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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정치 사상의 특징

Dalam dokumen 노자의 정치 사상과 제왕학 (Halaman 115-174)

1. 국가의 구조, 군주의 처세술; 구조와 상황

노자의 철학은 국가론이 없고, 제왕학만 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그렇다. 노자는 구조와 상황 가운데, 상황만 이야기한다. 구조는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국가의 구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 이 없다. 상황 관리 문제인 처세술 혹은 제왕학을 주로 말한다. 왜 그러한가?

⑴ 도는 길이다. 객관 필연성이다. 변화 속에 든 필연적 추세를 말한다. 현실을 변화로 본다.

그런데 노자는 변화 속에 일정한 구조를 설립하려 들지 않는다. 변화를 장악하는 방법을 제시한 다. 변화 속에 든 객관 필연성을 인식하고 이용하면, 그 변화를 내 뜻대로 조종할 수 있다. 군주 의 입장에서 이런 조종은 처세술이고 제왕학이다.

노자가 ‘도(道)’라는 개념을 제시한 순간, 구조가 아니라 상황을 중시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도 개념에서는 국가의 구조를 말하기는 거의 어렵다.

⑵ 노자는 국가의 구조를 왕정 군주정으로만 생각한다. 그것 이외는 없는 것으로 본다. 마치 하늘에 해가 있듯이, 땅에 왕이 있다. 왕정은 당연한 것이다. 자연 현상에 가깝다.

변화 속에 든 객관 필연성을 인식하고 이용할 때, 누가 그것을 하느냐가 중요하다. 일반인이 할 수도 있고, 왕이 할 수도 있다. 만약 왕정이 아니라 공화정을 바탕으로 도의 이론을 전개하 면, 노자의 사상이 확 바뀔 것이다.

왕정은 왕이 다스리는 것이다. 공화정은 왕이 다스리지 않는 체제이다. 최고 권력자를 여러 가 지 방법으로 선출한다. 로마의 경우는 원로원이 뽑던지, 원로원 자체가 하던지 등이 있다.

만약 공화정을 바탕으로 했다면, 노자는 제도화 쪽으로 갔을 것이다. 도의 이론도 바뀔 것이다.

왕정을 기본으로 생각하므로, 국가의 모든 일은 왕이 관리해야 할 것이다. 그 일들을 상황으로 간주한다. 그 상황을 이해하고 처리하는 방법이 도, 대립자의 공존 등이 된다.

⑶ 중국은 공자 이래 법치(法治)보다 인치(人治)를 중시한다. 법으로 규정해서 처리하기 보다 는, 인격을 이룬 사람이 재량으로 처리하는 것을 선호한다. 이것이 인치이다. 공자가 인격을 이 룬 군자가 통치함을 제창한 이래, 인치 이론은 제자백가들에게 받아들여진다. 노자 역시 그렇다.

노자의 도 개념은 군주가 상황을 관리하는 수단이 된다. 상황 관리는 인치의 핵심이다. 상황을 처리하는 것은 통치자의 재량권이다. 재량권은 그의 인품 이성 지혜에서 나온다.

한비자는 명확하게 제왕학을 제시한다. 풍우란은 한비자의 제왕학을 법(法). 세(勢 세력, 최 고 권력). 술(術 방법)이라 한다. 실제로 한비자 에는 법도 세도 많이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은 술(術) 이야기이다. 술(術)은 군주가 신하를 제어하고 다루는 방법이나 책략이다.

한비자가 법가라면, 법을 주로 말해야 한다. 법은 국가의 구조를 규정한다. 그런데 한비자는 그 런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법이란 군주의 명령을 체계화한 것에 불과하다. 군주의 명령은 자의 적이다. 법도 객관성 공정성 정의 등을 담보하지 않는다. 그냥 군주의 통치 수단에 불과하다.

한비자(이사)는 초나라에서 노자 를 배운다. 노자의 처세술, 제왕학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상 황 관리 뿐, 제도는 무시한다. 한비자 가 제시하는 제도는 없다. 나아가 이사와 진시황은 후대

에 길이 남긴 제도가 별로 없다. 있다면 단 하나, 황제가 통치한다는 것, 황제가 군현제로 모든 것을 통치한다는 정도이다. 로마는 후대에 원로원, 만민법 등을 남긴다. 원로원은 국회의 원형이 다. 만민법은 법의 보편성을 제시한다.

⑸ 그나마 구조에 관심 두는 사람은 묵자이다. 상동(尙同) 이론이 그것이다. 분쟁하는 개인들을 조정하기 위해서, 윗사람을 뽑는다. 윗사람은 아래와 겸애-상동을 맞교환한다. 이것이 국가 체제 가 된다. 이장(里長)-향장(鄕長)-정장(正長)이 국가의 주요 구조이다.

노자와 반대되는 것이, 묵자의 이론이다. 묵자는 처세술이나, 이기는 방법을 이야기하지 않는 다. 묵자는 경험론에 근거해서 국가론, 군주론, 순수 학문을 전개한다.

⑹ 노자는 국가의 구조에 대해서 신기(神器 신비한 연장) 이기(利器 날카로운 연장) 박(樸 통나 무) 등을 말한다. 이 개념들은 무호하고 추상적이면서, 동시에 저게 무슨 국가 구조와 연관되겠 냐는 생각이 든다. 국가라는 것은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따라서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규정해야 한다. 노자는 정반대로 모호하고 비유적으로 말한다.

군주의 최고 권력을 ‘신기, 이기, 통나무’라 한다. 그것은 통나무와 같은 재료이다. 이 재료로 국가 기구를 만들고, 그 기능을 규정한다. 무엇이든지 만들고, 무엇이든지 처벌할 수 있다는 점 에서 신기이고 이기이다.

구체적으로 규정하면 군주의 재량권 자유가 없어진다. 노자는 군주를 무규정으로 정의한다. 그 를 규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반대로 그는 모든 것을 규정할 수 있다. - 이는 처세술, 제왕학을 말한다. 처세술을 마음대로 하려면, 군주는 규정되거나 제약받아서는 안 된다.

군주를 규정하고 제약할 수 있는 것은 하느님, 자기 자신, 부인, 그리고 제도이다. 노자는 구조 를 반대하고, 상황 처리를 주장한다. 그래서 명확한 국가 기구를 말하지 않는다. 제도화도 언급 하지 않는다.

2. 왕정의 수단으로서 제왕학

국가론이 하드웨어라면, 처세술과 제왕학은 소프트웨어이다. 양자는 함께 가야 한다. 어느 하나 만 있으면 안 된다. 그런데 노자가 제왕학과 처세술로만 나가는 이유는 국가라는 하드웨어를 왕 정으로 규정하기 때문이다. 왕정이 당연하다고 간주하고,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 그 기반 위에서 마음 놓고 제왕학의 처세술을 전개한다. 제왕학은 왕정의 수단이다.

이점이 노자 이론에서 가장 치명적으로 문제가 있는 부분이다. 도대체 왕정이 왜 당연한 정치 체제인가? 중국이 왕정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게 만든 이 가운데 하나가 노자이다. 노자를 보면 왕 정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제자백가 가운데 왕정을 의심한 사람은 없었는가?

왕정을 부정했던 대표적인 부류는 농가이다. 농가는 농사를 주장한다. 자기가 먹을 것은 자기 가 생산해야 한다. 이는 왕도 예외가 아니다. 왕도 자기가 먹을 것은 직접 생산해야 한다. 이러 면 세금을 거둘 필요가 없다. 이게 동네 이장이지, 왕인가? 이는 소국과민이 아니라 무정부로 나 간다. 이런 주장의 이유는 착취를 반대한 것이다. 지배라는 것을 착취로 간주한다. 지배함 = 세 금을 거둠 = 착취이다. 세금을 걷지 않으면 국가 구조가 성립할 수 없다. 착취를 반대했다는 점 에서 대단히 양심적이고 정의로운 이론이다. 단 현실성이 없다.

맹자는 농가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국가의 구성원을 노심자(勞心者)와 노력자(勞力者)로 나눈 다. 정신 노동자는 관리와 지배층이다. 육체 노동자는 백성이다. 백성이 관리를 먹여 살리는 것 은 당연하다. 노심자와 노력자는 정복 전쟁에서 승자와 패자, 주인과 노예의 구분을 적당이 이름 을 바꾼 것에 불과하다. 이 구조가 후대에는 ‘지주 – 소작인’ 체제를 합리화시킨다. 불로소득을 정당화한 것이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열렬히 맹자를 숭배했다. 이는 염치가 없는 짓이다.

중국 역사상 왕정에 대한 의심은 어느 누구도 하지 않았다. 왕정을 부정한 학자가 없다. 이것 은 심리적인 금기였던 것 같다. 왕정의 반대는 심리적 금기이면서, 정치적 대역죄에 해당되는 것 이다. 요즘으로 보자면 빨갱이에 해당된다. 중국이나 한국이 특이한 점은, 왕정에 대한 회의를 한 학자가 단 한명도 없다는 것이다.

5.2, 소국과민(小國寡民)

1. 소국과민과 노자의 이상적 국가

1) 노자가 기본으로 삼는 것이 왕정이다. 왕정은 가산(家産) 국가이다. 왕정은 정복 전쟁으로 성립한다. 정복해서 획득한 땅에 정복자가 왕으로 군림한다. 그 나라는 왕이 약탈한 재산이다.

왕정의 이론은 왕을 위해서 국가, 즉 왕의 재산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 이것이 핵심이다.

맹자는 왕도 정치, 인정(仁政 사랑의 정치)를 주장한다. 이는 왕이 백성에 대해서 사랑과 온정 으로 대하는 것이다. 사랑을 베푸는 이유는 자기 재산을 늘리고, 오래 소유하기 위해서이다. 자 기 소유물인데 학대할 이유는 없다. 맹자의 온정적 통치는 후대에 표준 왕정 이론이 된다.

한비자(이사)는 노자에게서 배웠다. 「해노」 「유노」 편이 그 증거이다. 그는 노자의 제왕학을 배 워서 진시황에게 넘겨준다. 국가의 주인은 왕이다. 국가는 왕의 재산(家産)이다. 자기 재산을 보 호하고 늘리기 위해서 왕권을 강화시키고 무제한으로 사용해야 한다. 6국 정복은 재산을 늘리는 것이다. 강압적 통치는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진시황이 건설한 나라는 강성 국가, 강압 적 국가이다. 중국의 강압적인 국가의 시작은 진시황이다.

노자는 강압적 통치를 반대한다. 힘으로 하는 모든 것을 증오한다. 힘 대신 도의 객관 필연성 에 따라서 하라고 한다. 노자도 일종의 온정주의적 군주 통치를 주장한다.

2) 노자는 국가의 구조를 말하지 않지만, 단 하나 소국과민을 말한다. 이는 그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국가 체제이다. 이 니라는 가산(家産) 국가 아니다. 왕정도 아니다. 이점에서 볼 때, 노 자는 왕정의 골수 지지자는 아니었다.

문제는 소국과민에서 더 발전시킨 정치 사상이 없다는 점이다. 노자도 그렇고, 후대의 사상가 들도 그렇다.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은 조선의 구조를 설계했다. 왕정을 기본으로, 지식인 관료가 통치하는 체제이다. 칼이 아니라 말로 싸우는 정치이다. 농업에 근거한 자급자족 경제체제를 만든다. 마을 단위의 농업 생산을 한다. 상업과 교역은 최소화시킨다. 5일장, 길과 다리를 만들지 않음, 돈을 만들지 않음 등이 그것이다. 그 결과 조선 전역은 마을 단위의 자급자족 공동체가 들어선다. 이 는 소국과민과 거의 같다. - 조선이 500년 간 이유 중 하나는 농업 자급 공동체에 있을 것이다.

Dalam dokumen 노자의 정치 사상과 제왕학 (Halaman 115-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