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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전통예술 연행의 양면성

2) 무대화된 공연

풍월동 시장상인이 풍월신명판 회원들이 시행하는 동네 지신밟기에 적극적으로 응하듯 전통예술이 지니고 있는 제의적 효용성은 현대에도 작동한다. 정월대보름 을 앞두고 “올해 유독 섭외전화가 많이 온다”던 운영진의 말에, 한 회원은 “혹시 작년(2014년)에 이런저런 사고가 많이 나서 액막이 차원에서 더 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요” 라고 답했다. 그러나 실제 지신밟기가 연행되는 데는 단골의 호혜관계 라는 맥락이 존재하듯이, 지신밟기를 위해 연행되는 풍물굿과 탈춤 역시 연행상황 에 변화를 갖는다.

풍물굿과 탈춤은 여전히 놀이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함께 끼어들어 참여하기 보다는 공연으로 관람하는 대상이 되었다. 편히 놀고 즐기던 것이 하나의 예술작 품으로 변모하면서 공연의 장소 역시 마당이 아닌 서양의 프로시니엄 무대가 되 는 경우가 많다. 설령 야외의 마당형태에서 이루어지는 공연이라고 하더라도 그것 은 사실상 연행자와 관중의 영역이 구분된 무대공연이다. 셰크너는 의례의 효용과 대중적 참여에 대비되는 연극/스펙터클의 특징으로 오락성과 대중적 관람을 꼽는 다(Beeman 1993: 378). 과거의 연행맥락을 어느 정도 간직한 동네 지신밟기에 풍월신명판 회원 모두가 참여하고 상인들이 섭외에 적극 응하며 치배를 마중하여

막걸리를 대접하였던 것과 달리, 정월대보름을 맞이 하여 지신밟기와 그 외의 공연을 요청하였던 산천구 근린공원의 공연주최측은 너무 많은 인원이 연주에 참여하는 것은 자제해달라고 당부했다. 소음에 따른 인근 주민의 민원신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공연 당시 그 시공에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지신밟기 소 리가 오락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보았기 때문이 다. 이는 지신밟기라는 이름을 걸고 있지만 사실상 그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한 스펙터클로서의 요청이 었다.

풍월신명판의 공연이 의례가 아닌 하나의 볼거리 로서 기능하는 것은 연행에 대한 관중의 기대에서 비롯된다. 동네 지신밟기가 아닌 이상 풍월신명판의 연행은 자체기획에 따라서이든 외부섭외에 의해서든 모두 무대공연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진다. 특히 의상은 스펙터클로서의 효과를 두드러지게 한다. 풍 월신명판 회원들은 전통예술이라는 공연양식에 맞추 어 더거리와 각양각색의 도포, 치마저고리의 복색을 착용한다. 이때 가장 기본이 되는 의상은 [사진 6]

에서 나타나는 하얀 바지저고리의 민복이다. 평소에 입는 현대의 서양식 복장과 그 생김새가 판이한 민복은 관객과 연행자를 분명하게 구분짓는다. 민복의 착용은 연행자가 무대 위에 존재하고 있는 순간뿐만 아니라 공연 전후에도 관객과 구별 되도록 만든다. 만약 한 회원이 공연이 모두 끝난 뒤에도 홀로 민복을 입은 채 공 연장소 근처를 거닌다면, 함께 공연을 한 평상복의 다른 회원과 같이 있음에도 불 구하고 유독 그만이 “공연 잘 봤습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는 인사 말을 듣는다.

의상과 함께 사용하는 소품 역시 전통예술 공연자임을 드러내는 표식이다. 민복 과 짝을 이루는 미투리는 그 생김새로 하여금 현대 일상의 신발이 아님을 나타낸 다. 추운 겨울 야외에서 치르는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운동화 대신 미투리를 신을 것을 권장하는 것은 전통예술의 공연에 대중이 기대하는 볼거리를 제대로 제공하 기 위해서이다. 특히 탈은 그 어떤 소품보다도 큰 효과를 갖는다. 때때로 탈춤패 에서는 경남오광대 등장인물의 개인무를 공연할 때 탈은 사용하지 않기도 한다.

[사진 6] 민복을 입고 탈을 얼굴에 얹은 모습

형형색색의 도포와 부채만으로도 시각적으로 자극을 줄 수 있고, 탈을 쓰고 춤을 추는 동안 앞이 잘 보이지 않고 숨을 차올라 불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탈을 쓰 고 개인무를 출 때 더 많은 관중의 관심과 주목이 쏟아져 새삼 “탈의 위력”을 느 낀다. 즉 의상과 소품은 연행자과 관객을 구별 지을 뿐만 아니라 풍월신명판이 제 공하는 스펙터클 속에서 전통을 상징하는 시각적 도구다(Beeman 1993: 380).

관중과 연행자의 분리는 의례가 연극으로 변화하면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것 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관객의 반응이다. 정기 및 상설공연에서 사회자는 전통예술을 즐기는 방법 중 하나로 가만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얼씨구”, “그렇 지”와 같이 직접 말로써 호응해주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연행자 역시 자신의 기술 을 선보이며 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 교감을 시도한다. 사회자에게 교육받은 혹은 원래 전통예술에 익숙한 관객은 공연 중 마음이 동요한 순간 “잘한다”, “좋다”고 외치며 절로 박수를 친다. 그러나 공연의 마지막에 진행하는 강강술래에 참여하는 관중의 수는 앞서의 반응에 비해 저조하다.

강강술래에 참여하는 관객은 상대적으로 풍물가락에 몸을 움직이는 것이 익숙 할 장․노년층과 다른 풍물굿 및 탈춤 동아리회원, 낯선 것에 호기심 많고 스스럼이 없는 유아, 그리고 체험교육의 효과를 기대하며 쭈뼛거리는 아이를 이끌고 오는 부모다. 물론 공연상황 즉 무대 밖에 위치하던 관객 중에는 연행자의 손짓에 이끌 려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 놀음이 익숙하지 않은 관객은 “괜찮아요, 다 봤는 데요” 하고는 멀뚱히 강강술래를 지켜보다가 이내 공연이 끝날 것이라 예상하고 발길을 돌린다. 그에게 풍월신명판의 공연은 하나의 볼거리였을 뿐, 자신 역시 연 행자가 되어 참여한다는 것이 어색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월신명판의 정기․상설공연에서는 관객을 연행에 참여시킬 수 있는 강강술래와 같은 대동놀이가 삽입된다. 공연의 마무리는 난장으로 진행되 어 연행자와 관객의 입장에 관계없이 모두가 뒤섞여 놀 수 있도록 한다. 연행자는 무대 밖으로 나가 관객을 끌어들이며 무대와 객석의 분리를 없애려고 시도한다.

풍월신명판의 공연을 통해 전통을 이미지로서 전달하는 것 외에 풍물굿과 탈춤과 같은 전통예술이 보유한 대동의 가치도 전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동놀이 이전까지 진행된 공연은 관객의 참여가 제한된 무대공연이었기 때문에 대동놀이 역시 그 일부로 연행되는 느낌이 강하다. 따라서 관객의 참여를 도모하 는 대동놀이의 연행은 그에 익숙하거나 부가적인 효과를 기대하는 사람의 참여가 주를 이루는 제한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