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 취교는 중국 <김운교전>의 취교를 토대로 형상화되었지만 완유가 자기의 재능과 생활 체험으로 취교에게 베트남 민족의 영혼을 불어넣었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들은 취교가 베트남 전통사회에 살던 여성의 대표자라고 생각한다. 그럴 뿐만 아니라 취교의 비극적 인 삶이 베트남의 현대사회 어디서나 존재하고 있다.
앞서 여성 주인공인 춘향과 취교를 살펴보았는데 여기서 남성 중 심인물인 이몽룡과 김중, 속생, 서해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몽룡은 춘향의 사랑하는 사람이자 구원자이다. 춘향의 인간다운 삶에 대한 지향은 이몽룡과의 관계 하에 구체화된다. 김중은 취교의 첫사랑이 지만 취교의 인생이 파란만장했던 까닭에 김중에 대한 한결같은 마 음을 지키지 못하고 여러 남자와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그 중에 속 생과 서해가 취교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획기적인 지표를 만들어준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항에서는 이몽룡과 김중, 속생, 서해가 각각 춘향과 취교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어떤 역할을 하 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이몽룡을 살펴보자. <춘향전>에서 이몽룡은 사또 자제로서 풍채와 재능이 뛰어난 소년으로 소개된다. 광한루에서 그네를 타는 춘향을 보자마자 그녀에게 첫눈에 반했다. 그래서 춘향이 퇴기 월매 의 딸임을 알고서 바로 불러오라고 한다. 방자가 춘향이 도도해서 초래하기 어렵다고 하자
‘물각유주(物各有主)’라며 불러오라고 재촉
한다. 춘향이 거절하자 다시 방자를 보내서 어른다.“내가 너를 기생(妓生)으로 앎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다 기로 청(請)하노라. 여가(閭家)에 있는 처자(處子) 불러 보기 청문에 괴이(怪異)하나 혐의(嫌疑)로 알지 말고 잠깐 다녀가라.”182)
이몽룡이 춘향을 설득하기 위해서 기생이 아니라는 그녀의 주장
을 쉽게 인정했다. 이를 볼 때 이몽룡은 가볍게 행동하는 철없는 귀 공자라고 할 수 있다. 이몽룡은 자기와 춘향의 현격한 신분 차이에 대한 춘향 어머니의 걱정에 대하여 춘향의 미혼(未婚)과 자기의 미 혼, 그리고 양반의 자식은 일구이언하지 않는다는 근거로 설득하고 굳게 약속한다.
182)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27면.
“춘향(春香)도 미혼전(未婚前)이요, 나도 미장전(未丈前)이라. 피차 (彼此) 언약(言約)이 이러하고 육례(六禮)는 못할망정 양반(兩班)의 자식이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할 리(理) 있나.”183)
“내 마음 헤아리니 특별(特別) 간절(懇切) 굳은 마음이 흉중(胸中) 에 가득하니, 분의(分義)는 다를망정 제와 내와 평생(平生) 기약(期 約) 맺을 제, 전안(奠雁) 납폐(納幣) 아니 한들 창파(滄波)같이 깊은 마음 춘향(春香) 사정(事情) 모를쏜가.”184)
“내 저를 초취(初娶)같이 여길 테니 시하(侍下)라고 염려(念慮) 말 고 미장전(未丈前)도 염려(念慮 마소. 대장부(大丈夫) 먹은 마음 박 대(薄待) 행실(行實) 있을손가.”185)(61면)
이도령의 이러한 약속은 춘향의 어머니를 설득하기에 충분했으
며 춘향의 마음을 얻기에도 적합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승진으로 인 해 상경하게 되었을 때 이도령은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지 못한다.
이에 이도령과 춘향은 헤어짐이라는 좌절을 겪게 되었다.
“사정(事情)이 그렇기로 네 말을 사또께는 못 여쭙고 대부인(大夫 人) 전(前) 여짜오니 꾸중이 대단하시며 양반(兩班)의 자식이 부형 (父兄) 따라 하향(遐鄕) 왔다 화방(花房) 작첩(作妾)하여 데려간단 말이 전정(前程)에도 괴이(怪異)하고 조정(朝廷)에 들어 벼슬도 못 한다 하더구나. 불가불(不可不) 이별(離別)이 될 밖에 없다.”186)
『대명률직해』의 「관리숙창」에 따르면 관장이나 그 자식이 기
생의 수청을 받으면 처벌받아서 벼슬하여도 먼 변방에 임용된다. 유 교 사회에서 살았던 이몽룡은 가문과 가족을 위한 의무적 책임이 무겁다. 그는 춘향을 사랑하지만 가문의 흥망과 그녀와의 사랑 간183)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59면.
184)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61면.
185)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61면.
186)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95면.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할 때, 가문의 명예 보존을 선택한다. 유교경전 을 공부하는 그이기에 가문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불효자가 되지는 못한다.187) 여기까지 이도령이 양반가의 도련님의 대표적 모습을 잘 반영한다. 풍류를 좋아하지만 유교적 사회질서를 유지하도록 한 다. 이도령이 처음에
“탕자로서의 유희적 감정으로 춘향을 대
했”188)으며 춘향과 사랑을 나누면서는 어느 정도 유흥적 기분을 청 산했지만 유교적 사회질서를 벗어날 의지가 부족하다.이몽룡의 이러한 좌절은 “열녀는 지아비를 바꾸지 않는다”는 춘 향의 지향을 실현하는 데에 방해가 된다. 이러한 좌절을 극복하지 못하면 춘향이 굳게 수절을 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다행 하게도 춘향 어미의 항의와 춘향의 굳은 마음으로 인해 이몽룡이 정신을 차려 마음을 고쳤다.
“내가 이제 올라가서 장원(壯元) 급제(及第) 출신(出身)하여 너 를 데려갈 것이니, 울지 말고 잘 있거라.”189)
이몽룡의 이런 약속은 또 다시 어겨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 만190) 춘향에게는 의미 있는 약속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약속이 있어야 춘향의 수절이 정당성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이 약속은 춘향에 대한 이몽룡의 사랑이 깊어지는 것을 보여준 다. 이 약속이야말로 이몽룡의 철없는 도련님으로서의 성격을 청
187) 정출헌은 이도령을 중세적 신분 모순의 희생자로 보고 있다. 그에 의하면 “춘향과 사 랑을 나누고, 나아가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려는 이몽룡의 행위는 탈질서적 행위로 여 겨졌다. 그래서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 이도령은 춘향을 이별해야만 했다”. 춘향과의 이 별을 선택하면서 이몽룡은 자신이 몸담고 있던 중세봉건사회의 신분적 질곡이 자신에게 도 결코 예외일 수 없음을 비로소 절감하게 된다. (정출헌, 「『춘향전』의 인물형상과 작중역할의 현실주의적 성격」, 『판소리 연구』4, 판소리학회, 99면 참조.)
188) 박희병, 앞의 논문, 김병국 외(1996), 앞의 책, 104면.
189)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111면.
190) 성현경은 “비록 이도령의 철석같은 다짐은 있었지만, 실상 이번 이별은 기약 없는 이 별과 진배 없다”며 “약속 이행의 여부는 오로지 이몽룡의 신의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 다. (성현경, 「「남원고사」본 춘향전의 구조와 의미」, 김병국 외(1996), 『춘향전 어 떻게 읽을 것인가』, 368-370면.)
산하고 그를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간다. 이몽룡이 이 약속이 허 사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하도록 한다고 단 단한 마음을 먹는다.
이때 도련님은 올라갈 제 숙소(宿所)마다 잠 못 이뤄 보고지고 나 의 사랑. 보고지고 주야(晝夜)불망(不忘) 우리 사랑. 날 보내고 그 리는 마음 속(速)히 만나 풀으리라. 일구월심(日久月深) 굳게 먹고 등과(登科) 외방(外方) 바라더라.191)(119면)
춘향에 대한 사랑에 의해 이몽룡은 적극적으로 변해 간다. 철없 는 도련님으로부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행동할 줄 알게 된 사람으로 된다. 암행어사로서의 이몽룡이 남원으로 내려 와서 옥중에 있는 춘향을 구출해서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은 춘향에 대한 이몽룡의 사랑의 증거가 되며 그의 자격에 대한 의혹을 깨끗 이 씻어낸다. 춘향에게는 이러한 행동은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는 보 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이몽룡에 대한 그녀의 수절의 정당성을 확인할 뿐만 아니라 사랑에 있어서 신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 다. 이로 보면 이몽룡은 춘향의 영웅일 뿐만 아니라 그녀가 평생의
꿈인
‘일부종사’의 지향을 실현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원
조자가 된다. 아울러 춘향의 항거가 일반 민중들의 항거를 대변하는 성격으로 강화됨192)에 따라 암행어사로서의 이몽룡은 억압당한 일 반민중의 영웅이 된다.
이몽룡과 마찬가지로, 김중은 취교의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 을 한다. <취교전>에서 김중을 풍자와 재모가 절륜한 풍아스럽고 호화로운 재자(才子)로 소개한다. 이러한 김중은 해가 뉘엿뉘엿 서 산에 기우는 배경에서 취교를 만나서 첫눈에 반했다. <취교전>에서 김중은 유교경전에 전념하는 유생보다 다정한 재자의 대표적 인물 로 형상화된다.
191)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119면.
192) 김종철(1996), 『판소리사 연구』, 역사비평사, 166면.
김생(金生)은 서창(書窓)에 돌아오면서부터,
그녀를 향한 그리움이 마음에 자리 잡아 가라앉힐 길이 없네.
근심은 덜어내려 하면 할수록 더 늘어만 가니, 삼추(三秋)를 하루에 몰아놓은 듯 길기도 하구나!
진운(秦雲)에는 사창(紗窓)을 굳게 잠그고 있어, 홍진(紅塵)에는 길이 없으니 꿈에서나 다녀올 밖에, 한 달 내내 등잔 기름 다 써가며,
그리나니 얼굴 또 얼굴, 우울하나니 마음 또 마음 서재는 공기가 차갑기가 동(銅)과 같고
붓대에 붓털은 마르고 (비파의) 기러기발에 줄은 느슨해지네.
상렴(湘簾)은 바람에 흔들려 비파 소리를 내는데,
향을 피우면 그녀의 향기가 생각나고, 사모하는 마음에 차를 마셔도 맛 을 모르겠네.193)
취교를 만난 후 김중은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 취교 집의 옆집으로 이사 와서 다시 만날 기회를 만든다. 결국 떨어뜨린 비녀를 돌려주는 계기로 취교를 다시 만나 자기의 속마음을 털어놓 고 언약을 간청했다.
김생이 말하네, “오늘은 바람 불고 내일은 비가 오는 법이니, 봄날의 해후 몇 번이나 되겠습니까?
만일 [나의] 눈먼 사랑을 돌아보지 않으신다면,
이쪽에 상처를 주는 것이니 그쪽에 무슨 이익이 있겠습니까?
작드라도 한두 마디 다짐을 해서,
안심하게 하시면 차후에 중매인을 세우도록 하겠습니다.
하늘이 만일 성심을 저버린다면, 유감없이 이 한 청춘 버리겠습니다.
만일 그대의 도량이 좁다면
줄곧 애쓴 공이 허사가 되어버리지 않겠습니까?”194)
193) Nguyễn Du, 최귀묵 역(2004), 앞의 책, 37-3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