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무명(無名)과 정명(正名)
⑴ 도와 이름의 관계에 대해서 노자는 1장 첫머리에서 말한다.
“도라고 할 수 있는 도는 영원한 도가 아니다.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노자는 도와 이름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킨다. 도와 이름은 쌍벽을 이룬다.
이어서 그는 또 말한다.
”이름 없음이 하늘과 땅의 시작이고, 이름 있음이 모든 사물의 어미이다.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은 “이름이 있음”(有名)이다. 이것의 반대는 “이름이 없음”(無名)이 다. 무명은 도와 짝이 되고, 유명은 현상과 함께 한다. 도는 천지의 시작이다. 배후의 본체이다.
이것은 무명이다. 반면 모든 사물은 현상 세계이다. 유명이다.
노자는 도, 즉 무명(無名)을 주장한다. 이에 비해서 공자는 ‘정명(正名)’을 주장한다. 노자가 공 자 뒤에 나왔으므로, 노자의 무명론은 공자의 정명론에 대한 반박이다.
正名 - “이름을 바로잡는다.” 이름을 올바르게 세운다.
無名 - “이름을 없앤다.” 편의상 ‘이름 없음’이라 번역하지만, 정확한 뜻은 “이름을 없앰”이다.
그래야 正名의 “이름을 바르게 세움”과 반대가 된다.
그렇다면 無名의 정확한 뜻은 무엇인가?
⑵ 공자는 ‘正名’을 “君君 臣臣 父父 子子”라고 한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 다워야 한다.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예컨대 “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에서, ‘임금’은 현실의 개체이다. ‘임금다움’은 이상적인 모습 이다. 따라서 君君은 ‘현실→이상’을 닮고 실현시키야 한다는 말이다. 이상이 현실에 실현되어야 한다. 이를 개인의 차원에서 구현한다. 개인이 인격을 이루면, 이상이 현실에 실현된다.
正名은 ‘이름을 바로잡는 것’이다. 이름에 따라서 자신을 바로잡는다. 이름은 이상을 담고 있는 규정이다. 현실의 개체는 이상을 담은 이름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이것은 ‘名=규정’이다. 正名 이 론은 규정 이론이다.
⑶ 노자는 이를 정면에서 부정한다.
‘名可名 非常名’ - “이름이라 할 수 있는 이름은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여기에서 ‘名’ 수학에서 말하는 변수(veriable) x와 같다. 예컨대 f(x)=2x+3에서, x에는 1, 2, 3, 등의 숫자를 넣을 수 있다. 이렇게 변하기 때문에 ‘변수’라고 한다.
‘名’에 ‘君’을 넣으면, “君可君 非常君”이 된다. “임금이라 할 수 있는 임금은, 영원한(참된) 임 금이 아니다.” ‘名’에 ‘臣, 父, 子’등을 다양하게 넣을 수 있다. 名은 변수이기 때문이다.
“君可君 非常君”은 정명론의 ‘君君’을 반박한 말이다. 공자는 “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고 주 장한다. 이에 대해서 노자는 “임금이라 할 수 있는 임금은, 영원한 임금이 아니다” 라고 한다.
결국 “임금다운 임금은 참된 임금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공자의 정명론은 이름을 세우는 이론이다. 혹은 이름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는다. ‘이름’은 이상 을 담고 있다. 이름은 개체를 규정하는 것이다. 규정자이다. 반면
노자의 무명론은 이름을 부정하는 것이다. ‘임금다움’이라는 이름은 개체를 올바르게 만들기는 커녕 오도한다. 그르친다. 이름은 부정되어야 할 것이다. 無名은 ‘이름을 부정함’이다.
왜 그러한가? 노자는 무엇을 근거로 이렇게 주장하는가?
⑷ 장자 「거협」 편은 도둑 이야기로 이를 증명한다. 세상에는 작은 도둑과 큰 도둑이 있다.
작은 도둑은 금고가 튼튼할까 걱정한다. 반면 큰 도둑은 금고가 허술할까 걱정한다. 작은 도둑은 금고 주인과 반대되는 걱정을 하지만, 큰 도둑은 신통하게도 주인과 같은 걱정을 한다.
왜 그러한가? 작은 도둑은 금고를 열고, 돈만 훔쳐간다. 큰 도둑은 금고를 통째로 들고 간다.
그래서 자신이 그 금고를 쓴다. 그러면 좀도둑을 걱정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금고 주인하고 똑 같은 걱정을 한다. 금고 주인은 금고가 튼튼하길 바란다. 큰 도둑도 금고가 튼튼하길 바란다.
이 비유를 통해서 장자는 나라에도 두 종류의 도둑이 있음을 말한다. 좀도둑은 작은 것을 훔친 다. 반면 큰 도둑은 나라 전체를 훔친다. 훔쳐서 왕이 된다. 대표적인 사람이 전성자(田成子)이 다. 그는 제나라의 왕위를 찬탈해서, 그의 손자가 왕이 된다. 나라를 훔친 자이다.
큰 도둑이 나라를 훔쳐 왕이 되면, 인의예지와 충효를 엄청나게 강조한다. 첫째, 사람은 자신에 게 없는 것을 원한다. 자신에게 인의예지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강조한다. 둘째, 자신이 그것을 닦으므로써 자신의 정당성, 권력의 정통성을 얻게 된다. 찬탈자는 세습한 왕보다 훨씬 더 돈독하 게 윤리 도덕을 닦고 지킨다. 그야말로 ‘임금다운 임금’이다. 셋째, 윤리 도덕은 반대파를 억누르 기 위한 수단이다. 쿠데타에 반발하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 내가 임금이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충성을 다해야 한다. 충효를 강조한 공자님 말씀도 모르냐? 사육신들의 심정을 알 수 있다.
⑸ 노자는 대립자가 공존한다고 한다. ‘임금다움’을 주장하는 자는 실제로는 ‘임금다움’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원한다. 공자의 ‘君君’의 권고는 평범한 임금을 인격자로 만들기 보다는, 찬탈자에게 권력의 정당성을 주는 도구가 될 가능성이 더 많다.
이것은 대립자의 공존 논리이다. 이것이 공자의 정명론을 바라보는 노자의 반론이다. 노자는 항상 변증법적인 생각을 한다. 그래서 노자는 공자와는 반대의 개념인 무명론을 주장한다.
노자의 무명론으로 대표되는 1장의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은 비판적 사고이고, 약간 냉소적이기도 하다. 따라서 유가가 어떤 말을 해도 그 반대로 이야기할 수 있다. 원래 권력을 잡 은 사람들의 뒤는 구리게 되어있다.
무명이란 것은 이름을 없앰이고 이름을 없애는 구체적인 방법은 그 이름에 반대되는 측면을 보 는 것이다. 저런 기준으로 보면 임금다운 임금이라는 게 얼마나 있겠는가?
무명론은 일종의 이데올로기 비판의 측면이 있다.
2) 도와 무명(無名)
⑴ 道라고 하는 것은 ‘길’을 의미한다. 그래서 사람들의 길은 人道라고 하고, 하늘의 길은 天道 라고 한다. 이처럼 이 세상의 어떤 것도 변하는 것이며, 그 모든 것이 변해가는 과정의 길을 ‘道’
라고 한다. 그래서 ‘道’라고 하는 것은 규범적 의미로 사람이나 자연, 혹은 어떤 것들이 따라야 하는 길이나 방법이나 법칙이 된다. 이런 길이나 방법을 따라가지 않고 역행하면, 반드시 결과가 좋지 못하게 되고 실패를 하게 된다.
① 사물이 있어 뒤섞여 이루어져 있고,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겼다.
고요하도다, 쓸쓸하도다!
홀로 서 있되 고치지 않고, 두루 가되 위태롭지 않고, 옳음으로써 천하의 어미가 된다.
②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 글자로 일컬어 도라고 한다.
강함을 이름을 크다고 한다.
큰 것을 가다라 하고, 가는 것을 멀다고 하고, 먼 것을 되돌아온다고 한다.
③ 그러므로 길은 크고, 하늘도 크고, 땅도 크고, 왕 또한 크다.
땅 가운데 네 개의 큼이 있으므로, 왕이 그 하나를 차지한다.
④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길을 본받고, 길은 스스로 그러함을 본받는다.
① 有物混成,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周行而不殆,可以爲天下母。
② 吾不知其名,字之曰道,强爲之名曰大。
大曰逝,逝曰遠,遠曰反。
③ 故道大, 天大,地大,王亦大。
域中有四大,而王居其一焉。
④ 人法地,地法天,天法道,道法自然。『노자』 25장
25장에서는 그 이름을 알 수 없어서, 별명(字)으로 대신해서 ‘道’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道’라 는 것은 본질적 규정의 말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 道를 억지로 이름 붙인 것이 ‘大’라고 한다. 道 의 본질을 규정하는 말로 ‘大’를 쓴 것이다. 노자는 道라는 말을 규정하려고 억지로 ‘크다’의 뜻 이 있는 大를 말한다. 道를 규정하는 말로 ‘無’라고도 한다.
無라는 것은 정확하게 말하면 無名의 줄임말이다. 현상 세계의 어떠한 속성도 보이지 않고, 없
으므로 無名인 동시에 無이다. 이런 無나 無名은 道의 다른 이름인 것이다.
⑵ 道의 다른 이름인 無名은 “이름이 없음”이고,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고 하면, “이름을 없 앰”이다. 여기서 이름이라고 하는 것은 현상이나 사물 등을 규정하고자 하는 수단이나 방법이다.
이름이라는 것은 어떤 사물을 그 이름이라는 틀로 규정되었다는 말이다. ‘임금’이라는 이름이 주 어지면 임금답게 행동해야 되고, 그것은 그 이름으로 그 사람이 규정이 된 것이다.
그래서 無名인 ‘이름이 없음’은 어떤 것에 규정되지 않은 것이고, 이것은 ‘무규정’을 의미한다.
이렇게 ‘무규정’은 규정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보여지는 어떤 특징이 없다. 이렇게 특징이 없다 는 것은 無 라는 뜻이다. 이런 뜻이 있기에 ‘無名’을 줄여서 ‘無’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노자가 말하는 ‘無’는 아무 것도 없는 절대적인 無의 뜻이 아니라, 어떠한 ‘규정’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규정되지 않은 無를 ‘상대적인 無’라고 한다.
4. 무명(無名) - 상대적인 무(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