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프랑클 심리학의 성립과정
3.2. 셸러의 가치철학과 로고테라피
3.2.2. 프랑클의 셸러철학 사용
프랑클은 셸러의 ‘가치철학’에서 깊은 통찰력을 얻었다. 셸러가 가치260)의 내용을
257) 막스 셸러,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 69-70.
258) 막스 셸러,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 , 78-79.
259) 정인석, 의미 없는 인생은 없다 , 50.
260) 금교영, 막스 셸러의 가치철학 , 129-30. “가치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필자의 안목으로 가치란 인간의 의식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본래 고유하게 존재해 있는 것이다. 가치는 우리 인간의 의욕, 의 지, 욕구의 방향에 따라 산출되어지는 것도 아니요, 어떤 이념, 규범, 척도가 먼저 존재하여 그것에 의거해서 결정되어지는 것도 아니요, 순수 실천이성의 지상명령에 대한 준칙의 합당 여부에 따라 성 림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가치는 플라톤의 Idea처럼 이념적인 것이면서도 결코 이데아와 같은 것이 아니다. 이데아는 이념에만 존재해 있고 현상계에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원형으로서 그 역할을 한다.
그런데 가치는 이념계에 존재하면서도 그의 본질적인 완성을 조금도 훼손함이 없이 동시에 현상계에 내재하고 있다.”
계층으로 구성하여 제시하는 것처럼, 프랑클은 가치의 세 가지 유형을 통해 의미의 내용을 부여하고 있다. 첫째가 창조적 가치이고, 둘째는 경험적 가치, 마지막은 태도 적 가치이다. 첫 번째 창조적 가치는, 인간의 창의성으로 자신과 세상에 대하여 의미 를 부여하는 능력을 뜻한다. 세상과 이념계에 가치가 존재하더라도, 의식하지도 의미 를 부여하지도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인간은 의미를 실현할 수 있는 존재이고, 창조적 가치를 통해 의미를 가치를 길어내는 존재라는 것이다.
‘가치실현’이란 개념은 이념계에 있는 객관적이고 자립적인 가치를 우리 인간이 실재 세계에 구현시킨다는 뜻이고, ‘의미부여’란 것도 원래 이념적 존재의 의미를 우리 인간 에 대해서 존재케 한다는 뜻이다. ‘가치’와 ‘의미’가 비록 이념계에 객관적이며 자립적 인 존재로 존재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우리 인간이 의식하지 못하고 그냥 놔두어 버린 다면 우리 인간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것과 우리 인간의 정신이 관 계 맺음으로써 비로소 그것이 일상의 ‘가치’와 ‘의미’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넓은 견지 에서 볼 것 같으면 ‘의미’도 기실 ‘가치’의 범주에 속한다.261)
‘의미’에 대한 여러 견해들이 있어왔다. 플라톤은 현상계에 존재하지 않는 이데아의 초월성을 의미로 보았다면262), 칸트는 내면의 세계 혹은 가상계, 실천이성의 입법계가 논하고 있는 ‘의미’의 세계로, 실천이성에 의해서 존재하는 것이다.263) 이와 달리 하
261) 금교영, 막스 셸러의 가치철학 , 127.
262) 금교영, 막스 셸러의 가치철학 , 148-49. “그는 모든 존재들 가운데 ‘의미’의 존재를 가장 우월시 하고, 그것이 가장 높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미에 관한 그의 형이상학적 근본 명제를 현대적 용어 법으로 표현한다면, “모든 존재자들은 의미를 지향해 있다.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의미의 원 리에 의해 지탱되고 보존되며, 존재로의 모든 생성은 동시에 의미의 실현이기도 하다. 이 근본 명제 에서 진술하고 있는 이데아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고 지탱‧보존되며, 모든 존재자의 생성은 현상계 내 에로의 이데아의 불완전한 나타남이고, 따라서 모든 존재자들이 이데아를 지향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 … 플라톤에 의하면 이데아는 현상계에도 존재하지 않고, 우리 인간의 의식 속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그 자체적으로 존재하고 완전성을 보존하면서 존재 하는 것이다. … 이데아의 이러한 존재 즉 이념계에만 있음은 곧 이데아의 초월성을 의미하고 있다.
플라톤 철학의 그 어디에서도 이데아 그 자체의 현실계에로의 실현은 말해지고 있지 않다. 이데아는 그의 온전성을 훼손한다 해도 현실계로 출현할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이데아에게는 우리 인간의 정신 도 아무런 역할을 가하지 못한다. 인간의 정신이 관계함으로써 이념계에 있는 이데아가 움직이거나 변화하는 것도 아니고, 현상계에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이데아는 그 무엇으로부터도 간섭 을 받지 않는 자존자족하고 영구불변의 부동하는 존재인 것이다. 플라톤에 있어서 의미는 바로 이러 한 이데아인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에서는 의미의 ‘초월성’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오히려 플라톤은 이데아라 할 수 있는 의미가 사물들을 자신에게로 이끌어 올린다고 생각한다. 뒤에 아리스토텔레스는 의미의 이런 성격을 고려하여, 의미를 ‘부동의 원동자’라고 말했다.”
263) 금교영, 막스 셸러의 가치철학 , 149-52. “당위는 인간에게 외적으로 강제된 것이 아니고, 그 자 신의 것, 그의 본질에서 나온 것, 그의 의지에 적합한 그런 것이다. 실천이성은 개인의 이성은 아니지 만 신의 이성도 아니다. 그것은 類(류)로서의 인간이성, 즉 그의 본질에 속해 있고 그의 본질을 이루 는 그러한 이성이다. 당위는 인간 내면에서부터 우러러 나오는 것이다. 양심의 소리이다. 어떤 사태 혹은 상황의 바람직하지 못함을 알고 바람직한 그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곧 당위라 할 수 있고, 또 실천이성에 의해 내려지는 무상명령이 당위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실천이성은 전 인류 개개인에게 한 결같이 공통적으로 주어져 있고 보편타당한 척도를 갖고 있는 것이다. 당위는 인간에게 세계 내에서 실현해야 할 과제를 부여하고, 인간이 이뤄내야 할 사명과 지향해야 할 목표를 부여한다. … 인간사 에 자유가 있고 그럼으로써 그 자유가 허용하는 인간 자신의 자율성이 확보된다. 이 자율성에 따라 우리 인간은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 그런데 칸트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그의 내면의 세계로부터 우 러러 나오는 ‘당위’ 또는 ‘의무감’에 의해서 자율성을 규제하게 된다. 그러면 현상계에서는 없던 그것
르트만과 셸러를 위시한 가치철학자들은 의미는 인간의 의식과 상관없이 선천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으로 인간으로서 지향해야 할 삶의 목표라고 설명한다.264) 금교영은 셸러의 의미를 부여하는 존재, 인간에 대 설명하면서 “현실세계에 존재해 있는 모든 의미는 우리 인간이 부여한 것이다. 우리 인간이 저 객관적으로 존재해 있는 ‘이념적 의미’를 순수 현상학적 경험으로 직관하고, 그 직관된 현상 세계에 구현시킨 것이 바 로 그 ‘의미’라는 것”265)이라고 정리하고 있다.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는 ‘이념적 의미가 실현되는 장소’로써, 세계의 역사는 이념적 의미에 의해 추동되는 과정이다. 인간은 공동체로써 의미를 부여하며 세상을 가치와 의미로 구성해나가는 것처럼, 개개인 역시도 삶은 의미를 실현해 나가는 걸음으로 파 악하고 있다. 셸러의 의미부여의 능력에서 영감을 얻은 프랑클은 로고테라피에서 창 조적 가치, 즉 삶의 모든 영역에 가득한 의미를 발견하고 창조하는 인간의 능력에 주 목하여 의미 없는 인생이 없음을 천명했다. 의미상실로 실존공허에 빠진 이들을 치료 하기 위한 탁월한 약재를 셸러의 가치철학에서 길어내었다.
프랑클은 또한 두 번째 가치로 경험적 가치를 언급한다. 인간은 동물처럼 생명적 삶만을 살지 않고, 환경세계 안에 머물러 있지만 환경세계로부터 일탈하는 존재이고, 세계에 몰입되지 않고 개방되어 살아가는 존재이다.266) “인간은 다른 존재와 만나는 존재이며, 실현해야 할 의미에 도달하고자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내가 의미에 대한 요구나 미래에의 충동보다도 의미에의 의지에 관하여 말하는 까 닭”267)이라고 말했다.
셸러는 ‘사랑’이라는 것이 지니는 가치에 주목했던 철학자였다. 프랑클은 만남을 통 해 빚어지고 형성되는 가치로 충만한 세상을 언급한다. 삶의 가치와 의미를 자기실현 으로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프랑클은 “자기실현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의미를 충족시키는 한도까지만 자기 자신을 실현할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한 다.”268)라고 말한다. 의미는 자신 안에 매몰되지 않고 밖을 향하고, 사랑을 통해서 보
이 어째서 내면의 세계에 있게 되는가? 아니면 그것은 본래 내면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닌가? 아닌 것이다. 그것들은 우리 인간의 실천이성에 의해서 우리 내면의 세계에 부여한 것이고, 혹은 실천이성 의 입법에 의거해 생겨난 것이다. 여기서의 이 내면의 세계 또는 가상계 혹은 실천이성의 입법계가 바로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의미’의 세계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칸트에 있어서 ‘의미’의 존재는 우리 인간의 실천이성에 의해서 존재하게 되는 것, 쉽게 말해서 우리 인간의 정신이 관계하여 존재하 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에게는 ‘의미’의 내재성이 인정될 것이다.”
264) 금교영, 막스 셸러의 가치철학 , 152. “니콜라이 하르트만을 위시한 가치 철학자들은 ‘의미’의 존 재 문제에 있어서 플라톤의 ‘의미’ 초월성, 칸트의 ‘의미’ 내재서이라는 견해들과는 다른 견해를 가지 고 있다. ‘의미’는 플라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전적으로 이념적인 것으로만 존재하는 것도 아니 요, 칸트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전적으로 인간 정신의 창조물만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것을 이념적으로 존재하면서 우리 인간에게는 그것에 관계하는 정신을 통하여 비로소 비춰지는 바로 그러한 존재라고 간단하게 정의해 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것의 존재는 어떤 것인가?
‘의미’는 이념적 존재로서는 우리 인간의 의식과 상관없이 선천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 미는 현상계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것이고, 그러므로 경험적으로 접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의 미는 우리 인간에게는 우리 인간이 지향해야 할 목표, 그의 삶이 아니 그의 삶의 모든 것이 우러러 향해야 할 목표이므로, 우리는 그것을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265) 금교영, 막스 셸러의 가치철학 , 164.
266) 금교영, 막스 셸러의 가치철학 , 128.
267) Viktor E. Frankl, 심리요법과 현대인 ,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