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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嚴昕의 시세계
5.2. 海東江西詩派 시의 範疇
엄흔의 시는 형식적인 측면에서 宋代 江西詩派의 영향을 받아 16세기 漢詩史의 중 심 詩派를 이룬 해동강서시파 시의 拗體와 奇字의 단련, 시어의 확장, 시의 산문화 등 일반적으로 거론되는 특징을 공유하고 있다.
해동강서시파는 宋代 강서시파가 杜甫의 시에서 拗體를 지적하는 것처럼 율격적인 면에서의 요체를 중요시하고 있다.100) 요체는 근체시의 평측 배열에 있어서 평성이 들 어가야 할 자리에 측성이 자리하거나, 측성의 자리에 평성이 자리하여 시의 참신성을 얻는 방법을 말한다. 그 중 가장 많이 구사되는 요체의 한 형태는 율시에서 각 聯 상 구의 제5자(오언에서는 제3자) 평성의 자리에 측성을 두거나, 하구의 제5자(오언에서는 제3자) 측성의 자리에 평성을 두어 서로 평측 배열을 어긋나게 하는 방법101)을 말한다.
100) 이종묵, 海東江西詩派硏究 , 太學社, 1995, 363쪽 참조.
101) 拗體는 근체시의 ∼ 拗하는 방법 : 엄찬영, 嚴昕의 詩에서 나타나는 海東江西詩派의 특징 , 韓 國詩歌文化硏究 第40輯, 2017, 124쪽 참조.
좋은 계절 삼짇날 하늘가에서 天邊佳節三月三 문득 고향의 桃花水 단술 생각나네. 忽憶故園花水酣 눈에 선한 환락 이미 다 사라져가니 眼中歡樂已全少 여행 속에 회포를 어찌 오래 견디랴. 客裏情懷寧久堪 남은 찻잔으로 밀려오는 졸음 자주 깨우고 空餘茶椀睡頻破 술이 있을지라도 憂愁는 이기지 못하겠네. 縱有酒兵愁未戡 눈을 다하여 긴 강가 꽃다운 풀빛 바라보며 極目長洲芳草色 강남과 강북의 봄 마음을 보네. 春心江北與江南102)
<三月三日 次申宣慰韻>은 원래 두 수로 이루어졌는데, 위의 시는 평성운자 30자 중 하평성 13번째 ‘覃’의 운자를 사용하여 지은 申光漢의 시 <三月三日>103)에서 차운 하여 지은 앞의 시이다. 엄흔은 이 시를 통하여 머나먼 객지에서 삼짇날을 맞이하고 고향에 가지 못하는 鄕愁를 노래하였다.
근체시 칠언율시에서는 일반적으로 함련과 미련의 상구 제5자가 평성의 자리이다.
그러나 <三月三日 次申宣慰韻>의 앞 시에서 함련의 상구 제5자 평성의 자리에 측성 의 ‘已’ 자를 사용하여 拗體와 함께 助辭를 사용한 奇字의 단련이 나타나고 있다.104)
宋代 강서시파는 黃庭堅의 “以俗爲我”, “點鐵成金”의 이론을 詩作에 응용하여 지명 이나 산 이름 등의 고유명사를 시어로 가져온다거나 전고를 사용하여 시어를 확장하 고, 詩經 , 書經 에 나오는 말이나 다른 시인의 시구를 가져와 점화한 詩作의 형태 를 보여준다. 엄흔의 시에서는 이와 같은 黃庭堅의 詩作의 이론을 응용하여 우리나라 의 지명, 인명, 산과 강 이름 등 고유명사를 시어로 가져와 시어를 확대하여 의경의 참 신성을 보여주고 있다.
龍灣과 燕山의 달은 멀지 않는데 龍灣不隔燕山月
鶴野에서 압록강은 봄을 멀리서 이었네. 鶴野遙連鴨水春 여기서 떠나가면 그대는 다시 멀다고 말하지 말라 此去莫言君更迥
102) 엄흔, <三月三日 次申宣慰韻>, 十省堂集 下, 67쪽.
103) 한국문집총간 企齋集 에 실려 있는 申光漢의 <三月三日>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淸明寒食又 三三, 佳節相仍客與酣. 老子風流元不淺, 諸公鋒穎儘難堪. 江山好處詩爲壘, 罇酒開時戰必戡. 可笑蹇 跚空殿後, 醉聞飛旆渡江南.”(申光漢, <三月三日>, 企齋集 卷6 한국문집총간 제22집, 457쪽.) 104) <三月三日 次申宣慰韻>은 원래 ∼ 나타나고 있다 : 엄찬영, 嚴昕의 詩에서 나타나는 海東江
西詩派의 특징 , 韓國詩歌文化硏究 第40輯, 2017, 126쪽 참조.
아직 돌아갈 수 없는 몸이나 하늘가에서 함께하니. 天涯同是未還身105)
<寄贈進賀使洪重叔 次蘇贊成韻>은 우리나라의 지명, 인명, 산과 강 이름 등 고유 명사를 시어로 가져와 시어를 확장하고 시의 의미까지 큰 변화를 주었다. 수련은 “타 향에서 게다가 이별하는 사람 되었고 / 비는 관서지방 길가의 먼지 적시네.〔他鄕又作 別離人, 雨浥關西路上塵〕”라고 하여 지명 ‘關西’를 시어로 가져와 친구와 멀리 떨어져 소식을 주고받을 수 없는 현실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였다. 경련은 ‘龍灣’과 ‘燕山’, ‘鶴野’
와 ‘鴨綠江’의 지명과 산과 강 이름을 가져와 시어를 확장하고,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 는 시의 의미까지 확대하였다.
해동강서시파는 이처럼 黃庭堅의 ‘以俗爲我’의 논리를 詩作에 응용하여 시어를 확장 하여 경물의 묘사를 웅장하게 하고 참신한 의경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한편 엄흔이 시 에서 시어를 확장하는 모습은 해동강서시파처럼 詩經 과 書經 의 전고나 말을 가져 와 시어로 삼기도 하였지만, 論語 나 孟子 의 말을 가져와 시의 의미를 확대하였는 데, 그의 絶句詩에서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봄바람 부는 날 손꼽아 보니 오십 남짓 屈指東風餘五十 매화 꽃 처음 필 때 버들가지도 드리웠지. 梅心初綻柳枝垂 의리상 술자리를 파하지 못하고 노닐며 北門不鎖遊人路 詩翁이 녹취하는 일을 대신하여 알려주네. 報與詩翁取次知106)
<呈大樹>는 宋나라 韓琦가 北門에 있을 때 동료들과 술자리를 벌인 전고를 가져 와 七言絶句의 형식을 빌려 엄흔이 봄날을 보내면서 임억령에게 보내준 시이다. 임억 령과 헤어져 지내는 그에게 봄날은 훌쩍 지나갔다. “매화꽃 처음 필 때 버들가지도 드 리웠지.〔梅心初綻柳枝垂〕”라고 하며 ‘매화’와 ‘버들가지’를 자신과 임억령으로 비유하 며 서로 같이 지내려는 마음을 말하였다. “의리상 술자리를 파하지 못하고 노닐며 / 詩翁이 녹취하는 일을 대신하여 알려주네.〔北門不鎖遊人路, 報與詩翁取次知〕”에서는 宋나라 韓琦의 전고 및 詩翁 梅堯臣의 전고107)를 가져와 시어를 확장하였다. 한편 孟
105) 엄흔, <寄贈進賀使洪重叔 次蘇贊成韻>, 十省堂集 下, 74쪽.
106) 엄흔, <呈大樹>, 十省堂集 上, 96쪽.
107) 詩翁 梅堯臣의 전고 : 宋 仁宗 연간에 歐陽脩가 문풍의 폐단을 혁신하려는 포부를 품고 시관으 로 과시를 주관하고 梅堯臣 역시 參詳官으로 시관의 자리에 참여했던 고사를 말한다.
子 에 나오는 “인은 사람의 마음이요. 의는 사람의 길이다.”108)는 말을 가져와 시어를 확장하여 시의 의미를 확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해동강서시파는 강서시파가 唐詩에 비하여 시인의 개인생활과 더욱 가까운 내용으 로 산문적인 시를 지향했던 것처럼 시에서 句法의 변화를 가져와 시의 산문화를 지향 하였다. 이와 같은 시의 산문화는 엄흔이 당시 崔演과 교유하면서 지은 시를 살펴보면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작은 일까지 시로써 노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달은 덕이 높은 선비와 같이 고상하여 高月如高士
출처의 마음을 겸하였네. 兼存出處心
잠시 흩어졌다 모이는 구름으로 인해 暫因雲聚散
세상의 浮沈을 배우네. 能學世浮沈
외로운 달 숨음을 한스러워 마라 不恨孤輪隱
온 나라가 어두움을 근심할 뿐이니. 惟愁萬國陰
마당 가운데 홀로 서니 中庭成獨立
애통함이 다시 깊어지네. 惆悵到更深109)
<雲月 示演之> 2수 중 앞의 시이다. 일반적으로 근체시 五言詩에서는 2-3 또는 3-2의 구법인데, 엄흔은 수련에서 1-4의 구법을 구사하여 시의 산문화를 시도하였다.
“달은 높은 덕을 지닌 선비처럼 고상하여 / 출처의 마음을 겸하였네.〔高月如高士, 兼 存出處心〕”라고 하며 달은 출처하는 삶을 알아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구름 속에 숨고, 태평성대가 되면 구름 속에서 나와 천하를 밝게 비춘다고 하였다. 함련은 바람에 흩어 지고 모이는 구름이 세상과 같다고 하였다. 이처럼 <雲月 示演之>은 시의 내용상 인 간의 희노애락과 자신의 삶의 지향을 자연현상에서 오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시의 소재 로 삼아 시의 산문화를 이루고 있다. 한편 형식상 수련에서처럼 근체시의 五言詩 2-3/3-2의 구법을 1-4의 구법으로 변화하여 시를 산문화하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상 논의를 종합하여보면 엄흔의 시세계는 주제면에서 평담의 세계를 추구하는 가 운데 귀거래를 희구하고, 형식면에서는 해동강서시파 시의 범주에서 拗體와 奇字의 단 련, 시어의 확장, 시의 산문화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08) “仁, 人心也. 義, 人路也.”( 孟子 , <告子 上>.) 109) 엄흔, <雲月示演之>, 十省堂集 上, 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