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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이행기의 베트남 사회의 특징

앞서 조선시대의 신분제도와 기생제도를 중심으로

<춘향전>의

창작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취교전>의 창작 배경을 살펴보았다.

먼저 베트남 봉건사회의 신분제도를 살펴보자. 유교의 영향을 받 아서 베트남 봉건사회의 신분제도는 사(士), 농(農), 공(工), 상(商)의 네 가지의 계층으로 구분된다. 그중에 사대부(사)가 성현경전을 배 우고 도리를 잘 아는 자로서 많은 특권을 누릴 수 있고 가장 존경 을 받았던 계층인 반면 장사(상)는 사회로부터 멸시를 받는 최하급 의 계층이었다. 그런데 기생이란 사회로부터 가장 멸시를 당했던 사 람으로서 창가(唱歌)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창가무류(唱歌無類)라는 선입견으로 인해 아무 계층에도 편정되지 않아서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창가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란 째오

(chèo),

뚜웡(tuồng), 까주(ca trù) 등과 같은 베트남 전통예술을 하

는 사람이었다. 다오느엉(đào nương, 佻娘)’111)이 이러한 무리에 속

110) 강명관(2009), 앞의 책, 239-350면 참조.

111) 베트남의 đào nương(다오느엉이란 베트남전통예술인 까쭈(ca trù)의 예술가로 ả đào (아다오, 妸佻) 또는 cô đầu(꼬두어, 姑姚)라는 명칭이라고 불리기도 한다.))는 한국의 기 생과 비슷한 신분이다. 팜 뀡(Phạm Quỳnh)은 아다오가 기생이지만 창녀가 아니라고 보 고 있다. 응웬 돈 푹(Nguyễn Đôn Phục)도 아다오(妸佻)가 기생이지만 일정한 규율을 지 키고 가족윤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기생과 다르다고 한다. (Phạm Quỳnh, Văn chương trong lối hát ả đào(아다오(妸佻)창가유형의 문장); Nguyễn Đôn Phục, Khảo luận về lối hát ả đào(아다오창가유형에 대한 논고), Đoàn Thị Anh Đào(2008), Nhân vật ả đào: từ cuộc sống đến thơ văn(실생활과 시문학에 나타난 아다오(妸佻)), Luận văn thạc sỹ Đại học Khoa học Xã hội và Nhân văn - Đại học Quốc gia Hà

해 있는 신분이었다.

기생(다오느엉)은 남의 유흥을 돋우도록 도와주는 사람으로서 사 회로부터 멸시를 당하며 법적으로도 여러 차별을 받았다. 국조형률

(國朝刑律)에서 관리가 금가(琴歌)를 업으로 하는 여자(기생)를 처

(妻)나 첩(妾)으로 맞아들이는 경우 형장을 70대 맞고 유배를 가게

되어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관리들의 자식이 기생과 혼인하는 경우 형장

60대를 맞고 이혼해야 된다

112)며 창가의 자식 들이 일체 과거 시험에 참가하지 못한다고113) 규정하고 있다.

물론 이 법을 어기고 기생을 첩으로 맞아들인 자도 있었으나 대 개의 경우 기생을 멸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민가(民家)에서도 기생 과의 혼인은 물론, 교제까지 꺼리었으며, 집안에 기생과 혼인한 자 가 있다면 가문의 모욕으로 여긴 것이 사회의 통념이었다. 그러한 이유로 기생은 대대로 천한 신분을 이어받고 벗어날 길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들 대부분은 남성들의 유흥 수단이 되어 사고파는 물건 으로 취급당하거나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노예의 신분으로 살아 야 하는 존재였다.114) 물론 직업의 특징으로부터 인해 문인재자(文

人才子)들과 자유로이 연애할 수는 있었으나 대부분 혼인에까지 이

르지 못하고 이별을 당하거나, 혼인을 이룩하더라도 천첩이 될 수밖 에 없는 등 안정한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115)

18세기부터 심

Nội에서 재인용). 다오느엉은 한국 조선시대 기생의 개념과 완전히 일치되지는 않지만 본 연구에서 편의상 기생으로 번역하기로 한다.

112) Phan Huy Chú, 『歷朝憲章類誌』, Viện Sử học 역(2014), Lịch triều hiến chương loại chí, tập 4, Nxb Trẻ, 333면. (국조형률은 레 타잉 똥(梨聖宗) 시대 홍 득(洪德) 연 간에 만들어진 법전이다.)

113) Phan Huy Chú, Viện Sử học 역(2014), 위의 책, 413면.

114) 우중수필(雨中隨筆) 에서 팜 딩 호̉(Phạm Đình Hổ, 范廷琥)가 웬 칸(Nguyễn Khản)네 집안에서 몇 명의 기생을 두고 자기의 풍류를 만족시킨다며 상을 당한 기생이 라도 돈을 주고 창가(唱歌)를 시킨다고 한다.(Nhà họ Nguyễn ở Tiên Điền (띠엔띠엔의 완씨 가문), Phạm Đình Hổ, 『雨中隨筆』, Đồng Châu Nguyễn Hữu Tiến 역(2012), Vũ trung tuỳ bút, Nxb Trẻ - Nxb Hồng Bàng 참조.)

115) 그 집의 천첩이 되었는데도 처의 질투 때문에 죽임당하거나 그 집에서 살지 못하고 나가야 한 경우가 있다. 딴 다(Tản Đà) 시인의 어머니의 경우가 한 예이다. 그녀는 원래 재색을 겸비한 기생이었는데 딴 다의 아버지인 안찰사(按察使)가 첩으로 맞아들였다. 그 렇지만 안찰사가 죽은 후 시집에서 살지 못하고 세 살짜리 아들 딴 다를 남겨둔 채 어린

각한 사회 분화와 활발한 상업 발전이 봉건 도시를 발생시키고 자 기의 음악적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다오느엉을 사들이는 상인 계층이 형성되었다. 심지어 기생을 첩으로 맞아들이는 일도 일반화 되었다. 따라서 베트남 문화생활에서 기생이 날로 많이 등장해서 상 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계층을 형성하게 되었다.116)

그들의 불행한 삶은 많은 문학 작품의 제재가 되었는데 그 중에 완유(Nguyễn Du)의

<용성금자가(龍城琴者歌)>의 ‘금’이라는 가기

(歌妓)나 <조라성가자(吊羅城歌者)>의 가기를 들 수 있다.

117) 쩐 녀

틴(Trần Nho Thìn)이 지적한 바와 같이

“18세기 말로부터 19세기

에 이르러서까지 베트남 문학의 여성 인물 형상이 전이 과정을 경 과했는데 정부(征婦), 궁녀(宮女)과 같은 귀족 계층에 속한 여성과

<화전(Hoa Tiên)>의 쟈오 띠엔(Dao Tiên), <소경신장(Sơ kính tân trang)>의 뀡 트(Quỳnh Thư), <판진(Phan Trần)>의 쩐 끼에우 리

엔(Trần Kiều Liên)과 같은 재자가인소설의 여성인물로부터 기생으 로 전이되었다.”118) 완유의

<취교전>도 이러한 문학의 흐름 속에

탄생했다.

한편, 레-막(Lê-Mạc, 黎-莫) 내전(1533-1592)과 찡-응웬

(Trịnh-Nguyễn, 鄭-阮)

내전(1627-1672)을 걸쳐 베트남 봉건제도

는 쇠퇴하는 길로 들어갔다. 황상-왕상(皇上-王上)119)이 국사에 신 경을 쓰지 않고 향락에 빠져서 국가기강이 혼란하고 세상의 풍속이 무너지고 인심과 세도가 붕괴되었며 탐관오리가 전횡해서 백성의

딸을 데리고 집을 나가서 또다시 기생이 되었다. 이후 딸도 자라서 기생이 되었 다.(Hoàng Thị Ngọc Thanh, “Người ả đào qua các tư liệu từ thế kỉ XVIII đến giữa thế kỉ XIX(18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문학자료를 통해서 본 아다오(妸佻))”, Luân văn thạc sĩ Đại học Khoa học Xã hội Nhân văn, Đại học Quốc gia Hà Nội, 80면 참조.) 116) Trần Nho Thìn(2003), Văn học trung đại Việt Nam dưới dưới góc nhìn văn hóa

(문화를 통해 본 베트남중세문학), Nxb Giáo dục, 144-147면.

117) Đào Duy Anh 외(1988), Thơ chữ Hán Nguyễn Du(완유의 한문시문), Nxb Văn học, 189-195면 참조.

118) Trần Nho Thìn, 앞의 책, 150면.

119) 이 시기에 황상(임금) 옆에 왕상(chúa, 主)이 존재했다. 명의적으로 임금을 보좌해주는 사람이었지만 실제로는 실권을 장악하였다.

생활이 비참해지고 고통스러워진다.120)

<황려일통지(皇黎一統志)>에

서 당 티 후에(Đặng Thị

Huệ, 鄧氏惠)

선비(宣妃)의 남동생인 당 머우 런(Đặng Mậu Lân, 鄧茂麟)이 누나의 권력에 기대어 전횡했다.

예쁜 여자가 그의 눈에 들면 즉시 그 여자를 겁탈하였으며 반항하 면 잔혹한 벌을 가했다. 찡 썸(Trịnh Sâm, 鄭森) 정도왕(靖都王)의 응옥 란(Ngọc Lan, 玉蘭) 공주도 예외가 아니었다.121)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적 모순이 궁극적으로 첨예해져서 전국 곳 곳에 대대적인 봉기 운동들이 일어났는데 떼이 썬(Tây Sơn, 西山) 운동은 가장 대표적인 것이었다. 떼이 썬 운동은 레-찡 봉건정권을 타도해서 혁신적인 정권을 설립하였다. 그렇지만 떼이 썬 운동의 영 혼인 꽝쭝(Quang Trung, 光中) 황제가 죽음에 따라 이 정권도 무너 졌다. 그 대신에 보수적인 봉건정권인 응웬(Nguyễn) 왕조가 새로 건립되었다.

<취교전>

작자인 완유는 이러한 분위기에 살았다. 레 왕조의 유

신으로서의 완유는 떼이 썬 왕조에 반항하려 했었지만 이 시기의 봉기운동의 지도자들, 특히 꽝 쭝의 삶이

<취교전>의 서해의 형상

화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하기 어렵다.

3) <춘향전>과 <취교전>의 창작배경 비교

위에서 서술한 바를 통해서

18, 19세기 한국과 베트남의 사회

배경에는 비슷한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존재한다. 신분제도를 보면 네 가지의 계층으로 구성된 것은 비슷한 점이 보이지만 한국에는 기생이 천민에 속하는데 베트남에는 아예 네 가지의 계층에도 속하

120) Nguyễn Lộc(1994), Văn học Việt Nam nửa cuối thế kỷ 18 - hết thể kỷ 19(18세 기 후반에게 19세기 말까지의 베트남문학), Nxb Giáo dục, 40-47면.

121) Ngô văn gia phái, 『皇黎一統志』, Ngô Tất Tố 역(2017), Hoàng Lê nhất thống chí, Nxb Văn học, 11-13면.

지 않았다. 그렇지만 제도적으로 보면 비슷한 점이 많이 보인다. 기 생이 최하급의 무리로 취급받고 법적으로 심한 차별을 받는다. 그들 은 천한 신분이 세습되어 신분제의 굴레를 벗어날 길이 막막했다.

이러한 점에서 한국과 베트남의 기생제도가 유사하다. 그렇지만 조 선시대의 기생들이 공노비의 신분으로 대구 속량이나 납전 속량을 통해서 비천한 신분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베트남의 경우 기생이 공노비가 아니라서 관청에 예속되지 않았다. 그래서 법적으로 대구 속량이나 납전 속량을 통해 비천한 신분을 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창가무류라는 선입견으로 인해 민간에서도 심각한 차별대우를 받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었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의 기생제도와 베 트남의 기생제도가 차이점이 보인다.

한편, 탐관오리의 전횡으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이 고통스러워지 고 민란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는 것이 이 시기의 한국과 베트남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민심을 수습하기 위해 암행어 사 제도를 실시하였는데 베트남에서는 그 대신에 감찰어사가 지방 에 파견되어 상주하면서 군사와 민사를 관장하였다.122) 또한 조선 후기에 유교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열녀 장려 정책이 실시되었 다. 반면, 베트남에서는

17-18세기에 열녀 장려 정책이 그리 중요

시되지 않다가 19세기 중엽에 들어서야 실시되었다.123)

<춘향전>과 <취교전>은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탄생했다. <춘

향전>에 가장 두드러진 문제는 신분적 갈등과 인간 해방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춘향과 변학도와의 대결을 통해서 반영한 지배층과 피지배층의 갈등도 치열하지만 어사 출도를 통해서 해결된 바에 주 목한다면, 그 사회 질서를 바르게 유지해서 좋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명군현신(明君賢臣)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 그들의 소망이라고 할 수

122) Quốc sử quán triều Nguyễn(1881), 『欽定越史通鑑綱目』, Viện Sử học 역(1998), Khâm định Việt sử thông giám cương mục, Nxb Giáo dục 참조.

123) Phạm Văn Hưng(2016), Tự sự của trinh tiết nhân vât liệt nữ trong văn học Việt Nam trung đại thế kỷ X-XIX(10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베트남 중세문학에 등장한 열 녀 인물 연구), Nxb Đại học Quốc gia Hà Nội, 39-62면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