⑴ 대학의 의미 : 대학 가는 애들 그리고 나
평소에 한지민은 ‘대학 진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지민에게 대학 진학은 학업의 연속이고, 계속 공부만 하는 인생은 즐겁지 못하다. ‘대학 졸업자’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주변인 중 대 학 졸업 후 취업한 사례가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자인 친척언 니의 취업 사례를 부정적으로 평가한다. 대학 졸업자들은 전공에 따라 취 업을 하는 경우가 드물고, 그들이 취업을 하는 과정이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한지민은 자신의 진로선택에 있어서 대학 진학은 큰 의미가 없다고 판 단했다. 미용계통의 직업영역에서는 대학 졸업 여부에 따라 작업의 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으며, 취업가능성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생각했 다. 또한 자신의 학업성적과 가정의 경제적 여건을 고려했을 때 대학 진 학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한다. 대학 진학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대학 진학이 당연시되는 사회적 맥락 사이에서 혼란과 고민의 시간이 있었으 나, 한지민은 자신의 상황에 대한 주체적인 해석에 따라 의사결정을 했 다. 대부분의 또래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상황, 주변인들이 모두 대학 진 학을 권유하는 상황, 학력에 따라 차별대우를 받는 사회적 상황 속에서도 한지민은 대학 진학을 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했다.
그리고 한지민은 대학에 진학하는 친구들과 자신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가려는 친구들은 꿈이 없다. 그들은 성적에 맞춰서 대학에 가는 것이고, 성적은 실력이 아니다. 한지민에게 ‘연필로 하는 것’은 실력이 아니며, ‘실제 경험’을 실력이라고 여긴다. 남들은 평범한 길을 걷지만, 자신은 ‘돌이 많은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며, 그 길은 힘들지만 나름대 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에 간 친구들과 다르게 자신은 일찍 사 회생활의 경험을 쌓을 수 있다.
P: 저는 솔직히 초등학교 때부터 왜 대학을 가야하나...대학만 가고...학업의 연속이고 계속 공부만 하잖아요. 그럼 뭐 인생이 즐겁겠어요...제가 좋아하 는 일 하는 게 즐겁죠. [A1]
P: 한국이란 나라가...요새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힘든 사횐데...대학까지 안 나오고 고졸이란 딱지를 붙이고 어디 가서 취업을 시켜줄 리도 없고...그냥 스펙 쌓으러 가는 거죠. [A5]
P: 주위에 취준생(취업준비생)들이 없거든요. 제 주변에...그래서 잘 모르겠는 데...위로는 자꾸 나이가 높아지고 밑으로는 없으니까 당연히 젊은 사람들 이 취업하기는 힘들죠. 요즘에는 스펙 많이 보고 그러니까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스펙을 쌓으면 좋은 거죠... 좋은 건데...막...돈 줘서 막 뽑고 웃돈 줘서 막 뽑고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A2]
R: 주변에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 혹시 있어?
P: 친척 언니가 있는데...별로 안 좋아해요.
R: 그 언니 취업 하는 과정 옆에서 봤어?
P: 아니요(시니컬하게). 취업 하고 나서 봤어요. 그 언니가 큰 아빠가 빽이 있어서 농협에 들어갔거든요. 빽으로 들어가 가지고. 비싸게 등록금대고 대 학가가지고 딴 짓거리 하고. 유아교육과 갔거든요. 근데(어이없어 함) 뜬금 없이 아빠 빽으로 농협 가가지고. 동전 받고.
R: 부럽지 않아?
P: 안 부러워요(단호하게). 네. 빽이 있다더라도 굳이.
R: 너도 빽이 있고 그러면 네가 하는 일에서 기회도 많이 얻고.
P: 기회는 있겠죠. 근데 저는 그런 거 싫어요. 새치기 하는 거 싫어요. [A3]
P: 솔직히 대학이라는 게, 고등학교 때 대학에 간다는 게, 제가 볼 때는 성적 맞춰서 갈 수 있는 과를 그냥 가는 거예요. 솔직히 말해서 대학 졸업한 사 람들 중에, 그 학과 나와서 관련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잖아요? 저 는 그렇게 생각해요. [A6]
R: 왜 지민이는 대학을 안 가고 싶어?
P: 그냥...집에 돈이 없잖아요? 동생들도 대학을 다 가야하잖아요? 그런데 굳 이, 얘네들이 다 갈 건데 내가 굳이...삼남매가 굳이 다 대학을 가야하나...
누구 한명만 잘... [A5]
P: 일단 내가 4년제를 갈 수 있을까도...정확히 말하면 ‘내가 대학을 갈 수 있을까, 내가 대학가서 잘 할 수 있을까? 대학을 나온다고 해도 취업이 될 까...’
R: 대학을 안 나와도 취업이...
P: 돼요.
R: 대학을 안 나와도 취업이 잘 돼? 그러면...대학 나오면 더 잘될 거 아니야?
P: 그렇겠죠. 그런데 청담동 샵을 가나, 경기도 샵을 가나...잡일부터 하는 건 똑같아요. 어디든. 무슨 대학을 나오든. [A6]
P: 쟤는...재미없어 보여요. 그리고 고3 애들 보면 (조용하게) 공부 잘하는 애 들 보면 저희보다 선택의 폭이 넓잖아요. 근데 막상 꿈이 없어요. 걔네들.
그냥 성적 맞춰서 써서. 대학가고 거기 맞는 취업하고, 그것밖에 없어요.
R: 그게 매력적으로 보이진 않구나? 너는?
P: 네. 공부 잘하면 저도 좋죠. 넓게 골라서 가고. ^^(웃음) 노래 못해도 이 렇게 성적 맞춰서 가면 되잖아요. 근데 전 진짜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실력 을 선택을 받은 게 아니라 연필로 해서 그냥 뽑아간 거잖아요. [A2]
P: 남들이 평범한 길을 간다고 한다면, 저는 돌 많은 길을 간다고 생각해요.
R: 그 길은 어때? 좋은 길 같아, 어떤 길 같아?
P: 돌이 많으니까, 맨발로 걸을 때 지압도 할 수 있어요.
R: 힘들지만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 어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해?
P: 지금처럼 무언가를 깨닫고, 생각을 많이 바꾸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거? [A6]
P: 4년제를 나온 애들은 대학을 다니고 있을 거고, 2년제 나온 애들은 그 때 한창 취업을 할 것이고, 저는 3년 지난 거잖아요? 21살에 취업을 하면, 어 느 정도의 경력이 있고, 대우를 받으면서 돈도 어느 정도 벌 것이고. 그러 니까 좀.
R: 더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 지민이는?
P: 그럴 것 같아요, 저는. 제가 벌 수 있는 만큼 벌고, 제가 쓰는 거니까. 대 학 간 애들은 그 시간 동안 경력을 쌓을 수 없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만큼 경력을 쌓고, 일을 하고 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이런 것도 배우고. [A6]
⑵ 예술실용전문학교의 선택 : 몸으로 부딪치는 일
한지민은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예술실용전문학교52) 진학을 결정한다.
고등학교 3학년 6월 즈음 서울의 한 예술실용전문학교에 면접을 보게 된 다. 이 기관은 입학 요건으로 학업성적을 요구하지 않으며, 실무 중심 직 업교육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다. 한지민은 방송국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 각에 첫 번째는 실용음악학과 면접을 보았으나 불합격하였고, 두 번째는 무대연출학과에 지원해서 합격하였다. 면접을 보기 위해 하루 전날 고속 버스를 타고 의정부의 이모 집에 가서 하룻밤을 묵었고, 그 다음날 면접 을 보러갔다. 2주에 걸쳐 두 번의 면접을 보았다. 차비와 면접비용은 아 르바이트를 해서 번 용돈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무대연출학과 합격 통지 를 받은 이후 한지민은 진학에 대한 걱정 없이 마음 편하게 지낼 수 있었 다. 한지민은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었고, 수능원서비가 아까워 수능시험 도 치르지 않았다. 예술실용전문학교 연출학과 진학과 무대연출가 직업이 라는 한지민의 진로는 다른 또래에 비해 일찍 정해졌다.
한지민은 이 과정에서 자신의 능력을 학업 성적이 아닌 다른 의미로 재 구성하였다. 한지민이 생각하는 자신의 능력은 ‘몸으로 부딪치는 일’을 잘한다는 것이다. 한지민은 학교에서의 평가나 미용기술 자격증 시험과 같은 공식적인 제도를 통해서는 인정받지 못했으나, 미용실 아르바이트 그리고 연극부 동아리 활동과 같이 실제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쳐서 하는 일은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경험이 있었다. 미용실에서 한지민은 심부름과 잡일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적극적인 태도로 일을 했고, 육체적으로 고된 일도 끝까지 해내었다. 일터 현장에서 한지민은 손님들과 원장님의 인정 을 받았다. 연극부에서도 한지민은 동아리 선생님이 요구하시는 일을 잘 해내었다. 한지민은 다른 친구들에 비해 직업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실력
52) 실용전문학교는 고용노동부의 인가를 받아 운영되는 직업교육기관이다. 예전 직업전 문학교의 명칭을 2014년 이후 실용전문학교의 명칭으로 변경하였으며 현재는 혼용하 여 사용된다. 예술실용전문학교는 전문예술인을 양성할 목적으로 설립된 실용전문학교 이다. 방송영상, 연기예술, 공연예술, 실용음악, 패션예술, 뷰티예술, 애완동물 계열 등 실용적 전공분야의 실무기술을 배우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부 기관의 경우 학점은행제 기관으로 지정되었으며 학점이 누적되어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학위취득이 가능하다(출처 : 네이버사전, 위키백과사전, 국가평생교육진흥원 등 재구성).
과 능력이 있다고 여겼으며, 직업훈련과 취업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예술실용전문학교>
P: 내가 이 가수는 못해도 다른 일 쪽으로 방송국에서 일을 하면 되지 않 나...이런 생각을 했어요. 근데 공부를 못해서 일단 대학을 못가잖아요. 제 가 성적이 바닥이라서...일단 4년제나 전문대는 못갈 것 같고 그냥 그쪽으 로 막 찾은 거란 말예요. 전문학교 쪽으로. 그래서 거기를 알게 됐죠. [A1]
R: 거기 학교에 가서 가장 기대하는 건 뭐야?
P: 일단 여기 학교가 실무가 되게 많대요. 일단 그 실무를 되게 기대하고 있 어요. 무대설계도를 컴퓨터를 짜거나 어디 콘서트 장에 가서 스텝으로 일하 는 게 있대요. 그게 지금 굉장히 기대 돼요. 이 학교를 가서 실제 경험을 쌓고 싶은 게. [A2]
<‘실력’의 의미>
R: 스스로 실력과 능력이 있다고 생각해?
P: 네! ^^(웃음) 전 쓸데없는 자신감이 넘 많은데. 누가 앞에 나가서 춤춰라 그러면 그래~ 그러고 나가서 춤추고 누가 뭐해달라고 하면 그거 해주고.
다른 애들은 자기가 싫어하는 행동이 있으면 재 왜 저래. 쟤 진짜 별로다.
그러는데 그냥 내비 둬. 쟤가 원래 저렇게 큰 거잖아. 다른 사람을 다른 성 격을 인정해주는. [A2]
R: 일을 할 때 다른 친구들에 비해서 잘 할 수 있다 그런 거 있어?
P: 심부름. 초반에 가면 심부름 잘하는 애가 짱이에요^^(웃음) 무대 설치나 이런 거? 제가 시야를 넓게 보는 거 좋아해요. 이렇게 다 보이거든요. 딱 봤을 때 시야가 넓으니까 잘 고쳐내고. [A2]
R: 지민이는 그 학교를 나오면 취업할 수 있을 것 같아?
P: 제가 잘하면 할 수 있겠죠. 열심히 하면 교수님들이 딱 보잖아요. 왜냐면 교수님들이 현장에서 뛰시면서 교수님 하시는 거니까 그 교수님 눈에 잘 띄면 이렇게, 이렇게 되잖아요. 눈에 띄어야 해요 일단.^^(웃음) 열심히 하 고 교수님 눈에 보였다하면 어느 정도 이게(연결) 되겠죠.^^(웃음) [A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