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립유치원 감사결과 공개가 곧 ‘비리유치원 사태’라고 명명됨으로써 사 건은 공식적으로 ‘분쟁’이 되었다. 분쟁의 양식에 따라 양당사자가 성립 하게 되었는데(황승흠 2001) 학부모와 정부, 여당이 진영의 한 편을 차지 하고 있었고 반대쪽에는 사립유치원과 한유총, 야당이 있었다. ‘억울하다’
는 입장을 보이고 있던 사립유치원 및 한유총과 달리 야당인 자유한국당 측은 이에 적극적으로 동조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학부모들로부터는
‘한 패거리’인 것처럼 인식되었다. 이러한 인식의 저변에는 당시 이른바
‘촛불혁명’이 일어나고 정권의 교체가 이루어짐으로써 이전 정권을 대변 하는 자유한국당이 대중들에게 ‘보수 적폐’의 잔재로 여겨지던 정치적 상 황이 존재한다. 학부모들은 한유총이라는 이익집단이 그들에게 불리한
‘유치원 3법’ 개정안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해 자유한국당 측에 로비를 시 도했으며 둘 사이의 은밀한 거래의 결과로 자유한국당이 한유총을 비호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학부모들은 사립유치원/한유총/자유한국당을 ‘거대 세력’으로 규정했고 이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 학부모/교육부/여당이 더욱 합심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리유치원/한유총/자유한국당이 수적으로 보나 여론의 분위 기로 보나 오히려 열세인데도 불구하고 ‘거대 세력’이라고 지목 당한 것 은 이들이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돈은 분쟁의 처리에서 결과의 향방을 좌우할 수 있는 ‘사회적 힘(Gulliver 1963)’과 동 일시되기 때문이다. 아래 북극성의 면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유총 이라는 조직의 실체는 모호하지만 그들이 가진 자금력은 곧 사립유치원/
한유총/여당을 묶어 ‘거대 세력’으로 만들 수 있는 “어마어마한 힘”이 된 다고 학부모들은 생각했다.
북극성: 걔들이[한유총이] 점조직이라서 걔들 참 파악하기가 힘들어. 대표는 있더
라도 대표가 그 점조직의 대표인지도 몰라 아무도. 대단한 조직인거 같 아.
연구자: 그래서 한유총을 검색해도 아무것도 안 나왔나?
북극성: 그렇지, 정식단체로 인정되는게 아니라는거지. 그 사이트에 등록하는 것 도 쉬운게 아니더라고. 고유번호증 우리 인가 받았던거 고유번호증하고 그 등기사항, 말소사항 포함하고 대표자 신분 명확해야 하고, 그걸 다 줘 야되는데 그렇게 해야 단체번호를 받는데 찾아봤을 때 안나오는데 단체 번호가 없을 수도 있어. 그래서 그때 막 교육부하고 기획재정부에서 한유 총 단체 불법이라고 막 했던 이유가 그런 것 때문이야.
연구자: 그럴 수도 있겠네. 뭔가 교섭을 하려고 하면 누군가 대표가 있어야되는데, 공식적인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되는데….
북극성: 되도 안한 이상한 조직인데 힘은 되게 쎄. 돈이 많아서 그럴거야. 돈이 진 짜 많아.
연구자: 돈이 많아?
북극성: 돈 진짜 많아.
연구자: 어떻게?
북극성: 사립유치원 회비가 따로 있어. 그 예결산서에는 안나오는데 거기 예결산 서에서 자기네들이 이윤을 창출한 금액에서 얼마만큼 이 한유총에 회비 처럼 내게 되있어. 한유총이 힘이 어마어마하지.
황승흠(2001)은 분쟁당사자는 분쟁처리 과정에서 자신을 ‘정당화’시켜 줄 여러 방안들을 강구하며 여기에는 규범, 즉 법규범을 포함한 종교규 범, 사회규범, 도덕규범 등의 “넓은 의미의 당위체계”들이 있다고 설명한 다. “규범에 의한 정당화”는 분쟁당사자를 지지해 줄 ‘지지자(suppoter)’
들을 자신의 쪽으로 끌어들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비리유치원 사 태에서 ‘유치원3법 개정안’은 그 자체로 찬성과 반대의 입장표명이 필요 한 분쟁의 대상이 되지만 동시에 지지자들을 결집하는데 필요한 유용한 도구가 되었다.
처음 ‘유치원3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된 것은 2018년 11월 9일 교육 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린 자리에서다. 교육위원회는 교육부에 속 하는 의안과 청원을 심사하는 조직으로, 그 중 8명의 교육위원이 속한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회부된 법률안을 축조심의19)한 후 찬반토론을 거 쳐 의결한다. 이곳에서 통과된 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체계·자구심사 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는데 사실상 여기에서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면 국회 본회의에 상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정당 간에 치열한 토론이 벌어진 다. 당시 법안심사소위원회에는 박용진 의원을 포함한 더불어민주당 교 육위원 4명과 자유한국당 3명, 바른미래당 1명의 교육위원이 소속되어 있었다.20) 유치원3법(유아교육법·사립학교법·학교급식법) 일부개정법률안 을 대표발의한 사람은 박용진 위원이었고, 그가 발의한 ‘원안대로’ 본회 의에 상정하여 통과시키는 것이 학부모와 더불어민주당 측이 바라는 바 였다.
박용진 의원이 교육청 감사자료를 공개한 후 처음으로 열린 2018년 11 월 9일 제1차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측이 발 의한 유치원3법 기본 개정안의 골자에 대해 대략적으로 확인한 후 회의 가 마무리 되었다. 3일 후인 11월 12일 제2차 법안심사소위에서는 더불 어민주당 측이 발의한 개정안에 대해 자유한국당에서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힌 후 당론 취합 및 자체적인 개정안을 상정하여 병합심사 를 하자고 주장하였다. 3차까지 진행된 법안심사소위에서 여당과 야당 모두 유치원 3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합의하였지만 무엇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를 놓고는 의견이 충돌했다. 4차에 이르러서야 더불어민주 당과 자유한국당, 정부 측이 따로 제시한 개정안을 가지고 본격적인 토 론이 시작되었다.
사안의 가장 중요한 쟁점은 ‘사립유치원의 회계투명성 확보’에 있었으
19) 축조심의란 의안을 한 조항씩 낭독하면서 의결하는 심의방법으로 의안 심 사방법의 한 형태다. 국회법상 소위원회는 축조심사를 생략하여서는 아니된 다고 규정하고 있으며(국회법 제57조제7항), 축조심사 후 찬반토른을 거쳐 표 결한다(국회법 제58조제1항).
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여야 양측이 공히 합의하고 있었다. 사립유치원 에 국가관리회계시스템인 에듀파인21)을 도입하여야 한다는 점에서도 모 두 공감하고 있었다. 다만 회계 투명성 확보를 위해 쟁점이 되는 각 법 률규정들을 어떻게 개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견을 보였다. 그러나 이 러한 대결구도에서 둘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기 보다는 ‘적대적인 맥락 에서 사용하는 경향’(이향우 2016)이 강하기 때문에 TV방송에서 생중계 로 송출되었던 법안소위의 자리에서도 이들의 힘겨루기는 타협점을 찾기 보다는 상대방이 지닌 ‘사회적 힘’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에 집중되어 있었 다.22)
이처럼 법과 판례가 비리유치원 사태의 해결을 돕는 공식적 권위로서의 규범이 아니라 그 자체로 ‘협상의 대상’이 되면서 여야 측은 자신들의 주 장에 힘을 실어줄 비공식적 관계를 동원하여야 했다. 다음 장은 분쟁당 사자 자신이자 동시에 지지자로 결집된 비대위가 ‘분쟁의 무대(an arena)’ 위에서 어떠한 방식을 동원하여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였는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21) 에듀파인(EduFine)은 사학기관재무회계규칙의 적용을 받는 교육기관들이 예산 소요와 관련된 모든 것을 입력하도록 만들어진 국가관리회계시스템이 다. 비리유치원 사태 당시 국공립유치원은 이미 에듀파인을 사용하고 있었고 사립유치원은 수기로 관리하고 있었다. 정부는 사립유치원에도 에듀파인을 의무화하여 회계투명성을 보장하고자 하였다. 에듀파인을 사용하면 교육당국 이 실시간으로 유치원의 회계 자료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22) 대표적으로는 자원(resource)으로써 판례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본래 판례는 판사가 개별 사안을 판단하는데 이용하는 선례라는 의미에서 일종의 규범이 자 분쟁처리의 준거가 된다. 2018년에는 보호자들로부터 지급받은 보육료가 보관되어 있는 어린이집 명의의 예금계좌에서 원장이 어린이집을 위해 일한 사실이 없는 남편에게 월급 명목으로 일정 금액을 지급한데 대해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선고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 이와 같은 판례에 대해 자유 한국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각기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자유한국당은 ‘헌법재 판소와 대법원이 판시하고 있는 것처럼’ 사립유치원 운영상의 자율성을 보장 해주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반대로 더불어민주당과 교육부 측은 ‘현행법상으 로는 지원금을 함부로 갖다 써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없기 때문에’ 법을 바 꿔 회계 감시를 강화하자고 밝히며 동일한 판례를 각자 유리한 방향으로 자 원화하는 방식을 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