 미중 및 미러 갈등의 구조화가 진행되는 역 내의 어려운 상황에서 북핵문제에 사로잡힌 한국 외교의 전략적 입 지를 더욱 축소시킴으로써 남북관계와 미러관계에 북방정책이 기속 되는 결과를 낳아 사실상 정책의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을 만 들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공과에 대한 평가도 이러한 흐름과 크게 다를 수는 없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역대 정부 북방정책의 지정학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북방정책의 하나의 핵심 대외전략 및 정책으로 구체적 개 념화를 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지닌다. 첫째, 그간 지리적 광범위 성과 모호성으로 대외정책의 전면에 명확히 내세우기 어려웠던 유 라시아 지역을 한국 외교의 자산화로 했다. 시아라는 지리적 용어가 처음으로 사용되었으며 역대 정부의 북방정책 중에서 경제적 의미 에서 가장 구체화되었다. 둘째, 날로 복잡해지는 지정학적 갈등을

우회하면서 통합이 진행되는 유라시아 대륙의 내외적 변화를 가장 잘 반영하는 방법이 유라시아 네트워크에서 한국의 위치권력 (positional power)을 강화하는 것이라는 점을 적절히 인식한 것이 다. 이전 정부에서도 철도, 에너지 등 대륙 연결 논의가 진행되어 왔으나 전체적인 로드맵 속에서 체계적으로 진행하고자 한 것은 매 우 의의 있는 작업이었다.

이러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성과는 기대에 못 미쳤다. 그 근본적 원인은 원대한 비전에도 불구하고 수사적 차 원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총체적 정책 프레임워크가 부재한 상황에 서 해당 분야별, 국가별 과제와 추진 방향을 나열하는 조합적 접근 (assembly approach)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민간의 자발적 참여가 부족하였다. 무엇보다도 정부차원의 의지가 부족하였다. 국제적 환 경도 좋지 못했다. 북핵 4, 5차 실험이 있었고 우크라이나 사태 이 후 미러관계 냉각으로 한국의 대러 외교의 입지가 좁아졌다.

한국 정부는 역대로 대륙과의 통합을 꾀하는 북방정책을 추진해 왔고 이번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구상도 그런 맥락에 있다.

대륙 연결을 통한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얻고 중국, 러시아와의 경 제협력을 통한 상호신뢰 제고를 통해 북핵문제의 해결 나아가 통일 의 우호적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문제와 영토분쟁 이라는 지역주의 발전의 전통적 장애요인을 가진 동북아에서 중국 의 부상에 따른 미국의 ‘아시아 회귀’ 정책,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냉각된 미러관계 그리고 아시아 에너지 시장 확보에 러시아 경제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러시아의 ‘아시아 회귀’ 정책과 중러 전략적 협 력 수준 제고 등에 의해 한‧미‧일-북‧중‧러의 신냉전 가능성마저 우려되는 상황에서 북방정책의 추진은 너무도 어려웠다.

정책 대상 지역으로서 유라시아의 지리적 범주에 대한 모호한 입

장은 북방정책으로서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지정학적 이해도를 떨어뜨린 측면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하나의 대륙’이라는 개념 을 제시함으로써 실용주의적인 경제적 접근을 공식적으로 강조하면 서도 냉전 이후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등 구소련이 개방과 개혁을 추 진하면서, 진정한 의미의 하나의 대륙이 되게 하는 핵심 북방 지역 이라는 실질적 접근을 취하였다.23) 이러한 모호한 입장은 미국을 비롯한 서방에게 한국이 러시아를 중시한다고 선언하는 것에 대한 정치적 부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모호한 입장 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미러관계 냉각 등 지정학적 변화에 과도 하게 민감하게 한 측면이 있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경제적 타당성과 재 원, 상대국의 호응 그리고 정부의 의지가 충족되었어야 했다. 거대 한 재원이 드는 인프라 프로젝트 참여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재원이 필요했으나, 결정하기 어려운 거대한 인프라 프로젝트는 대부분 경 제적 타당성이 불확실해서 재정 계획까지 간 사업이 나진-하산 프 로젝트 외에는 없었다. 또한 유라시아 국가들의 시장실패 요인이 여 전히 많고 유가 하락으로 인한 투자 리스크 증대로 유라시아 이니셔 티브 회의론이 증대되면서 민간의 참여 유치도 어려웠다.

상대국의 호응도 제도화되지 못했다. 유라시아경제연합은 과거와 달리 한국과의 FTA 체계에 일정 의향을 보였고, 중국도 추상적으로 는 일대일로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접점 추구를 선언함으로써

23) 2013년 10월 18일 개최된 ‘유라시아 시대의 국제협력 컨퍼런스’의 대통령 기조연설을 보면 “유라시아 대륙에는 세계인구의 약 71%가 살고 있고,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12개의 시간대에 걸쳐있는 세계 최대의 단일대륙입니다.”와 같이 광의의 개념이 사 용되는 부분도 있고, “냉전 종식 이후 유라시아 대륙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서유럽과의 장벽을 허물고 활발한 교류에 나서고 있습니다.”,

“유라시아 지역은 서쪽으로는 EU, 남쪽으로는 ASEAN, 태평양 건너에는 NAFTA 등 단일시장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갖추고 있습니다.”와 같이 광의로도 협의로도 해석 될 수 있는 부분도 있음.

상대국의 호응이 있어 보였다. 그러나 문제는 중국‧러시아‧중앙아 시아 국가들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제도화된 다자적 플랫폼이 없어 상대국의 호응을 제도화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정부의 의지도 박약하였다. 의욕적으로 유라시아 구상을 선언했 으나 북핵 외교에 모든 것이 휩쓸려 들어가 대통령 자신이 추진하고 자 했던 프로젝트를 실제로 집행하지 못하였다.

각 정부의 북방외교가 그리 만족할 만한 수준의 성과를 얻지 못한 근본적인 원인을 살펴본다면, 한국이 그린 전략적 구상이 지구적, 지역적 수준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변화를 두루 포괄하는 복합적, 포 괄적 구상까지 이르지 못하고 탈냉전기 변화의 흐름을 통해 북한을 압박, 통일을 이루려는 목적으로 성급한 양상의 외교정책으로 기조 를 단순화하였기 때문이다. 북방정책이 북한의 고립화를 초래하고 오히려 핵위기를 불러온 측면이 있었다. 북러 간 연결 끊기, 북중 간 연결 끊기는 북방정책의 추동력을 잃게 함에도 불구하고 북핵 해 결이라는 우선적 목표에 의해 계속적으로 시도되었다. 북미, 북일관 계 정상화를 포함하는 평화체제 구상이 북방정책 성공을 위해서는 불가피하다는 것에 합의가 없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대북관계와 관계없이 대륙 연결 구축이 추진되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인식했다는 장점을 가졌으나 결국은 대북관계가 블랙홀이 되어 추진의 추동력을 잃고 말았다. 북한 문제 해결과 대륙 연결 구축 모두가 북방정책의 핵심 요소이며 두 요소는 매우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북한 문제 해결이 반드시 대륙 연결 구축의 필수불가결한 전제는 아니지만 북한을 우회하거나 배제한 채 추진된 경우 한계를 명확히 보인 것도 사실이다. 유라시아 이니 셔티브는 북한을 배제한 채 추진되다가 결국 대북관계의 블랙홀에 매몰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