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부터 2008년까지는 도시풍경을 중심으로 지평을 표현하였다. 이 시기에는 연구자도 서울에 거주하면서 도시지평에 반영된 이상향에 대한 현대인들의 선망과 동경의 근원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탐구한 시기이다.
이러한 의문과 탐색을 통하여 도시의 이상화된 모습을 부양도시 작품 시 리즈를 통해 표현하였다.
내용적 측면)
[도 41] 토머스 모어, 〈유토피아〉도판과 나형민, 〈Wings of Desire〉의 비교
[도 41]의 토머스 모어〈유토피아〉도판257)은 바다에 떠 있는 섬의 형 태로 이상향이 묘사되었다. 오른쪽 연구자의 부양도시 작품시리즈 중
〈Wings of Desire〉도 〈유토피아〉도판과 유사하게 해도(海島)형의 형 태를 취하고 있다. 단, 파란색의 표현이 바다일 수도 하늘이 될 수도 있 는데 하늘이라고 가정한다면 마치 천공에 부상(浮上)하고 있는 듯한 모 습이 된다.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대표적인 허구 의 이상향이다. 유토피아의 내용을 살펴보면, 토머스 모어와 앤트워프 (Antwerp)시의 고문관인 페터 힐레스(Peter Gilles), 그리고 가공의 여행 가 라파엘 휘틀로다이우스(Raphael Hythlodaeus) 간의 대화로 구성된 1 권과 라파엘의 전언에 따른 새로운 섬 유토피아 공화국의 모습을 기술 한 2권으로 되어 있다.
1권에서, 모어는 16세기 초 자본주의 경제가 싹트기 시작하던 영국 사 회의 병폐를 ‘전쟁에 골몰하는 왕과 어리석은 고문관들’, ‘사치스럽고 게 으른 시종들이 도둑이 되는 이유’, ‘빈곤층을 양산하는 사치풍조’, ‘무위도 식하는 성직자들’ 등등의 예를 들어가며 비판한다. 특히, 당시 영국에서 양모 생산을 위해 농토에서 농민을 쫓아냈던 인클로저(Enclosure) 운 동258)이 농민들을 도시 빈민으로 전락시키는 원인이라고 보고 “양이 농
257) 1516년 당시 『유토피아』책에 실린 유토피아 섬 지도에 색깔을 입힌 그림.
민을 잡아먹는다.”라는 제목으로 혹독하게 비판한다. 그리고 1권의 끝에 서 라파엘은 “건강한 사회의 필수 조건은 사유재산 제도의 폐지”라고 말 한다. 그러나 토머스 모어는 사유재산을 폐지하면 이익 창출이라는 동기 가 없어서 아무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권위가 존중받지 못하는 계급 없는 사회에서 실제로 물자가 부족하게 되면 사회적 난동 이 일어나도 자신의 재산을 보호할 수단이 없다며 문제를 제기한다. 이 에 라파엘은 이러한 두려움을 없애주기 위해 자신이 여행 중 5년간 살 며 목격했던 유토피아 섬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2권에서는 라파엘의 전언에 의한 유토피아를 상세히 설명한다. 이상향 인 유토피아는 똑같은 모양으로 설계된 계획도시이며 모두 함께 일하고, 같은 옷을 입으며 실업도 없고 사유재산도 없이 평화를 누리며 살아간 다. 모든 시민은 2년간의 농촌 생활이 의무이며, 하루 6시간 일하고 10년 에 한 번씩 집을 바꾸며 종교의 자유를 누린다. 죽음은 즐겁게 맞이하고 명예로운 안락사도 허용되며 장례는 유쾌하게 치른다. 유토피아의 모습 은 결국 사적 소유의 포기가 가져다주는 평화로운 공존의 이상사회로 그 려진다. 모어는 2권의 마지막 장에서 다시 자신의 목소리로 화폐가 없는 공유경제는 귀족 정치의 종말을 의미하며 그에 따른 모든 권위의 고귀 함, 장엄함도 사라진다고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모어는 결론적으로
“그렇게 되리라 거의 기대하지 않지만, 유럽에서도 유토피아의 제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고 싶다.”며 끝맺는다.259)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당시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에 기반하 여 새로운 이상세계를 제시하고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사회는 실 현불가능하다고 보았다. 토머스 모어가 말한 기대할 수 없다는 의미는 현실에서 불가능하다는 뜻으로 유토피아는 결국 허구(虛構)라는 것이다.
그래서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원을 가지고 있다. 그
258) 16세기 급성장하고 있던 모직물 공업에 필요한 양모를 생산하기 위해 농경지를 대 단위 목장으로 만들었던 현상을 말한다. 이로 인해 삶의 터전인 농경지를 잃은 농부 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빈민층으로 전락하는 큰 사회적 문제가 야기되었다.
259) 정헌이, 「비 - 장소로서의 유토피아」, 『서양미술사학회 논문집』제41집(서양미술사 학회, 2014), pp.317-318; 토머스 모어, 전경자 역, 『유토피아』(열린 책들, 2012) 참 조.
러나 소위 산업화, 근대화에 따른 과학기술의 발달, 경제와 산업의 발전 은 토머스 모어가 비판했던 사회적 문제를 하나하나씩 보완해 가면서 실 질적이고 구체적인 이상향을 건설해 왔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먼 바다 어딘가에 있을 법한 섬 이야기라면, 오늘날 유토피아는 인간이 거 주하고 있는 바로 이 땅에 실질적으로 구축해 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날 도시는 그 토머스 모어의 염원을 실현해 나가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실현 으로 많은 사람들은 도시에서의 삶을 선망하고 도시로 끊임없이 모여들 게 되었다. 연구자도 오랫동안 도시 속에 살면서 이 도시의 일상을 작품 의 주된 소재로 삼았다. 한편으론 “왜 나는 지속적으로 도시를 탐구하고 묘사하며 이를 바탕으로 창작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있으 면서도 끊임없이 작품의 소재를 채집하기 위해 여기저기 유랑민처럼 도 시를 배회하였다. 그래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연구자의 작품 속에 나 타나는 도시의 모습은 어디에선가 본 듯한, 낯설지 않은 전형적인 도시 의 풍경이 주를 이룬다. 작품〈Wings of Desire〉[도 41]은 낯익은 도시 의 현실경이 나타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모습으로 우상화시켜 표현하였 다. 이는 현대인이 갖는 도시에 대한 환상을 우의적으로 묘사한 것이다.
일상적인 도시의 현실과는 달리 매스미디어에 의해 세련되고 고급화된 이미지로 포장되어 재구성된 도시의 환상은 도시의 실체로부터 점점 멀 어진다. 그렇지만 현대인들은 현실적인 도시를 선호하는 것이 아니라 포 장된 가상의 도시를 꿈속에서 부유하듯이 선망한다. 이러한 가공의 도시 이미지는 일종의 허상(虛像)으로 부양도시 시리즈를 통해 표현하였는데, 도시 공간의 이상화(理想化)에 대한 문제를 평론가 박영택은 다음과 같 이 설명하였다.
나형민은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의 도시풍경을 그린다. 그곳은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풍경, 일상적인 도시풍경이다. 그 풍경은 또한 특정한 장소의 재현 이라기보다는 작가의 관념 속에 자리한 도시, 현실풍경 이미지다. 그는 ‘도시 란 무엇인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이 현실풍경은 어떤 것일까’를 그림 속에 서 질문한다. 마치 산수화가 우주자연의 이치를 규명하고 그 공간을 지배하는 법칙에 대해 사유하는 그림으로서 기능했다면 그에게 도시풍경화는 자신의
삶이 이루어지는 이곳에 대한 해명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그는 자신이 거주 하는 현재의 공간, 풍경을 내려다본다. 관찰한다. 마치 영화 ‘베를린 천사의 시’의 첫 장면에서 천사가 도시를 내려다보듯, 고담시를 내려다보는 배트맨처 럼 말이다. 혹은 번화한 파리를 거닐던 벤야민이나 아니면 도원경을 꿈꾸며 산수를 소요하고 와유하던 옛 선비들의 동선을 연상시킨다. 그는 산수 대신 이곳의 현재 풍경을 다룬다. 그곳을 소요하고 그로 인해 떠오른 단상과 느낌 을 이미지화한다. 그것은 생각의 도상화이자 느낌의 구조화다. 그는 이런 저 런 풍경의 편린을 모아 자신이 보고 느꼈던 도시/현실풍경에 대한 하나의 텍 스트를 기술/ ‘일러스트’한다.260)
도시의 대척점에 있는 산수자연은 전통적인 이상세계관에 의하면 가고 싶고(可行), 보고 싶고(可望), 기거하고 싶고(可居), 궁극적으로 즐기고 싶은(可遊) 동경의 대상이었다. 따라서 산수에 대한 동경은 ‘도법자연(道 法自然)’이라는 이념으로서 많은 예술가들이 표현해 왔으며, 자연을 모방 한 산수화(山水畵)가 원본(자연)을 대신한 와유(臥遊)의 대상으로서 역할 을 하였다. 그러므로 산수화는 사람으로 하여금 진짜 산중에 있는 듯한
‘경치 밖의 뜻(景外意)’과 거기에 살고 싶고 마냥 놀고 즐기고 싶은 맘을 불러일으키는 ‘의미 밖의 묘(意外妙)’가 있어야 한다고 곽희(郭熙)는 말했 다. 이처럼 고상한 운치(高致)가 서려 있는 산수(林泉)가 동경의 대상이 었다면, 도시는 삶의 다양한 편의성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범속(凡俗)의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산수와 도시라는 대립 된 항이 하나는 긍정의 대상으로 또 다른 하나는 부정의 대상으로 설정되어 온 것이다. 도시의 세속적 이미지는 도시의 발생 시점부터 지속하여 왔지만, 부정적인 인식 이 가속화된 시기는 근대화로 인한 산업화, 도시화 이후일 것이다. 근본 적으로 근대화에 따른 도시화는 토머스 모어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예측 했던 이상사회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건립하고자 하는 청사진이었다.
그러나 도시화로 초래된 오염된 환경과 각종 사회 문제, 인간성 상실 등 등의 문제점이 도시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확산시켜 왔다. 특히 욕망충
260) 박영택, 「나형민 ‘경계에 서있는 풍경」, 『나형민 개인전-미지의 경계 The final frontier (개인전 도록)』,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