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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에서는 연구 참여자의 행위를 해석하기 위해 ‘욕망(desire)’

의 개념을 사용한다. 욕망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진로선택 행위의 의미가 달라지고, 욕망의 주체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예비 직업사 회화 과정에서 청소년의 존재론적 위치가 달라진다. 따라서 서양 철학사 속의 욕망이론을 광범위하게 검토하여 연구자는 욕망과 인간의 행위, 사 회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이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또한 연구 참여자들의 행위를 이해함에 있어서 탈구조주의적 욕망이론에 기반 하였음을 제시한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사회의 문제를 해명하는 데 있어서‘욕망’

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는 중요한 주제였다.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 는 욕망 개념은 부정적인 의미로 자주 쓰인다. 하지만 욕망 개념 자체가 부정적 혹은 긍정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어떻게 해석 해야 하는가라는 ‘욕망론’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지니고 있을 뿐이다.

욕망을 바라보는 관점은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데카르트, 칸트, 헤겔, 니

체, 프로이트, 라깡, 들뢰즈까지 이어지는 서양 철학사의 흐름과 함께 변 화하여 왔다. 욕망론의 역사와 관련된 여러 문헌들을 참고하여 다음 <표 4>와 같이 ‘결핍의 욕망론’과 ‘생성의 욕망론’으로 구분하여 제시해 보았다.

결핍의 욕망론 생성의 욕망론

욕망은 결핍에서 유래한다.

욕망은 이성에 의해 제어되어야 한다.

욕망하는 주체는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

욕망은 아무것도 결여하고 있지 않다.

욕망은 이성보다 근원적인 본성이다.

욕망은 어떤 것의 원인이 되는 힘이다.

플라톤, 헤겔, 프로이트, 라깡 스피노자, 니체, 들뢰즈와 가타리

<표 4> 욕망론의 상이한 관점

첫 번째 욕망론은 욕망을 ‘결핍’으로 해석하고, 이성에 의해 ‘제 어’되어야 하는 부정적인 것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이진우, 2004). 이 러한 관점은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오랫동안 서양 철학의 흐름을 지배해 왔다. 이러한 이성 중심적 욕망담론은 데카르트, 칸트, 헤겔에까지 이어진 다. 만약 우리가 욕망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이를 부정적 상황으로 바 라본다면, 그것은 오랫동안 이성 중심적 사고방식에 익숙해져 있다는 증 거이기도 하다.

이어 프로이트는 의식에서 배제되었던 무의식을 해명함으로써 인간을 새롭게 조명해 보고자 시도하였다. 인간에게 수많은 욕망이 소용돌이 치 고 있고, 사회문화적으로 용납되는 욕망은 의식으로, 용납되지 않는 욕망 은 억압되어 무의식을 형성한다(전경갑, 1999: 106). 따라서 그의 욕망 은 여전히 부정적인 것이며 억압되어야 할 것이다. 무한정한 욕망의 충족 은 자멸의 위험이 있으므로, 인간은 현실원칙에 따라 자타의 욕망을 조절 하고 억압하는 방법 즉 문명, 문화를 고안해 냈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성 적인 욕망을 억압하고, 이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방식으로 변형하여 다 양한 활동이 가능해진다(Laplanche et al., 2005: 허 경, 2010: 207 재 인용). 프로이트는 비록 모든 욕망을 하나의 성적 욕망으로 귀착시켜 오

이디푸스적 욕망으로 환원했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무의식이 의식보다 더 근원적인 것임을 밝혔다는 의의를 지닌다(이진우, 2004).

한편 19세기 니체로부터 이성 중심적 욕망담론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 었다고 볼 수 있다. 니체는 욕망을 이성의 관점 안에서 규정하려는 입장 에서 벗어나 욕망 그 자체에 대하여 고찰하려 하였다. 이성에 의해 배제 되어 있었던 권력, 몸, 욕망과 같은 주제를 철학적 사유의 중심으로 올려 놓았다. 그리고 인간이 가진 가장 근원적이고 강한 욕망은 ‘힘에의 의 지’라고 말한다. 힘에의 의지란 무엇인가가 무언가를 의욕 하는 행위이 다. 모든 존재는 그것이 살아있다는 그 사실 자체로부터 무엇인가를 의욕 할 수밖에 없다. 욕망이란 다름 아닌 그 존재가 살아있다는 사실 자체에 서 생겨나는 필연적 현상이다. 또한 욕망에 관한 단 하나의 ‘올바른’

관점 혹은 해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도덕적 혹은 비도덕적 욕망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욕망에 대한 도덕적 해석만이 존재할 뿐 이다. 이렇게 니체는 힘에의 의지를 긍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삶을 긍정 하였고, 또한 욕망을 긍정하였다(이진우, 2004; 허 경, 2010).

이렇게 인간의 본성과 이성과 욕망의 관계에 대한 비판적 사고의 전환 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이 등장하였고 욕망론의 상이한 전 통이 생겨날 수 있었다. 두 번째 욕망론은 욕망을 ‘생성’으로 해석하 고, 생명의 근원을 향한 운동이라고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관점이다. 20세 기 중반 이후 라깡, 푸코, 들뢰즈에 이르러 근대 이성 중심 관점에서 벗 어난 탈근대의 욕망론이 본격화되었다. 욕망은 자기보존26)의 신체적 표 현이자 생산이며, 의식 이전 무의식의 자연주의적이고 내재적인 흐름이다 (연효숙, 2006; 조홍길, 2006). 다음 서술은 ‘생성의 욕망론’ 입장을

26) 들뢰즈의 욕망하는 기계 개념은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 개념을 매개로 이해 할 수 있다(서동욱, 2002: 168). 스피노자는 코나투스를 ‘자기 보존의 힘’이라고 규정하였다. 모든 존재는 자신을 제거하려는 힘에 저항하고, 존재를 보존하려는 코나투 스를 가지며 이는 인간에게 있어서 강하게 나타난다. 인간의 정신과 육체에 동시에 작 용하는 코나투스를 욕망이라고 한다(전경갑, 1999: 46). 인간이 무엇인가를 욕망한다 는 것은 어떤 것을 행하고자 하는 인간 본질 자체인데, 자신의 외부에 놓인 초월적 원 인을 상정해서 그것을 추구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내재적 욕구 즉, 신체적 활동 역능을 증대시키고자 하는 본성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연효 숙, 2006: 257-259).

잘 드러내 준다.

욕망은 아무것도 결여하고 있지 않다. 욕망은 자신의 대상을 결핍하 고 있지 않다. 오히려 욕망에 결핍되어 있는 것은 바로 고정된 주체이 다. 탄압을 통해서만 고정된 주체가 생기는 법이니 말이다. ...욕망은 필요들에 기대고 있지 않으며, 역으로 필요들이 욕망에서 파생된다.

...욕망이란 생산하기, 현실에서 생산하기이다. ...사회적 생산은 특정 조건들에서 단지 욕망적 생산 자체이다(Deleuze & Guattari, 1972/2014: 61).

탈구조주의 욕망론의 대표적 철학자인 라깡과 들뢰즈는 욕망에 대한 서 로 다른 입장 차이를 보이면서도, 라깡의 사상을 터전으로 삼아 들뢰즈의 사상이 발현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함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라깡의 욕망론은 욕망을 결핍으로 해석한 전통의 끝자락에 닿아있다는 점 에서 ‘결핍의 욕망론’에 가깝고, 들뢰즈의 욕망론은 기존의 욕망 관점 에서 완전히 벗어나 새로운 욕망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생성의 욕망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두 철학자가 펼쳐놓은 욕망담론 중 본 연구에 필요한 논의는 두 가지이 다. 첫 번째는 욕망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두 번째는 현실적인 개별 적 존재자로서의 주체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이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연구자는 인간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사회에 대응하는 인간의 행 위를 해석할 수 있는 통찰력을 얻고자 한다.

라깡은 언어 구조가 인간 주체를 구성하며, 상징계의 질서가 무의식 속 에서 주체의 욕망을 생산하기도 하고 억압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라깡은 욕망을 생리적 욕구와 언어적 요구 사이의 괴리로 인해 영원히 충족될 수 없는 ‘결핍’이라고 규정하였다. 라깡은 욕구와 요구, 욕망을 다음과 같 이 구분한다. 욕구는 식욕과 같이 동물적·생리적 욕구를 말하며, 이것을 언어로 표현한 것이 요구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욕구는 언어 이면 으로 억압되어 무의식의 욕망을 형성 한다27). 이러한 구분을 통해 라깡

27) 아이는 다양한 방식으로 요구를 표출하고 엄마는 아이의 욕구를 돌보게 된다. 하지

은 욕망이 문화적이고 상징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생리적 욕구가 언어를 통해 우회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 욕망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언어적으로 우회한다는 것은 언어처럼 구조화된 것이라는 의미이고, 내가 따라야 할, 나를 규제하는 사회문화적 규범(대타자)을 전제한다는 의미이다(전경갑, 1999: 142). 즉, 언어를 통해 주체의 무의식을 구성하며 주체가 욕망해 야 할 것과 욕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시한다. 인간은 절대적 타자의 권 위(이데올로기)에 종속되어 타자가 조장하는 것을 욕망하게 된다(황순향, 2014).

들뢰즈는 라깡이 욕망을 결핍으로 해석한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고 비판했다28). 들뢰즈는 욕망을 결핍이나 대상의 획득으로 바 라보는 관점에서 벗어나, 욕망을 억압이나 금지를 모르고 자유롭게 떠다 니는 리비도와 같은 순수한 에너지로 파악하였다. 라깡이 욕망을 타자적 구조의 억압적 생산물로 인식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들뢰즈는 욕망을

‘어떤 것의 원인이 될 수 있는 힘’으로 정의하였다. 그는 욕망의 일부 분이 객관적 구조들(가족, 사회, 국가)에 의해 생산됨을 부인하지는 않는 다. 하지만 욕망의 또 다른 일부는 사회적 억압의 힘인 이데올로기를 뛰 어넘어 현실적인 것을 생산함을 강조했다. 욕망은 ‘product’이면서

‘producing’을 하고 있는 형태를 취한다(황순향, 2014).

들뢰즈는 ‘욕망하는 기계’ 개념을 통해 욕망의 주체를 설명하려고 하 였다. 욕망의 주체를 기계라고 표현한 것은 근대적, 의식적 주체 개념을 제거하기 위함이다29). 의식적 주체가 목적을 향해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만 욕구는 충족될지 몰라도 사랑의 요구(demand d’amour)는 그렇지 못하다. 욕구 와 요구가 갈라지는 그 가장자리에서 라깡이 말하는 욕망이 그려지게 된다. 즉, 요구로 표명된 욕구가 충족된 이후에도 사랑의 요구는 충족되지 않고 그대로 남게 되는데 이 잔여가 바로 욕망이다(윤성우, 2006).

28) 욕망이 현실적 대상의 결핍이라면, 욕망의 현실 자체는 환상된 대상을 생산하는

<결핍의 본질> 속에 있다. 이렇게 되면 욕망은 생산으로 파악되고 있으면서도 환상의 생산으로 파악되는 것이다. ...<중략>...클레망 로세는 다음과 같이 옳게 말하고 있다.

욕망의 대상을 정의하기 위해서 욕망이 결핍하고 있던 결핍을 강조하면 그 때마다 <세 계는 ‘욕망에는 대상이 결핍되어 있다’>는 논법에 의거해 어떤 다른 종류의 세계와 자신이 이중화되는 것을 본다(Deleuze & Guattari, 1972: 60).

29) 이전의 욕망개념은 한 주체나 개인이 가진 내면의 심리적 경향성이었다. 항상 누구 누구의 욕망, 혹은 누구누구의 결핍이나 만족이라는 ‘누구’, ‘대상’을 전제하고 있 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