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자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이상향에 대한 노스탤지어에는 근본적으 로 낙원에 대한 동경이 담겨있다. 동경(憧憬)이란 ‘어떤 것을 간절히 그 리워하여 그것만을 생각함’이라 정의할 수 있다. 특히, 자신이 처한 현실 에 어려움이 가중될수록 지평 너머에 또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이 강해 진다. 그리고 현실세계의 반동에 따른 낙원에 대한 동경이 결국 이상향 에 대한 노스탤지어의 근간이 된다. 그리고 이상향의 노스탤지어를 자아 내는 낙원이란 당연히 ‘현재’, ‘이곳’과는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현대인들 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현재’의 시간과 ‘이곳’이라는 공간 속에 내던 져 있는 존재이다. 소위 ‘피투성(被投性, Geworfenheit)’이라는 용어는 하 이데거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개념으로, 인간은 자의(自意)와 상관없이 세 상 가운데 던져진 존재임을 설명한다. 인간은 ‘불안(Sorge)’을 통해 자신 의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되고 주어진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피 투성을 자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한정적이고 수동적인 피투성이 아
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자각하게 하는 중요 계기를 제공한다.
특히, 죽음과 같은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불안, 좌절에 직면했을 때, 다시금 삶을 재구성하려는 시도가 시작되는데 이를 ‘기투(企投)’라고 한 다. 그러므로 인간은 피투성으로 한계에 봉착한다고 하더라도 기투를 통 해 새로운 삶의 방식을 모색하고 진정한 자유와 존재의 의미를 획득하려 고 한다. 이때 낙원에 대한 동경으로서의 노스탤지어는 한계를 극복하게 하는데 중요한 동기이자 동력이 된다.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불안․염려 등이 역설적으로 인간의 한계를 극복 하게 하는 기투의 원동력이라며, 궁극적으로 그 불안과 염려를 초월한 낙원으로서의 공간을 도가 사상에서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는 자연에 내재하고 있는 도(道)에 대한 지혜를 배워 행동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무욕의 세계를 지향한다. 따라서 동양에서는 자연을 벗 삼아 은일하는 소요유((逍遙遊)의 삶을 낙원으로서 동경하였고 그림 에서는 산수화를 통해 소요유의 지평을 표현하였다. 이처럼 인간의 인위 적인 욕망을 부정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으로 주장한 대표적 인 물이 노자이다.
노자의 『도덕경』을 보면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道)를 본받고, 도는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146) 하였다. 즉 인간은 자연으로 돌아가 우주의 질서를 따르게 되면 거기에 평화가 있고 궁극적으로 거기가 낙원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 ‘도법자연(道法自然)’의 자연은 전원, 산림 등의 대자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함 으로써 ‘자연적으로’, ‘자발적으로’, ‘저절로’의 의미이다. 즉, 근원으로 돌 아가면 그 뜻에 따라 순리대로 진행된다는 자연성(naturality)의 용어에 가깝다.147) 도가에서 자연은 특정한 개념이 아닌 천지 만물을 발생, 생육 하게 하는 도의 본질적인 성향으로 도의 본성이 자연이고, 자연은 도의 본성이며 그 본성의 작용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노자에게서 자연이란 천 지만물의 성질이자 인간의 본래적 성질로서 모든 것의 궁극적인 근원이
146) 老子, 『道德經』, 第25章,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147) 윤찬원, 「초기 도교에 나타난 ‘자연’ 관념에 관한 고찰」, 『도교문화연구』제13권 (한국도교문화학회, 1999), pp.218-219 참조.
자 이상향인 것이다. 따라서 노자에게 있어 이상향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단순히 대자연에 대한 향수가 아닌 자연성으로의 회귀를 그리워하는 것 이다. 그러므로 동양에서 낙원에 대한 동경이란 전원 또는 자연으로의 귀환이 아니라 우주의 법칙을 따르며 천지 만물과 하나 되려는 ‘물아일 치(物我一致)’의 지평으로의 귀속을 의미한다.148)
회기의 대상이자 낙원으로서의 자연에 대해 장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 고 있다.
옛날 사람은 혼돈 속에서도 세상과 더불어 그윽한 고요함을 얻었다. 이 시대 에는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어 고요하고 귀신도 소란을 피우지 않았으며, 사 계절이 순조롭게 운행하여 만물이 손상되지 않았고, 무릇 모든 생명은 주어진 수명을 다하였다. 사람들은 비록 지식을 가졌다 해도 쓸 곳이 없었으니. 이를
‘지극한 하나(至一)’라고 하였다. 이 시대에는 인위적으로 하려 함이 없어 언 제나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149)
그러나 만약 인위적인 지혜로 세상(땅 또는 지평)이 어지럽혀지고 덕이 쇠퇴하게 되며, 본성을 상실하게 되고 결국은 참된 본성으로 되돌아가고 자 하나 다시 돌아갈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이후 극도의 전쟁기인 위진남북조 시대의 낙원에 대한 동경은 평화로운 세계 또는 산수에서의 장생불사(長生不死)의 삶을 궁극적 목표로 하였 다. 이 당시 군벌들 간의 혼전으로 “사람들이 서로 참혹하게 죽여 백골 이 쌓였고 도처에 시체가 깔려 거리가 썩는 냄새로 가득했으며”150) “옛 땅의 백성들은 거의 다 죽어서 나라 안을 종일 걸어가도 아는 자가 없었 다.”151) 라고 참상이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불확실한 생사와 미래에 대 한 불안정한 상황이 당시 사람들로 하여금 현학(玄學)과 불교 등의 종교
148) 정동화, 「조선시대 회화의 도교적 이상향 연구」(원광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14), p.13 참조.
149) 『莊子』, 「外篇」第16篇 繕性, “古之人 在混芒之中 與一世而得澹漠焉 當是時也 陰 陽和靜 鬼神不擾 四時得節 萬物不傷 群生不夭 人雖有知 无所用之 此之謂至一 當是時 也 莫之爲而常自然” 장주, 김학주 역, 『장자』(연암서가, 2010), pp.384-385 참조.
150) 『晉書』, 「食貨志」, “人相食啖 白骨盈積 殘骸餘肉 臭穢道路”
151) 『三國志』, 「魏志」, 「武帝記」, “舊土人民死喪略盡 國中終日行 不見所識”
에 의지하게 하였다. 또한 험난한 벼슬길과 관리사회의 냉혹함을 목격한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은거를 동경하는 풍조가 만연하였고 관복을 버리고 은신하는 자들이 부지기수였다.152) 은거하는 이들은 노장사상을 정신적 지주로 삼았으나 이 당시 유행했던 도교의 장생불사는 도가의 무위와 달 리 지극히 현세적이고 구복(求福) 신앙적인 면이 깔려있었다. 물론 장자 도 장생불사의 진인을 최고의 경지로 언급한 바 있지만, 이는 정신적인 수양의 측면을 강조한 것으로 도교의 현실적인 장생과는 다르다. 그런데 도연명이 쓴 동진시기는 도교가 부흥하던 시기로서, 후한 말 극도로 혼 란한 난세에 탄생한 민간신앙인 도교는 사상가 노자를 신선으로 탈바꿈 시키고 자의적으로 자신들의 교주로 삼았다. 그 후 위진남북조시대에 현 실도피적인 은일 풍조가 만연하게 되면서, 난세에 죽음의 공포에 직면한 사람들은 전쟁과 갈등이 없는 장생불사의 신선세계를 찾아 세상과 격리 된 깊은 산 속으로 도피하게 된다. 이른바 낙원에 대한 동경은 신선세계 를 찾아 돌아다닌다는 유선풍조로서 도화원기 속 어부, 태수, 유자기와 같이 이상세계를 찾아 산중을 유랑하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도연명의 무릉도원은 상상에 의한 창작된 세계이지만 전쟁과 혼란이 없는, 불사의 낙원에 대한 간절함이 반영된 민중들의 동경의 산물이었다.153) 그러나 도연명은 『도화원기』를 통해 이런 낙원에 구체적일 실체나 대안을 제 시하기보다 비현실적인 유선풍조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이 반영되어 있 다. 도연명이 비판하고자 하는 것은 낙원에 대한 동경이 결국은 ‘대상이 없는 비애’로서 유자기와 같이 허망한 상태에 빠질 수 있음을 경계한 것 이다. 물론, 낙원에 대한 동경은 현실을 추동하고 극복하는 자극제가 될 수도 있지만 도리어 현실을 회피하고 대상이 없는 실체로서 상상의 낙원 에 안주하게 하는 극단(極端)이 병립하기 때문이다.
위진남북조시대에는 노장사상의 신선, 은일 등 현학적 분위기가 유행하 면서 사물의 본래적 존재를 의미하던 자연이 산수로 일반화되었고, 도에 대한 관심은 산수에 대한 관심으로 변화하였다. 따라서 산수를 동경하고
152) 천촨시, 『중국산수화사1』, 앞의 책, pp.62-63 참조.
153) 김용표, 「제임스 힐튼의 ‘샹그리라’에 투영된 낙원을 향한 노스탤지어」, 『중국학연 구』제46권(중국학연구회, 2008), p.115.
즐기는 것은 도를 탐구하는 것으로 산수자연에 회귀하려는 경향이 이상 향으로서 자연에 대한 동경으로 나타난다. “무릇 옷과 음식은 사람이 생 활하는 데에 바탕이 되는 것이지만 산수는 성정이 가야 할 곳이다.”154) 라며 당시의 문인들은 산수를 지극히 좋아하여 눈으로 감상하는 것으로 도 모자라 마음속으로 묘사하며 시로 읊고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연구자 의 작품 속에서도 비록 도시에 거주하면서 도시 속의 지평을 불가역적으 로 묘사하고 있지만 도시에 어울리지 않는 청정한 파란 하늘을 통해 맑 고 깨끗한 본래의 자연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낙원으로서의 자연에 대한 열망은 이후 전원풍경을 중심으로 작업을 전 개하는 방향으로 회귀하는 계기를 주었다. 따라서 지평에 반영된 이상향 의 노스탤지어에는 자연에 대한 회귀의식이 궁극적으로 작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