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프랑클 심리학의 성립과정
3.2. 셸러의 가치철학과 로고테라피
3.2.1. 셸러의 가치윤리학
칸트의 윤리학이 형식윤리학이라면, 셸러의 윤리학은 내용윤리학이다. 프랑클은 칸 트의 형식윤리학 뿐 아니라, 막스 셸러(Max Scheler, 1874-1928)의 가치, 즉 내용윤 리학에서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칸트의 형식주의 윤리학에서 행위의 선한 동기는 의 무의식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칸트의 윤리학이 ‘의무윤리학’이라 불리는 이유이다. 셸 러는 칸트의 공헌과 업적에 대해 평가하면서도 형식주의윤리학의 결점들을 보완했다.
20세기 초반 30년 동안 현대유럽철학의 토대를 놓은 3인의 독일사상가200) 중 한 명인 막스 셸러는 독일 남쪽 지역에 위치한 뮌헨 출신이다. 뮌헨과 베를린, 예나대학 에서 의학과 천문학과 더불어 사회학을 공부했고, 1902년 예나대학 강사시절에 후설 (E. Husserl)을 만나 현상학적 방법론을 연구했다.
198) 빅터 프랭클,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 330-31.
199) 빅터 프랭클,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 334.
200) M. S. 프링스, 막스 셸러 철학의 이해 , 금교영 역 (파주: 한국학술정보(주), 2003), 17. 훗설은 현 상학으로, 하이데거는 현존재론으로, 셸러는 철학적 인간학으로 현대철학의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하 고 있다.
이후 쾰른과 프랑크푸르트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사회학과 종교, 다양한 학문분야에 대해 관심을 가져 연구했다. 특별히 현상학적 방법에 의한 ‘실질적 가치윤리학’의 정 립과 더불어 ‘철학적 인간학’을 창시했다. 더불어 만하임(K. Mannheim)과 함께 ‘지식 사회학’의 창시자로도 유명하다.201)
프랑클의 인간이해에 있어 셸러의 철학적 인간학이 준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환원주의의 벽을 넘어서 인간다움에 대한 철학적 담론, 즉 신체적이고 심리적 차원을 넘어 정신적 차원의 인간론을 구성함에 있어 셸러의 철학적 인간한은 주요한 통찰력 을 제공했다. 프랑클의 소박한 서재에는 프로이트와 함께 셸러의 사진이 함께 걸려있 었다. 프랑클은 셸러의 저서 윤리학에 있어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
Der Formalisums in der Ethik und die materiale Wertethik
을 성경처럼 항상 지니 고 다니면서 탐독했다.셸러는 후설을 만나기 전에 칸트협회(Kant-Gesellschaft, 1905)를 설립한 파이힝거 (Hans Vaihingers, 1892-1933)와 함께 칸트를 연구하며 공동 집필에 까지 참여하고 있었다. 셸러는 칸트를 연구하면서, 칸트의 형식적 가치 윤리를 어떻게 하면 형식주의 단점을 극복하면서 실질적 가치의 윤리학으로 전환시켜갈 수 있을까를 고심했다. 셸 러는 칸트의 형식가치윤리를 실질가치윤리로 전환하기 위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사 물과 이념적인 대상으로서의 가치를 구별하여, 가치의 객관성을 확보하고자 했다.202) 가치가 지속적이고, 분할이 적고 덜 상대적일수록 높은 가치로 평가했다.
칸트가 그러했듯, 셸러의 관심도 인간에게 있었다. 셸러는 인간이해에 대한 세 가 지 전통에 대해서 언급하는데, 유대-기독교적 전통, 그리스 전통, 자연과학과 발생심 리학적 전통을 이야기했다. 유대-기독교 전통은 창조와 낙원에서의 타락에 대한 인간 이해이다. 두 번째 고대-그리스 사상에서의 인간이해인데, 여기에서 인간은 세상에서 의 특수지위를 차지하는 존재로 높였다.203) “인간의 이성은 로고스, 프로네시스 (phronesis), 라치오(ratio), 멘스(mens)의 소유로 말미암아 인간이다. 이 중에서 로 고스는 만물의 본질(Was)을 파악하는 말인 것과 마찬가지로 만물의 본질을 파악하는
201) 막스 셸러, 공감과 본질과 형식 , 이을상 역 (서울: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셸러의 대표작으 로 “윤리학에 있어서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 Der Formalisums in der Ethik und die materiale Wertethik (1916), 공감의 본질과 형식 Wesen und Formen der Sympathie (1923), 사회학과 세계관학에 관한 저작집 Schriften zur Soziologie und Waltanschauungslehre (1923),
지식의 형태와 사회 Die Wissensformen und die Gesellschaft (1926), 우주에서의 인간의 위치 Die stellung des Menxchen im Kosmos (1928) 등이 있다.
202) 셸러의 큰 업적은 가치의 객관적 서열을 확보했다는 점인데, 가치의 위계(hierachy of value)로써 가장 낮은 감각적 가치(쾌와 불쾌의 상태), 다음 단계인 생명가치(감각가치 근저에 위치), 정신‧문화적 가치(진리탐구와 예술과 문화 창작가치), 최고의 가치는 성(聖)가치(인격의 발현으로 절대적 윤리가치) 로 구분했다. 이을상, 「막스 셸러의 양심론: 르상티망과 가치적대의 극복」, 코키토 제63집 (2008), 225. 이을상은 셸러의 가치서열을 잘 설명하고 있다. “셸러의 입장은-요약하면-다음과 같다. 첫째로 모든 가치의 존재는 재화로부터 귀납적으로 경험된 것(즉 귀납적 경험의 사실)이 아니라 선천적 실질 내용이다. 따라서 가치는 모든 목적설정의 근저에 미리 주어져 우리 노력이 발동되는 것을 제약한다.
둘째로 이러한 실질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할 때, 선은 가치서열과 관계한다. 이러한 가치서열과의 관 계가 곧 ‘도덕적 사실’이다. 셋째로 도덕적 사실은 합법칙적/반법칙적인 순수 이성의 사실이 아니라
‘현상학적 사실’이다. … 셸러는 먼저 가치가 주어지는 방식에 따른 가치양상을 감성적 쾌적 가치, 생 명가치, 정신적 가치, 신성의 가치로 구분하고, 각각의 가치에는 이를 느끼는 담지자를 대응시킨다.”
203) 막스 셸러,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 진교훈 역 (서울: 아카넷, 2001), 17-18.
능력도 의미 한다”204)고 말한다. 세 번째 자연과학과 발생심리학적 인간이해는 지구 의 진화과정 중에 가장 후기의 산물로 보는 입장이 있다.205)
셸러는 인간의 본질을 식물과 동물과의 관계를 고찰한 후에, 인간의 특수 형이상학 적 지위를 다루어 간다. 흥미롭게도 셸러의 세심한 관찰은 동물의 지위 또한 잘 설명 하고 있다. 그는 “동물의 선택행위를 부정하고 언제나 그때그때 강력한 개별적인 충 동만이 동물을 움직이게 한다고 함부로 생각하는 것은 잘못”206)이라고 말한다. 동물 은 자동기계도 아니고, 단순한 충동존재가 아니라는 점을 설명한다. 동물에게서는 도 우려는 자세와 화해 등과 같은 모습들을 발견한다고 이야기한다. 셸러는 동물과 인간 의 근본적인 차이를 가치들에 대한 선취와 의향에서 찾고 있다.
동물이 확실히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은, 우선 가치들 자체 중에서 선취(選取)하는 것이 다. 예컨대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재화(財貨)와는 독립해서 유용의 가치를 쾌적의 가치 보다 선취하는 것을 동물은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동물은 가치에 밀접하게 속해 있는 의향(Gesinnung)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동물은 모든 지능과 관련해서 보다는 애정적인affektiv 면에서 훨씬 더 인간에 가깝다. 우리는 선물, 도우려는 자세, 화해와 이와 유사한 것을 동물에게서 이미 찾아볼 수 있다.207)
셸러의 철학은 다예성으로 인해서 어떤 철학에 명확하게 연결시키기 어려운 면이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그리고 칸트와 니체까지 논하 고 있고 한계를 날카롭게 비판하는 학자이기 때문이다. 셸러의 철학은 독창성을 지녔 음에도 특정 사상과의 직접적 관련을 맺고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후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질직관, 본질의 선논리적 직관은 셸러철학에서 가장 우선적인 것이 다.208) 프링스는 셸러의 철학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철학적 인간학’이라고 말한다.
셸러의 제일 관심사인 철학적 인간학은 ‘인간이 무엇인가’란 문제의 분석을 취급한다.
셸러에 의하면 인간을 그 대상으로 삼는 모든 과학들 예컨대 생물학, 의학, 형질학, 심 리학, 민족학, 사회학, 역사학 등등에 그 토대는 바로 철학적 인간학이라는 것이다. 그 리고 인간의 형이상학적, 심적, 신체적, 그리고 정신적 기원을 취급하고, 인간의 생물학 적, 영혼적, 사회적, 역사적 발달의 근본적인 방향들과 법칙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활력 적, 신체적, 심적, 정신적 영역(개인적 정신, 집단정신, 공동체정신, 문화적 정신)의 결 정을 취급하는 것이 바로 철학적 인간이라는 것이다. 칸트는 이미 모든 철학적 문제들 은 궁극적으로 ‘인간이 무엇인가’하는 문제로 귀결한다고 주장했다.209)
셸러는 인간을 정신적 존재로써 동물들과 존재론적 단계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고
204) 막스 셸러,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 17-18.
205) 막스 셸러,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 18.
206) 막스 셸러,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 58.
207) 막스 셸러,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 58-59.
208) M. S. 프링스, 막스 셸러 철학의 이해 , 22.
209) M. S. 프링스, 막스 셸러 철학의 이해 , 25.
보았다. 동물들은 자연적 환경과 신체적 성향에 묶여 있지만, 인간은 정신적 존재로 새로운 영역을 향하여 개방되어 있다고 보았다.210) 셸러는 환원론적 인간론을 비판했 다. 인간의 본성을 총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지엽적인 부분들의 강조로 환원시킨, 앞선 철학들의 환원적 인간이해는 부적절하다고 말한다.
인간과 고등동물 사이의 차이가 어디에 있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셸러는 여기에서 두 가지의 입장을 거부한다. 즉 동물들은 실제적 지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는 입장과 인간은 다만 동물성의 진화적 연장선 속에 있는 존재일 뿐이고(다윈), 동물들과 똑같은 능력을 가지나 다만 더 복잡한 존재이며, 정신적, 심적 영역이 궁극적으로 지각 경험과 충박에 뿌리박고 있는 도구적 동물(베르그송의 ‘공작인’)이라는 입장을 거부한다. 셸러 에 의하면 인간과 동물 간의 본질적 차이는 정신이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정신은 인간의 삶을 충동 활동으로부터 그리고 환경의 구속으로부터(근본적으로 환경에 구속되 어 있는 동물들과는 정반대로) 훌륭히 해방시켜 준다. 이것이 셸러가 ‘세계 개방성’이라 고 부르는 것이다.211)
인간의 세계 개방성은, 도덕적으로 가치 있는 인간은 고립된 인격이 아니라 근원적 으로 외부와 관계 맺는 존재이다. 세계를 향하여 정신적 세계와 인류 전체에 대해 연 대적으로 하나 되고 있는 것을 실감하는 인격이다. 이러한 연대성의 원리는 소위 개 인주의와 같은 시대적 사조와 대립하여 공동책임을 지는 열린 존재로 보았다.212) 인 간은 실상 부단히 자신의 삶을 확장해 가는 존재다. 동물이 자신의 세계에 몰입되는 것과 달리, 인간은 환경세계에 구속되지 않고 일탈하고 해방할 수 있는 존재라고 보 았다.
실상 인간은 부단히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간다. 동물이 자신의 세계에 몰입되어 살고 있 다면, 인간은 자신의 세계에 몰입하지 않고 때로는 그로부터 일탈하고 개방되어 살고 있다. 동물은 그의 존재 구조상 생명층으로만 되어 있지만, 인간은 그의 존재 구조상 두 개의 층 즉 생명층과 정신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하여 동물은 생명적 삶밖에 살 지 않지만, 인간은 정신적 삶도 산다. 그리하여 동물은 생명적 삶밖에 살지 않지만, 인 간은 정신적 삶도 산다. 동물이 생명적 삶만 삶으로써 그의 환경세계에 구속되어 있지 만, 인간은 정신적 삶도 삶으로써 정신층이 발휘하는 정신적 작용으로 말미암아 그의 환경 세계로부터 일탈하고 해방할 수 있다. 그래서 인간은 또 다른 더 넓은 세계를 소 유하게 된다.213)
210) M. S. 프링스, 막스 셸러 철학의 이해 , 41-42.
211) M. S. 프링스, 막스 셸러 철학의 이해 , 44.
212) 김용섭, 「하르트만과 셸러의 인격에 관한 연구」, 철학논총 제21집 (2000), 262.
213) 금교영, 막스 셸러의 가치철학 (고양: 한국학술정보, 2003), 128. 막스 셸러,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 64. “결정적인 원리인, 저 정신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 정신적 존재의 근본규정은, 그것이 심리적‧물리적으로 어떤 성질을 지니고 있든지 간에, 정신은 유기적인 것으로부터 실존적으로 해방되 어 있다는 것이며, 정신은 자유라는 것, 다시 말해서 정신은 강제로부터, 압력으로부터, 유기적인 것 의 예속으로부터,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속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따라서 또한 그 자신의 충동적인
<지능>으로부터도 해방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자유는 정신의 현존재의 중심체로부터의 자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