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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원적 존재론

Dalam dokumen 비영리 (Halaman 140-146)

Ⅴ. 프랑클의 의미철학

5.1. 철학적 인간론: 의지의 자유

5.1.1. 차원적 존재론

적, 심리적, 사회학적 제약 속에서도 이에 저항하는 의지의 자유(Freiheit des Willes)를 가진 존재로 파악한다. 인간은 자의식과 양심을 지닌 존재로, 생물학적이고 평면적 제약을 넘어 정신적 차원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초월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충동’에 매여 본능에 따라 행사하는 존재를 넘어선다고 보았다.

심리적 충동에 따라 살아가지 않고, 사회적 제약의 상황에 직면해서도 충동으로부 터 벗어나 자신을 초월할 수 있는 태도적 자유를 지녔다고 말한다. 생물학적 욕구를 따라 사는 동물적 존재를 넘어서고, 도덕성의 조건인 자유를 확보하는 존재라고 보았 다. 프랑클은 끔찍한 홀로코스트의 한 복판에서 생존했다. 수용소에서 그가 목격한 사 실은 매일 죽음에 직면한 사람들의 놀라운 태도였다.

유머가 있었고, 석양의 아름다움에 취했으며, 극도의 굶주림에서도 먹을 것을 양보 하는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성자(聖者)의 태도를 취하는 이들도 목격했다. 자기를 초 월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프랑클은 인간 삶의 가장 근본적 동인이 ‘삶의 의미’, 즉 ‘의 미의지’라는 것을 체험한 셈이다. 그는 원고뭉치를 빼앗겼다. 원고를 다시 써야할 이 유와 의지가 생존을 위한 강력한 동인(動因)이 되었다. 프랑클은 경험적 사유와 셸러 의 철학을 통해 육체적‧정신적‧영적 차원의 존재론을 구성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에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를 질문하고 내게 어떤 유익이 있을까를 묻지만, 프랑클은 인생에서 발생하고 다가서는 각각의 사태들이 삶의 의미 를 내게 물어온다고 말한다. 매일 주어지는 일들 가운데서 “이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 가?” 유일회적이면서도 각기 다른 다양한 질문들에 대해 개인이 하나하나 답해나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사고의 역전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회’이다.

질문에 응답해 나간다는 것은 수동적으로 ‘수긍’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대답 한다’

는 것은 ‘결단’과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태도적 자유라는 것은 결코 수동적인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사태와 삶에 대해 하나하나 책임지는 자세로 결단하는 것이 다. 운명에 그저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해 책임 있는 자세로 응답하는 능동적 태도이다.

5.1.1. 차원적 존재론

로고테라피의 차원적 존재론(die Dimensional ontologie)은 셸러의 철학적 인간학 (Philosophische Anthropologie)과 무의식의 철학자로 불리는 니콜라이 하르트만 (Nicolai Hartmann)의 존재론에 기초해 있다. 셸러와 하르트만은 모두 인간존재를

‘신체적’, ‘심리적’, ‘정신적’으로 구분하여 이해했다. 하르트만이 인간의 존재의 층을 계급구조와 같은 것으로 보았으나, 셸러는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켜(Schichten)의 형 태를 빌려 구분했다.

다양한 과학이 공존하고 있고, 그 비옥한 토양 위에 환원론이 풍성하게 꽃피고 있는 현

실 앞에서 어떻게 하면 인간으로서의 총체성을 간직할 수 있을까? 니콜라이 하르트만 과 막스 쉘러가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누구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알고 있다. 하르트만의 존재론과 쉘러의 인류학은 각각 자기 학문에 유효성이 제한된 범위를 나누어 놓았다. 하르트만은 인간존재를 영적인 층Strata을 정점으로 해서 신체적인 층, 정신적인 층과 같은 다양한 층으로 구분을 해 놓았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여기서 얘기하는 영적이라는 말은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것이 아니라 noological 의미를 가진 것이다. 하르트만은 인간 존재의 층을 계급구조와 같은 것으로 보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쉘러의 인류학은 ‘층’Studen이 아니라 여러 겹으로 둘러싸인 켜Layer, 즉 영적인 축을 그보다는 다소 덜 중요한 생물학적 켜나 정신적인 켜와 구분해 놓았다.417)

로고테라피 인간론의 특징은 심리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의 명확한 차원의 구분이 다. 프랑클은 신체, 심리, 정신의 명확한 구분을 위해 셸러와 하르트만에게서 도움을 얻었지만, 동시에 신체, 심리, 정신의 통합성을 주장하며 셸러와 하르트만의 극단적 구분을 넘어서고자 했다. 차원적 차이에 강조를 둔 셸러와 하르트만을 넘어 인간의 신체, 심리, 정신은 구분될 수 있으나 동시에 통합적 존재(integrated being)로 정돈했다.

셸러의 ‘켜’과 하르트만의 ‘층’를 대신할 용어로 ‘차원(dimension)’을 채택했다.418)

이는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의 인간에 대한 정의, 즉 ‘우니타스 멀리 플렉스(unitas multiplex)’로 보았다. 달리말해 다양성을 지녔지만 통일성을 지닌 존 재라 규정하고 있다.419) 인간은 신체와 심리, 정신의 다층, 여러 단계의 면을 가졌으 나 통합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프랑클은 이를 ‘차원적 존재’라고 불렀다.

프랑클은 차원적 존재론에서 ‘구조적 통합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질적인 차이 (qualitiative differences)’를 드러내기 위한 아날로지로서‘ 기하학적인 차원의 개념 을 사용하여 설명한다.420) [그림 1]에서는 존재론의 제 1법칙을 나타내는데, 3차원의 이미지인 컵이 ’수평‘과 ’수직‘의 2차원적 평면으로 투영되면 수평방향에서 원형이, 수직 방향에서는 직사각형이 투영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두 상(像)이 완전히 다른 것 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하나의 동일한 현상이 그 자체의 차원보다 낮은 차원으로 투 영되었을 때는 각각의 상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형상‘으로 드러나게 된다.

프랑클은 이 이미지를 인간에 적용하여 인간이 3차원의 공간에 있을 때, 비로소 정 확하게 파악될 수 있는 컵과 같다고 한다면, 2차원적 평면에 투영되었을 때 비치는 형상은 이미 인간 이하의 일면적인 인간상에 지나지 않게 된다는 점을 설명한다. 인

417) Viktor E. Frankl, The Will to Meaning, 22(43-44).

418) Viktor E. Frankl, The Will to Meaning, 22(44). 프랑클은 하르트만과 셸러의 실존분석에 대한 기여을 설명하면서도, 통일적인 존재에 대한 인식의 결여를 비판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존재론적 차이에 대응되는 위치에 있는 것, 말하자면 인간론적 통일성이라고 부르는 것은 충분히 고려하지 않 았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은 ‘복합적인 단일체’unita multiplex이다. 그 동안 예술을 다양성 속의 통일성이라는 말로 정의해 왔는데, 나는 인간을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통일적인 존재라 고 정의하고 싶다.”

419) Viktor E. Frankl, The Unheard Cry for Meaning, 46(75).

420) Viktor E. Frankl, The Will to meaning, 1981, 23-26(45-48).

간이 생물학적 2차 평면에 투영될 때, 인간은 단순히 생물학적 유기체에 불과하게 비 친다는 것이다.421)

인간존재를 생물학적 평면으로 투영하게 되면 생물학적 유기체로 인간은 자극에 의 해 생리학적으로 반응하는 존재로 드러난다. 마찬가지로 인간을 심리학적 평면으로 투영하게 될 때, 인간 존재는 심적 장치에 대한 자극에 심리학적 반응을 보이는 폐쇄 적 기계존재로 파악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은 겉으로 보이게 결정된 형태를 지니고 있어 보이지만, 열린 존재이며 태도에 대해 자유롭게 결단할 수 있는 자유존재이다.

인간은 자기 자신 안에 갇히지 않고 자신을 초월하여 의미를 지향할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존재로 파악하고 있다.

[그림 1]

위의 [그림 1]은 차원적 존재론의 제 1법칙을 나타내고 있다. 3차원의 보여주는 컵은 ‘수평’과 ‘수직’의 2차원적 평면으로 투영되어 질 때, 수평방향에서는 원형이, 수 직 방향에서는 직사각형으로 투영하게 된다. 여기에 비치는 두 상(像)이 완전히 다르 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하나의 동일한 현상이 자체의 차원보다 낮은 차원으로 투영될 때, 각각의 상은 서로 양립될 수 없는 형상으로 비춰진다. 반대로 2차원적 평 면에서 직사각형과 원이라는 전혀 다른 상이 투영되고 있는 경우에는 본래 입체는 동 일한 컵이다. 더불어 컵은 직사각형이나 원보다도 더 높은 차원의 원기둥이었다.

프랑클은 [그림 1]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다른 존재와는 구별되는 인간의 차원을 설 명한다. 인간이 3차원의 공간에 있을 때 비로소 정확히 파악될 수 있는 컵과 같다는 것이다. 2차원적 평면으로만 투영되면, 눈에 비치는 인간형상은 일면적인 기계적 존 재에 지나지 않게 된다. 2차원의 생물학적 차원으로 투영되거나 심리학적 차원으로 환원될 때, 인간은 기계적 존재나 심적 장치로 전락한다. 프랑클의 도식을 통해 생물 학주의나, 심리학주의, 그리고 사회학주의에 따라 인간을 평면존재로 환원시키고자 하

421) 정인석, 의미 없는 인생은 없다 , 88-89.

는 인간이해를 비판하고 있다.

2차원은 개방적 공간이 없다. 열린 공간이 없이 폐쇄적이다. 프랑클은 인간은 개방 성, 즉 자유를 가진 열린 존재로 파악했다. 여러 결정적인 신체와 사회적 사태 속에 서도 자유롭게 결단할 수 있는 태도의 자유를 가진 개방존재로 이해했다. 차원적 존 재로 자신을 초월해서 의미를 지향할 수 있는 열린 차원의 존재로 규정하고 있는 것 이다.

아래의 [그림 2]에서는 차원적 존재론의 제 2법칙을 보여주고 있다. 완전히 서로 다 른 원 기둥과 공 그리고 원뿔은 서로 다른 입체 형태를 가졌다. 하지만 동일 평면상 에 투영하게 되면 셋 모두 동일한 원으로 변해 버린다. 2차원적 평면에 비친 그림자 로써는 원뿔인지, 원기둥인지 혹은 공인지 구별하기 힘들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가 낮은 차원으로 환원되게 될 때 빚어지는 현상이다. 목표 달 성을 통해 얻은 성취감이나, 연인과의 관계에서 누리는 달콤함, 약물을 통해 얻는 쾌 감의 다양한 입체도 심리주의적 평면에 투영하게 되면 ‘쾌(快)’라는 심적 상태로 환원 되어 버린다. 더 높은 차원의 인간을 행복주의 혹은 쾌락주의라는 평면으로 파악할 때 더 높은 차원의 인간은 낮은 차원의 인간으로 환원되고 제한되게 되는 것이다.

[그림 2]

프랑클이 구성한 인간론은 통합적인 인간이다. 정신분석학과 개인심리학의 심리요 법들의 인간이해가 환원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경직되어 편협한 시선임을 비 판했다. 프로이트의 인간이해는 삶 전체를 생물학적 욕구로 환원시키고 인간의 존엄 을 격하시켰다고 파악했다. 융 또한 삶을 집단적인 무의식에서 발생하는 욕구들의 표 출로 환원시켰는가 하면, 아들러 역시 실존을 자기실현의 욕구의 관점으로 해석했다.

프랑클은 삶과 인간실존에 대한 통합적‧다차원적 시선으로 보고 분석해야 할 존재, 곧 차원적 존재로 보았다.

차원적 존재론은 하나의 시선으로 인간을 환원시켜 파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위의 [그림 2]에서 보여주는 대로 원과 원통, 삼각뿔은 정면에서 볼 때 전혀 다른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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