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 전통예술 연행의 양면성
1) 잘하기와 즐기기의 줄다리기
쉬움을 느끼지 않는다. 따라서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을 한 지 오래 되었더라도 그의 기량이 뛰어나다고 말하기 어렵다.
전통예술동호회 활동의 본질을 전통예술 그 자체에 두는 회원은 잘 하는 사람 이 “왕초”이며 “나를 지탱해주는 것은 기량뿐”이라고 말한다. 전통예술을 직접 행 하며 얻고자 하는 것은 순간적인 재미만이 아니다. 풍물굿과 탈춤에 필요한 기술 을 익히면서 자기실현의 보상을 얻는 데서 예견할 수 있듯이,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욕구 역시 존재한다. 사실 풍물굿과 탈춤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실 력이 담보되어야 한다. 기량증진에 대한 욕구가 강한 회원은 동호회의 활동에서 잘하기의 가치를 지향하며 끈기 있고 강도 높은 연습을 강조한다. 이 지점에서 회 원의 정체성은 진지한 여가의 헌신자로 거듭나며 취미활동가 내지는 아마추어로 서의 입장을 더욱 분명하게 취하게 된다.
물론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더라도 회원들은 자신에게 풍월신명판에서의 연습 외에도 수행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는 자각을 갖고 있다. 기량향상의 욕구에도 불 구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수많은 현실의 역할 때문에 여가활동에만 모든 시간을 들이기는 힘들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Stebbins 1992: 53). 다만 이 경우에는 앞서와 같이 시간의 부족이 실력도, 노력도, 아쉬움도 없는 나태함으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별로 설정한 목표치에 도달하는 데 조바심을 내지 않고 장기간 시간을 안배하여 꾸준히 연습을 해 나가는 동력으로 작동한다.
풍월신명판에서의 소속과 활동을 유지하는 데는 내부적으로 전통예술을 통해 느끼는 재미와 실력 향상만 작용하지 않는다. 풍물굿이나 탈춤이 좋고 해보고도 싶어서 동호회를 찾아오지만 어느 정도 악기의 소리를 낼 줄 알게 되고 춤의 순 서를 숙지하게 되면 재미를 느끼는 순간은 줄어든다. 또한 열심히 연습을 하지만 생각보다 기량은 빨리 향상되지 않는다. “도대체 언제 늘어” 하는 회의감과 함께 평정심을 지키기 어려운 순간이 찾아온다. 기존에 해오던 연습으로 재미와 실력 중 활동의 어떠한 동인도 갖지 못하는 순간 전통예술 그 자체와 동호회 활동이 지루해지는 것이다. 이때 풍월신명판 회원들은 보존회에서의 전수를 비롯하여 새 로운 학습대상을 찾아 동호회 활동과 전통예술을 직접 행함에 환기를 불어넣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활동에 자극이 되는 요소는 공연이다.
공연은 자신의 연습과정과 실력을 반추해볼 수 있고 무대에 선 공연자라는 상 황과 연행에 몰입하는 쾌감을 준다. 앞서 [사례 IV-2]에서 채진서가 지적하듯이 전문가인 프로와 비전문가인 아마추어라는 통상적인 구분에서 아마추어가 마땅히 관객을 두고 공연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다. 이는 공연기회를 갖기 힘든 전
공자도 전업예술가도 아닌 회원들로 하여금 정기공연을 비롯한 각종 대외공연을 수행하는 풍월신명판에 남아있도록 한다. 더 나아가 공연은 회원 각자에게 취미활 동가와 아마추어로서의 입장 차이를 유발한다.
진지한 여가의 행위자 가운데 풍월신명판 회원이 취하는 기본 정체성이 취미활 동가라고 할 때, 그것을 공연 상황에서도 유지하는 회원에게 관객이란 단지 공연 당시 그 현장에 있는 사람에 불과하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전통예술을 연행한다 는 사실 그 자체이며 관객과 그가 공연에 보이는 반응은 그다지 중요한 고려대상 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연이 자신들만의 연행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고, 관객의 존재를 염두에 두는 아마추어로서의 자각을 가진 회원은 자신의 연행 에 따라 관객의 반응이 시시각각 다르다는 것에 촉각을 세운다. 공연은 자신을 비 롯한 다른 동료들이 무대에서 선보이는 연행이지만, 공연의 또 다른 참여자인 관 객 역시 호응을 통해 공연의 분위기를 고조시킨다는 것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아마추어로서 공연에서 추구해야 할 가치는 즐기기와 잘하기 중 섣불리 어느 하나를 더 우선시하기 어렵게 된다. 일차적으로 공연을 잘해야 한다 는 생각의 배경은 수익금과 관객에 대한 책임감에서 기인한다. 수익금은 “돈 받은 값어치를 해줘야” 한다는 부담을 준다. 수익공연은 일이자 놀이로서 “돈[을] 주니 까 더 좋”기도 하지만 수익금은 풍월신명판에 공연을 의뢰한 또 다른 관객의 기대 치를 물질적으로 보여준다. 외부에서 수익공연 의뢰가 들어오는 경우는 공연주최 측에서 전문가를 섭외하기에는 재정이 부족하지만 그렇다고 초보자를 섭외하기엔 공연의 질을 보장할 수 없는 때의 대안에 해당한다. 이들에게 풍월신명판의 연행 은 적정선의 가격에 전문가와 준할 수 있는 결과물을 보여줄 것이라 기대된다. 따 라서 풍월신명판 회원들은 수익금과 관객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공연을 잘해내기 위한 시도, 즉 연습의 강화를 꾀하게 된다.
[사례 IV-3] 공연에서 추구해야 할 방향
“잘 치는 거하고 흥 내는 건 다른 거 같애. 잘 쳐도 흥 안 날 수 있어요. 그런 사 람은 악 치는 게 중요한 거야. 그럼 본인은 즐겁지. 근데 방향이 틀린 거지. 내가 같이 어울리고 즐기는 건 굿판이 들썩거리는 거고. 잘 치는 거에만 목적이 있는 사람은 가락을 열심히 쳐서 가락을 만들어 내는 거에 만족을 느껴서 흥을 느끼 는 거니까, 전체에 영향을 줄 수는 없어. 자기만족인거지. 에너지가 밖으로 안 나와요.”
- 지혜영(여, 40대) 면담, 2015년 2월 6일
연습의 강화는 잘하기의 가치를 중시하는 데서 나온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 잘하기 위해 연행 중 실수를 할 것이 두려워 관객과의 소통은 고려하지 않고 자 신의 역할수행에만 몰두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지 못한다. 공연에서 중요한 또 다른 지향은 “하는 사람하고 연행자하고 보는 사람이 즐거”운 것이기 때문이 다. [사례 IV-3]에서 지혜영이 잘 치는 것과 흥을 유발하는 것, 즉 연행을 기술 적으로 잘 해내는 것과 연행을 통해 관객과 공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을 구분한 것은 공연에서 추구해야 할 또 다른 가치에 방점을 두는 데서 기인 한다.
공연 당시의 관객은 수동적으로 무대 위의 연행을 관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 라 표정과 움직임으로 반응을 보인다. 이를 감안할 때 공연에서 관객과의 호흡은 필히 고려해야 하는 요인이 된다. 여기서 중요하게 떠오르는 가치는 즐기기이며, 실력에 대한 압박은 상대적으로 누그러진다. 관객으로 하여금 재미와 흥을 느끼도 록 하는 것은 기본 합이 맞는 것으로 충분히 해낼 수 있으며, 풍물굿의 엇박과 변 박이 약간의 실수를 덮어줄 수 있고 탈과 복색이 “요즘 사람들”에게 눈요기가 된 다고 보기 때문이다. 공연에서 추구해야 하는 즐기기의 가치는 연행자 홀로 느끼 는 것이 아니라 관객과 함께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즐기기의 가치를 실현 시킬 수 있도록 가시적인 효과를 발휘하는 미소는 음악, 춤과 더불어 이루어져야 할 또 다른 연행이다.
결국 다양한 입장을 지닌 회원이 한데 모인 아마추어집단으로서 풍월신명판이 공연에서 지향하게 되는 가치는 잘하기와 즐기기를 아우른 것으로, 최선의 실력을 기반에 둔 즐기기이다. 전문가의 공연에서 기대되는 것은 뛰어난 기술과 그것을 통해 느끼는 감흥이다. 하지만 회원의 개인사정, 동호회 활동과 공연에 취하는 입 장과 노력에 따라 단체의 합으로 도달할 수 있는 실력에 제한이 있는 아마추어집 단에게는 잘하기의 지향과 그것을 실현시켜줄 기량이 반드시 우위를 점하지 않는 다. 그렇다고 하여 섣불리 단체로서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의 질을 스스로 저평가 하지는 않는다. 공연 전후의 소개발언으로 “우리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와서 함께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동호회임을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아마추어를 과 소평가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Stebbins 1992:
117-118)의 일환이다.
연행자가 공연의 순간을 즐기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웃음은 관객에 게도 즐거운 기운을 전달한다. 이 지점에서 취미활동가가 자기 스스로 그리고 동
료와 함께 하는 재미를 추구하고자 발산하는 연행은 아마추어가 지향하는 관객과 함께 즐기기라는 가치에 포섭된다. 따라서 다양한 행위자로 구성된 풍월신명판이 만들어낼 수 있는 전통예술의 합은 관객을 위해 최선의 기량을 준비하되 회원 스 스로도 즐기면서 선보이는 공연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연행을 통해 관객에게 “아 무것도 아냐, 너도 할 수 있어, 같이 하자,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도록 한다.