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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동호회를 통한 전통예술 향유양상

1) 칭찬과 지적: 우열의 감정

같은 무아지경의 트랜스(trance) 상태에 빠져드는 것을 말한다. 몰입의 순간 그동 안 연습해 온 몸의 기억에 따라 저절로 동작과 소리를 만들어내지만 그때의 느낌 은 그저 나도 모르게 움직인다로 표현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 자신의 몸짓과 역할, 가락에 빠져 그 안에 젖어드는 느낌은 [사례 III-12]에서 도정우와 서도연 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듯 마치 마약을 복용할 때의 느낌으로 추정되는 멍한 극도 의 흥분상태이다. 그러나 무아지경이라고는 하지만 의식 어딘가에 그런 상태임을 인지하고 있으며 추후 그런 상태였음을 자각해낸다는 점에서 완벽한 무의식의 상 태는 아니다.

이때의 나는 평소의 자신이라고 단언할 수 없고 대본에서 명시하는 역할 그 자 체라고도 말할 수 없다. 연행자로서의 상태는 나의 몸을 통해 대본상의 역할을 투 영해내는 중간자적 존재이다. 자신의 존재에 대해 완전히 망각하지 않되 일상적 자아에서 벗어나는 것은 바람직한 몰입의 모습이다(Moore 2013: 272). 연행 중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는 경험은 그 순간의 희열과 함께 전통예술의 능동적 연행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장면이 가감 없이 드러난다. 회원들은 다른 회원의 연습장면을 보고 그에게 잘하 는 점을 칭찬하거나 부족한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대개 초급강습 수강생이나 신입 회원의 경우 잘 못하는 부분이 있더라도 지적보다는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격 려를 받고, 곧잘 하는 부분에 대해 칭찬을 듣는다. 할 수 있다는 격려와 잘한다는 칭찬은 이제 막 장구와 탈춤을 시작하는 입문자에게 좋은 응원이 되고 더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낸다.

칭찬은 신입회원은 물론 현역회원에게도 자신감을 북돋워주는 순기능을 갖는다.

하지만 칭찬의 순기능에도 불구하고 풍월신명판에는 칭찬하기를 막는 분위기도 존재한다. 연구자는 풍월신명판에서 장구를 배우던 중 양서현(여, 40대)에게 “얘 신동 아니에요?” 라는 표현을 동반한 칭찬을 들은 적이 있다. 이 칭찬은 연구자가 정말 장구를 잘 쳐서라기보다는 처음 장구채를 잡아본 사람37)치고 잘 따라한다는 것을 과장한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정덕희(여, 50대)는 양서현에게 연 구자뿐만 아니라 다른 회원 누구에게나 “칭찬도 하지 말고 지적도 하지마[말]”라 고 하였다. 괜한 칭찬은 자만심을 갖게 하여 연습에 소홀하도록 만들고, 굳이 남 의 지적을 받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부족한 점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 그 이 유였다.

[사례 III-12] 칭찬과 지적에 대한 긍정적 평가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 [칭찬이나 지적이] 좋다고 생각해. 근데 여기는 잘 안 하 더라고, 비난하는 투로 될 수 있으니까. 근데 이상한 동작을 하고 있을 수 있잖 아. 근데 대부분 나 혼자가 아니고 여러 사람이 있으니까 지적하기가 기분 나쁠 수 있으니까 [지적을 안 하겠지]. 근데 나는 개인적으로 지적을 해주면 좋지.

[지적을 하는 사람이] 강사가 아니라도 상관없어. 지적해주는 게 부끄럽지 않 아. 잘 모르면 그냥 가르쳐달라고 하고, […] 모르면 모른다, 칭찬도 좋고. 가르 치거나 할 때 칭찬이 좋은 거 같애.”

- 장용택(남, 50대) 면담, 2015년 2월 27일

[사례 III-12]에서 장용택은 풍월신명판 회원들 사이에 존재하는 칭찬과 지적 을 잘 하지 않는 분위기를 두고 아쉬워하는 반응을 보인다. “칭찬도 지적도 못 하

37) 연구자는 제6~7차 교육과정 당시 초․중․고등학교에 재학했다. 당시 음악 교과목은 장구, 소고, 단소 등의 악기를 배우는 내용을 포함했지만 실제 수업에서는 교과서의 모든 내용을 다루지 않는다. 연구자는 초등학교 수업으로 한두 번 장구를 두드려본 것에 그쳐 사실상 풍월신명판에서 장구를 처음 배운 셈이었다.

게 하는 분위기”는 활동연차가 오래 되지 않은 회원에게 크게 공감 받지 못한다.

학습의욕 증진, 동호회로의 정착 등으로 칭찬의 순기능을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적을 받는다는 것은 잘못된 부분을 일찍이 바로 잡을 수 있어 더 이상 나쁜 습관을 들이지 않도록 해준다. 잘못된 습관은 성음을 내고 연주의 속력을 높 이며 춤사위를 멋있게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 따라서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자신 의 모자란 혹은 잘못된 점을 스스로 깨닫기 보다는 타인의 지적을 통해 먼저 깨 우친다면 전통예술의 기술을 연마하는 데 있어 장기적으로 더 낫다.

칭찬과 지적의 긍정적인 효과를 높이 평가하는 회원이라고 하더라도 여러 사람 이 함께 있는 상황에서 특정인의 실력을 칭찬하거나 지적하는 것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칭찬의 경우 칭찬을 받지 못한 다른 회원이 상대적으로 자신의 실 력에 열등감을 느낄 가능성을 염려한다. 지적의 경우 여러 사람이 있는 상황에서 공개적으로 잘 못하는 부분을 주목받도록 만들어 지적을 받은 당사자가 무안함을 느끼고 감정적인 상처를 받을 것을 우려한다. 따라서 공개석상에서 타인의 실력을 쉽게 칭찬하고 지적하는 것은 자제하는 편이 좋다고 여긴다.

[사례 III-13] 회원 간의 실력을 둘러싼 갈등

“인정을 안 하는 거지, 인정하고 싶지 않은 거지 […] 비슷하게 들어오고 실력도 고만고만해. 근데 누구는 실력이 계속 유지되고 다른 사람은 [외부 전문가를 찾 아] 나가서 공부도 하고 했어. 근데 그 때에 들어온 사람은 그 때만 기억하고 [다른 사람이] 성장한 과정은 못 본다는 거지. […] 자기는 노력을 안 했잖아.

그 사람은 [별도로 노력을]해서 됐는데 [그 실력을 인정] 안 해. 그게 동아리에 있어. [반대로] 조금 내가 나름대로 [열심히] 한 거 같애, 근데 이전에는 이렇게 [웬만큼 하는 듯] 보였던 사람이 [이제는] 만만하게 보이는 그런 것도 있어. 나 도 쟤처럼은 할 수 있는데, 그게 동아리는 아웅다웅하면서 사는 것 같더라고. 그 래서 갈등이 생기는 거고.”

- 지혜영(여, 40대) 면담, 2015년 2월 6일

회원 간의 칭찬과 지적을 자제하는 분위기는 풍월신명판이 전문가집단이 아닌 일반인 동호회라는 배경과도 관련된다. 실력과 감정의 문제가 교묘히 얽혀 실력에 대한 인정문제가 회원 간의 감정싸움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는 비단 지혜영이 지적한 것([사례 III-13])처럼 비슷한 시기에 입성한 회원들 사이에서만 나타나 는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시기에 동호회에 입성하였더라도 서로 다른 경력의

단계를 갖는 회원들은 자신과 타인의 기술수준에 대해 동일하게 평가하지 않는다.

회원 개인이 스스로의 경력을 판단하는 것은 객관적인 수치를 기준으로 하기 보 다는 주관적인 판단에 근거한다(스테빈스 2012[2007]: 52-53).

특히 스스로의 실력이 기초수준을 벗어나 어느 정도의 궤도에 올랐다고 여기는 순간 다른 회원의 실력을 평가하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기술이나 표현방식 을 “전도”한다. 그러나 풍월신명판 회원은 전통예술 관련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이나 동호회 활동, 전통예술의 학습기간이 오래되지 않은 경 우 자신과 타인의 실력을 정확히 파악하는 눈을 갖추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에는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어 렵다. 결국 타인의 우수함이나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쉽게 인정하지 않는 것은 타 인에 대한 칭찬이나 자신에 대한 지적 역시 유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도록 만든다.

[사례 III-14] 칭찬과 지적의 역기능

“나하곤 별로 안 친해. 근데 조금만 고치면 참 이쁘고 잘 할 것 같아서 고민을 하다가 가서 한번 얘기를 했다고. […] 근데 대뜸 쳐다보면서 굉장히 약간 불만 스러운? 그런 느낌으로 아이고, 당신은 저것도 안 되는데요, 이러는 거야. 그니 까 내가 지적질을 했다라는 느낌으로 받은 거 같애, 그 사람은. 나는 의도는 그 게 전혀 아니었는데. […] ○○○를 칭찬했어. 그랬더니 옆에서 아이 뭐 젊으니 까 잘하지, 그런 투로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 투로 뭔가 내뱉더라고. 그것도 하 여간 좀. 참, 사람관계는 조심스러워 해야 할 부분이 많아.”

- 윤상민(남, 50대) 면담, 2015년 2월 22일

칭찬과 지적에 반대하는 회원은 “도찐개찐[도긴개긴]”의 실력을 가진 회원 간에 서로의 실력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기술의 발전에 별다른 효과를 낼 수 없다 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의 연주나 춤사위를 지적한 회원에 대한 반발심을 불러일 으키고, 공감되지 않는 칭찬을 받은 회원을 질투하여 이것이 감정싸움으로 번져 활동상의 난항을 겪을 것을 경계한다. [사례 III-14]가 보여주는 윤상민의 경험은 회원 간의 친밀도가 적절히 쌓이지 않은 상태에서 가해지는 지적의 경우 회원 간 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들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타인에 대한 칭찬 역시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

극단적인 경우 이는 동호회 탈퇴로 이어진다. 하지만 “질투를 하잖아 그러면 너 왜 자꾸 지각하고 그래 이런다고 […] 전에 패가 깨진 것도 표면적으론 다른 이유 야, 근데 떨어져 나간 사람 중에 질투를 받은 사람이 많았어” 라는 나재환(남, 40

대)의 말처럼 풍월신명판 활동을 그만 두는 이유로 칭찬이나 지적은 가시화되지 않는다. 최근 정기모임에 참석하지 않아 사실상 그만둔 것으로 간주되는 이주승 (남, 70대)의 활동중단 이유는 건강이라는 일신상의 문제다. 그러나 또 다른 배경 에는 연행방식을 두고 다른 회원과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어왔으며 그 문제가 말 다툼으로 점화되었던 사실도 존재한다.

칭찬과 지적이 때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때로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활동의 촉 매가 되는 것은 비전문가로서 여가와 애호의 대상으로 예술을 직접 연행하고자 하는 이들의 모임, 즉 예술동호회의 특징이다. 일상에서 예술을 영위하고자 하는 비전문가에게 공개적으로 지적이나 칭찬을 가하는 것은 그의 실력을 두고 뛰어난 것과 뒤쳐진 것이라는 구분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이는 실력을 앞세워 회원들 사 이에 위계를 조성한다. 모두가 대등한 관계이길 지향하는 동호회 회원 간에 그러 한 위계는 감정적 상처를 유발할 수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활동하는 동호회에서 칭찬과 지적의 역기능은 진지한 여가를 행하는 데 있어 이겨내야 할 또 다른 인 내의 대상인 것이다.

풍물굿과 탈춤 실력을 향상시키면서 동호회 활동도 오래 할 수 있는 대안으로 나재환은 타인의 기술에 대해 잘 한다 혹은 못한다는 식의 평가를 내리기 보다는 표현에 대한 선호도를 이야기함으로써 칭찬의 방식을 우회할 것을 제안한다. 공개 적인 비판이나 비난이 아닌 대화로써 지적에 내포된 딱딱한 분위기를 없애고, “그 게 뭐가 잘 하는 거야”가 아니라 “너는 그게 좋구나, 하지만 나의 느낌은 다른데”

하고 타인에 대한 칭찬을 질투하는 대신 쉬이 넘겨들을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는 동호회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필요한 위계와 감정싸움을 막고 회원들의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드는 하나의 방편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에 회원 모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니며, 새로운 사람이 들고 날 때면 칭찬과 지적의 문제는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