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dak ada hasil yang ditemukan

퇴보 사관

Dalam dokumen 노자의 정치 사상과 제왕학 (Halaman 122-128)

1) 앞에서 인용한 80장에 따르면, 사람들은 이동하고, 도구를 쓰고, 무기를 들고 싸우고, 비교

해서 더 맛있는 것을 찾는다. 이것이 문명의 발전이다. 그러나 노자는 이것이 타락이고 퇴보라 한다. 노자 당시인 전국시대 상황은 소국과민과 정반대이다. 역사 초창기에는 소국과민이었다. 노 자 당시는 강대국들이 치열하게 정복 전쟁을 했다. 소국과민에서 정복 전쟁으로 간 것은 타락이 다.

이렇게 보면 노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해진다. 그래서 노자의 역사관은 한마디로 퇴보 사관 이다. 왜 퇴보 사관인가? 역사의 초창기에 소국과민이 있었지만, 현재는 없다. 소국과민과 정반 대이다. 따라서 역사는 퇴보한 것이다.

역사의 맨 앞은 소국과민, 즉 마을 단위의 국가였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국가의 형태이다.

소국과민은 자급자족하고, 서로 공존한다. 전쟁이 없는 소규모의 공동체 국가들이었다. 이와는 반 대로 노자가 살던 당시의 국가들은 서로 끊임없이 전쟁을 했다. 소국과민(小國寡民)은 다국 공존 과 평화의 시대였지만, 노자 당시는 군주들의 욕심에 의한 정복 전쟁이 일상화되었다. 역사가 흘 러가면 인간 사회가 문명화되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역사는 가면 갈수록 퇴보하고 있다.

2) 소국과민의 백성과, 전국시대의 노예 중 누가 더 행복한가?

문명이 발전해서 더 많이 먹고, 더 좋은 옷을 입는다. 이것이 행복이 아닌가? 소국과민의 백성 보다는 전국시대 노예가 더 잘 먹고 더 잘 입을 것이다. 더 맛있는 것을 먹는다고 그게 행복한 것인가? 노예에게 가해진 억압과 통제가 소국과민에는 없다.

노자는 행복에서의 관점에서 보자면 소국과민의 농민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생각한다. 맛없는 음식을 배고프게 먹어도, 억압도 없고 근심 걱정 없이 살면, 그것이 더 행복이다.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지만, 강압적으로 일하고 감시당하면 행복하지 않다. 행복이라는 것은 물질에만 달려 있 지는 않다. 물질적인 생산이 늘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억압과 싸움이 늘어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역사는 발전이 아니라 퇴보이다.

3) 노자는 이 세상을 냉철한 이성으로 보라고 한다. 문제는 욕망이 이성을 지배한다. 도를 인 식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비워야 한다. 큰 욕망은 비우기 어렵다. 대권이 바로 앞에 있는데, 어떻 게 그 욕망을 비우겠는가? 1987년에 김영삼 씨는 “마음을 비웠다”고 했지만, 3김 통합을 못 했 다. 그점은 김대중도 똑같다. 그 상황에서 대체 누가 마음을 비울 수 있냐?

저 욕망을 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 더 큰 욕망을 가지는 것이다. 가장 큰 욕망은 다 른 모든 욕망을 지울 수 있다. 大欲이 無欲이고, 無欲이 大欲이다.

이성은 욕망이 지배한다. 그래서 욕망을 줄이면, 이성도 줄어든다. 이성을 줄이면 욕망도 줄어 든다. 이런 선순환의 끝에는 소국과민이 있다. 욕망 때문에 이성이 발전한다.

이런 논리 때문에, 노자는 문명 사회를 부정한다. 그러나 묵자는 반대로 생각한다. 인간의 욕망 과 이기심은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을 인정한 바탕에서 국가를 세운다. 국가는 개인들의 욕망과 이기심을 합리적으로 채워주는 장치이다. 개인들의 이익 다툼을 조정하는 것이 국가의 체제이다.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 이성의 작용이다. 따라서 이성이 발전된 현자들이 조정을 해 준다. 현 자들이 국가의 상부 구조를 이룬다. 욕망과 이성은 모순되지 않는다.

노자는 소국과민으로 가면서, 문명 사회를 부정한다. 극히 비현실적이다. 묵자의 국가가 그것보

다는 좀 더 현실적이다. 그러나 중국 역사는 그 두 이론을 다 거부했다.

4) 노자는 역사의 퇴보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 가장 위는 아래(백성)가 그(지배자)가 있음을 안다.

그 다음은 그를 사랑하고 기린다.

그 다음은 그를 두려워한다.

그 다음은 그를 업신여긴다.

㈁ 믿음이 넉넉하지 않아서, 믿지 못 함이 있다.

유유히 말을 그 아끼도다.

공적이 이루어지고 일이 마치면,

백성이 모두 이르기를, ‘내 스스로 그러했다’ 한다.

㈀ 太上 下知有之, 其次 親而譽之, 其次 畏之, 其次 侮之.

㈁ 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其貴言.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17장)

17장에서 노자는 역사를 퇴보의 과정이라고 말한다. ㈀은 역사가 퇴보했다는 것이고 ㈁은 노자 당시의 통치술 혹은 제왕학이다.

앞부분과 뒷부분의 차이는 ㈀ 역사라는 이렇게 타락해 간다. 강압적 통치가 그런 타락을 만든 원흉이다. ㈁ 그렇기 때문에 부드러운 통치를 하라. 사람들에게 그냥 맡겨라. 그 안에 도(道)가 있기 때문이다.

노자는 역사의 진행 과정은 권력이 강화되는 과정으로 본다.

⑴ 下知有之 : 첫 번째로 가장 위에 있는 태초의 다스림에는 그 통치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통 치자가 있는지 없는지조차 백성들이 모르는 상태이다. 또는 통치자가 있다는 정도만 인식한다.

이렇게 권력이 약할 때는 지배자나 백성이 같다.

⑵ 親而譽之 : 그 다음의 다스림에는 백성이 통치자에게 호감을 보이고 칭송하고 칭찬을 한다.

이런 다스림은 지배자가 자기의 가족같이 사랑(仁)이나 의로움(義)의 통치를 하기 때문에 백성도 지배자를 존경하고 따른다. 대표적인 것이 유가의 온정적 통치이다. 이렇게 권력이 조금 크게 되 면, 사랑의 정치를 하게 된다. 이렇게 하면 백성들이 통치자를 사랑하게 된다.

⑶ 畏之 : 그 다음의 다스림에는 백성들이 지배자를 몹시 두려워한다. 법과 형벌이라는 강압적 인 힘으로 통치하기 때문이다. 법가의 통치가 이런 식이다. 이렇게 권력이 압도적으로 크면, 백 성들이 두려워한다. 이는 엄벌주의이다. 진시황의 진나라가 대표적이다.

⑷ 侮之 : 그 다음의 다스림에는 백성이 통치자를 업신여긴다. 강권의 말로는 백성이 권력자를 업신여기는 것이다. 백성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덤비는 것이 다. 백성들이 통치자에게 모진 학대와 탄압을 당해서 목숨이 위태롭기 때문에 백성이 죽음을 각

오하고 통치자에게 대드는 것이다. 이것은 폭군이 폭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다. 이 정도가 되면 거의 나라는 망한다. 진시황의 통일 진나라가 이것을 잘 보여준다. 진시황 사후 바로 나라 가 망한다.

진시황 사후에 전국의 반란의 방아쇠를 당겼던 이는 진승(陳勝)이다. 그는 만리장성을 쌓는데 필요한 인원 60명 정도를 인솔해 가던 중 갑자기 홍수를 만나 한 달 정도 늦어지게 되었다. 그 런데 그 때 진나라의 법은 한 달 정도 늦으면 사형이었다. 진승은 고민에 빠졌다가 반란을 일으 킨다. 가서 죽으나, 반란 일으켜 죽으나 같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느냐?”고 외쳤다. 진승의 이런 예가 국가를 업신여기는 것의 표본이다.

노자는 무위(無爲) 자연(自然)을 하기를 강조한다. 이것은 “통치를 하지 않음”으로써 다스리는 것이다. 노자는 소국과민에서 그 이상적이고 최상의 통치를 본다. 이후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유 가나 법가의 통치론이 나온다. 유가는 사랑과 의로움을 강조하는 온정주의적 통치이다. 법가는 법률과 힘으로 하는 강압적 통치이다. 강압적 통치 다음에는 폭군이 권력을 마음대로 휘두르는 폭정이다. 폭정의 시대가 되면, 백성의 삶은 비참해지고, 나라 전체에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천 하는 혼란에 빠진다. 노자가 말한 대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하고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강압적 통치를 하게 된다. 그의 사후에 통일 진나라 전체가 반란에 휩싸 인다. 백성들은 폭정을 겪으면서 진나라에 분노하다 못해 업신여기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반란의 형태로 나타난다. 반란은 백성이 통치자를 업신여기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5) 17장 ㈁에서 노자는 무위의 통치를 주장한다.

믿음이 넉넉하지 않아서, 믿지 못 함이 있다.

유유히 말을 그 아끼도다.

信不足焉, 有不信焉. 悠兮其貴言. (17장)

말과 믿음은 같다. 왕이 신하와 백성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신하와 백성도 왕을 믿지 못 한다.

왕이 믿지 못 하므로, 걸핏하면 포고령을 내린다. 포고령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엄벌을 내 린다는 것이 주를 이룬다. 그것을 보고 백성이 공포를 느끼겠지만, 동시에 불신도 늘어난다. 불 신이 공포를 이기면, 반란이 일어난다.

이 악순환에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왕이다. 왕이 백성을 믿고, 말을 아껴라. 포고령 을 줄여라. 그러면 백성도 왕을 믿고 따를 것이다. - 내 손에 막강한 권력이 있다. 하시라도 쓸 수 있다. 그런데 쓰지 않고, 참고 견뎌라 – 이것을 따를 왕이 있는가? 권력은 쓰라고 있다.

노자는 권력에 담긴 대립자의 공존을 경고한다. 권력을 함부로 쓰면, 반드시 그 댓가가 있다.

그래서 노자는 말 자체를 적게 하라고 한다. 포고령이나 명령은 적게 내려라. 많이 내리면 오히 려 결과가 나빠진다. 될 수 있으면 백성을 자율에 맡기라.

이는 무위(無爲)의, 혹은 무위자연(無爲自然)의 통치이다. 노자의 제왕학의 핵심이다. 권력은 쓰 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쓰지 말라고 있는 것이다.

6) 17장의 마지막에서 노자는 무위의 통치의 효과를 말한다.

공적이 이루어지고 일이 마치면,

백성이 모두 이르기를, ‘내 스스로 그러했다’ 한다.

功成事遂, 百姓皆謂我自然. (17장)

무위(無爲 함이 없음)를 하면,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이 이루어진다. 백성을 믿고, 말과 포고 령을 줄인다. 그러면 백성도 통치자를 믿고 통치에 따른다. - 이것이 가능한가?

첫째, 소국과민에서는 가능할 수도 있다.

둘째, 문명 사회에서는 쉽지 않다. 그냥 방임하면 백성이 순종하기 보다는 제 멋대로 할 가능 성이 많다. 결국은 무위(無爲 함이 없음) 안에 ‘도(道)’에 대한 예측이 들어 있다. 도는 길이고, 객관 필연성이다. 그 필연성을 미리 깔아 놓거나, 있다는 것을 알고, 무위를 하라.

만약 도의 필연성을 깔지 않으면, 대신 권력의 힘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법가의 길이다. 아니 면 신하와 백성의 인품과 도덕성에 호소할 수 있다. 유가의 길이다. 노자는 도의 필연성을 인식 하고, 현실에 미리 만들어 두는 것이다. 이는 부드럽고 약함(柔弱)의 길이다.

도의 필연성으로 현실이 예상하는 대로 그렇게 된다. 이러면 백성들은 이것이 왕의 무위의 결 과가 아니라, 자신들이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백성이 그렇게 말했다는 것은 통치를 아주 잘 했 다는 뜻이다. 최고의 칭찬이다.

여기에서도 노자의 강압적 통치에 대한 혐오가 잘 드러나 있다.

7) 17장에 이어서 18장에도 퇴보 사관이 나온다.

큰 도가 폐지되자, 인과 의가 있게 되었다.

지혜가 나오자, 큰 거짓이 있게 되었다.

6친이 화목하지 못 하자, 효도와 자애가 있게 되었다.

나라가 어둡고 어지러워지자, 충신이 있게 되었다.

大道廢 有仁義, 智慧出 有大僞;

六親不和 有孝慈, 國家昏亂 有忠臣. (18장)

18장은 대립자의 공존 사상을 담고 있다. 세 구절은 모두 대립자의 공존을 말한다. 지혜와 거 짓, 불화와 효도·자애, 혼란과 충신은 모두 대립자들이다.

⑴ “큰 도가 폐지되자, 인과 의가 있게 되었다.” - 도는 객관 필연성이다. 변해 가는 현상이 따라가는 필연적 길이다. 사람이 인위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저절로 그 길로 간다.

그 길이 폐지되니까, 인격(仁)과 의로움(義)으로 현상의 변화를 규정하고 제어하려 한다.

‘大道’는 무위자연의 道이다. 다스리지 않는 다스림이다. 대도가 행해지지 않기 때문에, 백성을 사랑과 의로움으로써 다스리는 유가의 통치가 나온다. 이 역시 대립자의 공존이다.

Dalam dokumen 노자의 정치 사상과 제왕학 (Halaman 122-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