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판 84장본>에서 춘향은 과거 남원 부사로 재직했던 성 참판
과 퇴기 월매의 사이에서 태어난다. 그녀는 평생토록‘일부종사’를
목표로 두고 여염집 규수처럼 수신(修身)하면서 자란다. 이 도령이 광한루에서 그네를 타고 있는 춘향을 보고 방자를 시켜 춘향을 불 러오라고 할 때 춘향은 자신이 기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 도령의 부름을 거절한다.“네 말이 당연(當然)하나 오늘이 단오일(端午日)이라, 비단(非但) 나뿐이랴. 다른 집 처자(處子)들도 예 와 함께 추천(鞦韆)하였으되 그럴 뿐 아니라, 設或(설혹) 내 말을 할지라도 내가 지금 시사(時 仕)가 아니어든 여염(閭閻) 사람을 호래(呼來) 척거(斥去)로 부를 리도 없고 부른대도 갈 리도 없다. 당초에 네가 말을 잘못 들은 배 라.”138)
처음에 춘향이 이도령의 부름을 거절하는 이유는 그가 춘향을
기생으로 보고 만나자고 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자신이 여염 사람임 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그간 춘향을 보자고 청한 온갖 권문세 족 양반들과 일등재사 한량들의 요청을 거절한 이유와 동일하다. 이 를 통해 볼 때 춘향은 스스로 기생이 아니라는 의식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그녀의 지향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있는데
춘향을 불러오라는 이 도령의 분부에 방자는 춘향이 기생이 아니라 고 할 뿐만 아니라 그녀를 존중하는 태도까지 보인다.139) 통인 역시 춘향을 ‘기생(妓生) 월매(月梅) 딸’140)로 소개할 뿐 춘향을 기생으로 여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수노 역시 기생 점고 시, 춘향이 나타나지 않자 퇴기
냐는 변학도의 물음에 “춘향(春香) 모(母)는 기생(妓生)이되 춘향(春
香)은 기생(妓生)이 아닙니다.”
141)라고 대답하고 기생이 아니면 왜이름이 높이 났느냐는 변학도의 반문에 춘향의 덕색 때문이라고 설 명한다.
138)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25-27면.
139) “설부화용(雪膚花容)이 남방(南方)에 유명(有名)키로 방(方)·첨사(僉使), 병부사 군수(郡 守), 현감(縣監), 관장(官長)님네 엄지발가락이 두 뼘 가웃씩 되는 양반(兩班) 외입장(外入 匠) 이들도 무수(無數)히 보려 하되, 장강(莊姜)의 색(色)과 임사(任姒)의 덕행(德行)이며, 이두(李杜)의 문장(文章)이며, 태사(太姒)의 화순심(和順心)과 이비(二妃)의 정절(貞節)을 품었으니 금천하지절색(今天下之絶色)이요 만고여중군자(萬古女中君子)오니, 황공(惶恐)하 온 말씀으로 초래(招來)하기 어렵내다.”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22면.
140)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21면.
141)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127면.
“근본(根本) 기생(妓生)의 딸이읍고 덕색(德色)이 장(壯)한 고(故) 로, 권문세족(權門勢族) 양반(兩班)네와 일등재사(一等才士) 한량(閑 良)들과 내려오신 등내(等內)마다 구경(求景)코자 간청(懇請)하되 춘향(春香) 모녀(母女) 불청(不聽)키로 양반(兩班) 상하(上下) 물론 (勿論)하고, 액내지간(額內之間) 소인(小人) 등(等)도 십년(十年) 일 득(一得) 대면(對面)하되 언어(言語) 수작(酬酌) 없삽더니 천정(天
定)하신 연분(緣分)인지 구관(舊官) 사또 자제(子弟) 이도령(李道令)
님과 백년(百年)기약(期約) 맺사읍고 도련님 가실 때에 입장(入丈) 후(後) 데려가마 당부(當付)하고 춘향(春香)이도 그리 알고 수절(守 節)하여 있삽내다.”142)
수노의 말은 춘향의 처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근본은
기생의 딸임에도 그 행실과 태도로 인해 수절하더니 인연인 이도령 을 만나 혼인을 맺고 이도령이 데려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 다. 수노의 말에는 춘향의 덕행을 인정하고 그녀를 존중하는 태도가 드러나 있다.
이처럼 춘향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도 춘향의 인품과 절행을
인정하고 춘향이 기생이 아닌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
생의 딸’이란 사회적 편견은 여전한 것으로 이는 이 도령과 변학도 가 나타나면서 표면화된다. 춘향은 기생 노릇을 한 적이 없고 늘 여 염집 처녀로서 행실하지만 퇴기의 딸인 신분의 뿌리를 완전히 지워 내지 못한다. 춘향이 대비속신하든 양반의 서녀로 태어나든 천자수 모법에 따라 기생의 딸이면 기생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제 어미는 기생(妓生)이오나 춘향(春香)이는 도도하여 기생(妓生)구실마다 하고 백화초엽(白花草葉)에 글자도 생 각하고 여공(女工) 재질(才質)이며 문장(文章)을 겸전(兼全)하여 여 염처자(閭閻處子)와 다름 없나이다”143)라는 통인의 소개에도 이도령142)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127-129면.
143)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22면.
은
“들은 즉 기생(妓生)의 딸이라니 급(急)히 가 불러오라”라고 방
자에게 명령한다. 이도령 역시도 처음에는 춘향을 기생의 딸이라는 여기는 사회적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불 어 그는 춘향과 혼약을 한 후 부친의 상경으로 이별하게 되었을 때 에도 다음과 같은 태도를 보인다.“사정(事情)이 그렇기로 네 말을 사또께는 못 여쭙고 대부인(大夫 人) 전(前) 여짜오니 꾸중이 대단하시며 양반(兩班)의 자식이 부형 (父兄) 따라 하향(遐鄕) 왔다 화방(花房) 작첩(作妾)하여 데려간단 말이 전정(前程)에도 괴이(怪異)하고 조정(朝廷)에 들어 벼슬도 못 한다 하더구나. 불가불(不可不) 이별(離別)이 될 밖에 없다.”144)
이도령의 이러한 말을 통해서 이도령의 모친은 물론이고 이도령
자신도 춘향의 신분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신분에 대한 사회적 인식으로 인해
‘일부종사’에
대한 춘향의 지향이 좌절할 위기가 닥쳐오게 된다. 그럼에도 춘향은 결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춘향(春香)이 이 말 듣더니 고닥기 발연변색(勃然變色)이 되며, 요 두전목(搖頭轉目)에 붉으락푸르락 눈을 간잔지런하게 뜨고, 눈썹이 꼿꼿하여지면서 코가 발심발심하며, 이를 뽀드득뽀드득 갈며, 온몸 을 수숫입 틀 듯하며, 매 꿩 차는 듯하고 앉더니 “허허 이게 웬말 이오.” 왈칵 뛰어 달려들며, 치맛자락도 와드득 좌드륵 찢어 버리 며, 머리도 와드득 쥐어뜯어 싹싹 비벼 도련님 앞에다 던지면서
“무엇이 어쩌고 어째요. 이것도 쓸데없다.” 명경(明鏡), 체경(體鏡), 산호(珊瑚)죽절(竹節)을 두루쳐 방문(房門) 밖에 탕탕 부딪히며 발 도 동동 굴러 손뼉을 치고 돌아앉아 자탄가로 우는 말이 “서방 없 는 춘향(春香)이가 세간살이 무엇하며, 단정하여 뉘 눈에 괴일꼬.
몹쓸 년의 팔자(八字)로다. 이팔청춘(二八靑春) 젊은 것이 이별(離
144)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95면.
別)될 줄 어찌 알랴. 부질없는 이내 몸을 허망(虛妄)하신 말씀으로, 전정(前程) 신세 버렸구나. 애고 애고 내 신세야.”145)
이도령의 태도에 춘향은 격렬히 항의한다. 이러한 태도가 요조숙 녀인 춘향답지 않고 모순되어 보이지만 춘향의 상황을 따져보면 그 녀의 이같은 태도는 오히려 당연하다. 춘향이 이도령과 결연한 것은 신분 상승을 바라는 것이 아니고 이도령의 됨됨이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146) 이도령이 춘향을 불러올 때 “내가 너를 기생(妓生)으 로 앎이 아니라 들으니 네가 글을 잘 한다기로 청(請)하노라.”147)라 고 말했으며, 처음에 춘향 집에 왔을 때 “우연(偶然)히 광한루(廣寒
樓)에서 춘향(春香)을 잠깐 보고 연연(戀戀)히 보내기로 탐화봉접(探
花蜂蝶)
취(醉)한 마음 오늘 밤에 오는 뜻은 춘향(春香)이 모(母) 보려 왔거니와 자네 딸 춘향(春香)과 백년언약(百年言約)을 맺고 자”148)한다고 춘향 모에게 말했으며, “내 저를 초취(初娶)같이 여길 데니 시하(侍下)라고 염려(念慮) 말고 미장전(未丈前)도 염려(念慮) 마소. 대장부(大丈夫) 먹는 마음 박대(薄待) 행실(行實) 있을손가
.”
149)라고 굳게 약속한다. 이러한 이도령의 태도에 비추어 춘향은 몸을 허락하고 이도령과 미래를 함께 하기로 한다. 그래서 춘향은 자신이 양반인 이도령의 앞길에 방해가 되며 자신과의 혼인이 누추 한 소문이 될 수밖에 없으니 이별하자는 이도령의 말에 격렬하게 화를 낼 수밖에 없다.150)145) 구자균 교주(1976), 위의 책, 95-97면.
146) 박희병은 춘향이 자신의 지인지감에 따라 이도령이라는 인간에 첫눈에 반했지만 이도 령의 사회적 신분이 일부종사하려던 자신의 평소 뜻을 성취하기에 장애물이 될까봐 그의 구애를 거절했다고 보고 있다.(박희병, 「<춘향전>의 역사적 성격 분석 - 봉건사회 해체 기적 특징을 중심으로」, 김병국 외(1996), 『춘향전 어떻게 읽을 것인가』, 박이정, 82-83면.)
147)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27면.
148) 구자균 교주(1976), 위의 책, 57면.
149) 구자균 교주(1976), 위의 책, 61면.
150) 신동흔은 이도령이 이별을 선언할 때의 발악에 가까운 춘향의 행동이 절개 있는 요조 숙녀와는 거리가 멀다고 하였다. 실제 형상화된 양상과 서술자의 의도에 불일치가 생겨 서 현실성의 약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신동흔(1997), 「<춘향전> 주제의식의 역사적
“여보, 도련님 인제 막 하신 말씀 참말이요 농(弄)말이요. 우리 둘 이 처음 만나 백년언약(百年言約) 맺을 적에 대부인(大夫人), 사또 께옵서 시키시던 일오니까. ....(중략)....춘향(春香) 몸이 천(賤)타고 함부로 버리셔도 그만인 줄 알지 마오. ....(중략)....사람의 대접(待 接)을 그리 마오. 인물(人物)거천(擧薦)하는 법(法)이 그런 법(法) 왜 있을꼬.”151)
위 인용문은 춘향의 사랑관을 여실하게 보여준다. 이별의 이유가
부모님의 반대 때문이라면 ‘탐화봉접 취한 마음’과 무엇이 다르다는 것인가. 춘향은 이도령의 사회적 신분을 보고 그를 사랑한 것이 아 니므로 자기의 천한 신분 때문에 이도령과 이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진정한 사랑이라면 장애물을 넘어가야만 한다. 그 것이 춘향이 생각하는 사람이 사람에 대해 갖는 도리이기 때문이다.
결국 이도령은 “내가 이제 올라가서 장원(壯元) 급제(及第) 출신(出
身)하여 너를 데려갈 것이”라는 약속을 한 후 춘향은 별 수 없이 이
별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이 약속의 이면에는 기약 없는 기다림이 자리하고 있다. 이도령은 처음의 약속을 저버린 이도령을 또다시 믿 어야 하는 것이다.춘향은 대비속신하여 기적에 이름이 없음에도 기생의 딸은 기생 이라는 ‘종모법’의 인습을 완전히 타파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춘향 이 기생 취급을 면할 수 있었던 것은 춘향이 처신을 잘하고 주변 사람들 역시 춘향에 대한 애정을 가졌기 때문이었다.152) 그런데 변 학도는 그러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기생의 딸이라면 기생이 된다는
변모양상 – 완판 계열 이본을 중심으로」, 『판소리연구』8, 판소리학회, 241-242면 참 조.) 그렇지만 본고에서는 춘향의 성격이 고정되지 않고 구체적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것이야말로 훨씬 더 현실성을 획득할 수 있다고 본다.
151) 구자균 교주(1976), 앞의 책, 97-99면.
152) 이현주는 “춘향이 다른 양반들과 갈등이 없는 것은 그들이 춘향의 현실적인 처신이나 신분상승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인정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이현주(2007),
「<춘향전>에 나타난 춘향의 신분적 특징과 구조적 기능」, 『어문학』96, 한국어문학 회, 30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