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를 북핵 협상에 활용하는 방안은 크게 포용과 압박으 로 나눌 수 있다. 포용안은 북한을 국제기구로 가능한 많이 끌어들 여, 북한으로 하여금 핵무기를 스스로 포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 하는 방안이다. 반면, 압박안은 국제기구의 제재를 통하여 북한으 로 하여금 핵무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주변 환경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포용안과 압박안은 북핵 협상에 있어 결정적 수단이 될 수 없으며, 단지 핵무기 포기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선에서 효과 를 가질 수 있다. 이 절은 포용안과 압박안의 장점과 단점을 비교 검토한다.
가. 포용안의 논거
포용안은 한국과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 격차에서 시작한다. <표 3>에서 보면, 한국은 103개 국제기구에 가입되어 있는 반면, 북한은 34개 국제기구에 가입되어 있다.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은 국제연합 관련 국제기구에 집중되어 있는 반면, 정부간기구는 상대적으로 약 하다. 한국은 국제연합 관련 모든 국제기구에 가입되어 있고, 중요 한 정부간기구에는 모두 가입하고 있다. 남북한이 국제사회에 노출 된 정도는 현저하게 다르다.
북핵문제와 국제기구의 역할 제고 방안조동준
<표 3> 남·북한 국제기구 가입 대비표11
구분 국제연합 국제연합 관련 기구
정부간기구 합계 산하기구 전문기구 독립기구
한국 1 5 19 2 76 103
북한 1 3 12 0 18 34
출처 : 「외교백서」(외교통상부, 2008), p.206.
포용안은 북한의 국제기구 가입을 용인하는 수준을 넘어 북한 을 가능한 많은 국제기구에 가입시키려 한다. 포용안의 논거는 몇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북한이 국제기구에 가입하면 비확산 규범에 노출된다. 비확산 규범은 국제사회에서 중요한 동력으로 성 장하여, ‘핵 금기(nuclear taboo)’라는 표현이 가능할 만큼 핵확산 과 핵무기 사용을 제어하려는 규범으로까지 발전되었다.12 비확산규 범은 구체적으로 남미비핵화조약(Treaty for the Prohibition of Nuclear Weapons in Latin America), 남태평양비핵화지대(South Pacific Nuclear Free Zone), 아프리카비핵화지대조약(African Nuclear Weapon-Free-Zone Treaty), 동남아시아비핵화지대 (Southeast Asia Nuclear Weapon-Free-Zone) 등에서 구현되 고 있다. 핵과 관련된 국제기구는 물론 직접 연관되어 있지 않은 국 제기구도 비확산 규범을 수용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국제기구 가 입은 장기적으로 북한으로 하여금 비확산 규범을 수용할 환경이 될 수 있다.
둘째, 국제기구는 회원국 간 신뢰 형성의 장소로 작동할 수 있 다. 국제기구는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여 거래비용을 줄이고, 위반자 의 적발과 처벌을 가능하게 한다.13 국가 간 신뢰 부족은 협력보다 는 배신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국제기구는 개별 회원국 만 아는 정보를 타회원국에게 전달함으로써 회원국간 신뢰를 높일 수 있다. 개별 국가를 통하여 전달되는 정보보다 국제기구를 통하
여 전달되는 정보가 더 중립적일 수 있기 때문에 신뢰부족의 문제가 부분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14 더 나아가 국제기구는 지속적 상호작 용을 할 가능성을 높여 회원국으로 하여금 미래를 고려한 선택을 하게 만들고 유사한 정체성을 공유할 계기도 마련할 수 있다.15 북 한의 국제기구 가입은 장기적으로 북한과 타국가간 불신을 완화시 켜, 불신 때문에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북한의 의지를 약화시킬 수 있다.
셋째, 국제기구 회원자격을 공유하면 국가 간 신호전달에 유리 하다. 국가간 분쟁이 상승되는 과정은 신뢰할 만한 정보를 전달하 기 위한 의도적 노력의 결과일 수 있다. 상호작용과정에 있는 국가 들은 자국에게 유리한 정보를 상대국에게 전달하려 한다. 반면, 신 호를 받는 국가는 수신된 정보를 모두 진실하다고 믿기보다는 평가 절하를 한다. 이처럼 신호를 보내는 국가와 신호를 받는 국가는 상 충하는 이해관계를 가진다. 이 상황에서 신호를 보내는 자국에게 스스로 피해를 입히는 방식을 통하여 신호의 신뢰성을 높일 수 있 다. 국가간 무역분쟁, 외교분쟁, 공개적 위협 등은 모두 자국에게 피 해를 입히면서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수단이다.16
이 논리에 따르면 북한이 한국과 함께 국제기구 회원자격을 가 지면 국제기구 탈퇴 혹은 국제기구에서의 토론을 통하여 신뢰할 수 있는 신호를 보낼 수 있다. 반면,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되면 무력분쟁과 같은 극단적 수단을 선택해야지만 신뢰할 수 있는 정보 를 보낼 수 있다. 남북한 국제기구 동시 가입은 북핵해결의 직접적 계기가 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남북한 간 무력충돌의 가능성을 낮추어 북핵문제 해결에 우호적 분위기를 만들 수 있다.
북핵문제와 국제기구의 역할 제고 방안조동준
나. 포용안의 단점
포용안은 몇 가지 단점을 가진다. 첫째, 포용안의 장점이 표출될 때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①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 규범에 노출되어 핵무기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더 나아가 비핵화규범 자체가 도전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핵확산이 더 진행된다면, 비핵화 국제규범의 구속력 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② 국제기구를 통한 신뢰 제고도 오랜 시 간이 필요하다. 신뢰는 지속적 상호작용의 결과로 발생하기 때문에 북한이 국제사회로부터 신뢰를 받고, 북한이 국제사회를 신뢰할 수 있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이 많다.
둘째, 남북한 동시 국제기구 가입을 통한 신호전달은 북한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매몰비용(sunken cost)을 창출할 가능성이 높 다. 현재 북한은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국제기구에 관심을 가 지고 있다. 이런 국제기구에 북한이 가입하게 된다면, 북한으로 자 금과 기술지원이 유입될 수 있다. 북한으로 유입되는 자금과 지술지 원은 국제사회가 북한에 도움을 주겠다는 신호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하여 지불하는 매몰비용이다.17 매몰비용이 지불되고 난 후, 북한 은 이를 유리한 협상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 현재 개성공단이 대 표적 예이다. 한국은 북한과 공존하겠다는 신호의 신뢰성을 높이기 위하여 비용을 지불하였지만, 비용 지불 후 북한은 개성공단 폐쇄 를 남북관계에 악용하고 있다.
셋째, 국내정치세력의 반발이다. 한국은 오래 전부터 북한과 공 존하겠다는 원칙을 표명했지만 여전히 국내에는 북한 흡수통일론 을 주장하는 보수세력이 존재한다. 현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강경 한 정책을 버리고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 포용안으로 선회한다면, 국내 보수세력의 반발을 피할 수 없다. 특히 현 행정부의 지지기반
이 보수세력인 점을 고려한다면, 국제기구를 통한 북한 포용안은 정치적 부담이다. 이미 국내 정쟁의 표어인 ‘북한 퍼주기’가 국제무대 로 확산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다. 압박안의 논거
압박안은 핵반전 사례에 기반하고 있다. <표 4>를 보면, 현재까 지 핵무기 보유 시도를 포기한 사례는 총 23개이다. 이 중 남아프 리카공화국은 핵무기를 실제 보유하였다가 폐기하였고, 구소련 3개 공화국은 핵무기를 상속받을 의사가 있었지만 포기하였다.18 4개국 이 핵무기를 포기하는 과정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었지만 국제사회의 압력은 강력했었다.
<표 4> 핵보유 시도/유지와 핵반전 사례19
핵반전 보유 후 포기 시도중 보유 후 유지
아르헨티나 벨로루시 알제리 중국
호주 카자흐스탄 이란 프랑스
브라질 남아프리카 공화국 이라크 영국
캐나다 우크라이나 리비아 인도
이집트 북한 파키스탄
독일 구소련/러시아
인도네시아 미국
이태리 이스라엘
일본 북한
네덜란드 노르웨이 루마니아 한국 스웨덴
북핵문제와 국제기구의 역할 제고 방안조동준 핵반전 보유 후 포기 시도중 보유 후 유지
스위스 대만 유고 이라크 리비아
출처 : Levite, Ariel E., “Never Say Never Again: Nuclear Reversal Revisited,” International Security, Vol. 27 No. 30 (2003), p. 62
핵무기 제조를 위한 프로그램 단계까지 이르렀던 국가 가운데 10개국이 외부 강압 또는 국내적 선택으로 핵반전을 이루었다. 이들 국가를 분류하면, ① 패전으로 인한 포기(독일, 2차대전 직후 일본, 이라크), ② 동맹국의 강압과 핵우산 제공이 선행되었던 포기(한국, 대만, 스웨덴), ③ 상호 자제에 의한 핵반전 (아르헨티나, 브라질), 그 리고 경제적ㆍ기술적 한계로 인한 포기 (루마니아, 유고) 등으로 세분 할 수 있다. 상호자제에 의한 핵반전과 경제적ㆍ기술적 한계로 인한 포기를 제외하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국제사회의 제재가 핵무기 포기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었다.
리비아 핵반전에는 국제기구의 압박이 직접적으로 작동하였다.
리비아는 핵무기와 관련된 제재가 아니라 테러와 연관된 제재를 받 았다. 안보리는 팬 암 103기 폭파 사건(1988년)과 UTA 772기 폭파 사건(1989년)의 관련자를 인도하고 테러 지원을 중단하라는 결의 안 731(1992년)로 리비아를 압박하였다. 리비아가 테러 관련자 인도 를 거부하자 안보리는 1992년 무기 금수무기 금수(禁輸), 공중 금 수, 항공기와 항공기 부품 인도 금지, 리비아 항공기에 대한 보수 및 보험 금지, 군사 고문단 철수, 외교 사절 축소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결의안 748을 채택하였다. 리비아가 안보리 결의안을 이행하 지 않자, 안보리는 1993년 리비아에 대한 봉쇄 조치를 더욱 강화한 결의안 883을 채택하였다. 해상을 통하여 물품이 오갈 길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