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프랑클의 의미철학
5.4. 로고테라피의 현대적 적용
5.6.3. 입장 조정
인간적 섹스는 항상 단순한 섹스 이상이다. 섹스는 어떤 육체적 표현으로서의 사랑을 넘어선 것이다. 섹스는 이런 기능을 이끌어내는 한에서만 진정 가치 있는 경험이 된다.
마슬로우(1964)는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의 섹스에서 느껴지는 전율 같은 것을 얻지 못한다”고 적절하게 지적했다. 미국의 한 심리학 잡지가 독자 2만 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바에 따르면, 성적 능력과 오르가즘이 가장 고양되는 요소 는 낭만성이었다.562)
‘낭만성’이 무엇인가? 스포츠처럼 성취를 위해 몰입하는 상태와 반대되는 ‘탈성찰’
적 태도이다. 긴장을 이완시키는 일이며, 사랑하는 대상에만 집중할 때 성적 능력이나 오르가즘에 도달할 확률이 더 높다는 말이다. 쾌락을 목적으로 한 섹스는 대상을 도 구화시키지만, 사랑의 과정으로 진행되는 섹스는 인간적으로 단순한 섹스 이상인 것 이다. 수면장애, 성 장애 뿐 아니라 열등감을 치료함에 있어서도 로고테라피의 탈성찰 은 유용하다. 열등감의 이유가 과잉반성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프랑클을 정확하게 짚 어내고 있다.
열등감을 치료하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환자는 직접적인 시도로는 열등감을 절대 극복하지 못한다. 열등감을 제거하려면, 우회적인 방법으로 해야 한다. 예컨대 열 등감을 ‘무릅쓰고’ 어떤 곳에 가거나,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다. 환자가 자신의 열등감 에 관심을 집중하고, 그것과 ‘싸우는’ 한, 그는 계속 고통을 받게 된다. 하지만 그의 관 심이 다른 곳, 이틀 테면 일에 등지면 열등감은 위축된다. 어떤 것에 너무 많은 관심을 두는 것을 나는 ‘과잉반성’hyper reflection이라고 부른다. 이는 똑같이 신경증을 유발하는 과잉의도와 유사하다.563)
과도한 자기성찰과 과인반성의 모습으로 인한 실존공허와 좌절의 모습은 현대인들 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이다. 치열한 경쟁을 치러야 하는 한국사회에서는 청소년들 과 청년들까지, 은퇴 이후에 까지 연장되고 있는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과도한 자기반성으로 인한 신경증의 발병은 늘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로고테라피의 탈성찰적 치료기법이 유용할 것으로 생각되는 이유이다.
로고테라피의 세 번째 치료기법은 ‘입장조정’(Einstellungsmodulation)이다. ‘입장 변경’(Einstellungsänderung)으로 불리기도 한다. 프랑클이 고안한 역설지향이나 탈 성찰과는 연관되어 있으나 직접 방법론으로 제시하지 않았지만, 제자였던 루카스에 의해 로고테라피 기법의 하나로 장착되게 되었다.564) “입장조정은 삶의 입장이나 실 존적 태도를 변경하여 실존적 위기나 좌절에서 비롯되는 정신적 고통에서 해방될 가 능성을 찾도록 돕는 방법”565)이다.
입장변경은 정신의 저항을 증진시키고, 부정적인 것 앞에서 입장을 전환하여 극복 할 수 있는 저항력을 제공하는 방법이다. ‘의미에의 의지’를 촉진시켜 닫히고 보이지 않는 좌절 앞에서 긍정으로의 시선전환과 입장전환의 태도를 활성화시키는 것이 다.566) 프랑클은 의사가 환자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임무가 아니라고 말하고, 환자가 자신의 실존의 구체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할 뿐이라 고 말한다.567)
로고테라피는 설교나 강의가 아니며, 논리적 추론이나 도덕적 훈계와도 거리가 멀 다. 개인에게 자신이 직면한 세계를 제대로 볼 수 있도록 하는 안과의사와 같은 역할 과 가깝다. 프랑클은 간질병 환자가 자신의 부모를 원망하고 운명에 대해 한탄할 때 입장변경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정말 본래가 그렇게 전적으로 삶의 총체성에 속한 것입니다. 삶의 이러한 총체성에서 운명적인 것 중 조금이라도 빼내버린다면 우리의 현존 전체가, 이 현존의 형태가 파괴 되고 말 것입니다. 간질병 환자라면 스스로 이렇게 물어볼지도 모르겠습니다. 내 아버 지가 술고래가 아니었다면, 술에 절어서 나를 잉태하지 않았더라면……내 삶이 달라지 지 않았을까. 제가 드릴 수 있는 답변은 이것뿐입니다. 당신의 한탄은 무의미합니다. 문 제설정이 잘못되었기 때문이지요. 그가 당신 아버지가 아닌 다른 이였다면 당신은 결코
‘당신’이 되지 않았겠지요. 따라서 이런 의미 없는 질문도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이고 운명에 분노하면서 한탄할 일 또한 없었겠지요.568)
삶에서 맞이하는 운명적 고난이나 죽음은 실존을 무의미하게 만들기보다는 도리어 의미 있게 만드는 일에 요소가 된다. 역경이 있음으로 “오히려 비로소 의미 있게 만 드는 것”569)이다. 프랑클은 인생의 삼중고에 맞추어 삼중방향에서의 의미를 제시하고
564) 김정현, 철학과 마음의 치유 , 372.
565) 김정현, 철학과 마음의 치유 , 372.
566) 김정현, 철학과 마음의 치유 , 374. Viktor E. Frankl, 심리요법과 현대인 , 45-46. 프랑클은 치 유에 있어 시선의 중요성에 대해 니체를 인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니체는 언젠가 ‘살아갈 이유가 있 는 사람은 어떤 현실도 견뎌냈다.’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삶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그것을 의 식함으로써 다른 모든 것을, 외적인 고난과 내적인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그의 내면에 잠들어 있는 의미 를 향한 욕구를 일깨워주는 일이 치유의 관점에서도 중요해 집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영혼 치유 에 있어서 구식 학파들과는 다른 종류의 새로운 인간상이 필요합니다.”
567) Viktor E. Frankl, 심리요법과 현대인 , 54.
568) Viktor E. Frankl,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 , 47.
있다. 우리가 삶에 무엇을 줄 것인가에 대한 물음에는 창조적 행위로, 우리가 삶에서 무엇을 취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경험적 가치로, 변경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서는 우 리의 태도적 자유를 통해서 답하고 있다.570)
삶에 대한 직시. 허무함으로 고통당하는 삶에 대한 바른 시선은 결코 삶의 의미를 조금도 손상시킬 수 없다고 말한다.571) 쾌락이나 권력으로 도피하지 않고 존재의 삼 중고 앞에 바로 설 때에도 삶의 의미는 상실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이 마지막까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시야를 확보하도록, 갇힌 시선을 열어주는 안경을 쓰도록 도우는 것이 입장전환의 방법이다.
로고테라피는 의미를 규정하지는 못하지만 의미를 <기술>할 수는 있다. 여기서 내가 말 하는 것은 인간이 어떤 것을 의미 있다는 것으로 체험할 때 이러한 체험에 어떤 기성 해석 양식을 적용하지 않고 그 사람의 마음속에 일어나고 있는 바를 기술함을 의미한 다. 요컨대 우리의 임무는 실제적 인생체험이라는 직접재료의 현상학적 연구에 호소하 는 것이다. 현상학적 방법으로 로고테라피는 의미와 가치의 견지에서 자기 환자의 시야 를, 말하자면 의미와 가치를 눈앞에 다가오게 함으로써 확대할 수 있을지 모른다. 결국 의식이 자람에 따라서 삶은 마지막 순간까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다.572)
결국 심리치유의 효과는 개인의 선택과 태도에 달려 있다. 로고테라피는 내담자와 환자를 치료하기 보다는 신경증을 스스로 치료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에 집중한다.
프랑클은 “환자들 중에는 자기 스스로의 선택의 책임을 질 필요가 없는 방식으로 마 음의 병을 치유받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심리치유의 효과란 결국에는 환자 자신의 개인적 선택에 달려 있기 마련”이라고 말한다.
프랑클은 “인간이 곧 자유 자체입니다. 단순히 소유한 것은 언젠가는 잃을 수도 있 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유와 합체되어 있기에 자유를 잃을 수가 없습니다. 설사 인 간이 스스로 자유를 포기하더라도, 그 결정 자체는 자유의지로 행해지는 겁니다.”라고 강조한다. 숙명론이나 물리적 치료에만 매달리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자유를 지닌 인 간적인 치료법인 로고테라피는 중요한 보조치료책이라고 할 수 있다.
569) Viktor E. Frankl,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 , 54.
570) Viktor E. Frankl, 심리요법과 현대인 , 24.
571) Viktor E. Frankl, 심리요법과 현대인 , 25. Viktor E. Frankl, 심리의 발견 , 161. 프랑클은 우리 각자가 선택하는 인생은 두렵지만 장엄하다고 말한다. “두렵습니다. 매순간 다음 순간을 위해 책임진다는 것을 알게 되면 두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가장 하찮은 것이든 가장 중대한 것이든 각각의 결단은 ‘모든 영원을 위한’ 결단임을, 그래서 나는 매순간 하나의 가능성을, 그 한 순간의 가능성을 실현하든 상실하든 하고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은 두렵습니다. 개별적인 순간 하나하나는 실로 수천 가 지의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단 하나의 가능성만을 선택해서 실현할 수 있지요. 그러 나 이로써 나는 다른 모든 가능성들을 저버린 셈이고 결코 존재하지 않도록 판결해버리는 것입니다.
그것도 ‘모든 영원에 대해’ 그렇게 한 것이지요! 하지만 장엄합니다. 미래가 나 자신의 미래임을 아는 것은 장엄한 일입니다. 내 주위의 사물과 사람들의 미래가 아직 보잘 것 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어쨌 든 매순간 나의 결단에 의존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장엄합니다.”
572) Viktor E. Frankl, 심리요법과 현대인 , 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