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남북한 실질적 통합과 주변국의 역할 : 환경과 사례
Ⅱ. 북한의 종교정책과 남북한 종교실태
난 2년 동안 남북간의 종교협력문제를 다루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화해
‧협력단계」와 「남북연합단계」에서 추진할 수 있는 연구결과가 축적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다.
현재 남북한 사이의 종교교류는 사회문화의 다른 영역에 비해서는 활발 한 편이지만 아직도 해외에서 개최되는 종교집회와 세미나에 공동으로 참 여하거나 공동행사를 추진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남한의 종교인이 북 한을 방문하여 연합활동을 하는 경우는 있었지만 북한의 종교인이 남한에 방문한 경우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곧바로 실질적 통합단계를 상정하여 남북한 종교교류의 제도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남북연합 이후 남북한관계가 실질적인 통합단계에 들 어선 상황을 가정하여 종교분야의 교류‧협력 제도화 방안을 모색하되, 「 화해‧협력단계」와 「남북연합단계」에 수반되는 남북협력 내용도 포함할 것 이다. 즉 본 연구는 현재의 남북한의 종교실태와 지금까지의 남북간 종교 교류 현황을 살펴보고, 이를 바탕으로 실질적 통합단계에서 전개될 종교 상황을 예측한 후, 이에 근거하여 실질적 통합단계에서 추진 가능한 남북 종교 교류‧협력의 제도화의 문제를 다루는 방식으로 전개하고자 한다.
간주된 종교세력을 척결하기 위해 기독교와 불교를 배척하는 대신, 천도 교는 상대적으로 용인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 전까지는 북한의 종교활동 은 완전히 억제되지 못하였다.
북한의 종교정책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완전히 달라진다. 전쟁이후 미국 에 대한 적개심이 높아지면서 기독교에 대한 사회적 인상이 대단히 부정 적으로 바뀌었고 반종교에 대한 집중적인 사상투쟁을 전개함으로써 북한 의 종교지형은 극도로 위축되었다. 1972년 남북대화가 시작되면서부터 남한 기독교인들과의 통일전선 구축 차원에서 북한은 종교단체들의 활동 을 재개하였다. 이 시기의 북한의 종교활동은 주체사상과 사회주의 체제 를 인정하면서 동시에 기독교 신앙을 소유하는 소위 공식종교 내지 체제 협력적 종교가 태동된다.
북한의 종교정책은 1988년을 고비로 전면적으로 바뀌게 된다. 1988년 평양에 봉수교회와 장충성당을 건축함으로써 대외적으로 북한에 기독교회 가 있음을 과시한다. 불교계도 1988년 처음으로 부처님 오신 날 등의 중 요 절기의 기념 행사를 공개적으로 개최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변화는 1980년대에 시작된 해외교포 종교인들의 방북활동 및 체제의 내부구조적 필요성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된다.
탈냉전 이후 북한종교정책의 변화는 92년 4월 개정된 헌법에 반영되 었으며, 이에 따라 종교관도 크게 변화하였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에 대 해 북한은 “종교에 나쁜 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점도 있다”는 종교 에 대한 김정일의 주체적 해석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 기저에는 대남전략과 대미관계 개선에 있어서 종교를 이용해야 할 필요성이 내재 되어 있다.
2. 남북한의 종교실태
남한불교는 대표 종단인 조계종만 보더라도 25개 교구에 820개 이상 의 사찰이 소속되어 있다. 승려의 수도 조계종의 승적 보유자만 1만 8천 명에 달하고 태고종을 비롯해서 50여 개의 군소 종단에 소속된 스님들까 지 합하면 훨씬 많은 숫자가 될 것이다. 불교계는 신도의 숫자가 남한 전
체 인구의 1/3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북한의 불교는 현재 사찰수 60여 개, 승려수는 300여 명, 신도수 1만여 명에 불과하다. 북한 이 공식적으로 불교신도를 1만 명이라고 밝히고 있으나, 석탄일과 같은 큰 기념일에는 절을 찾는 이들이 10만 명에 달한다고 한다. 1989년에는 양강도 중흥사에 북한 최초의 승려교육기관인 불교학원(91년 광법사로
이전)이 건립되었다. 북한의 사찰은 현재 종교적 의미와 기능은 상실한
채 다만 문화재로서의 가치만이 강조되고 있고, 법회도 형식적인 것이어 서 신자들의 신앙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지 않다.
남한 개신교는 1960년대와 1970년대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유래 없는 급속한 성장을 거듭하여 4만여 교회에 전체인구의 20%에 이르는 신도를 보유하고 있다. 한편, 북한의 개신교는 봉수교회, 칠골교회와 같 이 예배당을 갖춘 교회와 예배당이 없이 신자의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는 가정예배소로 구분된다. 특히 가정예배소는 북한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 당해 왔는데 북한측에서는 북한에 약 520여 곳의 예배처소가 있는 것으 로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약 1만 명이 있는데 이들 중 약 6천명
이 10-15명으로 구성된 가정예배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리고 공
식적인 교회 이외에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기독교신자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한의 천주교는 주교 22명, 신부 2,800명, 수도자 8,139명, 그리고 총 신자는 384만 5천여명으로 전체 인구 4천 700만의 약 8.2%에 이른
다. 반면, 북한은 1988년에 건축된 장충성당과 3천명의 신도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교황청은 북한지역에 교구를 인정하 고 있지 않기 때문에 조선카톨릭교협회를 천주교 신도회로 인정하지 않는 다. 북한의 천주교회는 국가의 개입과 통제가 어느 정도 작동하고 있는 국가교회의 양상을 띠고 있으며, 과거 천주교 신자 가정을 대상으로 잠재 적 신자를 파악하여 전도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민족종교로 간주되고 있는 천도교는 북한 주민에게 종교본연의 활동보 다는 정당단체로서 더 많이 인식되고 있는 편이다. 해방당시 천도교는 신 도 2백80여만 명을 가진 북한에서 가장 큰 종교세력이었으며 초기 북한 집권세력과도 상당한 협조관계를 유지했다. 천도교는 북한의 사회 체제
안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적응한 종교이다. 현재 1만 3천 5백여 명의 교 세를 가지고 있으며, 100석 규모의 중앙교당이 있으며, 전국에 800개소 의 전교실이 가정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3. 남북한 종교의 이질화 실상
남북한 종교의 이질화 현상은 심각하다. 북한당국의 종교정책의 변화에 도 불구하고 북한의 일반주민들의 종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여전히 바 뀌지 않고 있다. 북한주민들은 종교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무지한 상태이 면서 종교 자체에 대해 무조건 강한 적대감을 보이는 모순도 갖고 있다. 그들은 종교가 무조건 사람을 홀리고 마비시키는 두렵고 무서운 공포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 종교인들이 불순분자로 분류되어 사회적 불이익을 당하거나 핍박을 받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다.
북한의 종교는 개인 혹은 소규모 공동체를 중심으로 하는 처소예배를 기본적인 예배 형태로 하고 있다. 이런 특징은 종교에 대한 주민들의 보 편적 적대감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종 교는 교류를 통해 접하게 되는 외부의 종교 양태에 대해 매우 적극적인 수용 자세를 보이고 있다. 원칙적으로 사회에 대해서 적극적인 참여 의사 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서 사회 안에서 종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이는 직접적 전도의 수단이 제한되어있다는 상황과 주 변의 부정적인 시선을 받고 있는데 대한 현실적 대책으로 마련된 것이라 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