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과 적대적 관계에 있는 인물로는 변학도와 회계 나리, 행수 기생을 들 수 있다. 먼저 변학도를 살펴보자. 장순희는 변학도를 춘 향의 적대자로 파악하고 그가 춘향을 단지 관노로 취급하며 성적 소유물이자 욕망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221)
<완판 84장본>에서는 변학도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때 수삭(數朔) 만에 신관(新官) 사또 났으되 자하(紫霞)골 변학도
(卞學道)라 하는 양반(兩班)이 오는데, 문필(文筆)도 유여(有餘)하고
인물(人物) 풍채(風采) 활달(豁達)하고 풍류(風流)속에 달통(達通)하 여 외입(外入) 속이 넉넉하되, 한갓 흠이 성정(性情) 괴팍(乖愎)한 중에 사증(邪症)을 겸(兼)하여 혹시(或時) 실덕(失德)도 하고 오결
(誤決)하는 일이 간다(間多) 고(故)로 세상(世上)에 아는 사람은 다
고집불통(固執不通)이라 하였다.”222)
“이미 내가 저 하나를 보려는데 못 보고 그냥 두랴”라는 그의 말
처럼 서울에 있을 때부터 춘향을 흠모하고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한 다. 그렇지만 미인에 대한 풍류재자의 낭만적인 마음이 없다. 처음 에는 그는 달콤한 말로 춘향을 유혹한다.“이수재(李秀才)는 경성(京城) 사대부(士大夫)의 자제(子弟)로서
명문귀족(名門貴族) 사위가 되었으니, 일시(一時) 사랑으로 잠깐 노 류장화(路柳牆花)하던 너를 일분(一分) 생각하겠느냐. 너는 근본(根 本) 절행(節行) 있어 전수(專守) 일절(一節)하였다가 홍안(紅顔)이 낙조(落照)되고 백발(白髮)이 난수(亂垂)하면 무정세월약류파(無情
歲月若流波)를 탄식(嘆息)할 제, 불쌍코 가련(可憐)한 게 너 아니면
뉘가 기(其)랴. 네 아무리 수절(守節)한들 열녀(烈女) 포양(襃揚) 누 가 하랴. 그는 다 버려두고 네 골 관장(官長)에게 매임이 옳으냐,
221) 장순희(2010), 「춘향전의 인물과 독자의 욕망 구조 –완판 <열녀춘향수절가>를 중심 으로」, 『한국문학논총』 55, 한국문학회, 208-209면.
222)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119면.
동자(童子)놈에게 매인 게 옳으냐, 네가 말을 좀 하여라.”223)
그렇지만 인용문을 통해서 그가 신분차별의 선입견에 물든 사람
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춘향을 여러 사람의 노리개로서의 기생이라 고 여긴다. 이는 춘향의 자존심에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기생 신분 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의 꿈을 짓밟는 바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행동은 이몽룡과 완전히 다르다. 그도 사람을 시켜 춘향을 불 러오지만 이몽룡처럼
“내가 너를 기생(妓生)으로 앎이 아니라 들으
니 네가 글을 잘한다기로 청(請)하노라. 여가(閭家)에 있는 처자(處子)
불러 보기 청문(聽聞)에 괴이(怪異)하나 혐의(嫌疑)로 알지 말고 잠깐 다녀가라”224)라는 존중의 표현이 아니고“만일(萬一)
춘향(春香)을 시각(時刻)
지체(遲滯) 하다가는 공형(公兄) 이하(以下) 각청(各廳)
두목(頭目)을 병태거(並汰去) 할 것이니 빨리 대령(待令) 못시킬까”225)라는 협박과 위협의 성격이 강하다. 이렇듯 변학도는 위 권을 이용해서 춘향을 호출한다. 이몽룡처럼
“춘향(春香)도 미혼전
(未婚前)이요 나도 미장전(未丈前)이라.
피차(彼此) 언약(言約)이 이러하고 육례(六禮)는 못 할망정 양반(兩班)의 자식이 일구이언(一口
二言)을 할 리(理)
있나”226)라는 것이 아니고 “오늘부터 몸단장 바르게 하고 수청을 거행하라.”227)라고 명령한다. 이윽고 춘향을 설득 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춘향의 의지를 꺾기 위해서 폭력을 사용한다.
“네 이년, 관정(官庭)에 발악(發惡)하고 맞으니 좋은 게 무엇이냐.
일후(日後)에 또 그런 거역(拒逆) 관장(官長)할까.”228)
223)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135-137면.
224)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27면.
225)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129면.
226)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59면.
227)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109면.
228)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149면.
변학도는 가혹한 매로 춘향을 굴복시킨다면 자신에게 수청을 들 게 되리라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이것은 매우 잘못된 판단이었다.
변학도의 이와 같은 강압적 행동은 이몽룡과 그를 대별되게 하고, 춘향으로 하여금 이몽룡에 대한 사랑을 지켜낼 의지를 강화시킨다.
회계 나리도 마찬가지다.
“사또께옵서 너를 추앙(推仰)하여 하시는 말씀 이제 너 같은 창기 배(娼妓輩)게 수절(守節)이 무엇이며, 정절(貞節)이 무엇이다. 구관 (舊官)은 전송(餞送)하고 신관(新官) 사또 연접(延接)함이 법전(法 典)에 당연(當然)하고 사례(事例)에도 당당(堂堂)커든 고이한 말 내 지 마라. 너희 같은 천기배(賤妓輩)게 충렬(忠烈)이자(二字) 왜 있 으리.”229)
이와 같이 회계 나리는 신분제에 충실한 신도(信徒)이다. 그에게
는 기생이란 노리개에 지나지 않는다. 기생은 관아의 소유물로서 정 절권이 포함된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그의 이러한 말이 춘 향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히지만 동시에 인권에 대한 의식을 강력하 게 일으키게 하며, 자신에 대한 이몽룡의 사랑을 더욱 귀중하게 여 기도록 하며 이몽룡에 대한 사랑을 지켜낼 의지를 강화시키는 계기 를 마련하게 한다.
행수 기생의 경우 기생의 신분이지만 삶의 이상(理想)이 그녀와
전혀 다르다.
“여봐라, 춘향(春香)아 말듣거라. 너만한 정절(貞節)은 나도 있고, 너만한 수절(守節)은 나도 있다. 네라는 정절(貞節)이 왜 있으며, 네라는 수절(守節)이 왜 있느냐. 정절부인(貞節夫人) 아기씨, 수절 부인(守節夫人)아기씨, 조그마한 너 하나로 망연(茫然)하여 육방(六 房)이 소동(騷動), 각청(各廳) 두목(頭目)이 다 죽어난다. 어서 가자 바삐 가자.”230)
229)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137면.
행수 기생은 비천한 신분을 인정하고 신분제의 굴레에서 벗어날 생각을 감히 하지 못한다. 바로 행수 기생의 이러한 생각과 태도는 그녀가 현재의 삶과 다른 삶에 대한 꿈도 꾸지 못하고 자기의 삶을 바꾸도록 투쟁할 생각도 하지 못하게 한다. 인권에 대한 개혁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춘향에게는 이러한 생각과 태도로 인해 그녀의 적대자가 된다.
이어서, 취교와 적대적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인물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이 끼(Bùi Kỷ)와 쩐 쫑 낌(Trần Trọng Kim)은 일련의 논 의를 통해 취교의 삶을 비참하게 하는 사람으로서
‘실장사치’와 ‘공
차들’을 짚어낸다.231)돌연 사방에서 공차(公差)들이 소란스럽게 몰려오네.
옆구리에 방망이를 낀 자, 손에 칼을 든 자, 우두마면(牛頭馬面)들로 물 끓듯 시끌시끌하네.
노인과 아들에게 칼을 씌우고,
비정(非情)한 밧줄로 두 부자(父子)를 묶었네.
온 집안에 창승(蒼蠅) 소리 가득하며,
직기(織機)는 박살나고 바느질 꾸러미는 산산이 흩어지네.
세연(細緣)이며 집안 물품들을,
깨끗이 쓸어 담아 탐낭(貪囊)을 채우네.232)
법률을 실시하는 자들이 한낮의 강도233)처럼 묘사된다. 그들은
완유가 “예나 지금이나 다른 것 없는 공차들 습성,/ 이런 갸륵한 짓 일삼는 것은 분명 돈 때문일 것”234)이라고 한탄할 정도로 탐욕하고
230)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133면.
231) Bùi Kỷ-Trần Trọng Kim, Nhân vật Truyện Kiều(<취교전>의 인물들), Lê Xuân Lít(2007), 앞의 책, 1029면.
232) 완Nguyễn Du, 최귀묵 역(2004), 앞의 책, 67-68면.
233) 호아이 타잉(Hoài Thanh)은 공차들이 국법의 보호 하에 공연히 활동하는 강도떼라고 보고 있다.(Hoài Thanh, Xã hội phong kiến trong Truyện Kiều(<취교전>에 나타난 봉 건사회), Lê Xuân Lít(2007), 위의 책, 1007-1007면.)
포악하다. 그들의 탐욕과 포악은 바로 취교의
15년간 타향살이의
원인이 된다. 그들에게 줄 300량을 마련하기 위해서 취교는 마감생 의 속임수에 넘어간다. 이로써 마감생은 취교의 고통스런 삶을 시작 하게 하는 인물이 된다. 그러한 짓을 한 이유는 공차들과 다르지 않 다.속으로 좋아하네, ‘깃발이 수중에 있지,
옥 같은 자태를 보면 볼수록 마음이 취하는 것.
국색천향(國色天香)이니,
일소천금(一笑千金)이란 말 그릇되지 않군.
일단 데려다 놓으면 먼저 꽃을 꺾겠다고,
왕손귀객(王孫貴客)들이 틀림없이 서로 다투겠지.
적어도 삼백 냥 이상일 것은 틀림없으니, 일단 자본금을 뽑은 후로는 이익이렷다.’235)
마감생은 돈 때문에 양가의 딸을 속여서 청루에 몰아 넣는다.236)
그의 속임수 때문에 취교가 절망스러운 상황에 빠져서 죽음을 선택 할 수밖에 없다.
취교가 말하네, “하늘이여, 땅이여,
이 몸은 오래 전 떠나 올 때부터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어요.
다 끝난 마당에 아쉬울 게 뭐가 있겠어요!”
준비한 칼을 즉시 소매에서 꺼내 드네.237)
그렇지만 담선이 나타나서 그녀가 절개를 지키는 것을 방해한다.
234) Nguyễn Du, 최귀묵 역(2004), 앞의 책, 69면.
235) Nguyễn Du, 최귀묵 역(2004), 앞의 책, 90-91면.
236) 응 웬 록(Ngyễn Lộc)은 마감생이 국자감의 감생이었지만 말이 없는 대신에 계산을 철저히 하는 노련한 장사치라고 보고 있다.(Ngyễn Lộc(1994), 앞의 책, 404면.)
237) Nguyễn Du, 최귀묵 역(2004), 앞의 책, 101-102면.
꿈속에 한 낭자(娘子)가 옆에 서 있는 듯했네.
속삭이네, “인과(因果)가 다하지 않았으니,
단장(斷腸)의 빚을 벗어나려 한들 어찌 될 수 있겠어요!
홍안(紅顔)의 운명이 아직 업(業)이 무거우니,
비록 자결(自決)을 하려 한들 하늘이 어찌 허락하겠어요!
우선은 부디 포류(蒲柳)의 삶을 다 살고,
훗날 전당강(錢塘江)에서 만날 것을 기약해요.”238)
취교의 인생에 담선은 세 번 등장한다. 첫 번째는 그녀가 김중을
만나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 직후 그녀의 앞으로의 단장(斷腸) 생활 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담선의 등장은 취교가 스스로의 운명을 걱정 하게 하는 기능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가 용기를 내어 김중 에게 온 마음을 바치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하기도 한다.
취교가 말하네, “아무도 없는 긴긴 밤, 꽃을 아끼기에 꽃을 찾아 길을 나셨죠.
지금 우리 둘이 분명히 얼굴을 보고 있지만, 후에 이것이 꿈이 아닌 줄 어찌 알겠어요?”239)
그런데 담선의 두 번째 등장은 부정적인 의미로 점철되어 있다.
담선의 예언이 취교의 총명을 가려서 그녀가 현실과 타협해서 투쟁 할 의지를 잃게 한다. 수파와 초경의 속임수에 넘어간 이유가 여기 에 있다. 수파는 취교와 맹세한다.
훗날 일이 말과 같지 않게 된다면,
머리 위로 하늘이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240)
초경도 그녀와 약속한다.
238) Nguyễn Du, 최귀묵 역(2004), 앞의 책, 102-103면.
239) Nguyễn Du, 최귀묵 역(2004), 앞의 책, 51-52면.
240) Nguyễn Du, 최귀묵 역(2004), 앞의 책, 1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