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연구 결과
4.1. 학생들의 모델 기반 탐구의 양상
4.1.5. 모델 기반 탐구에 나타난 과학자 활동
4.1.5.2. 유비적 모델링
Gentner(2002)는 케플러의 사례를 분석하여 과학적 창의성과 개념 변화의 원천이 과학자의 유비적 사유에 있음을 주장하였다. 또한, Dunbar(2001)는 서로 다른 미생물학 연구실의 활동을 비교 분석하여 빈 번한 유비와 이에 대한 진지한 토의가 생산적 연구 활동의 원천임을 주 장하기도 하였다.
본 연구의 분석 결과는 학생도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유비적 전략을 사 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학생 1은 방지턱에 충돌하는 RC 카를 비스듬 한 벽에 발사한 총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모델링하였다. 서로 다른 상황을 연결했다는 점에서 학생 1의 유비적 모델링은 현상에 대하여 정 형화된 분지 모델을 그대로 사용하는 것과는 차별화된다. 현상을 분지 모델과 연관 짓는 활동도 정해진 논리적 경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 서 일종의 유비로 간주할 수는 있다. 그러나 과학적 창의성이 유비의 원 천(source)과 현상(target) 사이 거리의 문제임을 고려하면(Holyoak &
Thagard, 1996), 단지 분지 모델을 사용했다는 것만으로 창의적 요소를 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총알 유비를 이용한 학생 1의 모델링은 서로 다른 현상을 연결했다는 점에서 단순 분지 모델의 사용에 비해 좀 더 거리가 먼 유비(distant analogy)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례는 새로운 문제 상황에서 학생이 좀 더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모델링을 할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점에서 의 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4.1.5.3. 모델 시뮬레이션
Clement(2008)에 의하면 그가 정확히 ‘상상적 시뮬레이션 (imagistic simulation)’이라 칭한 모델 기반 시뮬레이션은 전문가의 모델 기반 사유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또한, Nersessian(1995)은 과학 자의 개념 변화에서 시뮬레이션의 역할을 강조하였다. 특히, 과학 혁명기 에 시각적 원천에서 유래한 ‘시각적 시뮬레이션(visual simulation)’이 과 학자 개념 변화에서 중요했음을 역사적 관점에서 피력하기도 하였다.
이때 Clement와 Nersessian이 중시한 모델 시뮬레이션은 모델에 전제
된 조건에 의해 기계적으로 현상을 예측하는 활동으로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과학자와 같은 전문가들이 특정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어떤 가설적 모델을 상상하고 설명 모델로서의 가능성을 점쳐보기 위한 전략 적 목표지향 활동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리라 생각된다.
본 연구에서는 학생들이 현상을 설명하거나 모델을 수정하는 등의 목표 의식을 가지고 전략적으로 수행한 시뮬레이션을 ‘능동적 시뮬레이션’으로 정의하였다. 이는 전적으로 주어진 모델의 구조에 의존하는 ‘수동적 시뮬 레이션’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능동적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학생들은 공유한 모델을 그대로 조작하기보다는 특정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새로 운 조건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모델을 변형하면서 시뮬레이션을 수행하였 다. 이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개인의 전략적 측면이 개입했다는 점에서 Clement와 Nersessian이 강조한 과학자의 시뮬레이션과 공통분모가 있 다고 판단된다. 물론, 학생들의 사유가 전문가들의 수준에 미치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들이 구성한 모델의 구조를 이해하고 모델을 조작하여 모 델이 직접 보여주지 못하는 새로운 현상에 연결했다는 점은 학생들이 전 문가의 활동과 본질적으로 같은 성격의 활동에 참여했음을 보여준다.
Clement(2008)는 모델 시뮬레이션과 같은 질적 사고 과정을 고차원적 사고 기술이 요구되는 우아한 방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본 연구의 분석 결과는 학생들도 이와 같은 ‘우아한 사고 방법’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 바탕에 모델이 있기에 가능했음을 보여준다.
4.1.5.4. 모델에 관한 회의적 평가와 과학 활동
Dunbar는 미생물학 연구실에서 이루어진 세미나 과정과 인 터뷰 등을 바탕으로 실제 과학자 집단의 연구 과정을 분석하고 이를 바 탕으로 과학 활동의 특성에 관해 논의하였다(Dunbar 1995, 1997). 이러 한 측면에서 그의 연구는 ‘인지-역사적 관점’을 표방했던 인지과학의 연 구 흐름과는 차별화된다. 인지-역사적 관점을 통한 과학자 사고의 연구 는 주로 과학자 개인의 역사적 업적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Dunbar의 연구에서 나타난 흥미로운 특징 중 하나는 예상치 못한 실 험 결과가 전체 실험 결과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며 이러한 국면에
서 과학자 집단의 논의와 연구 활동이 가장 활발했다는 점이다.
본 연구의 분석 결과 학생들의 모델 기반 탐구 과정에서도 이와 유사한 특징이 발견된다. 학생들은 모델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을 발견했을 때 이를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모델을 수정하려고 시도하였다. 이와 관련된 사례는 총 23가지로 전체 사례의 35%라는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학생들 의 탐구 과정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공유한 과학자 집단에서 나타나는 이 러한 특징이 발견된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설명할 수 없는 실험 결과 에 관한 논의는 공유된 모델의 설명 영역을 넘어선다는 점에서 지식이 빈약한 학생들이 이러한 논의를 활발하게 할 수 있으리라 예상하기 어려 웠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모델을 비판하고 수정하는 맥락에서 활발한 논의를 할 수 있 었던 것은 무엇보다 이러한 논의가 모델을 공유한 상태에서 이루어졌다 는 점일 것이다. 예상치 못한 실험 결과가 발견되었을 때 학생들의 논의 는 대부분 모델의 조건, 객체, 변인 중에서 어떤 것을 어떻게 수정하거나 정교화해야 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모델이 수정해야 할 대상임과 동시에 수정의 방향성을 제공함으로써 학생들의 논의를 촉진하 고 효과적인 모델 수정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학생들이 모델의 한계점을 모델의 본성으로 인식함으로써 모델을 비판하고 수정하는 것을 과학적인 활동으로 바라보았다는 점은 이러한 활동이 가능했던 한층 더 근본적인 요소일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모델 이 실험 결과를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논의의 단절을 막고 학생들의 논의가 반성적 활동으로 이어지도록 하였다.
4.2. 모델 기반 탐구에서 E-M-C 이동을 촉진한 요인
지금까지 코딩 결과 추출된 7가지 범주를 바탕으로 학생들의 모델 기반 탐구 양상 및 나타나는 특징에 관해 논하였다. 이 절에서는 이러한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요인들이 학생들의 모델 기반 탐구 수행을 촉진하 였는가에 관해 고찰하고자 한다. 또한, 이를 한층 근본적인 차원에서 종 합함으로써 모델 기반 탐구에서 얻을 수 있는 교육적 시사점에 접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생들의 수행을 E-M 공간과 C-M 공간 사이 이동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에 3장에서 제시했던 코딩 결과를 다시 한번 살펴보겠다.
범주 세부 활동 관련 인지 활동 공간 이동
유형
① 모델로 시뮬레이션하기
구성한 모델을
현상에 연결하기 M→ E
② 수식을 통해 현상 예측하기
③ 모델 평가하기
현상을 모델에
반영하기 E→ M
④ 모델 수정하기
⑤ 모델링
이론적 지식을
모델에 반영하기 C→ M
⑥ 모델을 수식으로 나타내기
⑦ 모델에 적절한 이론적 지식 선택하기 모델을 중심으로
이론 선택하기 M→ C
위 표에서 E-M 사이 이동은 범주 ①~④, C-M 사이 이동은 범주
⑤~⑦에 해당한다. 따라서 각 해당 범주에서 나타난 학생들의 수행을 바탕으로 E-M-C 이동을 촉진한 요인에 관해 알아보겠다.
4.2.1. E-M 이동을 촉진하는 요인
E-M 사이 이동은 범주 ①~④에 해당하나 ‘② 수식을 통해 현상 예측 하기’는 유의미하지 않거나 오히려 모델 기반 탐구의 취지를 저해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이 절에서는 범주 ①, ③, ④에 해당하는
‘모델로 시뮬레이션하기’, ‘모델 평가하기’, ‘모델 수정하기’와 관련된 활동 을 중심으로 E-M 이동을 촉진하는 요인을 파악하고자 한다.
4.2.1.1. 모델이 제공하는 준 형식적 인지 환경
1) 모델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을 촉진한 요인
Hesse(1972)는 과학에서의 모델 기반 사유에서 중요한 것은 모델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예측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라 강조하였 다.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예측 과정을 M→ E 이동으로 간주하였으며 이는 본 모델 기반 탐구에서 주로 모델을 이용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나 타난다(표 4-7). 모델을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은 상상력을 동원하여 모델을 조작함으로써 모델이 직접 보여주지 못하는 현상에 도달하는 것 이다. 앞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학생들은 현상의 예측, 설명, 가설 형성 등 다양한 목적을 위해 능동적으로 모델을 조작하여 시뮬레이션할 수 있 었다.
[표 4-7] M→ E 이동에서 나타난 모델 시뮬레이션의 비중 M→ E
사례 수
전체 23(100%)
모델로 시뮬레이션하기 17(74%)
수식을 통한 예측 6(22%)
학생들이 이와 관련된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았음을 고려하면 이러한
활동을 촉진한 요인의 상당 부분은 모델에 내재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 다. 이와 관련하여 Morgan & Morrison의 지적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 Morgan & Morrison(1999)은 모델을 시뮬레이션함으로써 경험 세 계의 사실과 모델이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시뮬레이션이 가능한 이유는 모델에 내재된 구조적 특징에서 기인한다고 하였다. 여기서 Morgan & Morrison이 말하는 구조란 구체적으로 모델 에 전제된 조건들을 의미한다. 모델의 조건은 모델의 행동을 제한하여 모델을 조작했을 때 논리적으로 특정 현상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한다. 학 생들은 이를 이용하여 모델을 조작함으로써 현상을 추론할 수 있다.
실제로 본 연구에 나타난 학생들의 수행은 시뮬레이션에 관한 Morgan
& Morrison의 지적을 뒷받침한다. 학생들은 서로 다른 목표 의식을 가 지고 모델을 시뮬레이션하였으며 이러한 목표를 고려할 때 요구되는 조 건이 결여되어 있거나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조건을 추가하 거나 수정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조건의 차이로 인해 같은 모델을 이 용한 시뮬레이션은 각각 다른 현상으로 귀결되었다. 표 4-8은 이를 뒷받 침하기 위해 제시한 것이다(학생의 진술을 포함한 자세한 시뮬레이션 과 정은 앞 절에 포함하였다). 표 4-8에서 밑줄이 들어간 조건은 학생이 추 가하거나 수정한 부분이다.
사례 37에서 학생 2는 모델 3.0에서 매 충돌 시 일정한 것으로 이상화 되어 있던 접촉시간 의 정교화에 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이는 수 평 진행 거리
과 충돌 속도 를 이용해
로 정의함으로써 가능하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아이디어의 제안은 학생 2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방지턱의 높이와 접촉시간 사이 관계를 예측한 결과 가능했다. 시 뮬레이션 과정에서 학생 2는 모델 3.0의 기존 조건에는 없었던 ‘방지턱의 높이와 무관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