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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대책위원회의 결성과 집단행동-실체가 없는 싸움

어서, 혹은 어딜가든 ‘거기서 거기’일 거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기존 유치원으로 다시 아이를 보내는 경우가 많았다. 깊은산은 기존 유치원으 로 다시 아이들을 보내는 학부모들은 교육에 대한 진정한 고민없이 ‘시 장가치의 논리’에 따라 선택을 내렸을거라고 판단하였고, 대부분의 학부 모들이 그러한 논리에 따라 유치원을 선택하기 때문에 비리유치원으로 주목되었던 곳들 역시 여전히 인기가 높다고 지적하였다.

깊은산: 그렇게 조금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들…. 이번에 비리유치원으로 주목했 던 데들이 다 이번에도 애들 꽉꽉 채웠어요, 꽉꽉 채우고 막 경쟁률도 있 고 그랬거든요. 그런 분들은 그렇게도 생각을 했어요. 뭐 원장이 돈을 좀 남길 수도 있지, 내 애만 잘 봐주면 되고 내가 내는 돈만큼만 서비스만 받으면 되지. 예를 들어서 내가 70만원을 냈는데 이 사람이 나한테 70만 원치 서비스를 해주고 자기는 돈을 좀 남겨가지고 자기가 좀 가지는거는 상관없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차이가 있는거에요.

아이들이 속속 유치원으로 되돌아가는 분위기 속 맘카페에서도 “사회정 의를 위해 더 싸우지 않는다”며 비난하는 글들이 등장했고 이에 반박해

“아이들이 볼모로 잡혀 있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유치 원 재원생 엄마들의 글도 여러 차례 올라왔다. 비리유치원으로 낙인 찍 힌 곳에 다시 아이들을 보낼 수 밖에 없었던 엄마들의 “어쩔 수 없는 선 택”은 사립유치원-학부모 간의 상호이익 유지를 위한 선택이자 “상호 수 용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합의(a mutually acceptable, workable settlent)”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Gulliver(1973)는 재판정, 판사, 권위의 자원(resources)이 없는 사례의 분쟁 처리에서는 ‘무대(an arena), 합의를 위한 욕구, 분쟁의 성격에 대한 합의 된 정의, 적절한 규범 및 규칙의 식별, 협상 과정, 합의 된 합의, 합 의의 공식 승인 및 실행’이 관찰된다고 보았다. 물론 일부는 명확하지 않 을 수도 있지만 서로가 결국 필요한 존재일 때, 즉 대체 가능한 자원이 없을 때 두 당사자는 상호 유익을 위해 기꺼이 노력한다는 것이 Gulliver의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비리유치원 사태에서도 사립유치원-학

부모 간 서로에게 다른 대안이 없었다는 점에서 협상은 더욱 빠르게 진 행되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유치원으로부터 어떤 보상 (compensation)을 받을 수 있는지에 좀 더 집중하였고, 유치원 역시 최 후의 카드였던 폐원도 불가능하게 된 마당에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용하 고 유치원을 계속 운영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판단하였다.24) 이러 한 상호 이익에 대한 암묵적 합의 위에서 사립유치원-학부모는 새로운 협력과 상호의존의 관계를 생성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반해 비대위 측에서는 ‘박용진 3법’이 통과될 때까지 사립유치원과 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동탄 거리집회와 국회 밖 시위를 시작하는 등 본격적인 행보에 나섰다. 비대위는 10월 15일 정식으로 발 족하였으며 각 유치원별로 마련된 정상화위원회와는 다르게 비리유치원 사태에 대한 정부와 교육부, 화성시의 적극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자 하는 동탄 학부모들로 구성되었다. 맘카페 오픈채팅방을 통해 첫 만남을 가진 50여명의 비대위 사람들은 10월 21일 동탄 센트럴파크(중앙공원)에 서 집회를 열었다. 집회에는 “유아교육기관에서 도둑질은 이제 그만!”,

“앞에서는 교육기관 뒤에서는 자영업자”, “국민의 세금 사립원장 주머니 로 들어가지 않게 해주세요”, “바로 서는 유아교육 공교육화 이루어내 자”와 같은 현수막 및 피켓들이 등장했다. 비대위는 조직 당시부터 개별 유치원의 정상운영에 대한 촉구나 원장의 공개사과가 아닌 ‘유아교육의 정상화’라는 목표를 삼아 대응에 나선 단체였기 때문에 주로 ‘교육 당국 에 대한 제도적 개선방안 마련과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박용진3 법의 조속한 통과 촉구’에 집중하여 목소리를 높였다. 10월 28일에 열린 서철모 화성시장과의 간담회에서도 비대위는 동탄 학부모들의 의견을 수 합 및 정리하여 전달하면서 시립어린이집의 확충 등 공공보육시설의 확 대나 교사들의 처우 개선 등에 대한 문제들도 논의 사항으로 제시하였 다.

24)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10월 28일 제1차 유아교육 공공성 강화추 진단 합동 점검회의에서 사립유치원의 ‘일방적 폐업, 집단 휴업 등을 한 유치

이러한 비대위의 요구는 사립유치원과의 개별 협상을 통해 이끌어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을 뿐더러 교육당국 차원에서 단기간에 해결가능한 일들도 아니었다. 비대위의 싸움이 길어질 거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지난한 싸움의 첫 시작은 한유총에 대한 투쟁이었다. 비리유치 원 사태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공식적인 적(敵)이었던 한유총을 해산시키 는 것에 1차적인 목표를 두었던 비대위는 라디오 방송과 같은 공개적인 자리에서 한유총에 대한 비난을 이어나갔다. 비대위 대표로 활동했던 북 극성은 활동 당시의 상황에 대한 연구자의 질문에 한유총이라는 ‘실체 없는 조직’과 싸우는 일이 가장 지치고 힘들었다고 회고하였다.

북극성: 그러니까 싸워도 우리가 실체가 없는 사람하고 싸우니까 지칠 수 밖에 없 는거야. 해봐야 맨날 ○○○ 밖에 안나오고, 그 △△△ 유치원 대표. 그 런 사람 밖에 안나오는거야. 분명히 실체는 어딘가 분명히 높은 사람이 있는데 나올 수가 없는 구조야.

한유총이 비대위 뿐만 아니라 여러 방송이나 신문사로부터 여러 차례 요청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호응하여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대변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들이 비대위와 함께 협상의 무대/경기장에 선 다고 해도 달리 얻을 게 없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앞서 서술 한 동탄 내 개별 사립유치원-학부모의 관계와 달리 비대위-한유총은 협 상을 통한 상호유익이 전혀 없는 관계였다. 비대위는 한유총의 완전한 해산만을 주장하였고 한유총은 비대위의 존재에 대해 무척이나 견제하면 서도 무시하는 태도로 일관하였다. 상호 관계를 지속하려는 소망이 없는 한 두 당사자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지 않으며 더욱이 존재에 대 한 부정은 합의가 불가능한 사안이었다. ‘무엇을 합의할지’가 결정되지 않으면 협상은 시작조차 되지 않는 것이다(Gulliver 1973). 협상 테이블 에 앉지 못한 비대위-한유총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가 서로를 공격 하려는 집단으로 간주하고 급기야 두려움을 보이기도 했다. 북극성은 연 구자와의 첫 만남(비공식 면담) 당시 자신이 한유총의 블랙리스트에 올

랐으며 자녀의 얼굴마저 노출되었기 때문에 동탄의 어느 유치원도 자신 의 아이들을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비대위에서 어떤 입장을 표명하면 한유총에서 바로 다음 입장을 내놓곤 하는데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겠느냐고 주장 하였다.

한유총과의 싸움이 불가능해지자 비대위는 다른 곳에서 ‘지지자’들을 끌 어들이는데 집중하였다. 센트럴파크 집회 및 서철모 시장과의 간담회 이 후 11월 8일에는 경기도교육청에서 ‘처음학교로’ 도입을 촉구하는 성명서 를 발표하였고, 같은 달 11일에는 국회 정론관에서 박용진 3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를 위한 학부모들의 지지 서명서를 전달하였다. 12월 4일에는 비대위 및 교육청 관계자를 포함한 총 24명이 모인 자리에서 사립유치원 사태 관련 대책을 논의하였는데, 대응계획에 관한 비대위 측의 질문에 교육청은 사립유치원 종합감사, 비리신고센터 운영 등의 상시 감시체제 를 구축하고 비리 결과가 중할 경우 행정 및 형사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국회에서 교육위 법안소위가 열릴 동안에는 시민단체인 ‘정 치하는 엄마들’과 연대하여 자유한국당 의원들 사무실이나 개인휴대폰으 로 박용진3법 개정 통과에 협조하라는 전화를 돌리는 작업을 하였다. 이 른바 ‘전화행동’은 여야를 가리지 않았는데, 더불어민주당 내 “한유총 편 드는 국회의원”도 ‘전화행동’의 대상이 되었다.25)

그러나 이러한 열정적 활동이 무색하게도 박용진 3법은 통과되지 못했 다. 12월 27일, 유치원 3법은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안건 신속처리제도)에 상정되어 최대 330일의 유예기간을 갖게 되었다.26) 패스트트랙으로 지정 된 안건은 정해진 기간이 넘어가면 자동으로 본회의에 상정되어 투표에 부칠 수 있게 된다.27) 불행 중 다행으로 법안이 폐기된 것은 아니었지만 25) 비대위 활동에 대한 내용은 피면담자들과의 비공식적 면담 내용과 아이가

행복한유치원 네이버카페를 참고하여 정리하였다.

26) 매일경제, 2018.12.27., “‘유치원3법’ 합의 불발...패스트트랙 지정”

27) 국회법 제85조의2(안건의신속처리) 제3항,6항,7항. 패스트트랙 제도는 정당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려 합의에 이르지 못하는 법안을 신속하게 처리하기

비대위는 1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마냥 기다려야 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 었다. 한유총과의 투쟁은 시작조차 불가능한 것이 되었고, ‘유아교육 정 상화’라는 원대한 목표 역시 유치원3법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한 걸음도 더 내딛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싸워야 할 상대와 이뤄야 할 목표 가 없어진 비대위는 점차 힘을 잃어갔다. 12월에 이르러 비대위 구성원 들의 활동은 점차 뜸해지기 시작하였고 결국 12월 말에 이르러 비대위에 는 북극성 가족만이 남게 되었다. 그러나 비대위 대표였던 북극성 ‘유아 교육 정상화’라는 목표를 놓치지 않았다. 그는 이를 이뤄낼 수 있는 새로 운 조직, 즉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요컨대 비리유치원 사태는 ‘분쟁’으로 번지지 않고도 법 개정을 통해 사 립유치원 회계 투명성이라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것이

‘분쟁’이 되고만 이유는 사태가 발생하기 전 교육부와 사립유치원 간 관 련법 개정에 관한 논의가 활발히 일어나고 있었던 때에 정작 이 사안의 주체로써 함께 참여했어야 할 학부모들이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공 공의 재원이 투입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립유치원의 재정 운용의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는 결코 사립유치원과 정부 둘만의 합 의체에서 결정하여서는 안될 성질의 문제다. 누리과정이 도입된 후 관련 법 상 회계 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학부모들도 알 수 있 는 공개된 자리에서 논의하였더라면 적어도 학부모들이 ‘우리는 왜 몰랐 을까’라고 자문하며 분노의 수위를 높이지는 않았을 것이고, 서로를 견제 하고 불신하며 대립각을 세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사립유치원은 유아기의 발달이나 보편적 교육기회의 제공이라는 측면을 차치하고서라도 도시의 부모들에게 중요한,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었다.

학부모들은 이러한 사립유치원에 의존하고 한편으론 경계하였으나 그렇 다고 단순히 유아교육에 대한 수요자에 머무르지는 않는다. 아이를 맡기 는 행위에는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를 넘어선 특별한 성질의 ‘믿음’을 필요 로 하기 때문이다. 다음 장은 아이들을 위해 직접 ‘믿음’의 울타리를 만 들려는, 즉 ‘부모들이 만드는 유치원’에 대한 이야기다.

트트랙 법안으로 지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