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권별 문체별 편수

賦 2

辭 1

箋 2

箴 1

銘 1

頌 1

辨 1

五言古詩 6

七言古詩 6

五言絶句 2

七言絶句 53

五言律詩 76

六言詩 1

排律 2

七言律詩 170

附錄

碣文 1

誌銘 1

銘 1

說 1

의 구성을 문체별로 보다 상세히 제시하여 보면 아래 <표2>와 같다.

긴다.”는 내용을 근간으로 하여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바른 도리를 강조한 <上士事君 以人賦>가 있다.

辭에는 1375년 陶隱 李崇仁이 明나라와의 친선을 도모하자는 상소로 유배를 당하게 되어 지은 <哀秋夕辭>를 차운하여 자신의 학문의 연원을 밝히고 있는 <次哀秋夕 辭> 1편이 있다.

箋에는 전체 2편이 실려 있는데, 농업은 정치의 근본으로 임금이 백성의 厚生하는 방법을 진력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戶曹에서 力田科를 시행하라는 청을 의작한 <擬戶 曹請行力田科箋>과 및 하늘은 순일한 덕을 지닌 자를 도와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 고, 악한 사람에게는 재앙을 준다는 書經 <商書 咸有一德>의 내용을 강조하면서 신라 김유신 장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근본이 순일한 덕을 지니고 있어서 가능하였다는

<擬新羅金庾信賀滅百濟箋>이 있다.

箴에는 周易 의 <坤卦>의 爻辭 “履霜堅氷至”를 근거하여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어는 시기가 이른다는 뜻으로 일의 조짐을 보고 미리 그 禍를 경계해야 한다는

<履霜箴> 1편이 있다.

銘에는 백아절현의 고사를 가져와 진솔한 소리의 이치를 노래한 <無絃琴銘> 1편 이 있다.

頌에는 백성의 안녕을 풍년으로 축원하는 마음에 있어서 먼저 임금이 湯임금처럼 聖德을 갖추어야 자주 풍년이 든다는 내용의 <屢豊年頌> 1편이 있다.

辨에는 고대 史官의 기록에 대한 인식의 변론으로 柳宗元의 <與韓愈論史官書>의 내용을 토대로 하여 유종원의 문자보다는 韓愈의 도학자적인 기록관을 더 중요시하는 자신의 견해를 밝힌 <韓柳論史辨> 1편이 있다.

이어 칠언고시 <華表柱>를 시작하여 전체 146題63) 213수가 실려 있는데, 오언고 시 6수, 칠언고시 6수, 오언절구 2수, 칠언절구 53수, 오언율시 76수, 육언시 1수와 배 율 2수가 있다. 그 중 <題竹馬契會圖>는 어른이 된 죽마고우들이 한 때 모여 우정을 늙을 때까지 변하지 말자는 요지의 幷序가 붙어 있다. <憫農>은 추수를 마쳐도 먹을 양식이 없는 백성의 고충을 다룬 愛民詩이다. 그 외 다수의 次韻詩들은 1539년 5월 중 국 사신 華察과 薛廷寵이 왔을 때, 원접사 蘇世讓의 종사관이 되어 원접사의 일행과 사신단이 수창한 시의 운자를 차운하여 지은 시이다. 또한 林億齡, 崔演, 宋純, 趙士秀, 成守琛, 申光漢, 林亨秀, 宋獜壽, 李蓂, 沈連源, 李若海, 鄭彦懿 등 당대 문인들과 교유

63) 본고에서 분석한바 十省堂集 의 작품 수는 전체 316제 457수이다.

하면서 주고받은 교유시 및 병풍에 題한 시 등이 실려 있다.

권하에는 <浣花醉歸圖>에서 시작하여 전체 170題의 244수의 詩가 실려 있는데, 모두 칠언율시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이 중 차운시는 중국 사신으로 온 正使 龔用卿 과 副使 吳希孟의 시에 차운한 시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 밖에 대동강, 부벽루, 백 상루 등의 명승지를 다니면서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景物詩와 임금의 命에 따 라 지은 應製詩 등이 실려 있다.

한편 부록에는 洪春卿이 지은 <碣文>, 李潑이 지은 <誌銘>, 華察이 지은 <十省 堂銘>, 薛廷寵이 지은 <十省堂說>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화찰의 <十省堂銘>과 설정총의 <十省堂說>은 엄흔이 堂號를 十省이라고 한 것이 曾子의 三省의 뜻을 본뜬 것임을 분명하게 설명하였다.64)

64) 화찰은 <십성당명> 서두에서 “校理 엄흔은 ‘十省’으로 堂을 命名하였는데, 이는 曾子의 ‘三省’의 뜻을 취하여 넓힌 것이다.〔嚴校理昕, 以十省名堂, 蓋取曾子三省之義而擴之.〕”라고 하였고, 설정총 은 <십성당설> 서두에서 “校書 엄흔은 十省으로 堂의 이름을 지어놓고, 그가 말하기를 ‘옛날 曾 子는 孔子의 뛰어난 제자임에도 세 가지를 살핀다고 하였는데, 나처럼 배우지 않는 사람은 마땅 히 매사를 모두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당을 이렇게 이름 지었다.’〔嚴校書昕, 以十省名其堂, 其言曰: ‘昔曾子, 聖門高弟. 猶曰三省, 如昕未學, 所當每事皆省. 故名其堂云云.’〕라고 하였다.”

4. 嚴昕의 시 槪觀

엄흔이 살다간 16세기 韓國漢詩史는 다양한 시단이 형성되었는데, 그 중 海東江西 詩派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65) 해동강서시파는 宋대의 黃庭堅을 詩 宗66)으로 삼은 陳師道, 陳與義 등이 하나의 시파를 이룬 江西詩派의 영향67)을 받아 우 리나라에서도 朴誾, 李荇, 鄭士龍, 黃廷彧 등이 하나의 詩群을 이룬 시파를 말한다.68)

엄흔의 시 또한 해동강서시파 시의 특징을 공유하는데, 拗體와 奇字의 단련, 시어의 확장, 시의 산문화 등을 대표적인 항목으로 꼽을 수 있다. 한편 엄흔 시의 주제는 아름 다운 자연이나 景物을 통해 平澹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하거나 불의한 현실과 바쁜 政 務 속에서 歸去來를 希求하는 것으로 요약되는데, 이 측면 또한 당대 사회현실과의 관 계 속에서 주목할 만하다.

본고는 십성당집 시의 작품을 분석하여 크게 내용과 형식 두 부문으로 분류하여 보았다.69) 그의 시는 내용상 그가 종사관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때 원접사 蘇世讓 일행

65) 16세기 우리나라 漢詩史에서 해동강서시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를 이종묵은 그의 선행연 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成宗 연간부터 가열된 정치적 투쟁으로 인한 사화의 빈번한 발생 과 해동강서시파의 범주에 있는 시인들이 대부분 유배생활을 경험하거나 정치적 좌절을 겪었다.

예를 들어 朴誾은 사화에 희생되어 죽음에 이르렀고, 李荇은 짧은 기간이지만 유배를 당하며, 정 치적 패배를 여러 번 겪었고, 朴祥은 己卯名賢으로 불리나 외직을 전전했으며, 鄭士龍 역시 잦은 탄핵으로 宦路를 이탈한 때가 많았으며, 盧守愼은 무려 22년간의 유배생활을 하였고, 黃廷彧도 생 애의 후반기는 吉州 유배지에서 울분의 생활을 보냈다.(이종묵, 海東江西詩派硏究 , 太學社, 1995.

13쪽 및 20쪽 참조.)

66) 黃庭堅의 詩風은 “以俗爲我”나 “點鐵成金”, 곧 비속한 재료를 가지고 우아한 표현을 만든다는 시 의 작법을 말하는데 주로 다음과 같은 경우에서 보이고 있다. ① 민요, 속담, 민간소설의 희곡, 기 타 성어를 즐겨 시어로 사용하였다. ② 참요의 전고를 가져와 시어로 활용한다. ③ 杜甫의 시를 추종하였다. 그러므로 陸游, 韓駒의 시풍과 지속적인 연관성을 갖는다. ④ 시의 字句를 다듬고 의 경을 조직하여 大家에 이르렀다.(이종묵, 海東江西詩派硏究 , 太學社, 1995. 13쪽 및 20쪽 참조.) 67) 江西詩派는 唐詩의 正統을 거부하고 奇想奇句를 숭상하여 신풍을 일으켰다. 그러나 기발함에 치

우치다가 궤벽에 빠지거나 斬新을 쫓다가 生硬을 드러내어 詩의 품위를 沮喪케 하였다. 그래서 明나라 李東陽은 天眞을 잃은 捕風捉影의 詩風이라고 하여 酷評을 하였다.(閔丙秀, 朝鮮前期의 漢詩硏究 , 漢文敎育硏究 第1輯, 韓國漢文敎育學會, 1986, 57쪽.)

68) 閔丙秀의 선행연구에서 해동강서시파로 대두되는 시인들의 후대평가로서 許筠의 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朴誾의 <福靈寺> “春陰欲雨鳥相語, 老樹無情風自哀”의 句는 神助가 있었다고 하고, 그의 시는 正聲이 아니라고 하였다. 李荇은 沈厚和平 淡雅純熟한 시세계로 朝鮮第一大家라 稱道 하였다. 黃廷彧은 그의 시가 朴祥에서 나와 盧守愼과 鄭士龍의 사이를 출입하였다고 하였다.(閔丙 秀, 앞의 책, 57~61쪽 참조.)

69) 엄흔의 시에 대하여 권혁명은 현재 石川集 과 十省堂集 에 두 사람이 수창한 시가 상당량 있 고, 唐詩를 함께 수창한 사실(“共和唐詩爲別句, 長因海客得鄕書.”(엄흔, <呈大樹>, 十省堂集 下, 54쪽.))을 확인하고서 향후 16세기 唐風의 경로와 맥락을 이해하는데 일정한 기여를 할 것으로 짐 작하였다.(권혁명, 十省堂 嚴昕의 詩世界 , 東洋古典硏究 第49輯, 동양고전학회, 2012, 146쪽 참 조.)

분류 구분 작품수

주제

次韻詩 176

送別詩 71

景物詩 80

愛民詩 1

輓詞 4

其他 125

형식

五言古詩 6

七言古詩 6

五言絶句 2

七言絶句 88

五言律詩 108

七言律詩 244

六言詩 1

排律 2

이 사신단과 수창한 시에 붙인 次韻詩, 당대 문인들과 교유하면서 현지로 부임하는 교 우들과 이별할 때 지어준 送別詩, 아름다운 자연과 경물을 읊은 景物詩, 백성들이 겪는 부역과 세금의 苦衷을 다룬 愛民詩, 죽음을 애도한 輓詞가 있다. 그 외에 오칠언 고시 와 근체시 형식을 빌려와 형식상 교우들에게 시를 지어 직접 주거나 편지 등을 통하여 보내준 贈呈詩, 詩卷이나 병풍 또는 그림에 붙인 題詩, 서문을 붙여 놓은 幷序詩, 임금 의 명에 따라 지은 應製詩가 있다.

따라서 <표3>은 十省堂集 시를 주제와 형식으로 일차 분류하고, 다시 형태로 구분하여 전체 작품 수를 명시하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