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랑놀자에서 참여관찰을 하는 동안 연구자의 눈에 비친 엄마들은 언 제나 바쁘고 다소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터전에서 공동육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합 업무도 병행해야했기 때문이다. 원래 숲이랑놀자는 품앗이 공동육아를 하기 위해 만든 공간이며 엄마들도 공동육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조합/유치원과 관련한 일의 양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그에 따라 이사나 팀장 등의 직책을 맡고 있었던 엄마들은 숲이랑놀자에 서도 맡은 업무를 처리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유일하게 조합원이 아니었 던 삐삐네 가족이 9월 즈음 터전을 떠나자 숲이랑놀자는 더 이상 품앗이 공동육아를 하는 곳이 아니라 ‘조합유치원을 준비하는 공간’이 되어버렸 다. 엄마들은 조합일로 인해 숲이랑놀자가 본연의 정체성을 잃어버린 것 에 대해서 불만을 드러냈지만, 그만큼 조합/유치원을 준비하는데 많은 품과 시간이 걸렸기에 결국 ‘조합이 공동육아를 잠식하는 상황’을 받아들 이는 수 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이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참고할만한 선 례나 매뉴얼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시간동안 공동체 내부를 할퀸 심각한 갈등들이었다.
깊은산: 진짜 힘들었어요. 만드는데 행정적인 부분들, 일단 전래가 없었고 행정관 청에서도 우리 어떻게 도와줄지 몰랐고 제도도 없고. 우리는 만들어도 된 다는 것만 있지 우리가 어떻게 하라는 법은 아무 법이 없어요. ‘만들어도 된다’라는 법 외에는 우리를 지칭하는 아무런 법이 없기 때문에. 아, 우리 가 제일 많이 들었던게 ‘우리가 너희한테 관심이 많아’ 이 소리를 진짜 많 이 들었어요. 우리가 어떻게 너희를 도와주겠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 어요. 사람들 모으고 중간에 뭐 지역민과의 마찰이 있었고.
사회적협동조합이 만드는 국내 최초의 유치원. 이 유치원을 만들어가는 과정은 그야말로 ‘피와 땀과 눈물’의 연속이었다. 최초라는 타이틀만큼이 나, 깊은산의 표현대로 “우리를 지칭하는 아무런 법이 없기 때문에” 숲 이랑놀자 7가족들을 포함한 초기 조합원들은 자신들이 가야할 직접 길을 개척해야 했다. 조합이라는 체계 자체에 문외한이었고 유치원을 만든다 는 것이 얼마나 복잡한 절차를 따라야되는지 미처 알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은 조합유치원을 준비하며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고 말했 다. 북극성이 처음 학부모형 협동조합에 대한 기획안을 만들었을 때 서 철모 화성시장이 장소를 마련해보겠다고 먼저 제안은 했지만, 이음터 자 리를 임대해준 것 외에 유치원이 개원할 때까지 필요한 모든 것은 조합
스스로가 구해야 했다. 숲이랑놀자에서 공동육아를 하며 개원까지 남은 1년 동안 차근차근 준비하면 충분할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사람들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들을 다루어야 하는 것 에 어려움을 느꼈다.
우선 조합 인가를 받는 것부터가 난관이었다. 사회적협동조합은 영리법 인에 속하는 일반협동조합보다 설립절차가 훨씬 까다롭다. 일반협동조합 의 경우 일정한 절차에 따라 주무관청에 설립신고를 하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신고확인증을 받고 설립등기를 하면 설립이 완료된다. 그러나 사회적협동조합의 경우 ‘신고’가 아닌 ‘인가’ 절차가 필요하다.36) 물론 이 러한 절차를 맡아서 해주는 공인행정사들이 있지만 예산 부족에 허덕이 던 조합이 전문가를 고용할 여력은 없었다. 결국 조합원들이 개인 시간 과 휴가를 내어 인가 준비에 매달려야 했다.
6월 5일에 조합인가증이 나오고 비로소 유치원을 만들 수 있는 길이 열 리게 되었지만, 유치원 설립 역시 조합만큼이나 복잡한 절차와 까다로운 준비를 필요로 했다. 처음에는 부귺성과 한나, 오로라, 꽃마리 등 몇몇 조합원이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했는데 조합 인가 후 개원일까지 시간이 얼마 없게 되자 모든 조합원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일에 뛰어들어야 했다.
앞서 이야기했듯 이들에겐 경험도, 선례도 없었기 때문에 많은 시행착오 들을 감당해야 했고, 이에 대한 책임 소재를 둘러싸고 공방이 벌어지기 36) 인가에 필요한 각종 서류와 함께 설립인가 신청서를 작성하여야 하는데 지 역사업형/취약계층 사회서비스 제공형 혹은 고용형/위탁사업형/기타 공익증 진형 중에서 주사업유형을 선택한 후 주사업내용이 ‘설립인가 기준을 충족하 는 것에 대해 증명하는 서류’ 역시 조합에서 준비하여야 한다. 다시 말해 세 부 사업내용이 비영리활동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조합이 직접 증명해야 하는 데, 이와 관련해서는 지정된 위탁기관에서 서류를 검토한 후 사회적기업진흥 원으로 보고서를 제출하고 그 다음 사회적기업진흥원에서 사무실 실사 후 평 가보고서를 작성하여 이를 다시 주무관청으로 보내는 절차가 필요하다. 만약 그 사이에 관련법령이나 지침이 개정되거나 변경될 경우 그에 따라 인가서류 를 다시 작성해야하며 이를 위해서는 또 임시총회를 열어 수정보완을 해야 하는 등 행정적 절차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시작하면서 북극성과 나머지 가족들 사이에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조합에서 이뤄지는 일들은 구성원들의 의사결정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 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부 개인의 책임이라고 특정 지우기 어렵다.
일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여러 원인들이 중첩되어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 가 대부분이었지만, 그 문제가 재정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치면서 사람들 은 매우 예민해졌다. 조합이 가진 예산이 너무 빠듯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합원들은 처음 내부 인테리어를 구상할 때 만장일치로 최고급 소 재만을 쓰자고 결정했었다. 교재·교구와 가구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에 게 최고의 환경을 제공하겠다는 뜻에서였다. 실내놀이터를 만들 때도 다 른 유치원들은 쓰지 않는 최상급 원목만을 사용했는데, 문제는 이런 좋 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 놀이터로 인해 예산이 크게 초과되어 버렸다는 사실이다.
유치원 놀이시설은 ‘어린이놀이환경 인증검사업체’에서 인증을 받아야 하는데 이 인증을 받기 위해서는 검사 비용이 든다. 그러나 초기 예산에 는 이러한 비용이 전혀 담겨있지 않았다. 다른 유치원들은 처음부터 ‘놀 이터 인증을 받은 업체’에 공사와 검사를 동시에 맡겨서 비용과 시간을 줄이는데 조합원들은 이러한 정보들을 미처 알지 못했던 것이다. 돈과 시간 모두를 허투루 쓰게 되어버린 조합원들은 놀이터가 누구의 담당이 었고 누구의 책임이었는지를 따져가며 언쟁을 벌였다. 아이들을 위해 ‘최 고급 소재’를 쓰자고 입을 모았던 과거의 회의 자료는 이러한 책임공방 에서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못했다.
통학 차량도 ‘예산 초과’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는데, 북극성의 말에 따르 면 통학차량을 현금을 주고 사버리는 바람에 “최후보루였던 돈마저 날아 가” 조합이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고 한다. 업체에 미리 주문 제작해서 1 월 경에 출고를 했으면 갑작스레 큰 돈이 빠져나가는 일이 없었을 것이 라는 이야기였다. 북극성은 엄마들에게 통학차량을 미리 준비해야한다고 거듭 요청을 하였는데도 불구하고 진행이 미뤄지다가 사단이 난 것이라 고 생각하고 있었다.
한편 엄마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불만을 불러일으켰던 것은 북극성의
독단적인 태도였다. 비대위때부터 고군분투해왔던 북극성은 자신만큼이 나 다른 사람들도 조합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원했는데, 또 자 신만큼이나 조합/유치원에 대해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 모든 일에 관여하려고 했다. 물론 이사장이라는 직함이 일반 조합원보다 훨씬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만든 것도 있었고, 비리유치원과 한유총에 맞서 상징적 인물이 된 이상 북극성 감당했어야 할 부담이 목표달성을 향한 추진력으로 작동하였다고 볼 수도 있다. 엄마들 역시 ‘북극성이 모 든 부분에 대해 제일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하며 그의 능력과 수고를 인 정한 반면 리더로써 일을 진행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큰 불만을 드러냈 다. 깊은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조합원 모두의 합의 하에 일이 진 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버리는 북극성과 깊은산의 모습에 엄마들은 큰 회의를 느꼈고 점차 조합과 공동체를 ‘분 리하여’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때의 ‘분리’는 북극성/깊은산이 원하 는 것처럼 행동양식 혹은 업무방식에 대한 ‘분리’라기 보다는 북극성/깊 은산은 조합을, 엄마들은 공동체를 우선시하고 있다는 ‘집단적 경계 짓 기’에 가까웠다.
엄마들이 조합유치원이 개원한 후에야 비로소 조합과 공동체를 분리하 여 인식하기 시작했다면, 북극성과 깊은산은 처음부터 조합이란 ‘공적인 것’으로써 공동체적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북극성/깊 은산은 엄마들이 ‘기다려 달라, 이해해 달라’고 하는 것을 ‘공동육아’적인 업무처리 방식이라고 비판하면서 조합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생각이 달랐던 이유는 엄마들은 숲이랑놀자에 서 공동육아를 했고 북극성/깊은산은 공동육아를 경험하지 않은 차이에 있다. 물론 북극성은 배우자인 오로라와 자녀들이 숲이랑놀자에 있었기 때문에 7가족과 ‘같은 육아공동체’임을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숲 이랑놀자가 조합유치원을 개원하기 전에 머무는 임시적인 공간일 뿐이라 고 생각했으며 일종의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에겐 엄마들이 숲이랑놀자 에서 공동육아를 하는 것도 ‘조합유치원을 위한’ 것이었다. 북극성의 목 표는, 비대위 시절부터 일관되게, ‘대한민국 유아교육의 희망’이 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