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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뢰즈와 가타리의 논의를 바탕으로 욕망하는 개인이 사회에 대응하는 방식과 주체의 형성을 설명하였고, 욕망의 과정에서 자아가 생성됨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에서는 청소년이 직업의 영역에서 욕망하는 과정을 통 해 생성하는 자아와 주체의 가능성을 ‘직업정체성(vocational identity)’

으로 개념화하였다.

들뢰즈와 가타리에게 욕망은 본질상 정착을 싫어하는 유목적 흐름 (nomadic flow)이다. 주체의 의식과 무관하게 작동되는 무의식적이고 기 계적인 흐름이다. 욕망은 자유롭게 작동하며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생산적 흐름이므로 고정된 표상체계에 구속될 수 없다. 그러나 사회 체제는 이러한 욕망의 흐름을 적절히 통제하고자 한다. 욕망이 스스로 원 하는 것을 원하고 그것을 향해 자유롭게 흐른다면, 욕망은 기존의 틀을 변혁하는 에너지를 지니게 되고, 그 에너지는 기존 사회질서를 와해하는 작용을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전경갑, 1999: 234). 라깡은 욕망의 흐름 을 억압하고 통제하는 과정을 ‘주체화, 타자화’라고 명명했고, 들뢰즈 와 가타리는 ‘코드화, 영토화’31)라고 지칭하였다. ‘코드화’란 코드를 익히고 그 코드에 길드는 것이고, ‘영토화’란 어딘가에 끌어들이거나 귀속시키는 것이다(이진경, 2002: 217).

그러나 욕망은 본질적으로 탈주(flight/fuite)의 흐름을 지니고 있다. 욕 망이란 본래 끊임없이 작동되는 생산적이고 무의식적인 리비도의 흐름이 기 때문에 억압과 통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생산적 힘이 있다. 들뢰즈와 가 타리는 이러한 욕망 특유의 분열적 흐름을 탈코드화(décodage) 혹은 탈 영토화(déterritorialisation)라고 명명하였다. ‘탈코드화’는 각각 흐름 의 코드가 이해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흐름의 상태가 그에 고유한 코드에 포함되지 않은 상태, 흐름 자 체의 코드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Deleuze & Guattari, 1980:

31) 들뢰즈와 가타리는 욕망을 통제하는 규칙이나 규범을 ‘코드’로, 통제가 이루어지 는 환경이나 제도는 ‘영토’로 구별해 사용하였다(전경갑, 1999: 236).

861). 그리고 ‘탈영토화’란 귀속되거나 머물렀던 영토를 떠나는 운동 이며, 습관과 정착성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소외로부터, 주체화 의 과정으로부터 도주한다는 것이다(Deleuze & Guattari, 1972: 162;

Villani & Sasso, 2003: 158, 393). 모든 사물에 관련하여서는 이렇게 두 가지 기본적 운동 방식이 있다. 그 사물을 횡단하는 흐름을 포착하고 코드화하는 움직임, 어떤 항을 자기 안에 포섭하여 자신의 일부로 만드는

‘영토화’의 움직임이 있다. 그리고 거기서 벗어나 새로운 영토로 진입 하는 ‘탈영토화’라는 움직임이 있다. 두 가지 운동을 통해 하나의 항이 다른 것으로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이진경, 2002: 61).

글을 써라, 리좀을 형성하라, 탈영토화를 통해 너의 영토를 넓혀라, 탈주선이 하나의 추상적인 기계가 되어 고른 판 전체를 덮을 때까지 늘려라(Deleuze & Guattari, 1980/2001: 28).

사회는 이러한 탈주의 흐름을 포획하여 다시 억압하고 통제하는 메커니 즘-재코드화(recodage), 재영토화(reterritorisation)32)-을 작동한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 사회는 전통적인 가치와 규범에서 해방된 탈코드화 된 사회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시장의 원리라는 철저한 자유경쟁의 규범 에 따라 재코드화하고 교육 및 법률제도 등으로 재영토화 시킨다고 들뢰 즈는 해석했다. 전제군주 사회에서의 억압은 물리적 폭력에 의존하였으 나, 자본주의 사회의 억압은 가족, 직장, 학교 등의 기구를 통해 이루어진 다. 또한 미디어에 의해 소비욕구를 조장하면서 욕망의 흐름을 해방시키 면서 동시에 그 흐름을 포획하여 다시 자본주의의 원칙에 철저하게 예속 시킨다(전경갑, 1999: 236, 241).

들뢰즈와 가타리는 탈주의 흐름을 설명하기 위해 『천의 고원』에서 리 좀(rhizome)적 체계를 제시한다33). 리좀은 고정된 체계나 구조가 없고,

32) 재코드화는 다른 종류의 규칙에 길드는 것이고, 재영토화란 다른 영토에 다시 머물 거나 귀속되는 것이다(이진경, 2002: 218).

33) 리좀적 체계와 대조되는 것이 수목형 체계이다. 수목형 체계는 위계적이며, 의미화와

주체화의 중심을 포함한다. 수목은 잔가지가 아무리 다양하고 미세하게 뻗어나간다고 해도, 그것은 하나의 상위 이웃으로만 연결되고, 그를 통해 오직 하나의 중심으로 귀결

중심이 없으며, 비위계적, 수평적이고 궁극적 근원에 환원될 수 없는 다 원성이 그 특징이다34). 무작위적이고 불규칙한 그물망 구조를 이루며 그 안에서는 다양한 연결과 접속이 가능하다(전경갑, 1999: 245). 한 지점 이나 위치를 갖지 않으며 연결 접속된 관계를 통해 본성상의 변화를 겪는

‘다양체(multiplicité)’라고 할 수 있다. 즉, 리좀은 기존의 코드화된 세 계 위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증식하는 선, 즉 탈주선(line of flight/ligne de fuite)에 해당한다(Deleuze & Guattari, 1980: 13-20).

땅 밑 줄기의 다른 말인 리좀은 뿌리나 수염뿌리와 완전히 다르다.

...지면을 따라 모든 방향으로 갈라지는 확장에서 구근과 덩이줄기로의 응고에 이르기까지, 리좀은 매우 잡다한 모습을 띠고 있다. 리좀은 어 떤 지점이건 다른 어떤 지점과 연결 접속될 수 있고, 또 되어야만 한 다. 그것은 하나의 점, 하나의 질서를 고정시키는 나무나 뿌리와는 전 혀 다르다(Deleuze & Guattari, 1980/2001: 18).

지금까지 살펴본 탈주의 개념은 본 연구에서 현상을 이해하는 핵심 개 념이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유로운 욕망의 열정과 흐름을 사회가 완벽 하게 차단할 수 없다고 보았고, 구조적 제약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의 잠재 적 에너지로 사회의 변혁을 기대한다. 즉, 욕망이 탈주하는 힘과 탈주를 통한 사회 변화 가능성을 주장했다. 연구자 역시 예비 직업사회화 현상을 이해할 때 욕망의 생산적, 역동적, 긍정적, 잠재적 가능성을 고려하였다.

청소년의 일상 속 행위가 자유로운 열정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며, 사회구 조와 환경에 의해 제약을 받으나 그 잠재적 에너지는 완벽하게 차단할 수 없다고 해석했다. 흘러가는 에너지에 의해 일상 속에서 진로 행위를 하 고, 그 과정에서 생성되는 자아는 정체성을 형성하며, 예비 직업사회화를 통해 형성되는 자아를 직업정체성이라고 해석했다.

되고 만다(이진경, 2002: 109-110).

34) 고정된 체계가 없다는 것의 의미는 ‘비(非)체계’가 아니라 비중심화 된 체계를 의미한다(이진경, 2002: 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