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II. 동호회를 통한 전통예술 향유양상
2) 연행에 따른 자기표현
[사례 III-7] 기술의 습득을 통한 성취욕 달성
“친구들이 내가 이렇게 [활동]하는 거 보면 나도 하고 싶다, 스트레스 풀리겠다 [그러는데] 스트레스 풀리기 보다는 잘 안 되면 더 쌓이잖아 [… 그래도] 어려 운 거를 내가 하게 되면 거기서 얻는 게 더 크잖아. 옛날에 못 했었는데 갑자기 하다보니까 어느 날 이게 됐어. 근데 남들은 못해. 그럼 좋잖아요.”
- 홍수인(여, 40대) 면담, 2015년 2월 11일
풍월신명판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회원에게 전통예술에 필요한 기술을 익히는 데 고통이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진실하지 못한 표현이다. [사례 III-7]
에서 홍수인은 흔히 여가활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달 리 되려 연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있다고 말한다. 그가 이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구태여 느끼지 않아도 될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연습을 하는 것은 더 나아진 실력을 갖기 위해서다. 연습을 통해 새롭게 익히게 된 기술 과 표현은 과거의 경력단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자, 다른 사람과 차별성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즉 연습에 따른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스트레스는
“내가 굶어 죽냐 마냐 이게 나쁜 스트레스”인 것과 달리 “즐거운 스트레스”이다.
그동안 소리를 내지 못했던 장구의 ‘기닥’을 칠 수 있게 되고, 전반적으로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어색하던 몸짓이 힘을 빼고 한결 자연스러운 춤사위로 바뀐 것 은 자신의 노력이 빛을 발해 실력이 나아졌다는 징표이다. 어제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의 기술과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스스로 발전했다는 뿌듯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부단히 연습하는 가운데 자신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그 능력을 표현하는 자아실현의 보상을 맛보게 된다. 이는 여가활동으 로 필요한 기술을 학습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단련시키며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만족감을 준다(Moore 2013: 273-274).
[사례 III-8] 서로 달리 표현되는 동일한 춤 동작
“우리가 전수를 한 번 갔다 오잖아, 가면 매년 춤사위가 달라져. […] 같은 분이 가르쳐도 조금씩 사위가 조금씩 틀려. […] (그럼 어떤 기준으로 평소에 하세 요?) 그렇지, 일단 전수 가서는 새로운 걸 배워서 와. 와갖고 몇 번을 해봐, 신명 판에서. […] 전수 발표회 때까지는 변형된 걸로 해보고 다시 원본, 우리 신명판 채[제]로 가자. […] 같은 춤사위라도 하다보면 조금씩 뭐 조금 맛깔스럽게 추는 사람도 있고, 정석대로 추는 사람도 있고. 조금씩은 다른데 크게 틀렸다고 말하 진 않지. 근데 그 말은 해. 같은 춤이라도 같은 동작이라도 추는 사람에 따라서 조금씩은 느낌이 다르다고.”
- 연유정(여, 40대) 면담, 2014년 12월 18일
같은 가락과 동작을 표현하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고 상이 한 느낌을 주는 것은 [사례 III-8] 연유정의 진술이 보여주듯 풍월신명판의 고정 전문가인 보존회 선생님에게도 나타난다. 같은 선생님께 배우더라도 세월에 따른 신체적 변화가 반영되어 “작년에 배운 것과 그 작년에 배운 것, 그리고 올해 배운 게 다 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탈춤 초급강습을 진행하면서 몸의 기억과 더불어 강사회원이 꾸준히 사용했던 또 다른 표현은 “같은 것을 배워도 사람마다 표현하 는 것이 다 달라요”이다. 사람마다 표현하는 것이 다 다른 이유는 개인이 저마다 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몸은 전통예술의 기술을 익히고 기억하는 저장소 인 동시에 전통예술의 악(樂)과 무(舞)를 표현하는 중요한 도구로 외형적인 특징 과 더불어 개인의 성정을 드러낸다. 따라서 같은 동작을 하더라도 팔·다리의 길이 등 신체적 특징에 따라 도출되는 느낌이 다르고 성격의 호방함이나 섬세함 등이 연주방식과 춤에 반영되어 나타난다.
실제로 회원들은 자신의 몸에 맞춰 의도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저마다의 연 행을 한다. 예컨대 무릎이 좋지 않은 사람은 앉았다 일어나는 동작을 다리를 구부 정하게 하는 정도로 대신하고, 팔을 양옆으로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불편한 사람은 북채로 채편을 쳐야하는 장구 대신 북을 선택하여 연주한다. 이것이 불편 에 따른 의도적인 선택이라면, 체격이 큰 사람은 시원한 느낌의 동작을 하는 반면 체격이 작은 사람은 오밀조밀한 느낌을 주는 등 자신도 모르는 새에 표현방식에 자기만의 고유한 느낌을 담아내기도 한다. 따라서 보존회의 선생님을 통해서도, 풍월신명판 내부 회원들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서로 간의 완벽하게 동일한 표현이 란 존재할 수 없다.
[사례 III-9] 연행자의 개성을 드러내는 표현
“두 사람 [기본무] 스타일은 좀 다른데 유정이는 덩치가 있으니까 굵직하고 힘 찬 맛이 있고 자기 성격에 맞게 시원시원하고. 인하는 좀 더 기본에 충실한 거 같애.”
- 장용택(남, 50대) 면담, 2015년 2월 27일
신상덕: “철규는 약간 막걸리 맛이 나고 상쇠는 소주 맛이 나고 그런 스타일이 야.”
곽일주: “상쇠는 여기서 교육을 많이 하다보니까 정[박자의] 쇠만 쳐주는 거야.
야도 기술 잘 치는 애야.”
신상덕: “철규는 굉장히 투박하게 쳐.”
곽일주: “갸는 막 땅땅땅땅 으따따다당 치잖아, [보존회] 사부하고 같이”
신상덕: “내가 그래서 좋아한다니까.”
(2015년 1월 15일 뒤풀이 中)
[사례 III-9]에서 확인할 수 있듯 회원의 개성과 그의 연행의 특징을 연결시키 는 태도는 풍월신명판 내부에서 공유된다. 털털한 성격의 연유정은 기본무를 출 때 잔 동작을 하지 않고 스타카토의 느낌으로 동작의 강조점을 찍어 대범하게 표 현하며, 오랫동안 장구 초급강습의 강사회원이었던 김택현(남, 40대)은 수강생에 게 정확한 박자를 짚어주는 습관 탓에 연주를 할 때 내는 소리가 깊이 퍼지기보 다는 소주의 따끔한 맛처럼 찌르는 듯 한 느낌을 준다.
개인이 저마다의 신체적 특징과 성격을 지니고 있듯 회원들은 자신이 더 선호 하는 느낌의 춤사위와 가락의 방식을 선택하여 자신만의 표현방식을 만들고자 한 다. 여기에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보존회와 그 외에 회원 개인이 상정 할 수 있는 수많은 전문가의 연행은 자신의 취향에 더 맞는 타법이나 춤의 느낌 을 선택적으로 취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통해 연행자는 배역과 자신을 동일시 하여 배역을 이해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를 재창조한다(Schechner 2004[1985]: 409-428). 보존회에서의 전수를 거쳐 풍월신명판의 강습을 통해 형성되는 공연지식은 수강생과 회원에게 전승되는 동시에 그것이 연행자의 몸을 통해 발현되는 순간 개인이 지닌 특유의 색을 드러낸다.
[사례 III-10] 자기자신을 표현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
“그냥 일단 뭐 좋고 이게 막 하다보면 흔히 하는 말로 살아있다, 이러잖아 그런
걸 느껴요. 물론 나는 평소에도 살아있어, 살아있지. 근데 좀 더 내가 내 몸을 막 이렇게 쓰면서 더 나를 드러내게 한다고 해야 되나. […]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지낼라면 좀 숨기기도 하고 수그리기도 하고. 근데 공연을 핑계[로 삼는 것은]
는 아니지만 그걸로 이제 나를 표현하는 거지. 나 이만큼? 이렇게? 한다. 나다.”
- 심진화(여, 50대) 면담, 2015년 2월 16일
연습을 통해 기술적으로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을 넘어 개인이 선호하는 표현방 식을 사용하고 자신의 느낌을 담아내는 것은 전통예술을 빌어 자기 자신을 드러 내는 일이기도 하다. [사례 III-10]에서 심진화가 말하는 “나다”는 자신의 몸으로 자기만의 표현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천명한다는 것을 뜻한다. 직장과 연계되지 않 는 동호회, 학원 등지에서는 여가행위자의 직업이 무엇인가에 관계없이 그 사람 자체로서 존중받는다. 그리고 필요한 기술의 학습과 연행에 집중함으로써 평소 타 인과의 사회생활에 사용하던 자기 자신과는 또 다른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한다 (Moore 2013: 269-271). 이는 진지한 여가를 통해 달성할 수 있는 개인적인 만 족감 중 자아실현을 통해 부가적으로 얻을 수 있는 자기표현의 효과다(Stebbins 1992: 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