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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추어 전통예술가와 무형문화유산의 전승

IV. 전통예술 연행의 양면성

3. 아마추어 전통예술가와 무형문화유산의 전승

풍월신명판은 서울시 운봉구에서 터전을 잡고 활동하고 있지만 주력작품으로 내세우는 것은 운봉구의 것은 물론 서울에 기원을 갖는 풍물굿과 탈춤이 아니다.

이는 풍월신명판의 설립취지 중 하나가 지역문화 형성이라는 것, 단체의 설립 초 기 간직했던 문화운동의 흐름이 지역적 현장성을 고려한 지역문화운동을 주장했 던 것(박영정 1986)과 유리되어 보이기도 한다.

각 지역과 마을에는 저마다의 특색을 지닌 풍물굿과 탈춤이 있지만 풍월신명판 은 활동의 근거지인 서울에 기반을 둔 풍물굿과 탈춤을 다루지 않는다. 이에 대해 창립회원 한승훈은 “서울에 마을굿이 어딨냐”고 반문하며 다른 지역의 마을굿을 다룰 수밖에 없었던 사정과 대학시절 이미 경험한 서울근거의 탈춤 외의 탈춤을 배우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서울에 기반을 두는 마을굿과 탈 춤을 주력작품으로 삼고 싶었더라도 마땅한 방안이 없었다는 현실적인 배경도 있 다.44) 더욱이 운봉구는 1960년대 서울시로 편입되어 그 이전까지는 경기도에 속 했던 지역이다(운봉구청 홈페이지 연혁 참조). 따라서 운봉구라는 좁은 범주의 지 역문화에 집중하고자 해도 역사적으로 서울에 근거하는 무형문화유산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이다.

풍월신명판의 인적구성을 본다면 반드시 서울 또는 운봉구에 연고를 갖는 무형 문화유산을 연행할 필요는 없다. 이미 동호회 설립 초기 회원 중에는 비(非) 운봉 구민이 있었다. 또한 현재에도 풍월신명판 회원 중 1/3 가량의 거주지는 광명, 시 흥, 안산, 일산 등 서울이 아닌 경기도이며, 회원의 출생지는 전국 각지에 분포한 다. 경기도 내 거주지와 연습실이 위치한 운봉구 간의 거리는 아주 가깝다고 말할 수 없지만 경기도민에 해당하는 회원들은 직접 전통예술을 하기 위해 기꺼이 풍 월신명판을 찾는다. 이들은 운봉구나 인근 지역에서 근무하여 사실상 이동거리가

44) 문화재관리국(현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지역별 한국민속종합조사 중 서울에 대 한 조사보고서는 남한지역 중 가장 마지막(1979)에 발간되었고, 농악․풍어제․민요에 해당하는 주제별 한국민속종합조사보고서 13(1982)에서도 서울지역의 농악은 다 루지 않는다. 서울시 주관의 서울민속대관 은 서울민속에 대한 유일한 종합적․체계 적 접근이라 여겨지지만(정형호 2015) 풍월신명판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1990~1996년 사이 발간되어 단체의 활동방향을 탐색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보기 어렵다. 탈춤의 경우 봉산‧강령탈춤과 송파산대놀이가 서울에 보존회를 두고 있지만, 앞서의 두 탈춤은 이북지역에 연고를 두고 있다. 한편, 행정적으로도 서울의 마을굿이 시도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1999년의 남이장군당제(서울특별 시 무형문화재 제20호)가 처음이다.

멀다고 생각하지 않고 교통의 발달로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다.45) 더욱이 회원 중 에는 본래 거주지에서 활동하던 전통예술동호회가 사라졌다는 이유로, 또는 거주 지 인근에 전통예술동호회가 없거나 그런 곳이 있는지 알아볼 방법이 없어 풍월 신명판을 찾아왔다.

[사례 IV-8] 지역적 경계에 갇히지 않는 주력작품

“학교 다닐 때 필봉좌도 쳤는데 여긴 전북마을굿, 필봉이랑 사촌[격의 풍물굿]

이야. 근데 여기[에서] 춤도 한다더라고, 경남[오광대]. 근데 그것도 학교 다닐 때 했거든. [대학교에서 활동할 때] 풍물이 단점이 악기를 [손에서] 놓으면 [어 떻게] 놀 줄을 몰라서 탈춤을 해보자 해서 경남[오광대 보존회]으로 전수 간 거 지. […] 그렇게 했어서 너무 기분이 좋은 거야. [풍월신명판에서 하는 것들이 대학 때 했던] 굿도 비슷하고 경남오광대도 하고. 그래서 아, 여기가 내가 있을 곳이구나.”

- 도정우(남, 40대) 면담, 2015년 2월 25일

오히려 서울에 근거지를 두는 풍월신명판에서 전북마을굿과 경남오광대를 하는 것은 [사례 IV-8] 도정우의 언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서울에서 나고 자라지 않은 회원에게 고향이나 학창시절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해준다. 그 덕분에 풍월신명판의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고 본 동호회의 주력작품이 낯설지 않아 새 로운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다. 설령 과거 자신의 경험이 전북마을굿이나 경남오광대와 접점을 갖지 않더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풍월 신명판에서의 활동은 전통예술에 대한 관심이라는 거시적인 명목으로 시작된 것 이고 주력작품에 애정을 갖게 되는 것은 그 이후의 일이기 때문이다.

전북마을굿과 경남오광대는 그 이름에 특정 지역명을 갖고 있지만 그로 인해 해당 지역에서만 전유해야 하는 문화로 인식되지 않는다. 하회마을이라는 국지적 인 장소의 의례였던 하회탈춤이 안동시라는 넓은 지역의 표상으로 거듭나고 더 나아가 보존회 회원 일부에게 한국의 전통문화로서 민족성과 주체성의 표현으로

45) 탈춤 초급강습을 홍보하기 위해 일산에 거주하는 회원의 차량에 강습포스터를 붙 였던 것은 장난스러운 행위였다. 그러나 이는 풍월신명판으로의 이동이 편리하다는 것과 풍월신명판이 풍월동이라는 지역명을 가지고 있고 그곳을 활동의 거점으로 삼 지만 실제 회원은 거주지에 관계없이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다는 함의를 갖는다. 편 리한 이동성은 지역기반의 동네 아마추어 음악가의 활동이 활발한 밀튼킨즈 사례 (Finnegan 2007[1989])에서도 인근지역의 거주자가 합류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까지 여겨졌듯이(류정아 1989), 전통이라는 커다란 우산 아래에서 전라도의 마을 굿과 경상도의 오광대는 한국인으로서 누구나 행할 수 있는 무형문화유산으로 포 섭된다. 이는 서울에서 활동하는 풍월신명판이 전통을 위시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의 마을굿과 오광대를 주력작품으로 다루는 것에 따른 이질감을 상쇄시켜준다.

물론 주력작품의 내용에는 지역기반의, 나름의 특이성이 담겨있다. 전북마을굿 은 지리적으로 산이 많아 잔가락을 연주하지 않고 악을 치며 길을 오르내리기에 편한 투박한 느낌을 지닌 좌도농악의 특징이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다 른 농악보다 두드러진다고 여겨진다. 반면 경남오광대의 경우 위로 뛰어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탈춤에 비해 춤동작이 더 많고 일종의 기(氣)운동처럼 그 동작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고 말한다. 이러한 특징은 분명 초급강습 당시 강사회원이 수강생에게 짚어주는 부분이다. 하지만 처음 풍월신명판을 찾아왔을 당시에는 별달리 생각하지 않다가 동호회활동을 지속하는 가운데 깨닫게 된다. 이 는 전통예술에 대해 가졌던 막연한 관심이 특정 대상에 대한 애정으로 변하는 과 정에서 나타나는 것이며, 더 나아가 애정은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연결된다.

[사례 IV-9] 전통예술동호회 활동의 의의

“풍물을 통해서 배운 게 뭐냐면 우리 풍월신명판이 전라좌도라고 했었잖아, 그 래서 이런 동호회를 [따라서 풍물이 전달되어] 내려가면 사람들이 그걸 또 얼마 만큼 활성화시키고 그거를 지켜주느냐에 따라서 [풍물을 알릴 수 있는 것 같아 요], 그게 왜 춤도 보면 사사받는 선생님[으로 해서] 누구류, 누구류 하고 바뀌 잖아. 그게 후배들이, 후손들이 선생님에 대해서 얼마만큼 그거[선생님의 춤]를 받아서 넓게 활동하고 퍼트리고 잘 지켜주느냐에 따라[에 달린 것 같아.] 그 당 시에 그 선생님이 유명하지 않고 다른 분보다 들떨어졌더라도 후손이 잘 계승을 시켜서 뭐 연구해서 공연하고 밑에 사람들이 더 보태서 하고 하면 [오히려 활동 당시에는 유명하지 않았던] 그 분이 [나중에는] 더 훌륭한 사람일 수 있는 것처 럼, 그런 것처럼 이것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채진서(여, 50대) 면담, 2015년 2월 4일

아마추어집단인 풍월신명판의 회원들은 전문가이자 스승인 보존회에게 맹목적 으로 감사하는 마음만을 가지지 않는다. 오히려 회원 중 일부는 전북마을굿과 경 남오광대 보존회가 “우리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보존회에서의 전수를

통해 사제관계를 구축하기도 하지만 풍월신명판 회원들이 전통예술을 능동적으로 향유하고 대중에게 공연을 한다는 점에서 보존회의 유사 서울지부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례 IV-9]에서 채진서가 인식했듯 소집단에 의해서 만 행해지고 상대적으로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무형문화유산이 현재와 후대 의 사람들을 통해 연행될 때 해당 유산은 지속적으로 그 형식과 내부에 담긴 의 미를 전승할 수 있는 힘을 갖는다. 지리적 거리, 금전, 시간 등의 이유로 보존회와 학원을 통해 전통예술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풍월신명판과 같은 동호회는 지역기반의 무형문화유산을 접하는 매개 역할을 하 는 셈이다.

전통예술동호회 활동의 주체는 회원 자신이며 그 안에서 느끼는 효용은 다른 누구도 아닌 스스로에게 돌아온다. 공연은 풍월신명판 회원에게 있어 개인의 능동 적인 예술향유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이는 자신만을 위한 유희에 그치지 않는다.

아마추어단체로서, 그에 속한 구성원으로서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전통의 이 미지를 착용하고 가능한 최선이자 최대의 기량을 낼 수 있도록 노력하며 관객에 게 즐거움을 전달하고자 연행과 미소와 흥으로 다가간다. 이는 자신이 좋아서 하 는 활동이지만 전통예술, 무형문화유산의 전파라는 부가적인 결과를 양산한다. 전 통예술동호회인 풍월신명판 회원은 무형문화재 보존회의 일원도 아니고 전업예술 가도 아닌 아마추어집단의 일원이다. 하지만 이들은 진지한 여가로서 자신의 활동 에 몰두하고 관객과의 소통을 염두에 두는 연행방법을 고심하면서 공연을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회원이 유치되길 기대하는 등 해당 장르에 호응하는 대중을 확 보하는 한 축을 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