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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자연적 성격〈무릉도원도(武陵桃源圖)〉

Dalam dokumen 비영리 - S-Space - 서울대학교 (Halaman 59-67)

중국 동진(東晉)시대(317-420)의 도연명의『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무 릉도원’은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최고의 이상으로 한 이상향이다. 동양의 문학과 예술에서의 이상향의 모습은 무릉도원과 같이 무위자연적인 성격 으로 많이 나타난다. 이는 동양에서 자연이 갖는 중요성을 바탕으로 은 일과 탈속의 정신이 시적인 이미지 속에 상징화된 낙원을 보여준다.60)

도연명이 살았던 위진남북조시대는 극도의 혼란기로 난세의 현실에 염 증을 느낀 지식인들은 ‘죽림칠현(竹林七賢)’ 같은 은일자(隱逸者)들을 흠 모하게 되었다. 그리고 ‘도법자연(道法自然)’, ‘무위자연(無爲自然)’과 같은 노장사상이 문학·예술에서 자연찬미를 더욱 가속화하며 자연에서의 은일 을 동경하게 하였다.61) 이 당시의 도연명은 중국의 대표적인 전원시인으 로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은 자연주의의 노장사상 영향을 받 은 동양의 대표적 이상향이다. 도화원기를 통해 보여준 도원이라는 이상 향은 현실세계보다 살기 좋은 곳이며, 현세의 난관으로부터 벗어나 자유

60) 김종회, 앞의 책, p.41.

61) 김병종, 『중국회화의 조형의식 연구』(서울대학교출판부, 1989), pp.205-206.

를 얻을 수 있는 전원 공간으로서 당시는 물론 후대에도 많은 공감대를 이끌었다. 그 내용에 대해 살펴보면,

동진(東晋)의 태원연간(太元年間, 376-396)에 무릉(武陵) 사람으로 고기잡이 를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어느 날 내를 따라가다가 길을 잃게 되 었다. 얼마나 멀리 왔는지도 모를 무렵 홀연히 복숭아꽃나무숲을 만났다. 냇 물의 좌우 양 언덕을 끼고 수백 보에 걸쳐 (복숭아나무 외에는) 잡나무가 일 절 없고 향기로운 풀들만이 산뜻하고 아름답게 자랐고 복숭아 꽃잎이 펄펄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어부가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계속 앞으로 나가 복숭아 숲이 끝나는 곳까 지 가보고자 하였다. 숲은 냇물 원류에서 끝났고 문득 산 하나가 나타났다.

산에는 작은 구멍이 있는데 그 속에 희미하게 빛이 있는 듯하였다. 어부는 곧 배에서 내려 구멍 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구멍 초입은 매우 좁아 겨우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정도였으나 다시 수십 보를 더 나가자 갑자기 확 뚫리며 넓 어졌다. 땅이 평평하고 넓으며, 집들이 정연하고 기름진 밭과 아름다운 연못 과 뽕나무와 대나무 숲이 연이어 있었다. 길은 사방으로 뚫려 있고 닭과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 가운데 왔다 갔다 하며 농사를 짓는 남녀의 옷차림은 어부가 사는 세계 와 다른 세계 사람의 것과 같았고 노인이나 어린이들은 다들 기쁘고 즐거워 보였다. 사람들은 어부를 보자 매우 놀라며 어떻게 왔는가를 물었다. 어부가 자세히 답하자 어부를 집으로 초대하여 술을 내고 닭을 잡아 식사를 대접하 였다. 어부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마을 사람 모두가 찾아와 저마다 물었다.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 선조가 진나라 때의 난을 피해 처자와 마을 사람들을 이끌고 이 절경(絶境)으로 와서 다시는 나가지 않았소. 그래서 결국 바깥사람 들과 떨어지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어느 때냐고 묻는 것을 보니 한나라가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위진(魏晋)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부가 지난 일을 하나하나 이야기해주자 모두 놀라 감탄했다.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어부를 자기 집으로 초청하여 술과 음식을 대접하였다. 어부는 며칠을 묵은 후 작별하고 떠났다. 마을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는 말하지 마시오.”라고 하였다. 밖으로 나와서 배를 찾아 돌아오는 길에 곳 곳에 표시를 했다. 고을에 이르러 태수(太守)를 만나 그대로 보고를 하였다.

태수는 즉시 사람들을 파견하여 어부가 표시한 곳을 찾아가게 했으나 결국

길을 잃고 찾지 못했다. 하남성(河南城) 남양현(南陽縣)의 유자기(劉子驥)는 고상한 선비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흔연히 찾아가보려고 계획을 세웠으나 이 루지 못하고 목적을 달성 못해 병들어 죽었다. 그 후로는 그 길을 찾는 사람 이 없었다.62)

『도화원기』에서 도원은 현실세계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보는 낙원적 인 측면과 현세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는 도가적인 측면이 중의적 으로 반영되어 있다.63) 특히, 『도화원기』에 나타난 이상향에 대한 인 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치세의 도가 완성된 ‘태평성대의 공간’이고, 다른 하나는 ‘은거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경우이다.

도원을 왕의 덕치가 완성된 태평성대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것은 사회적 자아의 윤리의식을 바탕으로 해석한 것이다. 그래서 태평성대의 공간으 로서의 무릉도원은 단순히 현실세계에서 도피한 은신처로서의 의미만을 갖지 않는다. 은신처 이전에 사회 불평등과 같은 현실 비판의식이 담겨 있다. 그리고 도원은 똑같이 일하는 공동체적인 사회로서 현실세계의 부 조리, 불합리에 대한 대안적 측면이 강하다. 비록 산중에 있는 상상의 세 계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현실 비판적인 이상향을 제시한다. 이러한 개혁 적인 성격은 귀천을 나누는 불평등과 빈부를 나누는 태도에서 전쟁이 초 래된다고 하여 현자(賢者)를 중심으로 한 상동사회(尙同社會)64)를 주장 한 묵자의 견해와도 연결된다.

62) 陶潛, 『桃花源記』, “晉太元中 武陵人捕魚爲業 緣溪行 忘路之遠近 忽達桃花林 夾岸 數百步 中無雜樹 芳草鮮美 落英繽紛 漁人甚異之 復前行 欲窮其林 林盡水源便得一山 山有小口 髣髴若有光 便舍船從口入 初極狹 纔通人 復行數十步 豁然開良土地平曠 屋舍 儼然 有良田美池桑竹之屬 阡陌交通 鷄犬相聞 其中往來種作男女衣著 悉如外人 黃髮垂 髫 竝怡然自樂 見漁人 乃大驚 問所從來 具答之 便要還家 設酒殺鷄作食 村中聞有此人 咸來問訊 自云 先世避秦大亂 率妻子邑人來此絶境不復出焉 遂與外人間隔 問今世何世 乃不知有漢 無論魏晉 此人一爲具言 所聞皆歎惋 餘人各復延至其家 皆出酒食 停數日 辭 去 此中人語云 不足爲外人道也 旣出 得其船 便扶向路 處處誌之 及郡下 詣太守 說如此 太守卽遣人隨其往 尋向所誌 遂迷不復得路 南陽劉子驥 高尙士也 聞之 欣然規往 未果 尋病終 後遂無問津者” 李章佑註釋, 『中國歷代散文選』(新雅社, 1985), pp.44-45; 안휘 준, 『안견과 몽유도원도』(사회평론, 2009), p.133 재인용.

63) 안휘준, 앞의 책, p.135.

64) ‘상동(尙同)’의 同은 만민의 평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힘으로 다스리는 역정(力正)으로 인한 차별, 억압, 빈곤을 바로 잡아 평등과 공동의 이익을 바탕으로 한 의정(義正)이 실행된 사회를 말한다.

자연에 은거하는 측면에서는 무릉도원이 동양인의 낙원의식의 중요한 원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연 중심적 무릉도원은 전쟁을 부정하고 작 은 나라로서 소국과민 등의 노장사상과 연결되며 전원과 농경생활에 근 간을 두고 있다. 중국의 낙원의식은 춘추전국시대 이래 끊임없던 내란과 외란 등으로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잠재의식이 그 기저에 깔려 있다. 그 래서 서양의 유토피아처럼 논리적이고 실질적인 체계가 부족하더라도 전 쟁이 없는 이상사회 구현에 대한 염원은 시(詩)나 문학을 통해 수없이 나타난다. 특히, 노자는 전쟁과 환란의 원인을 인간들의 유위(有爲)에 있 다고 보고 무위(無爲)로 돌아간 자연귀의적 이상향을 주장하였다.65)

이와 같이 현실에 얽매인 삶의 회의로 인해 자연으로 되돌아가고자 하 는 위진남북조시대의 탈속, 은거의식은 자연적 천성의 실현이 표출된 것 이다.66) 특히, 위진남북조시대에는 호족의 할거(割據)와 북방 민족의 침 입 등으로 중국 대륙이 사분오열(四分五裂) 되어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 자 현실을 벗어나 정신세계의 초월성을 찾으려는 현학(玄學)사상이 크게 발전하였다. 현학이란 노장사상(老莊思想)을 포함하는데, 남조南朝)의 많 은 지식인들은 현실 도피의 목적으로 도교와 음악, 서예 그리고 청담(淸 談)을 즐기고 현학에 힘쓰며 형상 밖의 세계를 추구한 것이다.67) 현학의 정신은 바로 속세를 떠나 자연 속에서 평안을 얻고자 한다. 그래서 현학 이 위진남북조시대 이후에 끼친 중대한 영향은 인간과 자연의 융합이다.

인간과 자연의 융합으로서의 은둔 공간은 주로 산중에 성립되었으며, 이

65) 김종회, 앞의 책, 38.

66) 조송식, 「朝鮮初期 사대부의 이중적 자연관과 ‘와유’적 산수화의 변화」, 『미학』제 33집(한국미학회, 2002), pp.34-41 참조. 일반적으로 탈속, 은거의식은 자연적 천성의 실현으로서의 도가적 은거로 보는 견해가 주를 이루나, 유가적 은거인 태평성대가 되 면 다시 세상으로 나올 것을 전제로 한 도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는 도가의 세속 에 대한 근원적 부정으로서의 은거와는 다른 견해이다.

67) 위진남북조시대의 현학이란 위진시대에 노장사상을 중심으로 한 자연과 유교 사상의 조화를 추구한 철학사상으로서, 그 중심 논지는 세속과 거리를 두고 천지 만물의 유 무(有無), 시작과 끝 등의 존재 근거에 관한 문제를 형이상학적으로 논한 철학 체계라 고 할 수 있다. 기성 유가의 한계를 극복하고 채택한 노장 철학의 위진남북조시대적 구현이며, 실망스럽고 유한한 현실 속에서 초월적 자아 추구를 위한 다방면의 철학적 모색이다. 인간의 현실세계를 초월한 무(無)를 강조함으로써 세속적인 윤리실천보다 는 개인의 정신적 자유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오태석, 「위진남북조 문예사조 론」, 『중국어문학』제38권(영남중국어문학회, 2001), pp.8-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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