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를 활용하여 북핵 교착 상태를 타결하는 두 가지 방안 은 모두 장점과 단점을 가진다. 두 방안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단 점을 보완하는 조합은 일견 일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수순을 제대로 택하면 국제기구를 북핵 협상에 우호적 환경으로 활용할 수 있다.
이 절은 실제 적용가능한 정책안을 제시한다. 이 정책안의 핵심은 국제기구를 통한 포용과 국제기구를 통한 압박을 부분적으로 활용 하는 혼합 신호(mixed signaling)이다.
가.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 지원
북한의 국제기구를 둘러싼 남북 간 차이는 선명하다. 북한은 북 한에게 실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국제기구에 가입하고자 한 다. 특히 자금과 기술 지원이 가능한 ADB, IBRD, 그리고 IMF에 가입을 원하고 있다. 한국은 북한이 국제기구로부터 원조와 지원만 일방적으로 누리는 상황을 피하며,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
북핵문제와 국제기구의 역할 제고 방안조동준
원으로서 행동하기를 원한다.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에 대한 남북한 시각차는 외적으로 북한의 요구(국제기구 가입)를 수용하면서 내적 으로 한국의 입장(국제기구를 통한 우호적 환경 조성)을 채우는 형 태로 좁혀질 수 있다.
첫번째 수순에서는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에 반대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북한이 핵검증 방식에 동의한 후 이를 적극적으로 도울 의사가 있음을 피력한다.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과 핵검증 방식 합의 를 직접 연계시키는 방안은 사안의 중요성 차이로 인하여 불가능하 다. 따라서 양자를 무리하게 연계시키기보다는, 핵검증 방식 합의에 대한 보상에 덧붙이는 형태가 적합하다. 이는 북한의 “핵검증 방식 합의에 대한 담보”보다 완화된 표현이다.
두번째 수순에서는 미국과 일본 등 주요국을 설득한다. 북한이 테러 지원국에서 해제되었기 때문에 미국은 상대적으로 쉽게 북한 의 국제기구 가입을 수용할 수 있다. 일본은 납치문제로 여전히 북 한의 국제기구 가입을 반대하고 있는데, 핵검증 방식에 대한 시혜 정도로 최소한 중립적 입장으로 선회시킬 수 있다. 유럽 강대국도 IMF와 IBRD에 중요한 의결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럽 주요 강 대국에 대한 설득 작업도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세 번째 수순에서는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을 국제사회에서 공론 화한다. 이 작업을 수행하는 데 있어 가장 적절한 장소는 G-8 정 상회담의 확장형인 MEM-16이다.22 G-8 정상회담 이후 G-8과 주 요 경제국 수반이 만나 세계경제의 주요 현안을 검토하는데 한국도 2009년 MEM-16 회원국으로 참여한다. 만약 주요국에 대한 설득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한국이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을 MEM-16 정 상회담에서 의제로 제의하고, MEM-16의 결정에 포함시킬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 수준을 따라가면서 한국은 북한의 국제기 구 가입이 북한의 위협 수단으로 귀결되지 않도록 사전 준비를 한
다. 구체적으로 북한 내부로 자금과 물자가 유입되어 매몰비용으로 남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반면, 북한이 위협 수단으로 활용할 수 없는 북한 주민에 대한 교육에 집중하여야 한다. 동일한 액수의 자 금과 물자가 동원되더라도 실체가 있는 매몰비용이 아니라 실체가 없는 매몰비용으로 남아야 한다. 국제거래의 관행과 국제규범을 북 한 주민에게 교육시키면, 북한을 더 많이 국제사회에 노출시키는 효 과를 가진다.
네 번째 수순으로 북한을 국제기구에 특별 초청한다. 북한을 국 제기구에 특별 초청하여 국제기구 회원 유지에 필요한 사항을 사회 화시킨다. 이 과정을 위하여 한국은 국제기구와 사전 협조를 통하 여 북한과 국제기구의 접근 속도를 조절하지만, 한국의 역할은 최대 한 숨긴다. 불필요한 북한의 반발을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다섯 번째 수순에서 ADB, IBRD, IMF 등에 대한 북한의 가입 이 가시화되면, IMF와 IBRD에 북한을 먼저 가입시키는 편이 좋다.
IMF와 IBRD는 회원국의 거시경제지표와 사회지표를 공개하도록 요청하는데, 북한도 회원국으로서 자료공개 요청을 무시할 수 없 다. 북한의 자료 공개는 북한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신뢰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반면, ADB에 대한 북한의 가입은 상대적으로 늦추면 좋다. 북한이 ADB로부터 저리 자금 지 원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마지막 수순에서는 북한을 가능한 많이 국제사회에 노출시킬 수 있는 국제기구에 가입하도록 권유한다. 한국의 입장에서 북한 의 사회화에 기여할 수 있는 국제기구는 국제투자보증기구, 국제투 자분쟁해결본부, 화학무기금지기구, 상설중재재판소, 포괄적핵실험 금지기구 등이다. 상기 기구에 북한이 가입을 하면 국제거래 관행을 익힐 수 있으며, 비핵화 국제규범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종합하면,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이 북핵 협상에 유리한 수단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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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직접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을 북핵 협상에 유리한 환경 조성용으 로 사용한다면, 북한의 요구사항을 외형적으로 수용하지만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북한의 국제기구 가 입이 북한에게 유리한 협상 수단이 되지 않도록 유형의 매몰비용을 남기기 않으며 북한을 최대한 국제사회와 비핵화 국제규범에 노출시 킬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나.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 주민 지원
현재 남북관계 경색의 최대 피해자는 남북경협에 참여하는 한국 기업과 북한 주민이다. 북한이 한국으로부터 오는 지원을 거부함에 따라 북한 주민이 감내하는 고통은 그만큼 커졌다. 2009년 상반기 까지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오는 곡물지원과 2008년 풍작에 기대어 한국 지원을 계속 거부할 수 있다. 북한 정권의 거부로 인하여 북한 주민의 고통이 커졌지만, 북한은 이를 한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산물 이라고 선전하여 한국에 대한 북한 주민의 반감이 커지고 있다. 북 한 주민의 반감은 평화적 통일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주 민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지원이 계속될 필요가 있다.
2012년부터 예상되는 가뭄을 고려하면 북한 주민에게 지원 을 계속할 연결고리의 필요성이 더 커진다. 가뭄 주기 통계를 보면 2025년을 전후하여 한반도에 극대가뭄이 오며, 2012년부터 가뭄이 시작될 가능성이 있다.23 가뭄이 온다면 북한의 수리시설이 취약하 기 때문에 북한의 피해가 클 수밖에 없다. 1994년 북한의 대량아사 가 다시 발생할 수도 있다. 이는 민족적 재앙으로 한국은 이를 해소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한국은 북한에서 인도주의적 재앙이 발생하기 전 북한 주민을
지원할 연결통로를 확보하여야 한다. 북한이 한국의 지원을 거절하 는 상황에서 국제기구는 북한에게 상대적으로 중립적이다. 따라서 북한은 국제기구의 지원을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에 식량지원 을 감당하는 국제기구와 한국 정부는 유대관계를 마련하여 식량지 원의 우회 통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또한 대량아사의 발생에 대 비하여 신속한 식량지원 계획을 미리 마련해 두어야 한다.
다.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 압박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압박은 최소한 현재 수준에서 지속되어야 한다. 현시점에서 대북제재의 완화는 미국 신행정부의 대북유화책 으로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가 대북 유화책 을 사용한다는 북한의 오판은 북한의 요구 증가로 이어져 북한 핵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다. 북한의 요구 증가 현상이 이미 나타나고 있는데, 대북 제재 약화는 북한의 오판을 더욱 강화시키는 부정적 효과를 가진다.
국제기구를 통한 압박은 구체적으로 몇 가지로 나타날 수 있다.
첫째, 구체적으로 안보리의 대북결의안 1718 위원회의 활동을 강화 시킨다는 방안을 제안한다. 안보리 결의안 1718은 회원국이 2006년 11월 14일까지 대북 결의안 시행과 관련하여 취한 조치를 보고하도 록 정하였다. 하지만 2008년 12월 기준으로 71개국만(40%)이 관련 정보를 안보리에 보고하였다. 지금까지 안보리 결의안 1718을 어기는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지만, 회원국으로 하여금 보고 의무를 이행하 라는 위원회 의장의 성명 정도는 쉽게 고려할 수 있다.
둘째, 현재 대북인권 결의안에 참여하는 수준을 유지한다. 2008 년 대북인권결의안이 위원회 차원이 아니라 총회 차원에서 의결되리 라고 예상되는데, 인권을 통한 대북 압박은 단기적으로 북한의 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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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초래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북한의 변화에 긍정적 영향을 가진다. 국제연합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전방위로 확대하여 여러 위원회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제기하기보다는 현재 상태대로 제 3위 원회를 거쳐 총회 의결 수준으로 유지하면, 한국 정책의 일관성을 북한에게 알리게 된다.
셋째, 대북 압박을 시도하는 국제NGO의 활동을 비공식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비핵화 규범을 제창하는 많은 NGO들이 공동 으로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는 선언문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국 제여론이 북한 비핵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시도한다. 이와 병행하여 북한 인권에 관련되어 있는 NGO들의 공동 선언문과 행동 지침이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NGO 활동은 북한을 심각하 게 압박할 수 없지만, 북한 정권이 국제사회로부터 받는 압력을 최 소한 조금 높일 수 있다. 이 작업은 북한의 추가적 반발을 초래하기 때문에 1.5 트랙 형태로 진행되는 편이 좋다.
넷째, 국제사회에서 북한 핵무기와 인권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 의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확실한 우군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이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압박을 주도하면 남북관계의 경색을 피할 수 없다. 실제로는 한국이 국제기구를 통한 대북 압박을 시도하지만 명목상 타국이 이를 주도하도록 하여 남북관계 악화의 책임에서 벗 어나도록 노력한다. 우호국을 앞세워 자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강대 국의 국제정치 운영 기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 몽고, 태국 등이 북한 인권과 관련하여 탈북자 문제로 한국 입장을 대변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