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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소 신생 국가들의 체제전환과 외교정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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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결국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 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동남부 지역에서 친러파 무장 세력이 독립을 선포하는 등 상황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으며, 이는 서방과 러시아 의 갈등으로 확대되면서 ‘신냉전’의 단초가 되었다.

상기한 문제의식하에서 이 장은 탈소 국가들의 ‘외교정향’이 체제전 환 및 국민국가 수립과 어떻게 관련되는지를 전반적으로 고찰한 후, 우 크라이나와 조지아에 초점을 맞춰 국제사회 신규 진입 국가의 대강대 국 외교실패 사례를 구체적으로 분석한다. 외교정향은 이들 국가가 경 험한 세계사적 비극, 즉 러시아와의 분쟁 및 그로부터 파생된 경제적 곤란과 국토 분단의 직접적 원인이다. 대강대국 외교에서 다변화와 균 형전략을 취한 여타 탈소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나 조지아와 같은 분쟁 을 겪지 않았는데, 그것은 이들 국가가 외교정향을 설정하는 데 있어서 다양한 국제환경, 지정학적·지경학적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고려했기 때문이었다.

아울러 이 장에서는 상기한 두 국가의 사례가 4강에 둘러싸여 있는 한반도의 통일과 통일 이후의 통합 과정에 주는 시사점과 함의를 찾아 보고, 이를 우리의 통일외교 전략과 연계시키는 방안도 모색해 볼 것이다.

국가와 국민을 창출하며 동시에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92) 그러나 4중의 과제에 직면한 것은 비단 우 크라이나만은 아니었다. 1991년 12월, 소연방이 정식으로 해체된 후 독 립을 맞은 탈소 신생국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각자 유사한 다 중 과제에 직면해 있었다.

첫째, 대다수 탈소 신생국들은 근대적 의미의 국민국가(nation-state) 를 수립한 역사가 일천하거나 혹은 전무했다. 그들의 국경은 소연방 성

립기인 1920∼1930년대 소비에트 정권의 독단과 편견에 따라 획정된

것이었으며, 70년간의 연방 존속 기간 동안 130개 이상의 민족들이 뒤 섞여 ‘소비에트인(Homo Sovieticus)’으로서의 삶을 영위해 나간 까닭 에 민족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잠재되어 있었다.

따라서, 러시아를 포함해 새로 독립한 신생 탈소 국가들에서는 1990 년대 초반부터, 국민주의(nationalism)와 분리주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러시아에서는 북캅카스 지역의 소수 민족인 체첸인들의 분리 독립 투쟁이 중앙 정부와의 갈등을 빚다가 두 차례에 걸친 전쟁 으로 확대되었다.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타지키스탄 등이 위치 해 있는 중앙아시아에서는 소비에트 무신론체제하에서 억눌려 있던 이슬람주의 세력이 무장투쟁을 전개하면서 각국의 세속 정권과 갈등 을 빚었다. 특히 타지키스탄에서는 세속파(구공산당 계열)와 이슬람주 의 세력의 충돌이 5년(1992∼1997년) 내전으로 장기화되기도 했다. 조 지아와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독립한 남캅카스의 일부 지역에서 는 거주 민족들 사이의 영토·민족 갈등이 심화되면서 나고르노카라바 흐(Nagorno-Karabakh) 분쟁과 같은 국제분쟁으로 확대되었다.

92) Taras Kuzio, “The National Factor in Ukraine’s Quadruple Transition,”

Contemporary Politics, vol. 6, no. 2 (2000), pp. 14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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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자본주의 시장경제로의 이행에서 겪는 어려움이다. 주지하다 시피 소련은 국가가 모든 경제활동을 통제하는 사회주의를 표방했으 며, 서방 자본주의에 대한 이념적 적대감으로 국민을 통합하면서 70년 을 지탱해 왔다. 그러던 것이, 1985년 집권한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 바초프(Mikhail Gorbachev)가 개혁·개방 정책을 도입하면서 소련 각 지에는 시장이 들어서고 자유로운 경제활동이 허용되었다. 사회주의체 제를 유지하면서 제한된 형태의 시장경제를 도입하려던 시도가 결국 소련 해체의 주원인이라고 보는 분석이 적지 않다.

모든 경제활동이 모스크바에 있는 연방 중앙 정부의 통제와 배분하 에서 이루어지던 소비에트 경제시스템이 사라지고 하루아침에 자본주 의 시장경제체제로의 전환을 강요받았던 탈소 국가들의 시행착오는 현 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으며, 많은 나라들이 시장개혁에 실패하면서 경제발 전과 국내정치의 안정을 이루지 못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체제전환이 시작되고 25년이 지난 현재, 탈소 국가들의 경제는 나라 마다 다양한 수준을 보인다. 천연자원, 그 중에서도 에너지자원이 풍부 한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같은 나라들 의 경제수준은 자원 빈국인 아르메니아, 타지키스탄, 키르기스스탄에 비해 훨씬 높다. 자원이 부족한 나라들의 경우는 러시아나 주변의 자 원 부국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정도가 크며, 정치나 사회 불안도 좀처 럼 해소되지 못하는 경향이 강하다.

셋째, 탈소 신생국들은 거의 예외 없이 서구식 민주주의 국가를 천 명하며 헌법상 민주공화국으로 출범했다. 그러나 체제전환 과정에서 드러나는 부패와 족벌 정치 등의 문제는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또 소연방의 소멸로 독립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fall from the sky)’ 식으로 주어졌던 까닭에 탈소 각국에는 구공산당

계열의 엘리트들이 그대로 권력을 승계함으로써 권위주의 정권과 장 기 독재를 낳았고, 경제적 부가 소수에게 집중되는 신흥 재벌(올리가 르히) 현상과 연계되면서 시장개혁과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어렵게 했다.

일부 학자들은 탈소 신생국들이 경험한 체제전환의 어려움을 ‘소비 에트의 유산’ 탓으로 돌리기도 하는데, 70년간 소연방에 편입되어 있으 면서 체질적으로 축적된 정치적, 경제적, 사회·문화적 유산을 단시간 내에 청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93)

나. 외교정향의 문제

국제정치적 측면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문제는 탈소 신생국들의 외 교정향이었다. 오늘날 탈소 국가들의 외교정향은 극단적인 친서방(미, EU, NATO)에서부터 극단적인 친러시아까지 차등화된 모습을 보이 고 있다.

그림 -1 탈소 국가들의 외교정향

친서방 중립 친러시아

발트 3국(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조지아 몰도바 우크라이나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아제르바이잔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출처: 저자 작성.

93)예를 들어 다음 문헌을 참조. Charles H. Fairbank Jr., “Georgia’s Soviet Legacy,”

Journal of Democracy, vol. 21, no. 1 (January 2010), pp. 144∼151; Taras Kuzio, “Ukraine: Coming to Terms with the Soviet Legacy,” Journal of Communist Studies and Transition Politics, vol. 14, no. 4 (1998), pp. 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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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거친 형태를 띠고는 있지만 <그림 Ⅵ-1>에서 보듯, 극단적인 친서방 국가에는 발트 3국 이외에 우크라이나와 조지아, 중립적인 입 장에는 투르크메니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 일부 중앙아시아 국가들, 그리고 극단적인 친러국가에는 벨라루스와 아르메니아가 포진되어 있 다. 이 글이 작성되고 있는 2015년 현 시점에도 이들 국가의 외교정향 이 물론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25년간 국제 환경의 변화와 국내정치 세력 간 관계, 그리고 각국 리더십의 의지와 성향에 따라 변 해 왔기 때문이다. 또 일부 국가에서는 국민의 정서와 정권의 외교정 향이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 모습도 보여준다. 그러나 대체로 친서방적 외교정향과 친러시아적 외교정향은 상호 대척점에 있으며 대다수 국 가들은 양 대척을 오가면서 균형외교를 펼치고 있다.

발트 3국은 유럽 문명에 속해 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에 강 제 편입된 역사를 갖고 있다. 따라서, 이들 3국은 소연방 해체를 전후한

1990년에 연방으로부터의 탈퇴와 독립을 선언하고 2004년 NATO와

EU로 편입하였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의 개혁·개방 정책에 가장 적극적

으로 호응해 나선 것도 발트 3국이었으며, 이들은 독립 이후 러시아 주 도로 출범한 구소련 지역 통합체인 독립국가연합(Commonwealth of Independent States: CIS)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완전히 유럽의 일원으로 정착한 발트 3국을 제외하고, 나머지 11개 탈소국의 외교정향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첫째, 국내에 영토·

민족 분쟁이 발생한 국가일수록 국민 사이에 반러 성향이 강하며 이는 러시아의 군사적 개입 가능성에 대한 주민들의 위협의식 때문이다.

<그림 Ⅵ-1>에서 친서방적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몰도바, 조지아 모두 독립 직후 영토·민족 분쟁을 경험했으며 러시아 가 현지 정권에 대립하는 분리주의 세력을 지원한 역사를 공유한다. 따

라서, 이들 국가는 러시아에 대한 안보적 위협을 해소하기 위해 EU 및

NATO에 가입하기를 강하게 희망하며, 이것이 국제정치에서 러시아

와 서방 간 갈등과 대립의 단초를 제공한다.

둘째,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국가들 가운데 우크라이나와 조 지아는 반러 성향이, 벨라루스와 카자흐스탄은 친러성향이 강하다. 따라서, 국경의 인접 여하는 외교정향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러시아 와의 역사적 연원에 따른 감정과 민족 정체성(ethnic identity) 문제가 더 중요한 인자로 판단된다. 다시 말해, 조지아와 우크라이나의 경우는 과거 러시아에게 병합당한 역사를 갖고 있으며 소련으로부터의 독립을 자기 민족 정체성 회복으로 보는 민족주의(ethnic nationalism)적 프 로젝트로 인식했다. 그러나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에서는 민족 정체성 이 상대적으로 희박했고 또 현지 주민과 러시아인들 사이의 역사적 유 대가 강했기 때문에 독립 초기 반러주의가 분출하지도 않았으며 외교 정향에 드러나지도 않았다.

셋째, 경제적 수준이 낮은 국가들, 특히 자원이 빈약한 국가들일수록 친러성향을 보이며 부존자원이 풍부하거나 경제발전도가 높은 국가일 수록 러시아로부터의 외교적 독립성이 강하다. 하지만 이것이 반드시 반러시아·친서방이라는 이분법적 외교정향으로 표출되지는 않는다. 세 계 굴지의 산유국인 아제르바이잔의 경우, EU 가입을 희망하는 등 적 극적인 친서방 외교정향을 유지하면서도 노골적인 반러 외교정향을 드 러내지는 않았다. 카자흐스탄 역시 막대한 석유자원을 보유하면서 탈 소 국가들 가운데 가장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었지만 외교정향은 친 러에 가까운 중립을 유지하고 있다. 천연가스 대국인 투르크메니스탄 은 1995년 영세중립국을 표방한 이래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독립적 인 외교정향을 유지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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