辨〕
1.50. 이날 동강에 정박하다
〔是日泊洞江〕
해문(海門)이 점점 가까이 보이고 海門看漸近
석양은 서산으로 내려가네. 斜日下山西
난(蘭)잎 향기 물가에 두둥실 蘭葉香浮渚
복숭아꽃 물결 언덕을 치네. 桃花浪拍堤
추녀 창은 다투어 눈에 들어오고 軒窓爭入眼
산비탈 바위 여기저기 시가 있네. 崖石遍留題
밤새도록 홍진(紅塵)에 꿈을 꾸니 後夜塵中夢
어떻게 이 혼미함을 견디려나. 那堪到此迷
1.51. 소 찬성이 성주에 국사를 봉안할 때 임금이 승지와 내관을 보 내 제천정에서 술을 하사하였다. 잔치가 파하고 재상들이 다시 모 여 전별하는 자리에서
소 찬성의 시에 차운하다.〔蘇贊成, 奉安國史于星州, 上遣承旨中官, 賜酒于濟川亭, 宴罷, 諸相 更會, 餞別席上.
次贊成韻〕
내관(內官)이 자리를 파하라는 명(命)을 전하자마자 中使傳宣罷
강가에 다다라 송별 연회를 열었네. 臨江祖席開
바람 부는 장막 채방(彩舫)388)을 이으니 風帷聯彩舫 향온주(香醞酒)389)가 신선의 잔에 넘치네. 香醞灎仙杯
산에 사고(史庫)를 감추지 못하는데 不爲藏山史
누가 임금 보좌하는 재주 칭송하랴. 誰頌補衮才
남산이 멀다고 하지 마라 休言南嶠遠
구름기운이 봉래산 닿았으니. 雲氣接蓬萊
388) 채방(彩舫) : 예전에 대궐에서 呈才를 베풀 때에 船遊樂에 쓰는 배를 이르던 말이다.
389) 향온주(香醞酒) : 멥쌀과 찹쌀을 쪄서 식힌 다음, 보리와 녹두로 만든 누룩을 섞어서 담근 술.
우리나라 고유의 술이다.
1.52. 죽마계회도
서문을 붙여놓다.〔題竹馬契會圖
幷序〕
나는 어려서 서울 백악산 아래에서 자랐다. 당시 같은 동네 총각으로 우백유(禹伯瑜) 순(珣)은 갑 자(1504)생이고, 유응화(柳應和) 윤상(潤祥)은 을축(1505)생이고, 우윤보(禹潤甫) 관(瓘)은 병인 (1506)생이고, 신제향(申濟鄕) 여집(汝楫)․성계옥(成季玉) 수영(守瑛)․이희인(李希仁) 언눌(彥訥) 은 정묘(1509)생이고, 한원원(韓源源) 호(灝)․윤사성(尹師聖) 희주(希周) 및 나는 무진(1508)생이고, 이창서(李昌瑞) 몽규(夢奎)는 경오(1510)생이고, 한시중(韓時中) 주(澍)는 신미(1511)생이니, 나이가 들쭉날쭉하여 적고 많음이 가지런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집이 가깝고 가까이 알고 지내 같은 곳 에서 살고, 같은 홑이불에서 자고, 일찍이 잠시도 서로 떠난 적이 없으니, 삼생(三生)390)의 오랜 인 연이 아니면, 여기에 이를 수 있겠는가? 아침에 스승을 찾아가 뵙고 공부하였다. 점심을 마친 후에 는 빈번히 부(賦)와 시(詩)를 시험하여 승부를 겨루었다. 저녁에는 한가한 곳을 찾아 쫓고 달리며, 풀잎을 따다 불며 죽마를 타고, 꽃을 찾고 버드나무 가지를 꺾으며, 가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인왕 동(仁王洞) 청풍(淸風)계곡과 백운동(白雲洞) 탕춘대(蕩春臺)는 모두 (우리들의) 놀이터이다. 세월이 덧없이 지나가 각각 커서 장성하니, 누구는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오른 사람도 있고, 누구는 시 대의 운명이 불우하여 아직까지 형설(螢雪)의 공(功)391)을 지키는 사람도 있고, 누구는 부모님이 늙고 집안이 가난하여 다른 길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게 되었다. 세상의 일은 견디지 못하도록 괴 롭고, 부평초처럼 (거처가) 일정하지 않아 어렸을 때 서로 따르는 것만 못하나, 어렸을 때의 정(情) 은 지금도 그대로이다. 하루는 모두 계옥(成守瑛의 字)의 서당에서 모였는데, 좌중(座中)에 서운해 하면서 말한 친구가 있었다. “장소는 동서로 멀리 떨어져 있으나 사는 것은 같은 곳에서 시작했고, 때는 앞뒤로 오래 되었으나 태어난 것은 때를 같이하였다. 걸음마를 배울 때부터 이미 서로 부르 며 쫓고, 말을 익히는 날로부터 바로 이름과 자(字)를 불렀다. 기골을 연마하며 함께 마시고 먹으 면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이것이 하늘의 일이 아니겠는가? 지금 그 모습이 당당하고 관 복(冠服)을 입고 있으나, 두어 장(丈)392)의 대나무를 얻어 다시 어렸을 때에 놀이를 하려는데 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곤궁하고 현달(顯達)이 다르면 서로 방문하는 경우가 적거나 많아지고, 방 문하는 경우가 적거나 많아지면 정의(마음)가 더러 변하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이다. 어떻게 죽마계 (竹馬契)를 만들지 않고, 세한(歲寒)의 뒤에 즐겁고 경사로운 일과 슬프고 조문(弔問)할 때에 자연 스런 거동이 있기를 기대하겠는가?” 우리들은 모두 “좋다. 감히 단심(丹心)에 새기어서 늙을 때까 지 가지고 가자.”라고 대답하였다. 한주(韓澍)는 공인(工人)을 고용하여 오늘의 일을 그리게 하였 고, 엄흔은 그 전말(顚末)을 서술하고 시로써 부쳐놓았다.
390) 삼생(三生) : “三生”은 佛家의 용어로, 前生, 現生, 後生을 가리킨다.
391) 학문을 계속한다는 의미로 겨울철 눈에 책을 비춰 읽었던 孫康과 여름철 반딧불에 책을 비춰 읽었던 車胤의 螢雪之功 고사를 말한다.
392) 질 : 길이의 단위를 말하며 10자(尺)가 1장(丈)이다.
余少長于京都之白岳山下. 于時同里之總角者, 禹伯瑜珣 生甲子, 柳應和潤祥 乙丑, 禹潤甫瓘 丙寅, 申 濟鄕汝楫 成季玉守瑛 李希仁彥訥 丁卯, 韓源源灝 尹師聖希周及余 戊辰, 李昌瑞夢奎 庚午, 韓時中澍 辛未, 雖年序有參差, 少長或不齊. 然其室邇習近, 居同處, 寢同裯. 未嘗暫時相離者, 非有三生宿緣, 能 至是耶? 朝則尋師而受業焉. 食輒課賦詩, 角勝負焉. 夕卽求閑處而馳逐, 吹蔥騎竹, 尋花折柳, 無所不 至. 仁王洞 淸風溪 白雲洞 蕩春臺, 皆遊戲之所也. 荏苒歲月, 各成壯大, 或有釋褐而登仕者; 或有時命 不遇而猶守螢雪者; 或有親老家貧而求出他塗者. 世故之驅迫, 萍梗之不定, 雖不得如少時之相從, 其少 時之情則猶在也. 一日, 咸集于季玉之書堂, 座有含悽而言者曰: “地有東西之遠而居同開; 時有前後之久 而生同時. 自學步之時, 已相徵逐; 習語之日, 便呼名字. 磨肌骨共飮食, 以至今日者, 茲非天也歟? 今其 形貌昂藏, 冠服在身, 欲尋數丈之竹, 復作少日之戲, 其又可得耶? 窮顯之有殊而訪問之疏數; 訪問之疏 數而情意之或變, 亦今世之態也. 則何不作爲竹馬之契, 期無負於歲寒之後, 若夫吉慶悲弔, 自有其儀.”
衆咸曰: “諾, 敢不銘之丹心, 以到白首.” 時中, 倩工爲之圖, 啓昭, 敍其末而係以詩.
고향 마을 어릴 적 친구들 里閈髫年舊
삼생(三生)의 오랜 숙명으로 친해졌네. 三生宿分親
개구쟁이 시절393) 봄날에 동무 되었지만 顚狂春作伴
늙도록 멀리 떨어져 지냈네. 契闊老隨人
풀피리 부는 고향 찾아갔으나 試覓吹蔥地
아! 죽마 타는 몸이 아니라네. 嗟非騎竹身
단청(丹靑)394)을 교칠(膠漆)395)의 마음에 비추니 丹靑照膠漆 응당 뇌의(雷義)와 진중(陳重)396)에 지지 않네. 應不負雷陳
393) 개구쟁이 시절 : “顚狂”은 ‘정신없이’, ‘미치다.’ ‘미쳐 날뛰다.’ 등의 뜻으로 해석되나, 여기서는 문맥상 ‘개구쟁이시절’로 국역하였다. 참고로 杜甫의 시에 “아직도 내 시 속의 경책의 말 아껴 주 고 / 술 먹으면 정신없는 내 버릇 기억하네.〔尙憐詩警策, 猶記酒顚狂〕”라는 구절이 있다.( 杜少 陵詩集 卷11 <戯題寄上漢中王>.)
394) 단청(丹靑) : 圖象을 말한다. 圖象은 畵象이라고도 하는데, 그림으로 그린 사람의 모습을 말한 다. 또한 궁궐이나 사찰 전각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린 그림이나 무늬를 말한다. 여기서는 사람의 얼굴이나 모습을 그린 그림을 뜻한다.
395) 교칠(膠漆) : 膠漆之心의 준말로, 아교와 옻칠 같은 마음. 두터운 우정을 뜻한다. 白樂天과 元微 之의 고사를 말한다.
396) 뇌의(雷義)와 진중(陳重) : 東漢 시대의 雷義와 陳重은 같은 고을 사람으로 우정이 매우 돈독하 였는데, 그 고을 사람들이, “아교풀이 견고하다지만 뇌씨와 진씨의 우정만은 못하다.”고 하였다.(
後漢書 卷81 <獨行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