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공동체적 교육을 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그렇 게 ‘만들기 위한’ 실천들을 이어나갔다. 획일적 커리큘럼보다는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놀이를, 어른이나 교사의 개입보다는 아이들이 스스 로 주도하는 방식으로 하루생활을 엮어나가려고 했던 이들의 ‘숲이랑놀 자 규칙’은 이러한 대안적/공동체적 공간 만들기의 실천과 맞닿아 있다.
마지막으로 아름네, 써니네가 이들과 뜻을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을 밝 히며 합류하였고, 3월 중순에 이르러 총 8가족으로 숲이랑놀자 품앗이공 동육아가 시작되었다.
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한나에게 있어서 아이들이 누려야 하는 자유는 시간과 공간에도 제약받지 않는 개념이었다. 간식과 밥 먹는 시간을 제 외하고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놀이를 원하는 만큼, 원하는 대로 하면서 놀았다. 가령 아이들이 휴지에 대해 궁금해하면 한나는 휴지를 끝없이 풀어내거나 조각조각 찢어가면서 방에 뿌렸고, 물감놀이를 하는 날에는 모든 벽과 바닥을 가리지 않고 색칠을 할 수 있도록 격려하였다.
물론 그러한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물’들을 수습하는 것은 모두 엄마들의 몫이었다.
꽃마리의 말을 빌면 그러한 ‘결과물’들은 “자질구레한 일들”이었고, 그 래서 처음에는 크게 중요한 문제로 취급되지 않았다. 아이들이 난장을 치고 난 다음의 현장을 수습하는 것은 주로 보조 선생님인 오로라나 당 번 엄마의 역할이었다. 당번제는 숲이랑놀자 초반에 잠깐 사용했던 방법 인데, 엄마들이 당번을 정해서 이틀은 쉬고 사흘은 나오는 체제였다. 3일 나오는 중에 조리를 도와주는 엄마와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가 있고 나머지 엄마들은 아이들과 함께 산에 가는 방식이었다. 자연환경을 탐색 한다는 취지로 산에 가는 활동은 날씨가 허락하는 한에서 거의 매일 같 이 이루어졌다. 걷지 못하는 아기들은 엄마가 아기띠로 업고 올라갔다.
이때 한 두시간 정도의 조용한 틈을 타서 식사 담당 엄마들은 간식과 점 심을 만들고 청소를 했다. 요리솜씨가 좋았던 루피가 주로 주방을 총괄 했지만 스무명에 가까운 인원의 음식준비는 한 두명의 손으로는 감당하 기 힘든 양이었다. 청소도 마찬가지였다. 수시로 바닥에 떨어져 있는 음 식물과 모래를 쓸고 닦아내야 했고, 바닥에 어지러이 펼쳐진 책과 장난 감들을 수습하느라 엄마들은 한시도 편하게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없었 다.
이 장의 후반부에 다시 다루게 되겠지만, 엄마들은 “자질구레한 일들”
이 점차 공동육아를 잠식해 나가고 있는 상황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느끼기 시작했다. 숲이랑놀자에 함께 하진 않았지만 2019년 초부터 조합 원으로 활동하며 유치원이 개원하고 운영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깊은산 은 이러한 문제상황을 미리 예견하였다고 말했다. 그는 동탄으로 이사오
기 전에 수원에 있는 공동육아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 경험이 있었고, 그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육아’와 ‘품앗이공동육아’를 철저하게 구분 하여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운 ‘품앗이공동육아의’의 특성을 지적하였 다.
연구자: 숲이랑에서도 공동육아를 했는데 왜 참여를 안하셨어요?
깊은산: 안했어요. 저는 제가 생각하는 공동육아는 일단은 품앗이공동육아라고 따 로 표현을 하긴 하는데. 일단은 저는 맞벌이하느라 여력도 안됐고 품앗이 공동육아가 가지는 한계점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공동육아라고 하는게 엄마아빠들이 모여서 애를 단순히 보는게 아니라 이게 그냥 대안이 되어 야 되는거거든요. 보육, 저는 뭐라고 생각하냐면 공동육아는 유아와 보육 을 시장질서에 지금까지 편입되어 있었던 거를 시장질서의 외적으로 사 회적 경제 운영에서 보육을 좀 해결해보자라고 하는건데 품앗이공동육아 [잡음]…. 그리고 엄마들이 너무나 힘들고 그 노력을 폄하하는건 아닌데 잘 되거나 지속할 수 있거나 버텨낼 수 있는건 아니라고 생각을 하고. 그 리고 개별 엄마아빠들의 능력의 영향을 너무 많이… 너무나 많이 받는 형식이기 때문에 그거는 좀 힘든거 같고. 제가 봤을 때 조금 외람되지만 그 멤버가 준비기간이나 이런 부분에 있어서 아직까지 좀 그래서 나는 좀 참여를 안했어, 참여를 안했는데 되게 응원은 많이 했죠. 결국 그 좀 잘 안 돌아갔어요, 숲이랑도 나중에… 처음에는 으쌰으쌰했는데 이게 그렇잖 아요. 이게 그런 식으로 하려면 철저한 규칙과 원칙 이런게 있어야 되 는데 이게 공동육아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가 상호호혜적이고 이게 좀 품앗이적이고 이런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과 규칙의 경계가 모호해 지는 순간 이게… 어 그럼 ‘내가 해줄게, 내가 해줄게’인데 이게 시간이 지나면 하는 사람이 없어지고 미뤄지고 이렇게 되거든요. 이래서 그 지금 나갔잖아요. 나가고 힘들어하고 했던 부분이 그 부분에 대한 경계가, 경계 에서 자기 어디에 서있는지 그 부분이 되게 힘들었던… 혼란스러웠던거 같기도 하고.
깊은산이 판단하기에 공동육아와 품앗이공동육아는 단순히 교사와 같은 외부 인력이 있고 없고에 있어서의 차이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철저한 규칙과 원칙”이 공동육아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생각했다.
공동육아에서 이루어지는 호혜의 방식은 참으로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깊 은산에게 호혜적 방식이란 공동의 규칙에 입각한 개별 구성원들의 “경 계”가 있을 때에만, 즉 각자의 책임과 역할 분배가 이루어질 때에만 실 현가능한 것이었다. 숲이랑놀자에 들어온지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유치원 을 그만둔 삐삐네와 아름네를 예로 들며 깊은산은 “철저한 규칙과 원칙”
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 안타까운, 그러나 언젠가는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일로 해석했다.
깊은산이 말한 “철저한 규칙과 원칙”은 단순히 엄마들이 역할분배를 철 저하게 나누었어야 했다는 의미가 아니며, 역할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졌 다면 삐삐네와 아름네가 중도하차하지 않고 남은 엄마들도 고생하지 않 았을 거라는 의미도 아니다. 깊은산은 숲이랑 가족들이 유치원에서 발생 하는 다양한 돌봄노동을 처음부터 “자질구레한 일들”로 여겨 충분히 대 비하지 않았던 사실에 우려를 표했던 것이다. 그는 사립유치원이 나름의 체계와 운영 방식을 갖고 있는 것처럼 공동육아에서도 그에 못지 않은
“철저한 규칙과 원칙”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숲이랑놀자에서 아이들의 활동은 일종의 ‘결과물’
로서 존중되었다. 아이들의 모든 자유로운 놀이들을 존중하는 태도는 공 동육아가 추구하는 대안적 실천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 에서 파생되는 돌봄노동들은 결코 “자질구레한 일들”이 아니다. 윤자영 (2018)은 돌봄노동이 과소평가될 때 “여성과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자의 경제적 기여와 그에 기반한 여러 의사결정에 왜곡된 정보와 함의를 제공 하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초기 숲이랑놀자에서 일어난 일부 엄마 들에게만 일이 쏠리는 문제와 당번제 운영의 혼란 역시도 이러한 맥락에 서 이해할 수 있다.
숲이랑놀자 개원 후 약 한 달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엄마들도 “자질구 레한 일들”을 점차 돌봄노동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외부 인력을 고용하고자 했다. 그런데 숲이랑놀자에 외부 인력 을 고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실제 문제상황에 처한 엄마들 뿐만 아니
라 8가족 전체의 합의가 필요했다. 북극성은 외부인력 고용 문제에 대해 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했다. 연구자와의 면담 당시에도 북극성은 외 부 인력 고용 문제를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결국 3월말에 이르러 조 리사 선생님(들꽃 선생님)이 오시게 되었지만, 자체적으로 힘을 모아 해 결할 수 있는 문제에 굳이 ‘비용’을 들이지 말자는 북극성의 태도는 앞으 로 펼쳐질 숲이랑놀자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아이가행복한유치원이 개 원한 이후에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에서 엄마들과 끊임없는 충돌을 일으 키게 된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