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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건사회제도의 문제점에 대한 고발

<춘향전>과 <취교전>은 춘향과 취교를 통해서 봉건사회의 질서

에 반항하는 목소리다. <춘향전>의 경우 여성의 인간으로서 살 권 리를 짓밟았던 조선시대의 신분제의 불합리성을 고발한다. 만약 춘 향이 자신의 행복에 대한 주체적인 의식이 부재하고 기존 질서에 굴종했더라면 고난에 빠져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춘향은 이도 령과의 사랑을 나눈 경험을 통해서 무엇이 행복의 진정한 가치인지 를 잘 알고 있었으므로 기존 질서에 반항할 수밖에 없었다. 봉건사 회는 그러한 춘향을 용납하지 못하고 모든 수단을 이용해서 춘향의 지향을 꺾어내고자 하였다. 조동일은 변학도와 춘향의 대결은 지배 층의 비인간적인 횡포에 맞서서 인간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민중의 항거를 집약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보고 있다.340) 변학도와 춘향의 대결을 통해서 중세봉건사회의 제도적 문제점이 여과없이 노출된다.

변학도와 춘향의 대결이 벌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바로 춘향의 신분이다. 변학도는 기생의 딸이면 기생이라는 논리를 들어 춘향을 기생으로 취급하고 기생이 수절할지라도 아무 가치도 없다는 입론 으로 이도령에 대한 수절을 하고 있는 춘향에게 수청을 요구한다.

이렇게 보면 춘향의

‘일부종사’의 지향에 대한 장애는 조선시대의

신분제임을 알 수 있다.341)

339) 이 문제에 대해서 Nguyễn Lộc(1994), 앞의 책; Trần Đình Hượu(1999), 앞의 책;

Hoài Thanh, 앞의 논문, Trịnh Bá Đĩnh(2003), 앞의 책; Đặng Văn Kim(2003), 앞의 논문에서 논의한 것을 참조할 수 있다.

340) 조동일, 「춘향전 주제의 새로운 고찰」, 김병국 외(1996), 앞의 책, 14-35면.

341) 오수창은 “조선시대의 지배체제는 정렬의 사회적 기능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라도 기녀에게까지 정렬의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었다”고 보고 있다. 그렇지만 앞서 논의한 바 와 같이 기생에게 수절이 의무가 아닐 만큼 보장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오수창 (2012), 앞의 논문, 352면.)

한편, 춘향과 이몽룡은 서로에게 사랑이 깊어지면서도 이별해야 만 했다. 이몽룡과 춘향의 신분 차이 때문이다. 인연을 맺었을 당시 에 이몽룡은 신분 차이에 상관하지 않았으나, 춘향을 데리고 가려고 할 때에는 이 신분 차이가 큰 장애가 된다. 만약에 이몽룡이 춘향을 데리고 간다면 화방작첩한 연유로 그의 가문에 폐단이 생길 수도 있고 그의 앞길이 막힐 수도 있다. 그런데 춘향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롭게 할 수 없기에 이별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 렇게 보면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에 장애로 작용하는 것은 봉건사회 의 신분제도라고 볼 수 있다.342)

<취교전>의 경우 여성의 인간으로서 살 권리를 짓밟았던 봉건사

회와 돈의 부정적인 힘을 고발한다. 많은 사람들이 만약에 김중이 요양에 가지 않았으면 취교가 몸을 팔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한 가능성이 있겠지만 취교와 김중의 오랜 이별은 그들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취교가 숙부의 상을 입은 것에서만 기인한 것이 아니다. 만약에 관리들이 공정하게 정치를 행했다면 취교의 아 버지가 누명을 쓰지 않았을 것이며, 그렇다면 그녀는 몸을 팔지 않 아도 되었을 것이다. 또 마감생이 돈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는 이 가 아니라면 첩을 구한다는 속임수로 딱한 처지에 놓여있는 순결한 처녀를 속여 정조를 유린시켜 청루에 팔리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초경도 수파가 꺼내준 30량의 은전(銀錢) 때문이 아니라면 같이 도 망가자고 취교를 속여 손님을 대접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며, 취교를 청루에 넘겨주고 얻을 수 있을 돈 때문이 아니라면 박파와 박행이 결혼이라는 계략을 쓰고 자기 집으로 피난해온 취교를 청루에 팔리 는 신세로 몰아넣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취교와 김중의 사 랑에 장애가 되고 취교의 삶이 비참하게 한 것은 바로 쇠퇴해가는 봉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343)

342) 정출헌은 중세 봉건사회의 신분적 질곡이 춘향과 이도령의 애정 성취에 장애가 된다 고 보고 있다.(정출헌(1993), 앞의 논문, 101면 참조.)

343) 당 타이 마이는 무죄한 왕씨 가문이 망해지고 취교가 타향살이를 하게 된 수범이 바 로 봉건정권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또한 <취교전>이 무역경제의 맹아가 싹튼 사회에서

한편, 춘향과 취교의 수절은 모두 전통적인 수절의 관념과 차이 가 있다. 그들의 수절은 봉건사회가 정해놓은 덕목과 질서를 의무로 서 유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개별 개인의 사랑과 행복을 지키기 위한 행위이다. 그런데 봉건사회에 속해 있기에 그들이 자신의 지향 을 실행하는 데에 장애를 받을 수밖에 없다. 춘향이 ‘일부종사’를 하 느라고 수절한다고 하는데 회계 나리의 말처럼 그녀에게는 그러한 자격도 없고 그러한 권리도 없다. 여성에게 수절을 요구했던 유교의 사회에서 왜 춘향이 수절하면 안 되는가? 춘향이 비천한 신분을 갖 기 때문인가? 비천한 여자에게 수절을 요구하지 않지만 수절하면 안 되는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러면 무엇이 문제가 되는가?

바로 춘향의 미모(美貌)이다. 만약에 춘향이 예쁘지 않았다면, 춘향 과 변학도는 첨예한 관계를 맺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춘향은 아 름다웠고, 변학도는 아름다운 그녀에게 깊은 관심을 두었기에 도임 하는 즉시 기생점고(妓生點考)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춘향이 이몽룡과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수청 들라고 요구했다.

이렇듯, 춘향이 수절하는 데에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춘향의 미

(美)라고 할 수 있다.

봉건사회에서 여자의 아름다움은 오히려 그

여성에게 고난의 계기가 될 수 있다. 봉건 사회에서 여성의 인권을 보호해주는 법률은 뚜렷하지 않아서, 여성의 아름다움은 늘 대상화 되어왔다.344)

춘향과 마찬가지로 취교가 정절을 지키지 못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취교의 재색(才色)에 있다. 만약에 취교가 재색이 없었다면 여 자를 사서 청류에서 몸을 팔게 해서 돈을 버는 것을 생계로 하는 마감생이 취교를 사지 않았을 것이다. 아래의 인용을 보면 그를 확

돈의 부정한 힘을 고발한다고 한다. 응웬 칵 비엔도 취교의 수난이 실장사치의 사건에 있어서 장관의 불공명한 것에서 기인하였다고 해석한다.(Đặng Thai Mai, Đặc sắc của văn học cổ điển Việt Nam qua nội dung Truyện Kiều(<취교전>의 내용을 통해서 본 베트남고전문학의 특색), Trịnh Bá Đĩnh(2003), 앞의 책, 528-529면; Nguyễn Khắc Viện, Giới thiệu Truyện Kiều(<취교전>의 소개), Trịnh Bá Đĩnh(2003), 앞의 책, 540 면 참조.)

344) Trần Nho Thìn(2003), 앞의 책, 125-167면에서 참조.

인할 수 있게 된다.

속으로 좋아하네, ‘깃발이 수중에 있지,

옥 같은 자태를 보면 볼수록 마음이 취하는 걸.

국색천향(國色天香)이니,

일소천금(一笑千金)이란 말 그릇되지 않군.

일단 데려다 놓으면 먼저 꽃을 꺾겠다고,

왕손귀객(王孫貴客)들이 틀림없이 서로 다투겠지.

적어도 삼백 냥 이상일 것은 틀림없으니, 일단 자본금을 뽑은 후로는 이익이렷다.’345)

취교의 재색은 취교를 사람을 사고파는 자의 피해자로 만들었다.

수파가 초경과 계략을 꾸며 취교에게 손님대접을 하게 한 것은 역 시 취교의 재색으로부터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한 까닭이다.

박파가 자기의 손자인 박행과 모계를 꾸며 취교가 두번째 청류에 팔려가게 한 행동도 같은 이유에서이다.

취교가 연지분 바르지 않았어도 아름다운 것을 보고,346)

팔아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상품을 얻었다고 속으로 좋아하네.347)

위의 인용은 박파가 자기 집으로 피신해 온 취교를 보고 속으로

하는 생각이다. 박파는 취교의 신세를 동정하지 않는데다가 오히려 취교의 불행을 자기의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보면 취교의 재 색은 역시 취교의 삶을 비참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라고 할 수 있 다.

345) Nguyễn Du, 최귀묵 역(2004), 앞의 책, 90-91면.

346) 응웬 타익 쟝(Nguyễn Thạch Giang)이 교주한 <취교전(Truyện Kiều)>에서 “Thấy nàng mặn phấn tươi son(취교가 연지분을 바른 것처럼 아름다운 것을 보고)”으로 되어 있다.(Nguyễn Thạch Giang khảo đính và chú giải(2008), Truyện Kiều(<취교전>), Nxb Văn học, 191면.)

347) Nguyễn Du, 최귀묵 역(2004), 앞의 책, 186면.

위에서 분석한 바와 같이 <춘향전>과 <취교전>은 여성의 인간으 로서 살 권리를 짓밟는 봉건사회의 질서에 반항하는 목소리다. <춘 향전>의 경우 춘향의 이도령과의 사랑 성취와 일부종사의 지향에 장애가 된 것은 신분 차별이 비인간적인 정도로 극심한 신분제의 불합리성이다. 반면, <취교전>의 경우 김중과의 사랑 성취와 인간다 운 삶의 지향에 장애가 된 것은 지배층의 부정부패와 돈을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는 사회의 폐단이다. 이렇게 보면 <춘향전>과

<취교

전>에서 다룬 문제가 다른 점이 보인다. 그렇지만 남권중심사회에 살던 여성의 인간으로서 살 권리에 초점을 맞춰 볼 때 상당히 비슷 한 점이 발견된다. <취교전>에서 춘향은 천한 기생 신분 때문에 수 난을 겪게 되고 <취교전>에서 취교는 가난 때문에 타향살이를 하게 된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앞서 분석한 바와 같이 궁극적인 원인은 바로 그들의 ‘아름다움’이다. 여성이 남성의 성적 대상으로 인식되었 던 가부장제사회에서 재색이 뛰어난 여성들이 늘 남성지배층이나 부자남성의 피해자가 될 위험에 대면하였으며348) 그들이 자기의 행 복을 추구하거나 지킬 수 있는 길이 험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