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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클의 칸트철학 사용

Dalam dokumen 비영리 (Halaman 57-79)

Ⅱ. 프랑클 심리학의 성립과정

3.1. 칸트의 도덕철학과 로고테라피

3.1.2. 프랑클의 칸트철학 사용

칸트는 인간이해를 궁구한 학자다. 그는 순수이성비판 에서 이론지식의 작동방법 을 논한다. 지식은 객관성과 보편타당성을 가져야 하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예 로, 1+1=2)이 이의 없이 동의되고 수납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폈다. 어떻게 보편 타당한 지식이 확보되고, 또 기준을 누가 정할 수 있는지? 어디까지가 공정한 원칙이 고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것인지를 논했다. 이론적 지식의 정도가 어떻게 결정되 는지? 실천적 행위에서 도덕적 행위의 준거를 어디에서 가늠할 수 있는지? 미적 판단 에서 아름다움의 판단의 객관적 기준이 무엇인지 물었다. 과연 객관적 지식과 실천, 아름다움이 존재하는지?

그의 3부작 순수이성비판 , 실천이성비판 , 판단력비판 은 결국 ‘인간이란 무엇 인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모아진다. 인간지식의 객관성은 확보될 수 있는지, 인간 의 행위와 도덕성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인간의 미적 판단의 기준은 무엇인지 에 대한 물음은 결국 인간에 대한 물음이다.

칸트는 훗설의 현상학에서 제시하는 전제 없이 ‘직관’으로 학문이 가능하다는 주장 을 비판했다. 칸트의 인간 인식능력은 단순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이론인식과 도덕실 천과 더불어 종교적 희망이 어우러진 전체적 지식을 의미한다. 인간의 이론지식의 가 능성의 조건, 도덕실천의 가능조건, 종교희망의 가능성의 조건에 대한 비판을 지속했 다.

칸트의 비판의식은 인간인식 능력 자체에 대한 비판이고, 이는 소크라테스의 계승 이라고 말할 수 있다. 본질적 물음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칸트는 ‘자기동일성’이 전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적 존재’라는 전제가 없다면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인 식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지 않은 자기동일성이 부인되면 객관성을 확보하기가 힘들다. 칸트는 ‘영혼불멸’, ‘세계’ 그리고 ‘신’이라는 세 가지가 요청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선험적 이념들은 이성의 한계 안에 서 다룰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파악하는 세계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세계 혹은 있다는 말은 한정된 공 간에서 세계를 설명하는 일이다. ‘세계 그 자체’를 대상으로 보편타당하게 설명하기에 한계를 가진다. ‘나’ 또한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어린 시절의 사진을 현재의 모습과 비교해 보면 낯설다. 동일성을 가진다는 전제가 있어야 인식의 주체가 설 수 있다.

칸트는 나는 찾아지는 것이 아니지만, 나를 지칭하고 있는 동일한 자신이라는 근거 즉, ‘영혼’이 ‘불멸’한다는 동일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도덕 판단의 기준으로 판결자를 요청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신’이다.

칸트는 ‘초월적 이념’이라 말하지 않고 ‘선험적 이념’이라고 말한다. 이는 초월적 존

재에 대한 학문적 설명이 ‘선험적 이념’인 것이다. 우리의 이성과 인지 능력과 연관해 서 ‘선험적’이라고 표현한다. ‘전제’란 언제나 그 존재를 전제하고 인정한다는 것이지 만, ‘선험’은 존재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알지 못하지만 그것을 가정한다는 의미다. 칸 트는 인간에게 공통으로 주어진 판단능력이 있다고 보았다. 신처럼 인간을 이성적 존 재로 보았고, 이성(Idee)은 이론적으로 반박할 수 없는 존재개념으로 요청하고 있다.

이성의 존재에 대해서는 불가지론적 입장을 취하지만, 정합성을 위해서는 요청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보았다.

칸트에게 있어 인간은 결코 수단화 될 수 없는 존재다. 인간은 경제적인 삶의 도구 가 되거나 특정한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될 수 없는 존엄성을 지닌 존재로 파악했다.

인간의 삶은 생명과 존재 그 자체가 의무이며, 유일하고도 위대한 책임을 지닌다고 주장했다. 프랑클은 칸트의 정언명법 두 번째 공식을 인용한다.

칸트 자신은 그의 정언명법 두 번째 공식에서 말했지요. 각각의 사물은 그 가치를 지니 지만 인간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닌다. 인간은 결코 목적을 위한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 다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지난 몇 십년간의 경제 질서 속에서 노동하는 인간들 대부 분이 단순한 수단으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존엄성을 박탈당한 채 경제적인 삶의 수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노동은 더는 목적을 위한, 삶을 위한 수단이, 생계수단이 아니었습니 다. 오히려 인간과 그의 삶이, 그의 생명력이, 그의 노동력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습니 다.128)

인간의 가장 최고의무는 삶 자체이다. 쾌락이나 권력이 최우선 목표일 수 없다고 보 았다. 행복은 목표라기보다는 삶의 의무를 다할 때 맺혀지는 열매와도 같다고 본 것 이다. 행복은 자연스럽게 익어가는 실과이고 따라온다고 보았다. 파랑새를 쫓아가듯 행복을 위해 애를 쓰고 노력을 기울일수록 실패할 수 없다고 말한다. “행복의 문은 바깥으로 열린다”는 키에르케고르의 표현을 빌어 행복의 문은 억지로 들어가서는 열 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행복은 안에서부터 밖으로 열리는 것이라 주장했다.129)

칸트에게 행복은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다. 칸트 역시 행복추구를 부인하지 않았 으나, 칸트는 프랑클이 의미를 따라 가는 존재로 파악한 것처럼, 자신 밖에 있는 문 화 성취를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라고 보았다. 인간은 문화를 성취하기 위해 고통 을 지불할 수 있다고 보았다. 아픔과 땀이 지불되어 발전하는 인류역사의 발전을 통 해 결국 새로운 문화가 창출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행복 자체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문화를 성취하기 위해 겪게 되는 불행처럼 보이는 고통조차 ‘의미’가 될 수 있다고

128) Viktor E. Frankl,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 , 15.

129) Viktor E. Frankl,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 , 34. Viktor E. Frankl, 심리의 발견 , 15-16. “칸트 역시 인간은 행복을 추구하는 존재임을 인정하고, 다만 거기 덧붙여 인간은 행복해질 자격 또는 얻기 위해 애쓴다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저는 인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행복해지는 것 이 아니라 행복해질 수 있는 이유라고 말하겠습니다. 행복해질 이유가 있으면 행복과 쾌락은 저절로 찾아옵니다. 칸트는 저서 인류의 형이상학 의 두 번째 장 「덕망의 가르침에 대한 첫 형이상학적 이 유들」에서 말했습니다. ‘의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면 행복은 결과로 따라온다.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법을 준수해야 한다.’”

보았다. 의미에 집중하게 될 때, 행복은 따라 온다는 것이다.

프랑클은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즉 내 자신 안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 하지 않고, 삶이 물어오는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내가 아직도 삶에 무엇을 기대해야 하는지” 물어서는 안 되고, 물어야 할 것은 “삶이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가?” “삶 속에 어떤 의무가, 어떤 과제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가”를 물어야 한다 고 말한다. 삶의 의미 물음에 대한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130)

인간은 삶의 의미를 추구하고 물어가는 존재가 아니라, 도리어 삶이 물어오는 질문 에 응답하는 존재요, 삶에서 기다리는 과제에 대하여 질문 받은 존재라고 보았다. 던 져지는 질문은 시간과 사람에 따라 완전히 다르고 고유하다. 매순간 각자에게 던져지 는 삶의 물음은 독특하고 특유할 수밖에 없다. 시간에 따라 차이를 가질 뿐 아니라 사람에 따라 각자마다 저마다의 독자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삶의 범위 가 유일무이한 상황들은 모든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에 의해 대 체될 수 없고, 다른 이가 대신할 수 없는 당사자에게만 주어진 고유한 의무와 삶의 물음이 있고, 여기에 답할 사람은 오직 그 사람뿐이다.

사람은 숨 쉬는 한 삶의 물음에 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인간의 현존은 마지막 숨 을 거둘 때까지” 의미 있게 형성될 수 있고, 호흡이 머무는 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물음에 대답해야 할 책임을 짊어지고 있다.131) 프랑클은 칸트의 말을 인용해, 삶의 책임은 정언명법적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그 앞에선 전율하지만 결국엔 어찌해서인지 기뻐하며 마주 설 수 있게 되는 책 임을 알아보게끔 하는 것이지요. 말하자면 일종의 정언명법입니다. “마치 … 인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는 공식 말입니다. 이것은 칸트의 유명한 준칙과 형식상 유사하지요.

공식은 대략 다음과 같습니다. “마치 네가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라.

첫 번째 삶에서 네가 지금 막 하려고 하는 그런 행동 때문에 모든 것을 망쳐 놓았던 듯 여기면서 그렇게 살아라!”132)

프랑클은 인간의 자유는 책임에서 나온다고 파악한다. 삶이 물어오는 질문 앞에 대 답할 수 있는 책임을 통해 인간의 자유를 길어낸다. 죽음의 수용소와 같은 모든 것이 차단되어진 삶의 현실 앞에서, 칠흑 같은 어두운 절망적 상황 앞에서도 인간은 주어 진 삶의 상황이 물어오는 질문에 대답하고,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잃지 않는 다고 보았다. 순간마다 물어오는 질문들에는 그 물음에 걸 맞는 고유한 답이 있다고 보았고, 그것이 삶의 의미라고 보았다.

프랑클은 삶이 각자에게 물어오는 질문에 대한 답에 있어 그 책임과 선택은 인간 자신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각자에게 고유한 해답의 결정권과 자유가 잇 다는 것이 방종으로 치달아가서는 안 된다는 점도 덧붙인다. 인간은 주어진 상황 속

130) Viktor E. Frankl,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 , 35.

131) Viktor E. Frankl,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 , 49.

132) Viktor E. Frankl,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 , 56-57.

Dalam dokumen 비영리 (Halaman 57-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