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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와 생의 맹목적 의지

Dalam dokumen 비영리 (Halaman 107-118)

Ⅳ. 의지철학과 로고테라피

4.1. 쇼펜하우어와 생의 맹목적 의지

쇼펜하우어(1788-1860)는 부유한 사업가였던 하인리히 플로리스 쇼펜하우어 (Heinrich F. Schopenhauer, 1747-1805)와 소설과 수필작가로 유명해진 요한나 쇼 펜하우어(Johanna H. Schopenhauer, 1766-1838) 사이에서 출생했다. 아버지 하인 리히는 아들의 이름을 영국식으로 하자면 ‘아서(Arthur)’에 해당하는 ‘아르투어’로 지 었다. 어린 시절 가정교사로부터 교육을 받았고, 사립 직업학교에 들어가 사업가가 되 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에게 김나지움에 보내달라고 요구했으나, 아버지는 불필요하다고 보았고, 인문학 공부대신 여행을 권했다. 어린 아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해 가족 세계여행을 제안했다. 쇼펜하우어는 아버지의 뜻을 따가 사업가가 되기로 약속을 하고 1803년 봄에 여행길에 올랐다.307)

아버지의 권유를 수락한 쇼펜하우어는 네덜란드, 영국,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과 같은 유럽전역을 2년에 걸쳐 여행했다. 프랑스 해변 무기 공장에서 흑 인들이 쇠사슬에 묶여 마음대로 죽을 수도 없는 상태로 격렬한 노동하는 장면을 목도 했고, 파리에서 단두대에 목이 달아나는 장면, 런던에서 사람들이 공개 처형되는 모습 들, 빈민가의 거지들이 경찰들에 의해 질질 끌려가는 장면들까지 험한 모습들을 목격 했다. 마치 석가모니가 궁궐 밖에서 고통의 장면들로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쇼펜하우 어는 삶의 모습에 경악했고, 이 여행경험을 통해 목격한 일들의 영향으로 인해 삶이 비루하다는 생각이 각인되었다.308)

고통의 현장을 목격한 쇼펜하우어는 삶이 무엇인가에 대한 강한 의문을 가지게 되 었고, 이러한 고민이 그의 철학의 토대가 되었다. 1805년 함부르크로 돌아온 후 사업 수업을 받았고, 아버지의 뜻에 따르는 충실한 아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같은 해 4월 20일 뜻하지 않은 일이 발생하면서 그의 인생은 큰 전환점을 맞이한다. 아버지가 창 고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우울증과 귀머거리 증세 그리고 부부갈 등으로 고통 속에서 자살하고 말았다.

아버지의 사업을 정리한 쇼펜하우어는 이전부터 갈망해왔던 김나지움으로 진학했 다. 평생 가난과 벗 삼아야 했던 칸트와 달리 그는 사업가였던 아버지 덕택으로 부유 함을 물려받았고, 재정적 어려움 없이 원했던 공부에만 몰두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누릴 수 있었다. 이미 그는 영국과 프랑스에 살면서 불어와 영어를 익혔고, 김나지움 진학을 위해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배웠다. 더불어 스페인어를 배워 발타자르 그라시 안의 세상을 보는 지혜 를 번역하기도 했다.309)

1809년 성인이 된 쇼펜하우어는 모친으로부터 이미 소비하고 남은 유산의 1/3을

307) 김선희, 철학자가 눈물을 흘릴 때: 쇼펜하우어&니체 (파주: 김영사, 2014), 36.

308) 홍성광, “프랑크푸르트의 괴팍한 현자 쇼펜하우어의 고독한 삶과 작품”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의 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 홍성광 역 (서울: 을유문화사, 2017), 778-79.

309) 홍성광, “프랑크푸르트의 괴팍한 현자 쇼펜하우어의 고독한 삶과 작품”, 780-81.

받고서 생계유지에 걱정을 덜고, 과팅겐 대학에서 플라톤과 칸트철학에 천착한다. 이 기간 플라톤과 칸트 뿐 아니라 슐체의 논리학, 형이상학과 심리학 강의를 수강했고, 지보로부터 수학, 헤르에게서 고대사와 근대사 및 십자군의 역사와 민족학을, 류더에 게서 독일제국사를, 브루메바흐에게서 자연사와 광물학, 생물학, 비교해부학, 헨펠에 게서 인체 해부를, 슈트로마이어에세거 화학을, 토비아스 마이어에게서 물리학과 천체 물리학을, 슈라더에게서 식물학을 각각 배웠다.

23세가 된 그는 철학을 공부하기로 마음먹고 베를린대학으로 갔고,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학, 화학, 물리학, 천문학, 지질한, 생리학 등을 두루 익혔고, 피히테와 신학자 슐라이어마허와 같은 당대 최고의 거물들에게서 직강을 들었다. 피히테의 강의를 들 으면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장시간 토론을 하기도 했다. 박사학위 논문으로 「충분근거 율의 네 겹의 뿌리에 관하여」를 제출하여 베를린대학에서 학위를 취득하려 했으나, 나폴레옹의 원정으로 불안해진 상황으로 베를린에 접근할 수 없어 예나대학에 논문을 보내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310)

쇼펜하우어는 칸트와 헤겔로 대변되는 근대 이성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의지 중심주 의로 대체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의지형이상학을 정초했다.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칸 트가 현상이라고 규정하고 불렀던 부분이다. 표상311)의 세계 배후에 쇼펜하우어는 ‘의 지312)’가 존재하고 있다고 파악했다. 이 의지는 칸트에게 있어 ‘물자체’에 해당한다.

물자체로서의 의지는 ‘삶에의 의지’로 세계의 근본내용이자 본질이다. 플라톤이 주장 한 현상계와 이데아계의 구분하고, 칸트가 예지계와 현상계의 구분했다면, 쇼펜하우어 는 표상의 세계와 의지의 세계로 구분했다.

우리는 결단코 주관을 인식하지 못한다. 주관이라는 인식되는 것을 인식하는 데 그치는 것이다. 또한 표상으로서의 세계, 우리가 지금 여기 서서 관찰하고 있는 세계는 본질적 으로, 그리고 필연적으로 불가분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하나는 객관이고 그 형식은 시간과 공간이며, 이것을 통하여 다양성이 생기게 된다. 또 하나는 주관이며, 이것은 시간이나 공간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주관은 전혀 부활되지 않고 표 상하는 모든 존재 속에 있기 때문이다. … 이 양자(兩者), 주관과 객관은 불가분의 관계 에 있으며 사유(思惟)속에서도 불가분이다. 왜냐하면 양자 중에서 각각 타방(他方)에 의 해 타방에 대해서만 의미를 갖고 존재하기 때문이다. 타방이 있어야만 일방(一方)이 있 으며, 타방이 없으면 다른 일방도 소멸되어 버린다.313)

쇼펜하우어는 칸트의 전통을 이어받았지만, 칸트가 물자체에 대해 접근 불가능한

310) 홍성광, 「프랑크푸르트의 괴팍한 현자 쇼펜하우어의 고독한 삶과 작품」, 782-83.

311) 표상은 외적 대상이 우리의 지각을 통해서 우리 의식에 드러나는 심상을 뜻하는 것으로, 표상개념 은 과념과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하며, 직관적 의식의 내용을 나타내기도 한다.

312) 의지란, 무엇을 하려는 마음의 작용을 뜻한다. 넓은 의미로는 모든 생물의 작용을 발생시키는 동기 로 원하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계속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하고, 좁은 의미로는 의식적이고 자발적인 행동을 일으키는 동기와 원인을 뜻한다. 쇼펜하우어에게 있어 의지는 넓게는 무기물에 이르기까지 모 든 생명존재가 지니고 있는 바탕이다.

313)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外 , 김중기 역 (서울: 집문당, 1995), 32-33.

대상으로 간주한 것과 달리 의지 자체가 물자체라고 파악했다. 모든 객관은 표상이며, 의지는 물자체로 간주한 것이다. 드러나는 모든 객관사태는 의지가 드러난 것이며, 모 든 가시적인 사태들이 곧 의지의 객관화로 파악한 것이다. 그는 우리에게 드러나는 현상세례는 단지 표상의 세계일뿐이라고 보았다.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우리에게 현상 적인 객관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 셈이다.

칸트에게 현상은 인과성의 법칙에 포섭되지만, 지성계의 물자체는 인과성의 법칙에 서 자유롭다. 이와 같이 쇼펜하우어의 물자체로서의 의지 또한 인과성과 충족율에 구 속되지 않는다. 이것은 불러 ‘의지의 무근거성(Grundlosigkeit des Willens)라고 부 른다. 하나의 동일한 의지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다양한 형태의 현상으로 드러나는 것이 개체화 원리에 의해서 구체화되는 의지의 형이상학적 모습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가 드러나는 객관화의 가장 밑바탕에 자연의 힘이 있다고 보았 다. 모든 자연은 삶의 의지의 표현이며, 삶의 의지의 충족이라고 할 수 있다. 전체 자 연은 삶의 의지의 표현이며, 한 개체의 죽음에 아무런 상처를 내지 않는 것처럼 생멸 의 위험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파악했다.

인간에게 드러나는 표상으로서의 세계는 쾌락과 고통의 연속이다. 권태와 고통을 오가는 시계추처럼 반복되는 일상314) 속에서 인간은 부단히 삶의 의지를 긍정치 않으 면 안 된다고 보았다. 쇼펜하우어의 시선에서 파악되는 인간은 자유로운 의지의 현상 임과 동시에 자유로운 존재가 아니었다. 인간 의지의 자유로운 의욕과 욕망은 이미 결정된 현상으로 이유율의 지배 아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판단 에 따라 선택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임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바로 이것 때문에 동기 의 지배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라고 보았다.

칸트와 마찬가지로 쇼펜하우어 역시 인간의 존엄을 확보하기 위한 물음에 천착했 다. 인간은 자연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이유율과 동기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 재다. 그럼에도 경험적 성경 속에서도 예지적 성격을 지님으로 의지에 있어 가장 완 전한 현상으로 인간을 파악한다. 쇼펜하우어는 인생에 대해 이상적인 껍질을 벗겨내 고 삶의 부조리와 무상성에 대해서 남김없이 드러낸다. 인간의 물리적 삶 곧, 신체적 삶은 파멸과 죽음을 잠시 보류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직시한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근원적 고통 속에 있다고 파악하면서 불행한 상태에 머물러 있다고 말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과거의 생활이 괴로웠다거나, 혹은 즐거웠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방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언제나 그 사람의 손아귀를 거쳐서 과거로 옮아간다. 장 래는 매우 불확실할뿐더러 짧은 것이다. 이리하여 그 인간의 존재는 이미 형식상으로만 보더라도 현재의 죽은 과거의 탈락, 끊임없는 사멸인 것이다. 물리적인 측면에서 고찰 해 보더라도 우리의 발길이 쓰러지려는 것을 단지 간신히 지탱하고 있는 데 불과한 것 처럼, 우리의 육체의 생활이 끊임없이 언제나 죽음을 방지하고 있는 것, 즉 연기된 사 망이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 그러나 결국 모든 욕망의 근원은 동물이나 인간이 본질적으로 본래 지닌바 부족·결핍 그리고 고통이다.315)

314)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外 , 53.

Dalam dokumen 비영리 (Halaman 107-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